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고성법당
무심한 남편을 놓아버리고 얻은 자유와 행복

고성법당에서 지원팀장 소임과 불교대학을 담당하고 있는 이계선 님. 이계선 님은 삶의 벼랑으로 떠밀린 끝에 정토회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고 합니다. 담담하지만 공감 가는 수행담을 만나보겠습니다.

스위스 가족여행 중 맨 뒤쪽 이계선 님
▲ 스위스 가족여행 중 맨 뒤쪽 이계선 님

지나친 사랑이 만든 조용한 성격

저는 3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집성촌에서 자랐습니다. 큰집으로 양자를 간 아버지는 저희 사남매를 두셨는데 할머니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동네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나치셨습니다. 사남매 중 누군가가 친구랑 싸우다 다치고 들어오면 할머니는 우리 손을 잡고 찾아가서 그 친구 집을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감히 우리 새끼를 다치게 했다고. 잘잘못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로지 상대의 잘못만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러실 때마다 저는 친구나 친구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는 것을 피하게 되고 혼자 조용히 책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때 본 책들이 지금도 우리 집 책방에 있는 큰 스님들의 수행담, 선문답 등 불교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뜻도 잘 모르면서 그래도 읽을 때만은 희한하게 마음은 왠지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스위스에서, 이계선 님
▲ 스위스에서, 이계선 님

남편과의 갈등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첫인상이 순수하고 진중해보여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를 하시다가 술도 못 마시고 7남매 중 막내라 제사 부담도 없을 거라며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 시댁의 제사는 언제나 막내인 우리 차지였고, 형님들은 나 몰라라 하였습니다. 우리 엄마의 전도몽상이었지요. 그렇지만 정작 저는 제사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맡았고, 시댁에 관한 그 어떤 불평도 남편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퇴근 후 매일 낚시 가고 주말엔 1박 2일로 원정 낚시를 가는 사람이지만, '왜 낚시를 가느냐'고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이 그냥 당연시했습니다. 주말엔 입맛 까다로운 남편을 위해 도시락도 챙겨서 보내줬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다툼이 잦았는데 그 원인은 오직 술이었습니다. 남편은 술을 못 마시는데 저는 스무 살 때부터 마신 술을 아이들 키울 때 십년 빼고는 계속 먹었습니다. 친정 식구들 사남매 모두 술을 잘 마시는 타입니다. 술을 음식으로 생각하는 저와 술잔을 입에 대는 것조차 싫어하는 남편이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면 늘 술기운에 편승한 제가 남편을 몰아세워 기어이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아내는 것으로 끝이 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싸워?” 이렇게 물으면 “응, 엄마 아빠도 생각이 달라서 그런다. 너희들도 친구들이랑 싸우고 화해하잖아? 어른들도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고 한단다.” 하면서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2019년 불교대학 담당시에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2019년 불교대학 담당시에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심리적 단절과 갈등의 심화

큰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제게 갱년기가 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불안한 마음과 추웠다 더웠다하는 몸의 변화에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매일 퇴근 후, 남들이 다 하산하는 오후 3시에 겁도 없이 혼자 산을 올랐습니다. 쉬는 날이면 아침에 도시락 챙겨 산에 올라가 해가 지면 내려오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수십 번 바뀌던 불안한 마음이 좀 줄어들고 숨쉬기가 편안해지면서 살만해졌습니다.

