정토행자의 하루

사하지회
삶이 기적 같아

“〈정토행자의 하루〉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허탈한 웃음으로 “전 안 당당하고 연차가 짧아서 기삿거리가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재선 님. 도전이 무서워 항상 도망부터 가고 보던 그녀가 정토회 동앗줄 딱 잡고 행복의 나라에 오르는 인생 드라마. 함께 보실까요?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식 동생과 함께(왼쪽이 재선님)
▲ 2018년 가을불교대학 졸업식 동생과 함께(왼쪽이 재선님)

세상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열 살

어느 날 갑자기 유리병이 깨지더니, 아빠, 엄마는 헤어졌습니다.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맏딸로서 간곡히 아빠, 엄마 셋이서 만나자고 부탁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다시 원래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설득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빠 손잡고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결국에는 엄마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안전 제일주의. 강박 체킹(확인 강박증)은 저를 안정시켜주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는 겉모습의 태도는 소처럼 성실하고 우직하며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약속은 철칙이었습니다. 이에 따라오는 책임감은 나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겉과 속마음을 다르게 하고, 한마음이 아니라 두 마음을 가지게 했습니다. 잘해야 하고, 긍정적이어야 하고, 행복해야만 하는 것들도 온 힘을 다해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그 힘으로 밀림의 욕심쟁이 사자처럼 저를 지배하고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했습니다. 부글부글 타오르는 화와 짜증은 동생들을 제압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라다

제가 원하는 부모님이 아니었기에 불만을 토로할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감사해야 한다, 네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 ‘우리 할머니’. 그런 할머니였기에 더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녀 나이 50에 저와 남동생, 여동생 그리고 살림까지 도맡아주셨습니다. 할머니의 희생과 피땀으로 우리 셋은 살아간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 생각으로는 감사하다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부처님 법 만나 경전 공부하던 어느 날, 진심으로 고개 숙이며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너희가 오히려 바르게 커 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주르륵 하염없이 흐릅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된 건 여동생에게 전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소개팅하러 가는 줄 알고 이끌려 간 불교대학

불법 만나기 전 제 모습은 소의 탈을 쓴 사자였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라 열정을 쏟아 부었다가 무심해지고, 과잉 친절을 베풀다가 고집부리며 침묵합니다. 저도 저의 마음을 모른 채 감정 기복의 롤러코스터만 탄다고 힘이 들었습니다. 저의 불안을 안정시켜줄 곳을 찾아 부지런히 헤맸습니다. 특히 명상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리저리 가 봐도 갸우뚱하기만 했습니다. 2017년 여름 어느 날, 여동생이 집에 오더니 빨리 옷 갈아입고 나오라 했습니다. ‘갑자기 저 애가 왜 저래. 남자 소개해주려나?’ 핫핑크 짧은 팔 여름 티에서 노란색 티로 갈아입고 나서니 여동생은 저의 옷차림에 한마디 하려다가, 시간이 없었는지 “마, 빨리 가자”고 했습니다. 여동생은 묵묵히 앞서가다 어느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7층을 누릅니다. 평소와는 다른 여동생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립니다. 스님 얼굴이 보이는 배너에 불교대학 입학 글귀가 보입니다. 순간 멈칫하고 여동생과 실랑이를 했습니다. 여동생은 “미리 말했으면 언니가 안 할 거니까,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 법문 들어보고 결정하자” 법당의 누군가가 나와서 친절하게 또 맞이합니다. 참 거절하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법당에 들어서니 왁자지껄합니다. 이날은 화명 법당 가을 불교대학 입학식 날. 저는 동생이 이미 입학금을 내버린 불교대학의 입학원서를 적고 주저해볼 틈도 없이 정토회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2020년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홍보중(왼쪽 재선님)
▲ 2020년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홍보중(왼쪽 재선님)

