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거창법당
내 마음의 풀을 뽑다

코로나 19로 인해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울 때 기꺼이 재료와 도구를 구해오고 만드는 방법까지 재능 기부하는 따뜻한 분, 백중 기도를 할 때는 시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맛있는 떡을 해오고 각자 가져온 빈 통에 나누어 주시는 분, 거창법당 이경숙 님이 그렇게 맛깔 나는 모습을 보이는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청해봅니다.

경전반 졸업식에서 이경숙 님(왼쪽)
▲ 경전반 졸업식에서 이경숙 님(왼쪽)

내 위치는 한가운데

저는 어릴 때 7남매 속에서 북적북적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부지런했습니다. 정이 많은 부모님이었지만 바쁜 일상으로 자식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바쁘니 언니들이 저를 많이 돌봐주었고,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제 자리는 딱히 없었습니다. 위아래로 딱 가운데가 제 자리였죠.

부모한테 이런저런 투정부릴 여유도 없었고, 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하나 뿐인 아들만 챙기거나 어린 동생들만 챙긴 건 아니었습니다. 형제자매 사이에 자잘한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엄마는 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식구가 많은 집에서 살다보니 저를 생각하며 저를 고집하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별 탈 없이

바쁘고 부지런한 부모님이었지만 먹고 살기는 빠듯한 살림이었습니다. 저 또한 바쁠 때는 들일도 돕고, 집안일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옷도 네 것 내 것 없이 입었고, 작아진 언니들 옷을 물려 입었습니다. 먹는 것도 저만 먹겠다고 욕심부릴 수 없었고, 가족 모두 집안에 보탬이 되는 작은 일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부지런한 부모님 덕에 대학도 나오고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쉽게 구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별 탈 없이 살았었고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자매들과 즐거운 한 때(맨 오른쪽 이경숙 님)
▲ 자매들과 즐거운 한 때(맨 오른쪽 이경숙 님)

장남에 의한, 대한, 위한

직장을 다니다가 나이가 되어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습니다. 첫 아이의 돌이 되어서 맞벌이를 하던 저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시겠다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평범하던 제 삶이 꼬이고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픈 시아버지를 돌보다가 홀로 되어 6남매를 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자식보다 장남인 남편에 대한 집착이 심했습니다. 모든 삶이 장남에 의한, 장남에 대한, 장남을 위한 것밖에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남편의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시어머니가 챙겼습니다. 또한 고집이 세고 거칠고 성질이 험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나

사소한 제 행동이나 말투를 트집 잡아 잔소리하였고, 화가 나면 욕도 하고 물건도 던졌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왜 저렇게 말씀하실까? 왜 저렇게 행동하실까?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 이해할 수 없었지요. 이렇다 보니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는 것이 겁나고, 얼굴 마주칠까 무서워서 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중간에서 이렇다 할 중재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로 인해 남편과도 갈등이 많았고, 자식들에게도 따뜻한 엄마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와 25년 동안 같이 살면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고, 집에서 제 자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마음의 상처를 입고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이렇게 사는 제가 참 한심하고 답답했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 줄 몰랐습니다.

어느 멋진 봄날, 벚꽃여행 중에...
▲ 어느 멋진 봄날, 벚꽃여행 중에...

한 줄기 빛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헤매는 저한테도 한 줄기 빛이 보였습니다. 4년 전 정토회와 인연이 된 것입니다. 처음 배우는 불교 사상과 진리는 어려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저한테 일어나는 상황을 불평만 할 줄 알았지 다른 관점으로 보고 다른 선택을 할 줄 모르고 살아 온 저한테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이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고, 새로운 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불교의 가르침이 점점 제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구나!’ 알아차리는 것이 조금씩 되었습니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축하공연 중인 이경숙 님(맨 앞쪽)
▲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축하공연 중인 이경숙 님(맨 앞쪽)

연습만이 살 길이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온 제가 대견해서 저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저분은 저렇게 말하는 분이시구나!’ 알아차렸습니다. ‘남편은 중간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가 갔습니다. ‘아이들도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힘들었겠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어리석게 살아온 시간을 참회했습니다. 오로지 ‘고맙습니다.’라고 반복하며 절하고 또 절을 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특별하지도 보잘 것 없지도 않은 그냥 나라는 한 존재구나!’ 알아갔습니다. 일체가 공하니 집착할 것이 없는 것도 배워나갔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한 생각 바꾸면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배우며 시어머니에 대한 자비심을 조금씩 내보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인 이경숙 님
▲ 인도성지순례 중인 이경숙 님

