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지회
아들이 부처님이었구나

“2018년 9-7차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계속하고있습니다. 이것도 제 삶이라 빠지지 않고 합니다. 수행자라면 아침에 돌아보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매일 정진하면서 고집 세고, 나만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고 생각했음을 알았습니다.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도 느긋하고 좋아졌습니다. 참는 게 아니라, 이해하니 갈등도 없습니다.” 오늘은 정진하며 변화한 일산지회 김춘연 님의 수행 탐방을 함께 떠나봅니다.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앞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김춘연 님)
▲ 임진각 통일기도 마치고(앞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김춘연 님)

마음의 문을 닫은 절망의 시간

경찰인 아버지는 지방으로 전근을 다니셨습니다. 오빠는 첫째라, 여동생은 너무 어려서 부모님이 데려가고, 둘째인 저만 조부모님께 맡겨졌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믿음직한 아버지 같은 사람을 남편감으로 저도 모르게 원했나 봅니다.

남편은 6형제 중 맏이로 가난해서 일찍부터 일하러 다녔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부모님이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고 부모와 원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차분하고 정리를 잘하는데 남편은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며 외모도 준수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채우며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8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편은 건축설비기사여서 지방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습니다. 자유분방하여 가정에는 관심 없고 자기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가정생활에 충실한 저는 남편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술과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자랐기에, 매일 술에 취해 대문을 꽝꽝 두드리는 남편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술 마시고 들어와 밤새 이야기를 하면서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내오라고 할 때면 남편에 대한 짜증과 미움이 커져만 갔습니다

남편은 10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자기 사업을 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도 용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마저 아빠를 피했습니다. 이혼하자고 해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불신에다 원망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세상에도 문을 닫은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 소화제를 자주 먹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이겠거니 생각하다가 어느 날 이상하여 병원에 갔습니다. 암센터로 가보라고 해서 다음날 암센터에 갔다가 바로 입원했습니다. 간암 말기에다 폐까지 전이되어 손 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건장했던 남편은 몸무게가 갑자기 몇십 킬로 빠지고, 4개월 만에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때 나이 63세였습니다.

불교대 홍보 중(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춘연 님)
▲ 불교대 홍보 중(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춘연 님)

아들이 부처님이네

아들은 제대 후 세상 물정을 모른 채 선배들과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사기를 당해 빚을 졌고, 엄마가 놀랄까 봐 스스로 해결하려다 더 큰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에게 “솔직히 네가 쉬지 못하고 일할 때 가슴이 미어지고, 내가 힘이 들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빚 갚느라 힘들 거라 생각되어 늘 측은하고 가슴 아팠지만 내 힘든 마음을 하소연했습니다. 아들은 “저를 그리 보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힘들어져요. 저는 젊고 자신 있기에 부지런히 일하며 밥 잘 먹고 잘 자고 가볍게 살고 있어요. 문제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아들이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빠져 아들의 부지런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헛걱정만 하는 어리석은 엄마였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고맙다 아들아. 네가 부처였구나" 기쁨의 눈물이 났습니다. 재앙이 곧 복임을 여실히 체험했습니다.

송년행사 봉사 중(왼쪽에서 두 번째 김춘연 님)
▲ 송년행사 봉사 중(왼쪽에서 두 번째 김춘연 님)

나도 수행자라네

남편이 떠난 후 이제 내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며 살았지만 답답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불교대학을 찾았습니다. 금촌 장날 시장 입구에 정토회 간판이 보였습니다. 올라갔는데 문이 닫혀있어 전화로 문의하고 불교대학을 신청했습니다. 파주 법당은 정갈하고 편안하여 나의 정서와 맞았습니다. 2018년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는데, 말주변이 없는 나로선 수업 후 나누기 시간이 어색했습니다. 나누기할 때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를 세 번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이 명심문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수행자라는 말을 나도 쓸 수 있구나. 그럼 수행자는 뭐지? 수행자를 우러러보며 동경과 존경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는데, 내가 수행자라니……’

점점 스님 법문이 재미있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에서 연기법을 배우고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서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1주일 내내 불교대학 수업 시간만 기다렸습니다.

저는 정토회에서 하라는 것은 무조건 모두 했습니다. 기도맛보기, 천일결사 입재, 만 배 정진, 통일의병 교육, 사회자교육, 집전교육, 행복학교진행자교육, <깨달음의 장> 등. 그러다 보니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개근을 했습니다.

경전대학 개근상 수상
▲ 경전대학 개근상 수상

경전대학을 졸업하면서 선배 도반의 권유로 부족하지만 불교대학 진행 소임을 맡았는데,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습니다.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핸드폰을 갖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기기에 서툰 저로선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입장이 똑같다면서 격려해주고 가르쳐준 선배 도반 덕분에 무조건 모르면 물어보고 배우며 했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10년 할 공부를 다한 듯했습니다. 소임을 맡고 법문을 들으니 새롭게 들렸습니다.

직장생활로 힘들고 바쁜 일상이지만 온라인으로 하니 시간도 벌고 스님의 법문도 자주 듣게 되고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어 오히려 복된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네”하고 받아들이길 잘했습니다. 그런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합니다. 소임이 곧 복임을 조금씩 체험합니다.

지금은 법사님ㆍ선배 도반의 따뜻한 관심과 안내 덕분에 경전대학 도반과 배우고 익히며 행복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동안의 배움을 일상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이웃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회향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자신과 정토회와 세상이 고맙습니다. “그냥 합니다” 많이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스승이고, 어디나 배움의 장입니다. 정토회를 못 만났으면 삶의 이치를 몰랐을 것입니다. 훌륭하신 지도법사님 밑에서 행복하게 공부합니다.

해마다 만 배 정진에 참여 합니다. 진정한 참회로 만 배를 하면서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짐도 맛보았습니다. 기도는 저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인터뷰 마치고
▲ 인터뷰 마치고


김춘연 님은 진정으로 아들을 부처로 생각하고, 남편과 시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며,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는데 허투루 된 단어 하나 없이 정갈했습니다. 남편을 외면하면서 세상에까지 닫았던 마음을, 부처님 법 배우면서 자유와 행복을 누린다는 말에 저절로 반 배를 했습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글_임현주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덕양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24

0/200

무량광

소임이 복입니다

2022-03-07 09:45:20

배병갑

소임을 주는데로 받아들이는게 올바른 수행자로 가는 지름길 같습니다

2022-03-07 09:36:46

주영미

개근상지 받으시면서 열심히 자기삶을 개척하는모습 보기 좋습니다

2022-02-26 13:16:33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일산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