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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실무를 했을 때 아침 회의가 많았습니다. 당산동에서 교대까지 와서 3호선을 타고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이 차가 오기 전에는 줄을 잘 서있다가도 차가 오면 줄이 없어지는 걸 견딜수 없었습니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타면 되는데, 그걸 안 타고 내내 불편해했습니다. 그래서 늦으면 이러저러해서 늦었다고 변명을 했습니다. 이게 도반들에게는 통하는데 스님께는 안 통했습니다. 한 번은 스님과 하는 회의에 늦어서 주구장창 변명을 했는데 스님이 가만히 계시더니 "그 사람들은 보살보다 더 바빴나 보지. 보살도 바쁘면 한 번 해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옳고 그름이 없다. 스님이 해보라 그랬으니까' 하며, 아침에 나도 막 밀려서 탔습니다. 회의에 늦지 않으니 참회할 일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차례가 아닌데 먼저 타면 남은 분들께 참회했습니다. 굉장히 간단했습니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게 불법입니다.
행자생활을 하면서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법에 귀의하고 사람에 귀의하지 말라.'는 스님 말씀도 행자생활 때 깨친 겁니다. 어느 날 행자 10명과 법사님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묘당법사님이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어떻게 생활할 건지 이야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다들 뭐 하고, 뭐 하고 했는데 저는, "법사님, 저는요 지도법사님이 하시는 일이 좋고, 지금도 지도법사님 가르침 밑에서 수행하고 있고, 하시는 사회사업도 좋으니, 저는 앞으로도 지도법사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며 살다가 가겠습니다." 그랬더니 묘당법사님이 픽 웃으시더니, "보산등 행자님은 내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지도법사님이 돌아가시면 행자님도 죽어야 되나요? 어떡하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내가 법에 귀의하지 않았구나!' 스님께서 맨날 사람에 귀의하지 말고 법에 귀의하라고 했는데 그걸 귀로만 들었던 겁니다. 존경하고 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귀의는 '삼귀의'죠? 법에 귀의가 우선입니다. 제가 지도법사님께 귀의한다면, 스님께서 조금만 섭섭하게 하셔도 돌아서지 않을까요? 그건 귀의가 아니잖아요
경주 남산 순례를 가는데, 저는 다리가 아프니까 못 가고 월광법사님과 묘광법사님이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스님이 내려오시면서 지팡이를 가지고 오셨어요. 두 행자님이 나이가 많으니까 산행하는데 힘들 거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지팡이를 두 개 만들어 오신겁니다. 스님은 '행자님들 힘들까 봐서 지팡이를 깎아왔다', 이런 게 아니라, "자, 있다 산에 갈 때 가지고 와" 하며, 탁 던져주고 가셨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스승님의 마음에 감동받아서 울었습니다.
수계 이후 인천경기지부 대중 법사로 3년간 활동했습니다. 여러 법당을 다니며 대중 상담을 했는데 상담받는 사람도 도움이 되지만 내 공부가 90%입니다. 이 때가 간단하고 명료한 불법의 이치를 깨닫는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가장 큰 공부는 이제는 남들이 나와 다름을 확실히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옛날엔 상대가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그냥 내 습대로 했다면, 지금은 절대로 그러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픈 사람이 보이면 억지로라도 병원에 끌고 갔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냥 있겠습니다." 하면 그냥 둡니다. 제가 그 사람을 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실은 '내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 소통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가끔 남의 이야기를 반만 듣고 뚝 잘라서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랑 다를 때가 있습니다. 이 경험으로 끝까지 잘 들어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도 마음의 걸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걸려도 바로 돌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대중을 상담하면서 제가 더 편안해졌습니다.
불법에 귀의하고 힘든 상황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승님과 도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토회가 수행 공동체라고 하지만 수행이 다 되신 분들이 모인 건 아닙니다.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죠. 저와 가족이 도움을 받은 만큼 이제는 회향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봉사는 덕을 쌓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수행의 도구로서 나의 업식을 살피고 돌아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 만나 제가 받았던 모든 은혜로움을 이제 대중에게 회향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소임을 통해 하나하나 업식을 살피고 깨우친 선광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봉사는 수행의 도구라는 하신 말씀의 의미가 오롯이 다가옵니다. 새벽 눈 길 위에 난 발자국처럼 법사님이 내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어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선광 법사님 이야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낭독_고정석
글,사진_인천경기서부지부 희망리포터
편집_온라인.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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