내 마음은 오락가락 시소를 타고

부처님이 액자에 있고, 스크린으로 스님이 나타나는 법당 분위기는 저의 경계와 심적인 가시들을 돋게 했지만, 입학 법문은 저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법문 중 “직접 와서 법문해야 법문이고 영상으로 하면 법문이 아닌가요? 같은 법문입니다 .” 이건 진리로 느껴졌습니다. 옳거니 하는 탄성에 속마음을 탁! 지립니다. “법문 놓치기가 싫으니 법당에 올까?” 반면에, 나누기가 너무너무 싫었습니다. 할 얘기도 없는데 자꾸 말하라고 하니 부담 백배입니다. 약속 시간만큼 나누기하지 않고 너무 길게 말하는 사람 보면 훅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나누기 내용에 배움이 있었습니다. 제 마음은 또 오락가락했습니다. 이 마음을 잠재운 건 공양이었습니다. 입학생 19명의 점심 공양은 맛을 떠나서 너무 정성스러워 보였습니다. 맛까지 맛깔나니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 어쩔 수 없이 일단 법당 방석에 앉았는데, 법문으로 진리를 만나고, 싫다는 나누기에 배움을 느끼고, 공들인 밥상을 받고, 설거지도 못 하게 하면서 부지런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하시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전 또, 또 내 마음의 시소를 탔습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시소의 중심축은 법문. 일단 법문 놓치지 않으려고 매주 법당을 갔습니다. 성실한 소처럼,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사자처럼 하지만 마음은 묵직했습니다. 정토회에 빠질까 봐. 그래서 법당에서 주시려는 봉사 소임은 초장에 도망갔습니다.

편안했던 목탁 소리가 내 소임이 된다면

법문 들으러 법당에 갔습니다. 그냥 집 가기가 미안하니깐 당일 봉사는 찔끔찔끔했습니다.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치우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했습니다. 속마음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더 깨끗하게 설거지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저도 모르게 공양간1 설거지 봉사를 2년 가까이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법문에도 녹아들었지만, 스멀스멀 들어오는 봉사 소임 제안에 도망도 못 가고, ‘안 합니다. 못합니다. 마음 불편합니다.’ 라면서도 할 수 없이 목탁 집전 소임을 받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생각하지만, 제 마음 안에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오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업체를 만들고, 성공하신 분이었습니다. 집안에서는 과묵하셨지만, 주위 평판은 부처 같은 사람입니다. 남을 하대하지 않고, 남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사셨다는 걸 장례 후 알았습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타인으로부터 존중은 받았지만, 정작 자기 몸은 돌보지 않았습니다. 장례는 넋이 빠진 채 손님 치른다고 정신이 없었고, 30대 초반이었던 저는 겁먹은 병아리같이 심장만 콩닥거렸습니다. 그때 어른들이 49재를 추천해주셨습니다. 들어는 보았지만, 본 적이 없었던 49재를 올리는 동안 반야심경22을 처음 들었습니다. 내용은 어렵게 느껴졌지만, 목탁이 있는 염불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2018년 화명법당 가을불교대학 주간반 목탁 집전 회향(뒷줄 왼쪽)
▲ 2018년 화명법당 가을불교대학 주간반 목탁 집전 회향(뒷줄 왼쪽)

내 발가락 앞에 있는 방석 자리가 내 자리임을 알다

집전 교육은 일단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목탁을 배우는 건 어려웠지만, 그 자체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이어진 집전 봉사 소임은 저의 책임감이 발동하고 잘해야 한다는 라는 생각.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수해도 아무도 모른다.’라는 봉사자의 귀띔과 시간 내어서 가르쳐주시는 분의 열과 성의를 보면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약간의 주저함도 접고, 집전 봉사 소임을 해나갔습니다. 근데, 대! 박! 수업 집전, 불교대학 입학식 집전, 백중기도 300배 집전까지 목탁을 떨어트려 도반들 기도에 방해라도 될까 초긴장하며 목탁을 쳤습니다.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집전의 의미는 저에게 컸습니다. 삼귀의로 첫 목탁을 칠 때 제 안에 들떠있는 마음, 가라앉아 있는 마음에 기울지 않고 평정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다녔던 저의 안정적 마음자리가 바로 내 발가락 위에 있는 방석 자리라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잡혔습니다.

그 삶의 주인인 제가 좋습니다

10-8차 천일결사3 담당이라는 첫 소임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는 ‘네’하고 합니다. 저의 책임감으로 소임의 담당답게 해야 한다는 생각, 제가 기도하지 않고 다른 도반에게 제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권유하는 게 염치없다고 여겨져, 소임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수행 정진합니다. 늘 무거웠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은 가벼움으로 향합니다. 변하지 않는 상황,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니 삶이 기적 같아, 그 삶의 주인인 제가 좋습니다. 그 마음 덕분에 온라인 법당 전환 후 사하지회 천일결사 소임을 가볍게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수행하는 데는 어려울 것도, 이해가 안 될 것도 없습니다. 온라인 법당이 되면서 한 분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알아가며 적응합니다. 온라인 경전대 돕는이 소임, 지난 봄 학기와 현재 가을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통해서 더 많은 활동을 합니다. 저는 활동가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는 것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되니 행복합니다.

