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뉴저지법당
그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정토행자는 지난 3년간 전 세계 해외 정토회를 이끌어 온 해외지부 사무국 이정인 국장 님입니다. 10차년도에 들어선 올해,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법사교육 대상자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수행담’이라는 제목에는 한사코 손사래 치던 이정인 국장 님의 정토회와의 첫 인연과 16년 간의 여정, 함께 하겠습니다.

소임이 나를 사람 되게 한다

저는 지난 3년간 맡아온 해외지부 사무국 국장 소임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해외지부’라는 이름은 막을 내리고, 10차부터는 해외가 4개의 지구사무국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말하자면 해외지부가 4개가 생기는 것이니 경축할 일입니다. 그래서 차기 사무국장이 없다 보니 새로운 천일결사가 시작되는 3월8일까지는 ‘대행’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소임 중입니다. (웃음)

국장 소임뿐 아니라 그간 제게 인연 지어진 소임을 맡으면서 든 생각은 ‘소임이 나를 사람 되게 한다.’ 입니다. 그 소임을 맡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이만큼도 되어있지 못 할 테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며 경험이 넓어질수록 ‘내가 정말 많은 사람의 은혜 속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합니다. 지난 3년간 국장소임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이정인 해외지부 사무국장
▲ 이정인 해외지부 사무국장

하나의 소임에 보태지는 많은 손길들

세계 4개 지구, 40여곳의 정토법당과 법회를 대표하는 소임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정말 내가 이 소임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2019년 11월에 해외 상임법사님을 모시고 시애틀법당에서 3박 4일간 해외사무국 9차 평가를 하였습니다. 그때 마지막 나누기를 하는데, 3년 소임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이 소임을 좀 더 능력 있는 활동가가 했더라면 해외지부가 좀 더 발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라고 답했습니다.

201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해외사무국 평가회의에서 (가장 뒷줄 오른쪽)
▲ 2019년 11월 시애틀에서 열린 해외사무국 평가회의에서 (가장 뒷줄 오른쪽)

제가 추진력과 기획력, 세심함이 부족합니다. 해외사무국은 각 지역 법당/법회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잘해야 합니다. 다행히 사무국 팀장들이 모두 능력 있고 성실해서 제 부족한 점을 잘 메꾸어 주었습니다. 지구장들 역시 지역상황에 맞게 운영을 잘해 주어서 큰 과오 없이 9차를 회향할 수 있게 되어 그분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정도의 활동을 해 낼수 있는 배경에는 든든한 친정이 있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아낌없는 지원과 따뜻하게 감싸주는 뉴욕.뉴저지정토회 회원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5 뉴욕 명상수련을 마치고 뉴욕.뉴저지 도반들과
▲ 2015 뉴욕 명상수련을 마치고 뉴욕.뉴저지 도반들과

바뀐 잠자리에서도 푹 잘 수 있던 이유

지난 3년간 소임덕분에 세계 여러 나라 법당에 머문 시간이 많았습니다. 예전의 저는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고 화장실도 가기 힘들어 했는데, 가방 하나 들고 매번 다른 나라, 새로운 곳에 갔는데도 그곳이 전혀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럽을 가도, 아시아를 가도 마치 제 숙소에서 잠잔 것처럼 푹 잤습니다. 아마도 매번 버선발로 나와 반겨주는 도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해외는 각 지역마다 다양성이 있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2018년과 2019년 4개 지구 행자대회에 모두 참석했는데, 행자대회가 개최되는 지역의 환경과 행자님들의 지역 성향이 다양해서 즐거웠습니다. 특히 자기가 사는 나라의 기질이 녹아든 모습들을 보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2019 북미동부 행자대회 중에
▲ 2019 북미동부 행자대회 중에

인상깊었던 유럽행자대회 개회사

2018년 유럽행자대회 때 지구장 김선희 님의 인사말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으로 지구별로 하는 행자대회라 막막한 가운데 정말 사전준비를 많이 해야 했고 장소 예약부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행자대회 개회사를 하는데 “저는 올림픽 유치 경쟁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올림픽 개최하려면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왜 저리 경쟁이 치열할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자대회 개최 준비를 하며 그 경쟁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생을 해도 재미와 보람이 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작은 체구에서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올림픽을 유치해서 개회 선언을 하는 대통령 마음이 이럴까요? 그 영광을 제가 누려보겠습니다. 제5차 해외 행자대회 제1차 유럽행자대회 개최를 선언합니다!” 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김선희 님으로부터도 그 인사말을 할 때 무척 벅찬 느낌이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2019년 문경 활동가수련에서 (왼쪽부터 이정인 님, 김선희 님, 백은주 님)
▲ 2019년 문경 활동가수련에서 (왼쪽부터 이정인 님, 김선희 님, 백은주 님)

무엇을 하며 살아도, 무엇이라 할 필요도

9차 뉴욕정토회 대표인 김숙현 님이 제게 2003년 〈깨달음의 장〉프로그램을 추천해 주어서 다녀온 것이 정토회와의 첫 인연입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엄청나게 긴장하고 머리가 내내 아팠습니다.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굉장한 세계가 그곳에 있는 것 같은데 깨달음은 얻지 못했습니다. 그게 아쉬웠나 봅니다.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난 그 다음 주부터 뉴욕정토법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그 아쉬움을 채워보려고요. 그게 어느덧 16년 세월이 되었습니다.

