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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엄마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시면서 불교 공부에 풍덩 빠지셨습니다. 엄마 옆에서 법륜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들으며 처음으로 법륜스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방에 한 권 두 권 쌓여가는 『월간정토』와 여러 불교 서적을 통해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인간은 왜 사는지’, ‘이 세상은 무엇인지?’ 등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있던 터라 불교가 흥미로웠고, 불교 사상이 시원한 감로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따라 법당에 가서 법문도 듣고, 천일결사 입재식도 따라가는 사이 자연스럽게 내 삶으로 정토회가 다가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정토회 청소년 수련으로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봉사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준비했지만, 인도에 지진이 나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아 가지 못했습니다. 그 아쉬움에,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 정토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꼭 참여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고,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 첫 여름방학에 몽골로 선재수련을 가게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30여 명의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모여 수련에 참여하였습니다. 또래의 청년들이 함께 밥도 직접 지어먹으며, 몽골 현지 청년들과 교류하고 봉사도 하면서, 아침마다 정진하며 2주를 보냈습니다. 선재수련에서 인생 나누기를 하면서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또래들도 다양한 면에서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치며 그동안 부모님의 사랑 속에 자라며 편안한 유년기를 보낸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관점이 많이 잡혔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자식들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돌봐주셨지만, 부부로서 서로 살갑게 표현하는 관계가 아니었고 종종 다투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불교 공부를 하고 매일 새벽 정진을 한 것은, 아빠를 향한 답답함과 서운함을 다스리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듯합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셔서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표현이 서툴러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위하고 존중하셨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퇴근이 늦어지면 아빠가 즐겨 드시는 음식을 챙겨두기도 하시고, 더 깔끔하게 준비하시곤 했습니다. 아빠도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귤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말없이 사다 놓곤 하시며 은근히 엄마를 위하셨습니다. 저와 언니는 서로를 위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정서적 안정감이 형성된 채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덕에 부처님 법에 인연이 닿았고, 편안하고 안정감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2013년 평화재단에서 청년 세대를 위한 토론 형태의 포럼인 청년학교와 청년리더십아카데미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몽골 선재수련을 다녀와서 청년학교를 신청했는데 민주주의, 평화통일 그리고 환경과 같은 사회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당시 4대 강과 같은 현안이 있었는데, 또래들과 이런 내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대학이든 어디에서든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4대 강 현장을 돌아보거나 송전탑에 대해 알아보면서 신문이나 뉴스에서 접하기 힘든 내용을 알게 되어 재미있게 활동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법당에서 화장지 없는 화장실이나 빈 그릇 운동을 통해 환경실천에 힘쓰는 정토회를 보아왔습니다. 청년학교에서 만난 환경활동가들을 통해 환경 관련 문제들도 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청년학교와 청년리더십아카데미를 거쳐 평화재단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사회문제를 더 가까이에서 다뤄보고 환경 실천에 대한 가치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도 가볍게 접근해 실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이때 생겼습니다.
2014년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한 후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정토회 활동에서 자연스레 멀어졌습니다. 업무 강도가 높던 당시 회사에서는 일 외에 다른 취미 생활이나 정토회 활동을 하는 것은 아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직을 하게 되었고 퇴근 후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간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었으므로 마음 한구석에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상사인 팀장이 추상적이면서 즉흥적으로 지시하는 모습과 본인은 일을 덜 하면서 다른 후배에게 일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며 초반부터 분별심이 많이 올라오던 참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요즘에 왜 이렇게 짜증이 많이 올라올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고, 마음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정토경전대학이 떠올랐고 바로 입학 신청을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라 정토경전대학은 오프라인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불교대학을 다니던 때와는 다르게 실천활동에서조차 도반들을 직접 만날 수 없어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서초법당에서 저녁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때와 다른, 좋은 면도 있었습니다. 쥐 나는 다리를 부여잡고 방석에는 앉아 있었지만, 하염없이 졸던 것에 비해, 온라인 수업에서는 더 집중해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큰 무리 없이 졸업하였고, 지회장님의 권유에 따라 전법활동가 신청자 교육까지 이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2023년 2월 수계를 받으며 전법활동가가 되었습니다.
경전대학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1년이 더 이어져 전법활동가가 되었고 진행자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공지사항과 교육일정 속에서 물러서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새벽 5시 공동 정진도 힘들고, 정일사 기간에는 절하기도 싫었습니다. 이런 자신을 보며 물러서는 업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냥 합니다’를 수행 과제로 삼아 맡은 바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꾸준히 정진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수행으로 시작하는 삶이 좋다는 것을 20대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처님 법을 참 좋아하면서도 부처님 법을 따르는 수행자답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소임 덕분에 다시 마음을 잡고 정진을 시작할 수 있었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니 지금까지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저와 세 살 터울인 언니와 사소한 일로 크게 말다툼이 있었는데, 사과하라는 언니의 말에 끝끝내 사과하지 않겠다고 소리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나는 하나도 잘못한 게 없고, 언니가 또 성질을 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같은 날, 언니와 장거리 이동 일정이 있었고 언니가 저에게 말을 걸어 화해했습니다. 다음 날 정진을 하면서 항상 언니랑 다투면 꽁해있는 것은 저였고, 먼저 말을 걸며 푸는 사람은 언니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언니가 야무지고 자기주장이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언니를 꺾으려고 하는 사람이 저였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돌이키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불교대학 때 머리로 배운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경전대학과 전법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왜 꾸준히 수행 정진해야 하는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진을 하면서, 추상적이고 불분명하게 지시하는 팀장님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직의 전달 체계의 이면을 이해하는 눈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팀장님과는 소소한 일상도 공유하는 수다 메이트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가끔은 분별하는 순간이 있지만, 알아차리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니 몇 년 전보다 훨씬 빨리 불편한 마음이 해소됩니다.
저는 사랑이란 ‘타인을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랑을 제대로 맛보려면 전법활동가 활동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소임을 두 번 하고 지금은 청년특별지부 경전대학 반담당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후에 대중부에서 경전대학을 마치고 청년 소속으로 변동되는 과정에서 낯선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래들과 함께 새로이 불교대학을 진행하고 수업에 참여하며 비슷한 고민을 나누니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새벽에 공동정진 소임을 하고 회사업무 중에 틈틈이 학사일정과 공지사항을 챙깁니다. 정기적인 법회 참석과 수업, 리허설 등 어느새 저의 일상은 정토회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행자 소임을 하면서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또 나누기를 하면서 학생 도반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정말 보람이 있고, 그러니 점점 제 일상에서 소임이 우선이 되곤 합니다.
늘 편안한 마음이라면 좋겠지만 분별심이 다시 올라오기도 합니다. 내 방식으로 타인을 판단하기도 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함께하는 도반들이 있고 소중한 스승님이 있기에 넘어진 채로 주저앉아있지 않습니다. 수행 과제를 잘 잡고 있으니 걸리고 넘어지는 경계에 서 있어도 차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집니다. 쏟아지는 소임 속에서 보람을 찾으니 물러서는 마음이 누그러지고, 싫은 마음이 들다가도 금방 사라집니다. 소임을 하며 정진하니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소임이 복이다’라고 정토회 활동가들이 늘 말씀하시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토회에서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맞는 여러 사람들, 타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이익과 상관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공동체에 소속된 것이 저에게 뿌리 깊은 힘이 됩니다. 도반님들이 있어 참 좋습니다.
글_이리나(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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