그 무렵 남편이 서울 생활을 더이상 견디기 힘들다며 고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사를 결정하고 남편은 먼저 내려가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들 데리고 이십 년 동안 살던 곳을 정리하면서 주말만 되면 퇴근 후 고성으로 내려가 집을 알아보고 다음 날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한 달 정도 반복하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남편에게 좀 하라 했더니 어이없게도 못한다고 합니다. 퇴근하면 낚시하고, 주말엔 낚시터에 살면서 집 구하는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집을 구했고, 남편은 리모델링하는데도 한 번도 안 가보고 멀리 있는 저를 시켰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폭발한 저는 미친 듯이 남편과 싸웠습니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제 마음과는 달랐으며, 생각지 못한 행동은 제 자신과 또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으며 제 스스로가 사람 같지 않아서 좌절했습니다.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반복되던 친구들과 산과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사라는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단절된 것에 대한 허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인연들이 소중한 저의 탈출구였는데 이제는 그 어디에도 피할 곳과 도망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해서 심리가 불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감당 안 되는 저를 겨우 붙들고 있는 때에 당시 병원에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았던 저로선 남편과의 불화를 당신께 의지하여 조금씩 치유하고 있었는데 그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저는 입과 행동을 모두 닫아버렸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두려워 아예 커튼을 내려놓고 살아가는데 또 밤이 지나고 낮이 찾아오는 일상이 무서울 뿐이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시 남산순례가서, 앞줄에서 오른 쪽
▲ 불교대학 담당시 남산순례가서, 앞줄에서 오른 쪽

구원이 된 스님의 법문

그렇게 삶에 의욕을 잃고 지쳐갈 때쯤 어디선가 우연히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데 사람이 왜 못 산다고 난리냐는 이야기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눈 뜨고 살아있으면 그냥 하루 살면 된다는 말씀이 빛처럼 쏟아졌습니다. 당장 고성에 있는 정토불교대학을 찾아 등록하고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 책에서 보았던 그 불교를 공부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전반,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담당, JTS 거리모금, 천일결사 입재 등을 했습니다. 지나간 삶으로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넘어지고 엎어지고를 반복하면서 발을 담근 지 4년째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나아졌냐고요? 네~ 비가 오면 예전에는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한 방울도 못 받았다면 요즘은 종지를 들고 서 있는 수준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덤덤히 돌아볼 줄도 알고 삶이 조금은 가벼워졌다는 걸 느낍니다. 여전히 남편과 토닥거리고 싸우지만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관점을 바꾸니 이제는 웃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두 번째
▲ JTS 거리모금, 왼쪽에서 두 번째

아직도 남편은 제 말에 눈치를 보고 최선을 다해 뭔가 설명하려 합니다. 그걸 보면서 예전에 저의 태도는 어땠을까 참회도 많이 합니다. 요즘은 성격 나쁜 저와 같이 살아줘서 남편에게 많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남편은 아직도 저에게 나라는 자아를 넘어가야 하는 징검다리임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남편으로부터 쏟아지는 소나기도 '아! 비가 오네' 하는 수준이 되도록 나아가겠습니다.

정토회와 도반들에 대한 감사

요새 지인들이 '너 많이 웃는다'고 그럽니다. 예전에 저는 입 벌리고 소리 내어 웃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걸려 넘어지지만 예전처럼 엎어져서 남 탓하며 울고불고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딸이 ‘우리 집은 엄마는 없고 아빠만 둘이다’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가슴으로 아프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토회를 몰랐다면 지금 제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힘은 옆에 도반이 있기에 가능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모든 인연들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부처님 법 만나 이만하기 정말 다행입니다. 한 번도 입 밖에 내비쳐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 좀 쑥스럽고 창피하지만 주절주절 두서없는 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라지 수련에서, 뒷줄에서 왼쪽 이계선 님
▲ 바라지 수련에서, 뒷줄에서 왼쪽 이계선 님


“요즘 남편이 자기 좋은 것을 찾아가면서 나와 놀자고 성가시게 안 해서 너무 좋고,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도 당신이 행복하다면 내가 얼마든지 맞춰주겠다는 마음을 냅니다.”라고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하는 이계선 님을 보며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에 심신이 지친 이 봄날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글_성영이 (고성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박성희 (홍보국 홈페이지 운영팀)

전체댓글 15

0/200

보산등

낚시광 거사님도 편히 보실 수 있다니 득도하신듯요~^^

2020-09-28 08:32:15

무지랭이

성불하세요????

2020-05-03 12:36:47

정이다

새롭게 태어난 이계선님~♡
수행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0-05-02 21:02:56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고성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