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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에게 참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요
2016년 2월 17일 수요일은 구리법당에서 정초순회법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녁 수행법회 시간에 법당을 가득 채운 도반들과 무변심법사님, 자광법사님을 뵈며 사뭇 ‘잔칫날 같다’는 기분에 들떠있었습니다. 기대하던 법사님과의 질의·응답 시간 중 한 거사님의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법사님, 저는 20년 넘게 양평에서 사슴농장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 만나 공부하고 얼마 전 오계 수계를 받고 보니 제가 참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요즘 사슴들에게 밥을 주러 갈 때마다 ‘아이고~ 너희랑 나랑 이제 어쩌냐’라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불법의 위대함을 목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분에게 불법의 가르침에 대한 깊이가 어느 정도이길래 20년 넘게 해온 생업에 대해 고민까지 하게 되었을까? 새삼 불법의 위대함과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불자의 자세와 그 마음에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 구리법당 2015 봄불교대학 저녁반 도반들에게 '아버님'이라 불리는 김학선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법당에서 환하게 웃는 김학선 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서 20년이 넘게 사슴농장을 하고 있는 김학선 님은 작년 깨달음의 장(이후 깨장)에 다녀온 뒤로 생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깨장에서 살아있는 생명은 그 어느 것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사슴을 기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가능하다면 업을 바꿔보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고민이 되었어요. 예전엔 돈 버는 일로만 사슴을 키웠는데, 불법과 인연 맺고 보니 사슴에게 고통 주는 것 같아 죄의식이 느껴졌어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많이 물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혼란스럽기만 하고 가슴이 답답했죠. 그러다 정초를 맞아 법당에 법사님께서 오신다는 얘기에 한달음에 와서 질문했어요”
무변심법사님의 말씀 듣고 이후 많이 편해졌는지 여쭤보자 표정과 목소리까지 밝아지며 대답합니다.
“그럼요! 특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계속해도 된다, 소비자가 있어서 생산자가 있다, 지금 하는 일도 누군가 필요로 해서 내가 하는 것이다, 우리 농장에 사슴들이 나를 주인으로 만난 것이 얼마나 복이냐, 나와 있는 동안은 사슴들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라는 법사님 말씀 듣고 마음이 정말 많이 가벼워졌어요. 그래서 그 날 집에 가서 집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동안 가볍게 하자’고 말했어요.”
▲ 2016년 정초순회법회 구리법당 단체 사진 - 맨 뒷줄 우측 첫 번째
어쩌면 평생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도 불법과 인연 닿은 공덕인가 봅니다. 또, 이처럼 묻고 가벼워지는 시간은 거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 문화의 깊은 뜻을 알고 싶어 불교대학에 왔어요
7남매 중 장남인 학선 님은 노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1982년 귀농했답니다. 아침에 장화를 신고 들에 나가면 해져서 집에 올 때까지 벗지 않고 일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는지가 느껴집니다. 또, 자식들 생각하며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고 살아온 저희 부모님이 생각나서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아내를 따라 가끔 절에 갔어요. 사찰 의식이나 스님 말씀에서 깊은 뜻을 알면 더 좋겠더라고요. 그러다 양평 시내에서 정토불교대학 모집 현수막을 봤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전화했어요. 양평법당에 갔는데 집에서 너무 멀어서 구리법당을 안내 받아 왔어요.
불교대학 첫날 왔을 때 ‘이 나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 인생에 이곳을 만나지 않았다면 남은 인생 허송하며 보냈을 거예요. 또, 같이 공부한 도반들이 나를 편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중간에는 '이렇게 얽매이는 걸 꼭 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하지만, 더 배우다 보면 분명 나에게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불교대학 졸업하고 경전반 가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진작 안 온 것이 후회돼요. 좀 더 젊어서 인연 닿아 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2015 봄불교대학 졸업식에서 구리법당 도반들과 - 윗줄(네 번째) 좌측에 김학선 님
경기도 양평에서 구리까지 차량으로 40분이 소요되는 거리를 오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도 올해 봄불교대학을 ‘개근’으로 졸업했습니다. 함께 졸업한 도반 중 경전반을 망설이는 분들까지 독려해서 졸업생 모두 경전반까지 입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봄경전 담당자가 없어 학생이 담당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소식에 경전반 담당 소임도 맡았습니다. ‘선물을 받으셨다’며 축하를 건네자 한참을 웃습니다.
