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군산법당
내 것 놓으니 미움도 원망도 한낮 물거품!

수요일 저녁 한가롭고 조용한 군산법당에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면 조용히 들어와 자리하는 보살님이 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하고 지난가을 경전반 담당과 올해 지원팀장 소임까지 맡아 이끌어가고 있는 곽미정 님! 2년 전 첫인상은 흐트러짐이 없는 전형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로 조금은 딱딱하고 까칠해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어느새 부드럽고 환하게 웃는 얼굴이 참 예쁜 곽미정 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가운데 곽미정 님)
▲ 법당에서 도반들과(가운데 곽미정 님)

절이 놀이터

저의 친정은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김제평야로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망해사라는 사찰이 있는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논농사와 바다 일을 겸하며 살아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새만금 사업에 의해 바다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어릴 적 할머니는 망해사의 불자이었고, 그곳의 스님이 저희 집에 간간이 들러 식사도 하시고 편히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들은 바다가 보이고, 뒷산에 피는 벚꽃이며 진달래에 취해 자연스럽게 절에서 놀기도 하며 절이나 스님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랐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김제 농협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상사인 부장님이 김제불교청년회에 나와 보라는 권유 에 다시 불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 만나기 힘든 시골에서의 외로움과 시골 어른들과의 소통의 어려움이 저를 그곳으로 이끌었습니다.

한 부부의 감동사연

그러나 법문 없는 법회만 이루어지다 보니 학문적 공부도 마음공부도 어느 시점에서 멈춰버렸습니다. 그저 행사를 치르는 봉사자로만 남겨지는 상황에서 군산청년회 소속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불교와의 인연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여러 몫을 하다 보니 다른 것은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내 삶의 동반자로 함께하고 싶다는 염원은 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 고등학교 친구 부부동반 모임에서 한 부부의 이야기는 인생 중반을 살아가는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캄보디아를 갔다 왔다는 이야기 끝에 친구들이 어디 좋은 관광지 있으면 소개 좀 해보라고 하니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사연을 말했습니다. 뜻이 있는 지인들과 돈을 모아 캄보디아에 학교 건물 몇 채를 짓는 데 지원해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 곽미정 님)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오른쪽에서 두 번째 곽미정 님)

종교의 힘을 보았지만

그 분들은 평상시에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도 근검절약하며 부부지간에 서로 아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었습니다. 그 부부가 어찌나 거룩해 보이던지 그날은 내내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막연히 어려운 사람 돕고 살면 좋겠다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꿈만 있었지 마음도 내지 못하고 실천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어디서 베푸는 마음, 긍정의 에너지가 나올까? 어떤 힘이 그들을 이끌었을까? 하고 나에게 물어본 결과 그것은 ‘종교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새벽기도를 통해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사랑이라는 큰 힘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의 힘이 그렇구나 하며 좋교에 대한 궁금증과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은 커졌지만 신에 의지하는 것은 저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전봇대에 걸린 불교대학

특강수련에서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두 번째 곽미정 님)
▲ 특강수련에서 도반들과(오른쪽에서 두 번째 곽미정 님)

불교공부는 하고 싶은데 직장은 김제, 집은 군산, 그런데 군산에는 마땅한 불교대학이 없었습니다. 퇴직하고 전주에 가서라도 공부해야지 하며 접어둔 제 마음을 집 근처 전봇대에 걸려있는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족자가 흔들어 깨웠습니다.

보는 순간 찰칵 찍어 집에 와서 검색해보고 군산에서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바로 입학 신청 했습니다. 입학식 날 법당 분위기는 낯설어도 편안하게 대해주는 도반들과 스님 법문을 듣고 느끼는 기분은 좋았습니다.

가까이에서 쉽고 생활에 녹아나는 불교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제가 원하던 불교대학을 한 번에 잘 찾아 왔구나 하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가족 행사를 제외하고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법문에 들떠 잠들지 못하다

불교대학 특강수련 소감발표 중인 곽미정 님
▲ 불교대학 특강수련 소감발표 중인 곽미정 님

매주 듣고, 마음 나누기하고 수행 연습을 통해 저는 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며 오로지 마음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상대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나누지만, 제 마음이 허락하는 정도만 내어놓았지 깊은 속마음이나 허물은 감추고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교대학에서만은 가볍게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도반들과 나누기는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기준을 흔들어 놓는 법문은 큰 울림으로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행이 불행이 되고 불행이 행복이 되는 윤회를, 정해진 법이 따로 없음을, 영원한 것은 없음을, 옳고 그름이 없음을, 바라는 마음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쉽게 풀어서 말씀해주는 법문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참모습을 사실대로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좋아 들떠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돈

영광스러운 경전반 졸업장을 받는 곽미정 님
▲ 영광스러운 경전반 졸업장을 받는 곽미정 님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깨달음의 장1> 수련을 불교대학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지리산 수련장으로 갔습니다. 가기 전날 “보살님, 다 내어놓고 가볍게 오세요”라는 부총무님의 얘기에 저는 “저는 내어놓을 것도 없고 그냥 지금 이대로 편안해요”하고 웃으며 갔지만, 그곳에서 저도 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골 살림이지만 부모님이 성실히 사신 덕분에 돈 걱정 없이 학교 다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 시작으로 경제적 독립을 하고 나서는 주위의 사람들이 어려운 사정 얘기를 하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큰 망설임 없이 빌려주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나에게 말하겠어’, 항상 이런 마음으로 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나간 돈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결혼해서는 동서지간 형님이 친정 오빠와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데 돈이 조금 부족하다고 부탁을 하고, 또 뷔페식당을 여는데 돈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빚과 원망은 한 몸처럼

큰 액수라 대출받아 빌려주었는데 식당은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하고, 건물에 들어간 돈은 여러 이유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형님네는 갈수록 어려워져 살던 아파트까지 경매로 넘어가서 이사 가는 집 전세금을 마련해주고, 사채까지 갚아주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습니다.

