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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특별한 보리수 소감문이 있을까요? 임병관 님은 공주시 동해사라는 절에 거주하면서 정토회 으뜸절에서 보리수 봉사를 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진솔하게 말씀해주십니다. 동해사 주지 스님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다 관점을 잡아가는 이야기, 어렵게 보리수 봉사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하던 아내와의 관계가 달라진 이야기, 그리고 아빠를 피하기만 하던 아이들의 변화 등 보리수 봉사를 하면서 나비 효과처럼 일어나는 연쇄적인 변화들이 참 경이롭고 감동적입니다.
아내와 저는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동해사라는 절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절에 들어온 지 올해로 7년째입니다. 절에 들어오기 전 대전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정리하고 운전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1년 만에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계시면서 술로 사시다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게 고독사하셨습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께 모질게 대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장례식과 49재를 치르고 청소하러 시골집에 갔습니다. 누나들과 여동생들이 돈 될 만한 것이 없는지 집안을 뒤지며 쑥대밭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히고 참담했습니다. 부모님은 시세가 얼마 안 되지만 시골 땅과 집을 제게 주신다고 했고, 누나와 여동생들도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법대로 재산을 똑같이 나누자고 했습니다. 주말마다 시골집에 모여서 사이좋게 지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돌아서니 혼란스럽고 허무한 심정이었습니다.
정토회에서 법회에 참석하고 수행도 했지만,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동해사 주지 스님께서 절 내에 거처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주지 스님은 법사님처럼 고민도 들어주고 상담도 해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고마운 마음에 절 안팎살림을 돌보고 봉사하며 아이들과 지금까지 머무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어른이면서도 자주적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절에서 봉사하고 주지 스님 말씀을 잘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주지 스님의 간섭이 과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아이들 문제까지 관여하시니 나 자신이 부모로서 무기력하게 여겨지고 자존감이 떨어졌습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도 주지 스님께서 안 된다고 하면 아이들이 그토록 원해도 허락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지 스님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던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1박 2일 현장학습을 가게 되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외박은 위험하다.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왜 애들을 밖으로 내보내느냐?” 등의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저는 난감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분인데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 자신을 억눌렀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 안 된다고 말하게 되니 아내와 아이들이 크게 실망하는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그냥 무기력한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보리수 정진 안내를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청서를 쓰는데 으뜸절에서 주 1회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도반들과 모둠 활동을 하다가 월 1회 봉사를 해도 된다는 정보를 듣고 네 명이 함께 용기 내어 다시 신청했습니다.
법사님과 보리수 신청자 면담을 하는데 제가 네 명 중 첫 번째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봉사 횟수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며, 꼭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이 부담되었습니다. 토요일까지 운송일을 하고 일요일에는 동해사에서 봉사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 1회는 도저히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면담 시간은 다가오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으뜸절에서 봉사하겠다는 대답이 선뜻 나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내가 못 한다고 하면 다른 도반들도 같은 대답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등 속에서 계속 문답이 오갔습니다. 문득 내가 진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붙잡혀서 대답을 못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나를 변화시킬 기회를 놓치기 싫은 마음으로 “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의심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머무는 동해사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여기서 일하나 으뜸절에서 일하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 봉사자를 모집하나 보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눈치껏 하다가 6·13 대법회가 끝나면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보리수 교육을 받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도반들과 으뜸절 죽림정사에서 도량 정비하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재미있었습니다. 도반들 앞에서 마음을 내어놓는 나누기 시간도 좋았습니다. 도반들과 깊은 나누기를 하고 법사님으로부터 내 상태를 점검받으면서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어려운 길을 가면서 어려운 줄 몰랐고, 힘든 것을 하면서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법사님의 제안으로 아내도 보리수 8기에 입재해서 함께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리수 활동을 하는 것도 모자라 아내도 보리수 활동을 한다고 하자 동해사 주지 스님은 우리 부부가 절 일에 소홀할까 봐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100일만 하면 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더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보리수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중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는 아내를 보며, 그동안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내는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고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견디며 겨우겨우 살아내는 중이었습니다. 남편인 나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애들 앞에서도 무시하고 큰소리로 다그쳤습니다. 아내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주눅이 들어 표정이 항상 어두웠습니다. 내가 아내를 아끼지 않으니, 아무도 아내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동해사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스님들한테 야단맞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내가 안쓰럽다기보다는 ‘잘 좀 하면 나도 칭찬받고 서로 좋잖아!’라는 이기적인 생각만 했습니다.
법사님께서 ‘아내의 기를 살려주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셨습니다. 명심문을 받고 처음에는 ‘저 못난 사람의 기를 살려주라고?’라는 거부감이 마음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숙여지지 않는 마음으로 억지스럽게 100일 정진을 했습니다. 아침마다 절을 하는 둥 마는 둥 ‘오늘도 빠지지는 않고 했다’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하면 뭔가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1시에 자든 2시에 자든, 술을 마셔서 숙취로 속이 불편해도 쉬지 않고 일어나 정진했습니다.
어느 날 법사님께서 요새 화두가 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그저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사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아내는 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법사님께서 아이들이 잘되려면 아이들 엄마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 순간 내가 명심문을 놓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자존감이 떨어지고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집에 가면 반가워하는 것이 아니라 슬슬 피하기에 바빴습니다. 부메랑처럼 나에게서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나의 허물은 못 보고 가족들이 스스로 잘하길 바라면서, 잘 안되면 원망하고 윽박지르며 살았습니다.
보리수 정진을 하면서 상대를 원망하며 잘난체하던 내가 조금씩 나의 모순을 알게 되니 이제 숙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가족에게 숙이니 점점 화도 줄고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해야 할 말도 입에서 바로 뱉기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화가 올라올 때는 잠시 한숨을 들이키면서 좀 더 부드럽게 말하기를 연습해 보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스님과 우리 가족은 별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으뜸절 도량 정비 담당 소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지 스님과 동해사 봉사에 소홀해졌습니다. 스님에게 살갑게 굴고 내 볼 일이 있어도 절 일을 우선으로 찾아서 했는데 예전 같지 않으니, 스님은 서운해하십니다. 노스님 돌아가시고 혼자 큰 절을 지키는 스님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최고의 목표는 아내의 기를 살리는 것이기에 스님과 내 가족 간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내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것에 집중하게 되니 스님도 저도 가족도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아내와 부닥치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분별심은 여전히 수시로 올라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으니 서로 편안합니다.
결혼한 지 15년이 지나는 이제야 데이트합니다. 같이 맥주도 마시고 봉사도 다니고 나누기도 하면서 새롭게 알아가는 중입니다. 살갑게 구는 건 여전히 서로 어색하지만 이만해도 살 만합니다. 방에서 안 나오고 말 걸기도 어렵던 딸이 스스로 나와서 아빠에게 말도 걸고, 아들들도 어렵게나마 다가와 말하는 걸 보니 아이들도 연습 중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내 삶의 첫 번째 목표는 아내의 기를 살려서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목표를 달성하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임병관(보리수 7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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