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법당
음악이라는 화살로 아름다운 메시지를 쏜다

꿀벌처럼 따끔하게 '멍텅구리'를 외치고, 벌꿀처럼 달달하게 '미.니.몰.(미안해, 니가 나인줄 몰랐구나)'을 속삭이는 신 궁 법우. 그는 캐나다 뱅쿠버정토회 불교대학에서 서초정토회 불교대학으로 편입하여 최근 졸업을 하였다. 뱅쿠버에서 '멍텅구리' 작사 작곡을 시작한 법우는 문경 '깨달음의 장'에서 완성하여 마지막 날 데뷔를 하고 이어 길벗 법회(정토회 방송인들의 모임), 부처님 오신 날, 제 8차 입재식, 청년대학생 법회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길벗 사회공헌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법우는 최근 발매된 싱글 '미.니.몰.'의 일부 수익금을 JTS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훈훈한 감동을 더하고 있다.

Q.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길벗 사회 공헌팀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A. 길벗은 노희경 씨, 배종옥 씨, 한지민 씨 등 정토회 방송인들이 활동하는 모임으로 사회공헌팀은 대기업의 사회공헌과 JTS(정토회 국제구호활동단체)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깨달음의 장 641차를 한지민씨와 함께 한 인연으로 길벗 공개강연에 참석하였다. 이후 길벗 법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멍텅구리'를 완성하여 보수 법사님 앞에서 데뷔를 하고 법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도반들 앞에서 '멍텅구리'를 부르는 게 즐겁다. 그 때 마침 노희경 작가께서 함께하자고 제의하셨다. 한참 정토회에 재미를 붙이고 있어 사회공헌팀에도 합류했다. 사업제안서를 작성하고 모금활동을 하는 등 정토회 활동은 나의 기쁨이자 삶의 에너지이다.

Q. 깨달음의 장과 불교대학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A. 깨달음의 장은 내가 태어나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마음이 밝아지고,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불교 관련 책을 읽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내자가 원하는 답을 예상해서 답하기도 하고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에 원하는 듯한 행동을 하거나 때론 반문도 했다. 하지만 안내자는 그런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셨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할 말을 잃고 고개가 숙여졌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불교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고 아만심이 깨졌다.

불교대학을 졸업한 것은 '작은 관문을 통과했다'는 생각이다. 수계식 때 큰 감동을 받고 눈물이 흘렀다. 정법을 배운다는 기쁨과 방황했던 내 모습이 안타까워 흘린 눈물이다.

Q. 캐나다는 왜 가게 되었고, 어떻게 정토회를 알게 되었는가?

A. 새로운 인생 경험을 하고 싶었다. 벵쿠버에서 약 11개월 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으로 독립생활을 했다. 경제활동은 한국에서 일찍부터 시작했다. 대학을 국제통상학과로 진학했지만 놀면서 첫 학기가 끝났고 그렇게 인생을 보내는 것에 허무감이 밀려왔다. 이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고 수입을 얻었다. 한 때 오토바이가 갖고 싶어 4개월 동안 식당배달 일을 해서 오토바이를 샀다. 생색내러 학교에 가다 자동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수리비를 물어주고, 오토바이를 처분했다. 다시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 때 화 내시시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벵쿠버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는 수행하고 싶어서였다. 그때 마침 캐나다에 있는 통도사 산하의 서광사라는 절에 법륜스님께서 해외 순회강연 마지막 순서로 오셨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이 꿈에 자주 나와 어머니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법륜스님은 "꿈은 꿈일 뿐" 이라는 간단한 답변을 주셨다. 뭔가 신비하고 심오한 말을 기대했는데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에 '이 스님은 깨달음의 수준이 낮구나' 적잖이 실망했었다. 강연이 끝나고 다시 스님께 질문했다. "그리워하지 말고 생각이 나면 감사한 마음만 가져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야겠다’ 는 마음이 생겼고 열린법회를 시작으로 불교대학. 깨달음의 장. 길벗 활동까지 이어졌다.

Q.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A. 어머니께서 여기까지 이끄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잘 믿기지 않는다. 5년 전 어머니께서 암 진단을 받고 이후 수락산 주변에 살며 치료를 하셨다. 결혼한 누나가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결정을 내려 한참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족이 다시 모여 산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이사 하루 전날 어머니께서 구급차에 실려 가셨고 3일 후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떠나셔서 충격이 컸다. 어머니께서 투병하는 동안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공포감이 엄습했었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공황 발작을 겪었다. 법륜스님의 말씀을 들은 후 공황 장애가 와도 공포심에 휩쓸리지 않고 두려움, 심장 박동, 호흡을 바라보곤 한다. 꿈에 어머니가 나오셔도 '어머니 또 오셨네요?' 하면서 반갑게 인사하고 생각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린다.

Q.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A.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중학교 때 음악하는 친구를 만나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스타가 되고 싶은 환상에 같은 노래를 몇 시간씩 연습하고 녹음해서 데모테잎을 기획사에 보내기도 했다. 공개오디션에 합격해 P기획사에 들어가 당시 피플크루, 바이브 등과 트레이닝을 받았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연습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방황 끝에 인디 가수로 활동하면서 중국공연 기회가 왔다. 인디 가수 50명이 한 달 반 동안 중국 투어를 시작했다. 적게는 500명, 많게는 4,000명의 환호성을 듣고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등 마치 스타가 된 듯했다. 그렇게 가수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고 A기획사에 들어갔으나 기획사 대표의 공금 횡령으로 연습생들은 흩어졌다. 작은 X 기획사에 들어가서 '이야말로'라는 그룹을 결성했지만 투자자의 투자 철회로 기획사가 문을 닫았다. Y 기획사에서 'I Want' 라는 그룹으로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찍었으나 역시 투자금 문제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돈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음악을 잠시 떠난 적도 있다.

Q. 그럼 지금 다시 음악을 계속하는 이유와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A. 음악은 나의 친구이자 내 삶의 이유이다. 되돌아보면 앞에서 말한 가수가 되기 위한 노력과 좌절은 모두 욕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욕심을 따라가면 어떤 위험에 빠지는지 처절하게 경험으로 배웠다.

'신 궁'이란 이름은 '음악이라는 화살로 대중들에게 아름다운 메시지를 쏘겠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다. '신 궁'처럼 진실한 의미가 담긴 가사를 계속 써나갈 것이다. '멍텅구리'는 캐나다 서광사 철야정진 때 들은 멍텅구리 타령을 듣고, '미안해, 니가 나인 줄 몰랐구나'는 한 법우님의 권유로 정토회 4대강 관련 활동을 보고 감명 받아 만든 노래이다. 깨달음의 장에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랫말이 담긴 음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깨달음을 주어 그들이 행복을 느끼고, 평화로워지며 맑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서원을 세웠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야망이나 욕심이 아닌 이 서원에 따라 계속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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