JTS거리모금 중인 곽미정 님(맨 왼쪽)
▲ JTS거리모금 중인 곽미정 님(맨 왼쪽)

설상가상으로 안경점을 3곳이나 운영하고 있던 시동생마저 힘들어져 저에게 돈을 부탁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남편 중학교 때 돌아가시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서 시댁 가족들은 그래도 금융업에 종사하고 대출받기 좋은 조건인 저에게 매번 부탁했습니다.

형제간에 금전 관계가 얽히고설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큰 빚은 모두 제 몫이 되어서 저의 목을 죄어 왔습니다. 이자도 못 내고 신용 상태라도 악화되면 다니던 직장도 못 다닐 거라는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댁 식구를 원망하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그래도 아끼고, 월급 받고, 친정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근 10년에 걸쳐 빚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의 병도 상당히 치유되었습니다.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생활했습니다. ‘나이 먹어서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텐데, 젊어서 일어난 일이라 회복할 기회도 있고 오히려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할 수 있었다’라고요. 잘 정리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서할 것도 없는 가벼움

그런데 <깨달음의 장>에서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형님에게 “나를 알아달라”, “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였습니다. 큰돈을 갚지 않아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도리어 독한 말로 상처를 준 형님이 유독 미웠던 모양입니다.

'내가 돈을 빌려주고 갚았으니 내가 고생한 것을 알아달라'고 하고, '내가 대출받은 돈이니 내 돈 내놓으라' 했음을 알았습니다. 형님의 벼랑 끝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돈에 매여 돈, 돈 하며 돈의 노예로 살았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상대를 미워하면 제가 힘들어지니까 저를 위해 남을 쉽게 용서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용서가 아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니 용서할 것 조차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나니 삶이 훨씬 가볍습니다.

일터에서 즐거운 마음공부

직장에서 업무중인 곽미정 님
▲ 직장에서 업무중인 곽미정 님

불교대학 졸업 즈음 부총무님이 경전반 입학하기도 전에 경전반 담당까지 해보라는 제안에 망설임 없이 ‘예’하고 가볍게 받았습니다. ‘내 공부하는데 내가 조금만 시간 내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직장이나 집안일로 수업 시간에 늦거나 빠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미리 근심하는 저의 업식을 알아차렸습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여러 가지를 다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임을 알기에 하지 못하는 일은 가볍게 놓아버리는 연습의 시간이었습니다. 5명의 경전반 도반이 일 년 동안 온·오프라인으로 법문 듣고 진솔하게 나누기하며 작은 소임이라도 맡아 수행자로서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봉사의 소중함을 체험하고 제 마음 살피는 공부와 개근의 영광도 누렸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며 변화한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고 싶은 욕망뿐 아니라 하기 싫은 욕망도 알아차리며 긍정의 사고로 바꾸어가는 저를 봅니다. 일상에서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명상을 통해 망상이 많음을 알게 되고 현재에 깨어 집중하는 연습도 진행 중입니다.

법당에서 봉사 중인 곽미정 님(오른쪽)
▲ 법당에서 봉사 중인 곽미정 님(오른쪽)

과거도 놓아버리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도 놓아버리고, 일상이 행복인 줄 알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 만큼 수행의 대상이 참 많습니다. 오랜 직장생활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정노동에 단련된 베테랑이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은 많았습니다.

이제는 출근 전 새벽 정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며 즐겁게 일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으로 시작하니 시비가 줄고 남에 대한 험담이 줄었습니다. 교만한 마음 알아차리고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니 겸손해지고 가벼운 마음입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행복합니다.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고 했던가요. 직장이 은행이라서 돈으로는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던 분이 돈으로 인해 상처받고 원망하고, 또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어 잘 극복해 변화해가는 모습이 영락 정토행자임을 입증해줍니다. 가르침을 잘 받아 배우고 실천하는 곽미정 님은 올해 오월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정토회 일원이 된 걸 자랑스러워하는 곽미정 님은 꾸준한 새벽 정진으로 해탈과 열반의 길로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글_ 곽미정(전주정토회 군산법당)
정리_ 조진희 희망리포터(전주정토회 군산법당)
편집_ 이종명(전주정토회 전주법당)


  1. 깨달음의 장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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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승화

수행담 고맙습니다.

2020-08-06 12:32:07

안온

저도 시아버님의 3차례의 수술과 입원으로 병간호하면서 형님들이 알아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함이 많았었는데 곽미정님의 글을 읽고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드네요.. 형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더욱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2020-08-02 00:29:11

이의수

수행담 감명적입니다

2020-08-01 22: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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