자유를 향한 용기

제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시어머니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하였지만 평생을 살아온 업식을 쉽게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여전히 작은 것으로 트집을 잡았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집에 있으면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이제 각자 따로 살아보면 어떨까?’, ‘내 삶의 주인은 난데 이제 다른 선택을 해 봐야지.’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살아 온 제 삶을 돌아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을 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제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초점을 맞추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도반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에 시어머니와 분가를 했습니다. ‘서로 참 다르게 살아왔구나!’ 다름을 인정하니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그냥 보는 것이 됩니다.

이제 반찬을 해서 남편만 먹으라고 주셔도 웃으면서 ‘네!’ 할 수도 있습니다. 주신 반찬은 저도 당연히 같이 먹지만요.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도 예전처럼 마음이 울렁거리지 않습니다. 명절 때 같이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도 오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제 시어머니와 안 좋았던 옛일들이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차츰 치유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선택으로 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의병대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위: 한 가운데/ 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 통일의병대회에서 도반들과 함께(위: 한 가운데/ 아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어려워도 그냥 해봅니다

홀로서기를 한 후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법당을 다니며 수행법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수행법회 담당을 맡아서 다른 도반들보다 먼저 가서 법회 준비도 했습니다. 방석도 깔고 컴퓨터도 미리 켜 두었습니다. 저 혼자의 삶도 추스르기 힘들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도 힘든데 담당을 맡아 일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츰 제 개인적인 일이 아닌 법당 일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를 하였고, 경험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법회에서 듣는 스님 법문은 저를 찾는 여행의 나침반이 되었고, 도반들은 저의 동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귀 기울여 들어주는 도반들에게 저를 드러내다 보니 내면의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1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천일결사 모둠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상황으로 적응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만 해 보자 마음먹고 맡은 일을 합니다. 늘 앞장서서 일하기보다 어려운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고, 일이 많으면 불평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그냥 해 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이것이 내 일이구나!’ 여겨집니다.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도반들이 옆에 있어서 좋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라서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이 즐겁고, 내가 대견하다

요즘 저는 행복합니다(왼쪽 이경숙 님)
▲ 요즘 저는 행복합니다(왼쪽 이경숙 님)

요즘 저는 행복합니다. 행복은 제 주변에 깔렸습니다. 아침이 즐겁습니다. 창문에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 부시고 마음이 설렙니다. 아침 수행을 하고 아침밥을 해 먹고 마당을 거닐기도 합니다. 제 손으로 밥해 먹고, 제 발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여유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제가 신기하고 대견합니다.

마당에 풀을 뽑고 마음의 풀도 뽑으면서 사는 지금이 평화롭고 자유롭습니다. 늘 마음에 돌 하나를 얹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돌을 내려놓으니 가볍고 편합니다. 여전히 마음은 출렁출렁 대지만 원래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하니 매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그냥 지켜봅니다. 지금 여기 이대로 행복한 줄 알고 살아가겠습니다.


법당에서 만날 때도 귀여운 소녀 같았지만 인터뷰를 위해 화상으로 만난 주인공은 더욱더 순수하고 맑아서 인형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코로나 기간 이경숙 님은 더욱더 부드럽고 넉넉해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늘 말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언젠가는 되리라’라고, 그녀의 낙숫물은 힘이 유난히 센 것일까요?. 그녀의 바위가 다른 바위보다 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미 보살이 다 된 듯한 그녀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글_ 이행숙 희망리포터(진주정토회 거창법당)
편집_ 이종명(전주정토회 전주법당)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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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읽으며 입꼬리가 실죽 올라갑니다~
가볍고 편안해졌다는 보살님 이야기에 저또한 힘을 내 봅니다.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1-23 11:42:15

유택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0-11-21 12:51:41

묘선주

보살님 여기에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감동적인 글 잘 읽었고, 독립 축하드리고 응원합니다.

2020-11-20 21: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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