“사실 경전반 담당 맡은 거 조금 부담됐어요. 직무 교육받고 '나 이거 못하겠다. 내가 여기 마음 편하게 가지려고 왔는데, 불안하고 부담되는 데다 질책도 있을 것 같아 못하겠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반들이 자기들이 다 알아서 하겠다, 누가 안 나오면 나오라고 야단만 쳐달라고 얘기해주고 나눠주니까 많이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스님께서 항상 ‘3년은 열심히 해 봐야 자기 변화가 있다’고 말씀하잖아요. 전 이제 겨우 불교대학 1년 했으니까, 경전반 1년 더 공부하고 이후에는 봉사하면서 쭉 수행자로 가보고 싶어요.”
▲ 남양주정토회 2016 불교대 담당자 실무교육에 참석한 김학선 님 - 뒷줄 가운데
입재식에서 그 많은 사람 중에 얼굴 찌푸린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학선 님은 작년 연말부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냥 법문만 듣는 것보다 수행하는 게 더 좋다, 듣기만 하면 지식이 되고 수행을 해야 지혜가 뒤따라 온다는 법문을 듣고 시작해서 지난 8차 천일결사 8차 백일기도에 입재했습니다.
“입재식은 정말 감동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감동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얼마 전 졸업식과 입재식을 다녀오고 정토회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굉장히 '희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기다 봉사하는 사람, 참석한 그 많은 사람 중에 얼굴 찌푸린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긍정적인 자세로 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좋은 사람들과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행복했어요.”
▲ 8-8차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 구리법당 예비입재자들과 함께 “구리법당 좋아요!” - 좌측 첫 번째
성격 고약하던 제가 이제 큰소리를 안 내니 아내가 적극 도와줍니다
학선 님의 이런 변화에 아내분도 좋아하시지 않냐고 묻자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제가 성격이 고약해서 집사람이 많이 피곤했어요. 화가 나면 ‘갈 데까지 가보자!’ 이런 마음으로 아주 힘들게 했죠. 거기다 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다정하게 말 한마디 못 해주고 살았어요. 그런데, 깨장에 다녀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화가 나도 이게 나의 문제이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큰소리 낼 일도 없고 집사람이 아주 편해졌어요.
그래서 정토회 가는 것에 긍정적이고,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요. 수업이 있거나,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갔다 오라고 해요. 거기다 ‘당신이 더 잘해야지 괜히 젊은 사람들한테 질책받고, 미움받으면 어떡하냐, 잘해라!’라는 말도 해줘요. 경전반도 꼭 하라고 적극 지지해주더라고요. 새벽기도도 술 마시고 좀 힘들어 더 자려고 하면 “여보 절 안 해? 빨리 일어나?” 하면서 깨워요.(웃음)"
아내도 불법을 공부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노부모님을 모시고 있어서 한 분이 집에 꼭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학선 님이 경전반을 마치고 나면 아내에게 불교대학 입학을 권유해볼 생각이랍니다. 대신 지금은 법륜스님의 희망편지를 읽어주고, TV도 드라마 채널 대신 불교방송으로 돌려놓는다는 말씀을 들으니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이 느껴집니다.
정토회 와서 몸도 건강해지고 이제는 삶에 활기가 넘친다는 거사님의 에너지가 저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수행의 조력자가 된 평생의 동반자와, 자신과 함께 기꺼이 이 길을 갈 것을 자처해주는 도반들 덕분이겠지요.
‘백세인생’ 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66세 청춘’ 김학선 님의 ‘정토 수행자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정토회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 청춘을 온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지금 문경수련원에서 명상수련 중인 김학선 님! 더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오세요~!
글_황회숙 희망리포터 (남양주정토회 구리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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