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금정법당
정토회를 만난 후 꽃을 꽃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수년 전 정미숙님을 동래법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뽀얀 피부와 선한 눈매를 가진 예쁘장한 외모의 그녀가 내뿜는 어울리지 않는 냉기와 송곳 같은 말투가 참 낯설기만 했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인터뷰 내내 가벼운 솜털 마냥 맑고 밝아 사람 좋은 미소가 그치지를 않는 것을 보며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가 있구나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금정법당 개원 시 저녁책임팀장 소임을 맡아 4년 가까이 불철주야로 애쓰며 법당의 기틀을 만든 정미숙님의 수행담을 지금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정토회와 인연

8살 6살 4살... 2남1녀의 어린 자식과 30살 꽃다운 아내를 두고 아버지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을 하늘처럼 믿고 의지하였기에 그 슬픔과 아픔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엄마는 당신의 슬픔을 가슴깊이 묻어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눈빛을 보며 ‘오늘 100원만 벌면 아이들 배는 골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행상하러 새벽별 보고 집을 나가 늦은 밤이 돼서야 돌아오셨습니다.

금정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봉사 중인 정미숙님(왼쪽에서 첫 번째)
▲ 금정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봉사 중인 정미숙님(왼쪽에서 첫 번째)

외동딸인 저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부터 집안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어머니의 고생을 잘 아는 저희 3남매는 큰 말썽 없이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 대신 직장을 다니며 어머니의 고단함을 덜어드렸고, 오빠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29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면서 결혼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급하게 한 결혼은 불행하였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결심으로 결혼생활을 청산하였습니다.

1년 후에는 대학을 졸업할 수 있어 3살 된 딸의 양육을 남편에게 잠시 맡겨둔다는 것이 상황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남편은 재혼하였습니다. 전남편은 아이가 새엄마를 친엄마로 알고 잘 자라고 있으니 성년이 된 후 만나기를 원하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너무나 컸으나 어린 딸의 정서형성과 행복을 위하여 아이 앞에 다가갈 수 없었고 그 슬픔과 아픔은 나날이 깊어갔습니다.

이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직장과 집만 오가며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밤이면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며 잠드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아름다워야 할 30대와 40대를 눈물과 회한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평소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 남들보다 늦은 2013년 1월에 구입했는데, 마침 그때 직장 후배가 ‘언니! 매일 매일 좋은 글이 배달돼요. 가볍게 읽어보시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예요.’라며 법륜스님의 희망편지 앱을 깔아 주었습니다.

당시 업무가 가중되어 무척 바빴고 그 핑계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여 심신이 지쳐있던 차에 점심시간의 짧은 휴식과 스님의 희망편지는 작은 위로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봄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손짓하는 2013년 9월에 동래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나를 만나게 된 정토불교대학

부처님 오신날 행사 후 도반들과 함께(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 부처님 오신날 행사 후 도반들과 함께(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입학 때의 마음과는 달리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중도에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입학을 했으니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다니던 중, 수행맛보기를 하면서 108배를 하였고 2주간의 수행기간이 끝난 후, 불교대학 담당 거사님의 권유로 도반 몇몇과 함께 계속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8-1차 천일결사 입재를 하고 2014년 5월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면서 깜깜한 제 인생의 동굴에서 빛 한줄기를 찾아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00일 기도를 하면 ‘내 꼬라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천일결사가 뭔지도 모르고 입재를 하였는데 잠은 부족하였지만, 왠지 모를 편안함과 때로는 환희 비슷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기도 100일째! 처음으로 엄마와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친정에 희생과 봉사로 살아온 딸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아들 편만 드는 엄마가 그 날은 왜 그리 밉고 야속한지... 가슴 밑바닥에 숨어 있던 억울함을 마구 쏟아내었고 머리로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미친 듯이 화를 내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는 엄마의 인생을 잘 알기에 학창시절 말썽 한 번 없이 착한 딸로 살아왔지만,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이혼의 상처와 억울함과 슬픔 등이 마치 엄마 탓인 양 화를 내며 큰소리를 쳐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일결사 입재를 계속하며 수행의 날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억울함과 원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마음이 녹아지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봄날! 아파트 주변 벚꽃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몇 년을 살아도 보이지 않던 벚꽃이 가슴으로 훅 들어와 기쁨과 환희가 되었습니다. 그날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 납니다. 비로소 저는 꽃을 꽃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힘들었겠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전남편에게 참회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나브로 평화와 행복을 찾아갔지만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지 못한 죄책감은 가슴에 화인(火印)으로 남아 딸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맺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 아이 얘기하며 눈물짓는 저에게 ‘불우한 아이들을 위하여 좋은 일 많이 하고 이웃과 세상을 위하여 봉사하며 지금처럼 잘살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법사님의 말씀에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고, 딸과 다시 만나는 날,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지금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아 하루하루 새 날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나눔의 장〉을 다녀온 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깊이 깨닫고 어머니께 3배를 하고 꼬옥 안아드렸는데 어머니께서는 ‘나의 기도공덕이 이제야 이루어졌네’라고 하시며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부처님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과 정토회 활동을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지지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정토회 활동과 저녁책임팀장으로서의 소임

통일체육축전 봉사자와 함께 한 정미숙님 (맨 뒷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 통일체육축전 봉사자와 함께 한 정미숙님 (맨 뒷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