2022년 봄불교대학 학생들과(뒷줄 오른쪽)
▲ 2022년 봄불교대학 학생들과(뒷줄 오른쪽)

가만히 돌이켜보니, 저는 도전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10세 때 거절, 실망, 절망을 심적으로 경험하였기에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역할은 일단 도망부터 갔습니다. 그래서 늘 두 마음의 시소를 탔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것만 선호했습니다. 봉사 소임으로 활동을 한다는 건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늘 망설이던 저를 책망하지 않고, 정토회 끈 딱 잡게 해준 선배 도반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미 저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활동을 통해 도전했습니다. 완벽한 불교대학 진행 안내멘트들, 활동하기 전 봉사 교육들은 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포용해 주었습니다. 초보자도 전문적인 봉사자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이 모든 과정이 정토회 시스템이고, 놀랍게도 댓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로 이루어지는 점이 매력입니다.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은 있지만, 마음의 결핍과 상처로 구멍 난 빈 곳을 부처님 법 만나 채워나가는 삶에 도전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나눌 수 있을 때 나누는 행복’이라 하신 법문의 말씀이 제 존재 의미를 과거에 두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게 합니다.

불교대 학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불교대학 입학 후, 바른 불교, 생활불교, 쉬운 불교를 접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나의 어리석음을 자각하고 매일 수행 정진을 통해서 저를 알게 되니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늘 저만 생각하고 살던 저였습니다. 불법을 만나게 된 계기도 제 행복을 무척이나 바랐던 여동생 덕분이었습니다. 여동생이 저를 불교대학에 처음으로 이끈 그 후로도 발을 뺄 것인가 담가둘 것인가 망설였고 그런 저에게 여동생은 불교대학, 경전반, 깨달음의 장, 명상수련, 나눔의 장까지 모든 입학금을 대며 저를 잡아주었습니다. 늘 아낌없이 지지해주고 믿어주었던 동생이 없었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 마음공부를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요? 동생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요즘 저는 동생이 저에게 주었던 나눔을 이제 다른 이에게 실천하면서 행복의 가치를 새롭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난 저는 많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활동할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자유롭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2022년 봄학기 주례회의(맨 윗줄 맨 오른쪽)
▲ 2022년 봄학기 주례회의(맨 윗줄 맨 오른쪽)


삐악삐악하며 가볍게 날갯짓하는 병아리에서 독수리의 비상을 꿈꾸며 수행 정진한다는 김재선 님은 당당한 정토회 회원이고 활동가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눈부시게 멋져 보이는 재선님은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임이 틀림 없습니다. 인터뷰에 수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_허승화(희망리포터 부산울산지부 사하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1. 공양간수행과 생명공경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정토법당 대중들의 안정적인 식생활을 보장하는 곳. 공양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행으로, 정토회 공양간은 생태적이고 소박한 밥상을 지향함. 공양간 봉사자들은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  

  2. 반야심경대승경전의 하나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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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화박순천

한 숨에 쑥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전법해준 동생분, 맛깔스럽게 글 써주신 하승화님, 봉사로 회향하고 계신 김재선님, 모두 고맙습니다^^

2022-08-05 11:07:06

이서연

어쩌면 우리 인가들은 행복과 불행을 같이 나누면서
살아가야 된다는걸 태어날때 이미손에 쥐고 태어났 봅니다
재선님 행자의 하루에서 많은걸 느끼 게 만드네요
정말로 멋진 동생분을 두셨네요
이제는 행복할 일만 남았어요

2022-08-02 23:48:46

이정희

수많은 사람과의 마주침 속에서 그에 맞는 모습의 가면을 쓰고 , 타인이 만들어 놓은 삶의 틀이 정답인줄 알고 달리다 보니,
'나'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놓칠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김재선님의 글을 통해 오늘의 나를 바라보고 오늘의 나의 삶에 충실한것이 행복이고 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님 법 만나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 넘 멋집니다^^

2022-08-02 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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