2007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2007년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백일출가는 뭐 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엉겁결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쉰넷이었으니 리포터 님 말처럼 적지 않은 나이는 맞습니다. (웃음) 백일이 끝날 무렵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도 괜찮겠다. 꼭 무엇이라고 할 필요는 없겠구나!”라는 마음이 되어있는 것을 보고 제 자신도 신기했습니다.

제 성격이 열정적이거나 무엇에 확 쏠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가는 편입니다. 애를 쓰며 열심히 하지 않으니 싫증도 내지 않는 편이라 떠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특별히 다른 걸 해보고 싶은 게 없습니다.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법사교육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처음으로 '정토회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편하지는 않습니다.

백일출가 3기 도반들과 (가운뎃줄 왼쪽에서 세 번째)
▲ 백일출가 3기 도반들과 (가운뎃줄 왼쪽에서 세 번째)

소속법당이 있어 감사하다

개편 불교대학과 개편경전반을 해외에서 가장 먼저 뉴저지법당에 시범 운영하였습니다. 커리큘럼이 개편되었다는데 해외지부 국장으로서 무엇이 어떻게 개편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해보겠다고 해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개편 경전반 시범 시행 6개월 전 개편 불교대학 재수강을 시작했는데 학생들이 모두 재미있어하고 자신을 살피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 확연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개편 경전반도 같은 맥락에서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 편안하게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소속법당이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2017년 오랜 숙원이던 뉴저지 법당 개원식
▲ 2017년 오랜 숙원이던 뉴저지 법당 개원식

뉴저지법당에서 좋았던 점이라면 개인적인 문제들로 힘들어하며 와서, 법당에 안착하여 공부하며 개인 문제를 극복하고 개인을 넘어서 사회로 시야를 넓혀나가는 도반들을 보면 참 좋습니다. 반면 힘들었던 점은 제가 일을 잘못 진행하고 그 수습과정도 미숙하여 법당을 떠난 도반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해외통일의병 1기(뉴저지) 도반들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
▲ 해외통일의병 1기(뉴저지) 도반들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정토회가 지향하는 일이 제가 살고자 하는 방향과 맞아서 16년째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는 생각만 많고 혼자서는 아주 작은 실천밖에 못 하는데, 정토회의 큰 그림에 저의 작은 힘이라도 같이 하는 것이 저 홀로 하는 것 보다 더 재미도 있고 세상에 보탬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분수로선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저는 올 1년 동안 법사교육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교육의 일환으로 법사님과 더 많은 지역을 동행하며 가르침을 받게 되니 또 다른 바쁜 한 해를 보내게 될 듯합니다.

2018년 문경활동가 수련 마치고 지리산 수련원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 2018년 문경활동가 수련 마치고 지리산 수련원에서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작은 일, 큰 일 가릴 것 없이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 이런 틀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들이고 걱정들이었는지…. 이런 것들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법회참석, 불교대학, 수련 등 정토회 프로그램을 참여하다 보니 저절로 체득되어 갔습니다.

유럽행자대회 중에 법륜스님과 함께
▲ 유럽행자대회 중에 법륜스님과 함께

지도법사님께서 늘 하시는 “그저 붙어만 있어라” 말씀은 도반들도 다 알고 있겠지만 제 경험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도망갈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수행에 기대어 제 자신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었음에도 오래 붙어있다 보니 변한 점이 있습니다. 생각이 줄고 가벼워졌는데, 제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생각 많은 게 고질병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충고도 받곤 했는데 정토회 붙어있다 보니 어느새 좀 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누구에게든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그저 붙어만 있어도…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가되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힘이 오늘날의 이정인 님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법사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덜컥 겁을 먹고 진정되기까지 일어난 마음의 변화를 가감없이 내놓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정토행자만의 가벼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지않은 날에 ‘해외에서 탄생한 첫 번째 법사’ 이정인 님의 진짜 수행담을 들려드릴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인터뷰/편집_박승희 희망리포터 (뉴저지법당)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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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그 사람이기에 그자리가 인연이되어 오는것이기도하고,
그런 사람이기에 그런 자리에 가게되는것 같습니다.

2020-04-20 14:10:24

세명화 고명주

스스로 달팽이라 하시는데
잠깐 보아도 정말 영락없는 달팽이 같으셨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풋 났습니다ㆍ
사실 좀 저 포함해서 괄괄하고 드센 정토인들 인들속에서 뭐랄까 고요히 올라온 연꽃같은 기분을 느꼈었습니다ㆍ달팽이 같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법문 이십니다ㆍ

2020-01-21 09:16:47

유정희

해외에서 그것도 미동부에서 두분의 법사님이 나오신게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정인보살님께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아왔습니다.. 적지 않은 연세에도 정토를 위해 정토안에서 밤낮없이 일하시는 모습은 항상 저를 감추고 싶고, 부끄러움을 갖게 했습니다.앞으로 더 많은 중생을 위해 세상에 부처님의 법을 펼쳐가실 미래의 법사님들께 삼배드립니다,

2020-01-21 09: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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