저는 불법을 만나 새롭게 태어났는데 특히, 정토회 사회활동은 제게 많은 활력을 주었습니다. 2014년 8월15일 광복절에 있었던 근.현대사 및 부산 위안부 역사관 견학, 밀양송전탑 주민들과의 대화, 통일체육축전, JTS거리모금 등은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좁은 시야를 이웃에게로 돌리게 하였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새롭게 눈뜨게 하였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체험후기를 쓰면서 도반들과 공유하는 적극성을 띄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동래법당 2기 희망리포터로 활동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경전반을 다니면서 불교대학 모둠장과 희망리포터, 법당의 크고 작은 행사에 적극 참여하였고, 경전반 졸업식 때는 동기들과 함께 ‘줄탁동시(啐啄同时)’라는 졸업공연도 하였는데 그 모든 봉사가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재미나고 신났습니다. 그런 활동들은 제 속에 있던 활달함과 사회의식을 일깨워 주었고 경전반 졸업 후, 경전반 담당을 하고 있던 중 금정법당 개원준비 저녁책임팀장이라는 큰 소임을 받았습니다. 정든 동래법당을 떠날 때는 친정을 떠나는 듯 많은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2016.8.20. 금정법당 개원과 함께 바로 시작한 새벽예불기도는 우리 도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는 힘이 되었고, 주말에는 새벽기도 후, 도반들과 주례회의를 하면서 현안들을 공유하고 소통과 화합하는 법당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불교대학 홍보를 하고자 주말 새벽과 밤중에 시내 곳곳을 누비며 현수막을 부착 하고, 새벽기도 후 도반과 함께 산책한 회동수원지 정자에서의 담소, 법당개원 1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불교대학 홍보 음악회, 경주사천왕사지 통일기도, 2017년에 있었던 전쟁반대 평화대회, 북한어린이 옥수수보내기 운동, 주1일 요일봉사 매뉴얼 제작 등등 이 모든 일은 도반들의 마음 하나하나 소중히 모여 모자이크 붓다를 완성하게 하였습니다.

때로는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는데 봉사자를 구할 수 없어 혼자 애를 끓던 때도 있었고, 의견이 달라 도반과 부딪치며 마음이 상해 눈물 흘린 적도 있었으나, 아침이면 어김없이 108배를 하며 제 마음을 돌아보았고 퇴근 후에는 빠짐없이 법당으로 발길을 돌리며 4년을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손잡고 봉사하며 마음을 열어준 많은 도반들이 있었기에 저녁책임팀장 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분별심 많고 성격 급한 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지난 4년은 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고 수행이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지고 힘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완수한 저에게 스스로 대견하다고 안아줍니다.

22년 만에 만난 딸

부산KBS홀 행복한 대화 봉사 중인 정미숙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 부산KBS홀 행복한 대화 봉사 중인 정미숙님(오른쪽에서 세 번째)

2018년 10월!!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과 만났습니다. 내 가슴에는 어린 3살의 아기로 남아 있는데 어느 듯 세월을 훌쩍 넘어 24살의 숙녀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 무거운 발걸음과 콩닥거리는 가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눈맞춤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간간이 묻는 말과 짧은 대답 그리고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때 딸을 살포시 안았습니다.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내 가슴에서 파드득거렸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여러 사정으로 대학을 자퇴하고 독립 후, 직장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낯선 아주머니가 툭 떨어지며 친엄마라고 하니 그 충격이 많이 컸을텐테 그 마음 감추고 ‘괜찮아요 엄마도 사정이 있었겠지요...’라고 말해주는 딸. 재회 후, 1년 반이 지나고 아이가 저에게 믿음이 생겼는지 어느 날 불쑥 ‘엄마랑 함께 살면 안돼요....??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에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요..’ 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딸과 함께 한 공간에서 생활한 지 100여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생활습관도 많이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릅니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나와 고기를 좋아하는 딸. 내가 맞추어 주는 것도 있고 조율하는 것도 있습니다. 부족한 음식솜씨! 맛나게 먹어주니 고맙습니다. 엄마! 엄마! 라고 불러주니 고맙습니다. 그 소리가 참 정겹습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사회적 거리두기 덕분(?)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겨 딸과 특별휴가(?)를 보내기도 합니다.

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유년과 청소년 시절, 독립 후의 생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자 했던 이유...등등 대화를 하다보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 있고 이 모두가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이기에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지금 이대로 그녀는 소중한 딸입니다. 이제 그녀는 꿈을 찾아 다시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저의 바램은 그녀가 인생을 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녀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한 가지 희망사항이 있다면 부처님 공부도 하고 백일출가도 하여 엄마와 딸이 아닌 도반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수행자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깨장바라지 후(왼쪽에서 여섯 번째 정미숙님)
▲ 깨장바라지 후(왼쪽에서 여섯 번째 정미숙님)

부처님 법을 배우며 참 많은 은혜를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았고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에는 참 많은 것을 가진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직장생활 은퇴 후에는 잘 쓰일 수 있는 곳에서 세상에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며 살려고 합니다. 불법의 소중한 진리를 잘 체득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꾸준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글_목승혜(동래정토회 금정법당)
편집_서지영(홍보국 홈페이지운영팀)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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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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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30 00:46:26

세명화 고명주

고기를 좋아하는 딸.아채를 좋아하는 나 ,우리는 서로 다르구나 마침 불교대학 수행과제를 하고 있는 중이라 눈에 들어옵니다.
22년 만에 만난 친 엄마가 수행자 이셔서 딸이 행복했을 듯 합니다.

2020-04-27 08:36:59

초심자

정미숙 보살님과 따님의 아름다운 동행과
자유로운 행복을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0-04-25 08: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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