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은평법당
바르고 맑은 도반들과 삶을 채워가고 싶어요!

은평법당의 크고 작은 행사에 빠지지 않고 마주하는 얼굴이 있습니다. 염색하지 않은 곱슬한 은발에 화장기 없는 편안한 얼굴의 박석란 님인데요. 어떤 요청에도 ‘그러자’, ‘해보자’고 쿨하게 말하는 모습은 요즘 2~30대의 쿨한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환한 미소의 박석란 님
▲ 환한 미소의 박석란 님

가벼운 인연의 힘

“금강경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하니 남편이 책을 사다 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책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읽어도 무슨 말인가 싶고 마음이 딱 와 닿지 않아서 끝까지 읽지 못했어요.”

봉사활동을 함께 하던 동료가 정토회에 대해 말했을 때 ‘집에 가는 길이니 가보지 뭐’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은평법당을 찾았다고 합니다. 정토회도 불교대학도 알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불교대학에 등록한 것은 금강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기대 그뿐이었습니다. 첫 인연은 이토록 가벼웠습니다.

“첫 수업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글자 이상의 설명이 얼마나 재미있었나 몰라요. 불교가 이런 거였구나 새롭게 깨달아지면서 법륜스님의 바른 생각, 바른 가르침이라면 내 주변이 정화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깨달음의장>과 남편의 죽음

2015년 8월에 시작한 불교대학 수업이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깨달음의 장>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 다들 세상과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말하던 <깨달음의 장>, 박석란 님은 4박 5일을 그만두지 못해 버텼다고 기억합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열린 마음으로 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남편의 입장을 더 알아주지 못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남편의 최선에는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하네요. <깨달음의장>을 다녀왔기에 가능한 대화였을 겁니다. 서로가 미안하다고 했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름 남짓 지났을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봉사활동을 하고 와서 부랴부랴 저녁을 차리고 남편을 깨웠는데, 그게 주무시는 게 아니었어요. 인공호흡을 하니 훅하고 나오던 남편의 숨소리가 지금도 생생해요. 아직 살아 있구나 싶어 온몸이 떨리도록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그렇게 무심하게 가버리시더라고…. 가족에게만 연락하고 짧은 장례를 치렀어요.”

소임으로 버틴 시간들

가족들과 짧게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날에 불교대학 수업에 갔습니다. 수업이 있으니 그냥 갔다고 합니다. 법당 누구에게도 남편의 죽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출가열반재일을 맞았습니다.

“2016년 출가열반재일 법문이 날 위한 것 같았어요. 죽음에 대해, 그리고 남은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스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법문 때문이었는지 매일 법당에 나와 수행을 했어요. 그즈음부터 법당 소임이 하나하나 주어졌어요. 사실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소임을 맡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소임이 주어지면 그냥 네, 하고 받았어요. 잘해야지 욕심이 없으니 남들 보기에는 오히려 무던히 잘하는 것으로 보였나 봐요.”

박석란 님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매일 법당에 나와 법당 크고 작은 일을 도맡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했습니다.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던 때, 슬픔인지 우울함인지 알 길 없던 감정도 수행과 봉사를 하며 다독였습니다. 다시 돌아봐도 정토회 소임 덕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거리 홍보하는 박석란 님
▲ 불교대학 거리 홍보하는 박석란 님

컴퓨터 작업도 척척 해내는 박석란 님
▲ 컴퓨터 작업도 척척 해내는 박석란 님

지난 겨울 한반도 평화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석란 님
▲ 지난 겨울 한반도 평화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석란 님

교실 담당, 어떤 소임보다 귀한 시간

박석란 님이 꼽는 정토회의 좋은 점은 많습니다. 그중 제일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도반입니다. 화장도 염색도 하지 않는 박석란 님은 친구들 모임에서는 이런저런 타박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달랐습니다. 어떤 간섭도, 강요도 없었습니다. 누구든 그 사람 그대로를 봐주는 정토회만의 문화가 편하고 좋았습니다. 정토회 법문‧수행‧봉사를 통해 생각이 많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박석란 님은 불교대학 담당을 맡으며 사람을 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교실 담당은 누구든 꼭 해봐야 한다고 말할 때는 얼굴에 발그레한 설렘이 비칩니다.

“저는 무심하고 느린 사람이에요. 저를 드러내는 것도 서툴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도 잘하지 못해요.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해야 하는 대로 그냥 해요. 그런데 불교대학 담당을 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 보이고, 각자 품고 있는 마음의 짐도 보였어요. 잔정이 없는 사람인데, 제가 맡은 불교대학 학생들에게는 애정이 솟아요. 불교대학 담당은 정토회 어떤 활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어요.”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함께한 졸업사진. 교실 특유의 화목함이 보이네요.
▲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함께한 졸업사진. 교실 특유의 화목함이 보이네요.

바르고 맑은 이들과 인생을 채워가고 싶어

남편을 갑작스럽게 보내고 빈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시간. 박석란 님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 누구와 함께할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 만한 곳이 없다는 결론에 닿곤 합니다. 바른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정토회 도반이라면 일생을 쭉 함께해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깨달음을 얻겠단 목표는 너무 크고 먼 이야기 같습니다. 그저 바르고 맑은 사람들과 인생을 채워가다 보면, 깨달음을 향한 먼 길도 언젠가 채워지리라 짐작해봅니다.

지난겨울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에서 박석란님과 도반들, 왼쪽에서 두 번째 박석란 님
▲ 지난겨울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에서 박석란님과 도반들, 왼쪽에서 두 번째 박석란 님

도반들과 함께하는 JTS 모금 활동
▲ 도반들과 함께하는 JTS 모금 활동

도반들과 함께하는 JTS 모금 활동
▲ 도반들과 함께하는 JTS 모금 활동

글_류상미 희망리포터 (서대문정토회 은평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

전체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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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

바른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도반들이라면 저도 남은 인생 같이 하고 싶어집니다

2018-08-08 04:21:33

다람쥐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단단하신분 같아요.
잡다한 걸 다 녹여낸 후에 오는 선물이겠죠?
저도 간단명로하고 심플하게 살고 싶어요~~^

2018-08-01 11:02:58

서정희

박석란님~
은평법당
어떤 간섭과 강요가 없습니까?
저도 거기 가고 싶네요

2018-08-01 09: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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