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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토행자의 하루 편집자 권영숙 님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고백 형식의 글로 독백체입니다. 권영숙 님은 2008년부터 북한동포 돕기를 시작으로 8년간 정토회 봉사를 했습니다. 세상밖이 궁금해 4년은 간단한 봉사만 하면서 쉬었습니다. 세상에서 잘 놀다, 정토행자의 하루 봉사로, 놀이터를 바꿨습니다. 권영숙 님이 봉사하면서 일어난 마음나누기, 시작합니다.
앗, 또 늦잠이다. 이렇게 매번 알람을 못 듣는다는 건 일어날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빨리 몸이 침대에서 튀어나와야 하는데 굼뜨다. 핸드폰을 슬쩍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스님은 왜 아침 기도를 만드셨을까?' 잠시 원망을 해보다 겨우 몸을 일으킨다. 몇 년 전부터 나와의 약속 첫 번째가 아침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날 밥을 먹지 않는다였다. 나는 아침밥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침 기도를 빼먹을 수가 없다. 약속했다고 뭐 다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약속은 꼭 지킨다. 내가 강박증 환자 문턱에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래서 약속을 잘 안 한다. 지켜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최근 들어, 참회 기도문에서 문제없이 잘 넘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첫 단어에서 걸렸다. 화나고.. 화나고.. 화나고... 어제 회의에서 한 도반에게 올라오는 화를 참지 못했다. 나는 남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사람 특징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집중을 잘하고, 공감해주려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공감은 상대방의 처지를 진짜 이해해서라기보다 웬만하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는 공감일 때가 많다.
나는 젊은시절부터 내 의견을 남보다 강하게 주장했다. 싸움이라면 이길 때까지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또 내 생각이 정말 옳다고 주장했지만 그 결과가 틀린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제 회의에서는 내 타고난 업식이 올라왔다. 나와 다른 의견을 냈다고 감정이 터진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중간에 상대방이 내 말을 물고 차분하게 반박하는데서 터졌다. 다른 때 같으면 말이 잘려도 일단 들어보고 내 말을 다시 이어가는데 어제는 감정이 욱 하고 올라왔다. 도반들과의 사이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의 말을 자르고, 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는 나와는 달리 상대는 차분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끝까지 자기 말을 다 했다. 우리 둘 다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안건이 많아 내 입장을 계속 고집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면서 내 감정을 살펴봤다. 나는 딱딱한 회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즐겁게 하는데 어제는 기분 나쁜 감정에 충실해서 건조한 회의를 했다. 도반들과 나누기를 하면서 왜 그 도반에게 격하게 감정이 올라왔는지 돌아봤다. 다른 도반들이 보기에는 나와 의견이 달라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서 화를 낸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견을 들여다보면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 추구하는 방향은 같았다.
그런데 왜 화가 났을까... 왜 화가 났을까... 아, 바로 그거였다. '착한 여자', 나는 착한 여자를 싫어하는구나. 바보같이 참고 사는 여자가 싫구나. 그 도반이 내 눈에 착해보였다. 참고 살아 보였다. 실제로 참는지 안 참는지는 모르지만 내 눈에 비치는 그 도반은 잘 숙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번 회의에서 고집스럽게 구는 모습을 보니 하나도 착하지 않다!!! )
책에서 본 구절인데 상대방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면 그것은 내 모습이라고 했다. 나도 한때 들어봤던 착한 여자. 그 소리가 싫구나. 과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구나. 내가 한때 '착한 여자'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누가 그런 거짓말을 쳐? 자기가 어딜봐서 착한 여자로 보이냐? 착한 여자가 그렇게 할 말 다하냐?"
지금은 이런 말을 듣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는 '착한 여자'였다. 아무튼 나누기를 하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내 감정을 말하기 싫어 숨기려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건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영숙아, 솔직해야지. 매일 아침 기도는 뭐하러 해? 지금 솔직하지 않으면 네 꽁한 성격상 저 도반하고 사이 나빠져.'
"저는 **님이 쏴한 표정으로 '너는 말해라, 나는 안듣는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확 올라왔어요.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요. 그동안 잘 감추고 있던 제 업식이 오늘 확 드러났네요."
회의 때 성질을 버럭 냈으면 나누기 때 사과하라고 내 머리가 시켰다. 그게 수행자의 자세라고. 하지만 내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다른 도반들에게 미안했지, 화냈던 상대인 그 도반에게는 1도 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도반이 자신이 왜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기 말만 했는지를 나누기했다.
"제가 눈물이 많아요. 그래서 울지 않고 말하느라 그렇게 냉정하게 말한 거예요."
결국 울지 않으려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했던 그 도반은 울었다. 아... 이래서 결국 나는 착한 도반을 울린 까칠한 인간으로 우뚝 올라섰다. 회의하던 다른 도반들이 동시에 마이크를 켰다.
"아니 왜 영숙님은 **님을 울려요?"
이래서 착한 여자랑 일하면 손해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이다. 그 도반의 나누기에 1도 미안하지 않던 나는 '미안한 1'이 생겼다. 그 미안한 1은 그 도반이 울어서가 아니라 '울기 싫어서 참느라 냉정하게 말했다'는 말에 공감해서다. 사람들은 안 믿지만 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그 도반처럼 냉정한 표정으로 참을 때가 많다. 내가 왜 그걸 못 알아챘을까.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는데...
솔직하게 나누기하기 잘했다. 만약 내가 속말을 숨긴 채 겉말로만 나누기했다면 나는 그 도반을 계속 마음에서 씹었을 것이다. 또 그 도반의 진실한 고백이 없었다면 오해는 새끼를 쳤을 것이다. 사과했다. 미안한 1이 아니라 미안한 70으로. 30은 남겨뒀다. 100% 이해는 아직 안되었기에. 내가 보기와 다르게 뒤끝이 긴 사람이다. 정토회 봉사는 이렇듯 내게 기회를 준다. 업식을 바꿀 기회. 인간답게 살 기회. 욕구에, 욕망에, 충실한 삶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인디언들처럼 자신이 달려온 길을 잠시 멈춰 돌아보기길 스스로에게 권한다.
어제 회의에서 뿌리 깊은 내 업식을 파내기 위해, 놓았던 호미질을 다시 시작했다. 가볍게 호미로 파내 질지, 곡괭이까지 꺼내야 할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나를 아는 건 멈추고 있지 않다는 거다. 오늘도 밥을 먹기 위해 아침 기도를 거르지 않는 것처럼...
글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편집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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