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서로 나누는 길
함께 성장하는 마음

마침, 정토사회문화회관에는 희망의 연등이 달려있네요.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하는 알록달록한 연등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데요. 그 연등을 과연 누가 설치해 놓은 것인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글을 읽고 나면, 예쁘게 연등을 달아 놓은 사람이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공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갈증이 밑거름으로

저는 경기 광주에서 2012년 봄 정토불교대학을 시작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갈증은 운동으로 시작해서 정신적인 부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궁금했습니다. 행복과 자유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불교 가르침에 대해 더 알고 싶던 차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불교대학은 수강생이 5명 이상이 되어야 개설할 수 있었고, 경기 광주 지역은 법당이 없어서 장소도 필요했습니다. 수강생을 모으고 지인의 화원을 빌려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여러 난관 끝에 불교대학이 시작되었고 저는 스님의 가르침에 빠져들었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불교대학과 수행 법회를 진행하던 도반들의 수행적 삶과 정진을 통해 또 다른 배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기 광주의 도반들은 법당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정진하고 서로를 이끌어주면서 함께 공부하고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이 저를 성장하게 해주었고 그들과 함께한 시공간은 정진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때 배운 겸손과 정진의 자세는 지금까지 저의 수행 생활을 지탱해주는 중요한 힘이 되었고 함께한 도반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백등 철거 작업 중(왼쪽이 문형국 님)
▲ 백등 철거 작업 중(왼쪽이 문형국 님)

도반에게 물들다

행복특별본부에서 6년간 소임을 마치고 회향할 즈음 정토회에서는 보리수 3기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전기기능장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던 저에게 담당 지부 법사인 향형 법사님께서 보리수 참여를 제안하셨습니다.

회사 업무로 바쁘기도 하고 그동안 행복학교의 자유로움에 익숙해졌기에 다시 정토회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온라인 정토회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오프라인에서 봉사자들을 모집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회의감도 있었고, 과연 지금 시점에서 회관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보리수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리수 1기 노기선 거사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노기선 거사님은 제가 평소 존경하는 도반인데, 그의 삶의 자세와 수행에 대한 열정은 저에게 큰 감동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거사님께서 직접 연락하여 보리수에 대해 말씀하시니 보리수 참여에 관한 생각이 점차 커졌습니다. 거사님의 진심과 권유에 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정토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봉사로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보리수가 그 마음을 실천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반으로부터 배우다

보리수에서 수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도반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는 만큼 각자 가진 의견도 서로 다르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수긍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쌓이면서 마음 한구석에 꽁하게 자리를 잡곤 했습니다. 특히 상대가 나이와 경험을 내세워 우위를 점하려고 할 때 분별심이 크게 올라와 힘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내가 나이와 경험을 중시한다는 반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대가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는 생각 자체가 사실은 내가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 안에서 그것이 분별심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일 수행을 하면서 분별심을 감추려 애썼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감정은 같은 담당으로 함께 일하는 도반에게서 자주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거리를 두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감정은 쉬 사그라들지 않지만 매일 아침 정진과 수행점검을 통해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습니다. 정진을 통해 늘 깨어있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잘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회문화회관 천정 속 전등 분리 작업(오른쪽 첫 번째가 문형국 님)
▲ 사회문화회관 천정 속 전등 분리 작업(오른쪽 첫 번째가 문형국 님)

주인이 되어가는 나

보리수 5기로 활동하면서 뿌듯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는 중강당 5층의 전열 누전 문제를 해결한 일입니다. 회관 둘러보기를 하던 중 중강당 5층의 일부 전기 콘센트에서 ‘사용 불가’ 스티커를 발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여서 왜 사용 불가인지 알아보고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전기담당 도반들과 함께 내시경 카메라까지 동원하여 연구하고 시도했지만, 매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막히곤 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 다시 도전했습니다.

결국, 기존 건축 마감 부분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천장과 벽체를 뚫어 배관을 새로 시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전문시공업체에 의뢰해서 작업했다면 더 깔끔하고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겠지만, 전기담당 도반들과 함께 직접 시공하면서 얻은 경험과 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용 불가’ 스티커를 제거하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연등과 백등을 배선하고 철거한 일입니다. 초파일이면 연등을 달기 위해 전기용량을 검토하고 연등 전원선을 배선하는 작업을 합니다. 상호 협력과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데 그만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점등되는 순간에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 이야기가 생각나 가슴 벅참을 느꼈습니다. 작업 중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과 다른 의견이 나올 때 분별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상대가 제안한 방법이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백중 후 회관의 연등 철거 작업을 진행할 때의 일입니다. 저는 연등, 전선, 와이어를 차례대로 철거하는 기존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총괄을 맡은 도반은 “연등, 전선, 와이어를 한꺼번에 내리고 정리하자”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처음에는 이 의견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힘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의 의견을 따르며 느긋하게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습니다.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매주 금요일에 숙직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입니다. 봉사자들이 퇴근하고 조용해진 회관을 둘러보며 한 주간 쟁점이 되었던 부분들이나 시설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 온전히 회관의 주인으로서 잘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시간은 저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유익함을 선사하며, 더불어 충만함과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백등 철거 작업 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문형국 님)
▲ 백등 철거 작업 후(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문형국 님)

고장 난 마음, 깊이 연구하는 자세로

보리수 수행 중 한 도반의 나누기에서 크게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설비 고장이 났을 때 연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품이 고장 났을 때 잘 살펴보고, 대화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통찰의 힘이 있어야, 고장의 원인을 발견하고 풀 수 있습니다”라고 한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회관의 설비를 점검하고 유지 보수하는 것이 내 마음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관 설비를 점검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넘어 내면의 원인까지 살펴보아야 하듯이, 마음의 괴로움도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감정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밑바탕에 있는 근본 원인을 살피는 통찰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도반의 나누기로 저 또한 수행에서 깊이 살피고 연구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수행문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라는 구절은 저에게 큰 울림입니다. 머리로는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고집이 괴로움의 원인이며 나 자신을 얽매이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보리수 전기담당 소임을 맡아 활동하면서 방재실 근무 자격 요건인 씨앗 소장 교육도 받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 갖기’ 명심문으로 꾸준히 정진하면서 보리수 도반들과 나누고 수행하다 보니 어느새 변화하는 내 모습을 봅니다. 보리수는 서로 나누는 길이며, 우리 마음은 함께 성장합니다.

일 수행 후 도반들과 차담(왼쪽 첫 번째가 문형국 님)
▲ 일 수행 후 도반들과 차담(왼쪽 첫 번째가 문형국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11월 호에 수록된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_문형국(보리수 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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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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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순

문형국님~
이런곳에서 뵙게 되니 많이 반갑습니다.
늘 수고해 주시는 모습 멋지십니다.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날 되소서()

2025-04-21 13:07:54

정희도

감동적인 보리수 사례담 잘 읽었습니다. 전기기능장 자격까지 갖고 계신 도반님이시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모자이크 붓다님들의 봉사사례담을 떠올리니 참 가슴 뭉클한 오전이네요!

2025-04-21 11:08:16

권재숙

감사드립니다. 그 수고로움으로 회관 이용 감사히 잘하고 있습니다♡

2025-04-21 10: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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