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청주법당
소소한 일상이 은혜롭고 소중한 삶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7.8년 전 저희 부부는 갈등이 심했습니다.

참다못한 거사가 누군가' 여기 갔다 와서 좋아졌더라.' 는 얘기를 듣고 저를 어느 절인가에 던져놓고 갔습니다.

그날 몇몇 분이 방에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나 귀에 거슬리는지 "좀 조용히 좀 하세요."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 것도 생각납니다.

분명히 절이라고 했는데, 절 같지도 않은 허름한 건물 몇 채 있고, 진행하시는 분도 머리도 깍지 않은 사람이고, 아침이면 국민체조를 시키는 것이 이건 분명히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문도 이상하고, 하는 프로그램도 이상하고, 4박5일간 저는 졸면서 대충 참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가거나 신경정신과 약을 먹어야 할 사람이 잘못 왔다고 느끼시고 굉장히 조심스러우셨던 것 같고, 어떻게든 배려하고 보호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생에 한번밖에 갈수 없는 깨달음의 장을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흘려보냈습니다.

그후에 청주정토 법당에 찾아갔었는데, 거긴 더 이상했습니다.

스님도 안 계시고 법복 입은 여자 분이 목탁치고 경을 읽고, 참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래도 몇 번 가보고 테이프 몇 개 산 것이 끝이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서 효과 없는 몇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 후로도 우리 갈등은 끝이 날줄 몰랐고, 저의 괴로움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너무도 괴롭고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은 누구하나 죽기 전에는 절대 끝이 날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하나 죽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너여야 한다는 생각에 부엌칼을 들고 자는 남편을 깨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싸우고 이혼을 결심만 하면서 스님의 법문테이프를 자장가 삼아 들었는데, 네가 지금 거기 붙어사는 이유는 뭔지 모르지만 너한테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저 혼자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고 먹이고 가르칠 능력도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재작년 8월쯤에 그래도 인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책 저책 찾아 읽던 중 스님의 즉문즉설 책을 보게 됐습니다.

저는 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이 책에 빠져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제가 짐짝처럼 던져버렸던 그곳이 깨달음의 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정토회 홈페이지를 통해 스님의 즉문즉설 법문도 듣게 되었습니다.

근 한 달여를 법문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엎드려 절을 시작했습니다.

왜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뭔가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제6차 천일결사 제10차 백일기도에 입재를 하고, 나눔의 장과 명상수련을 다녀왔고, 불교대학에도 입학을 했습니다.

제가 수없이 반복하여 법문을 듣고 절을 하면서 차츰 안정이 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지옥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억눌렸던 마음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남편을 향한 참회의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드는 의문은 법문을 통해 답을 얻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마치 제 속에 들어오셨던 것처럼, 저희 집에서 사셨던 것처럼 다 들어맞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남편을 향한 마지막 똥고집마저 내려놓고 나니, 나는 편안해 졌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내가 지은 업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더 깊이 숙이고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부처님이고 관세음보살님이십니다. 엄마를 깨우쳐 주려고 니들이 정말 고생이 많구나.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조금만 기다려 다오.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내 과정을 그대로를 답습하는 모습을 봅니다.

명상수련 중 새벽에 화장실 가는 길에 공양 간에 밝혀진 불을 보면서 그렇게 신비롭고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12월부터 공양간 바라지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업식을 가장 빠르게 알아차리게 해준 곳이 공양간 이었습니다.

많은 분들과 일을 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이 많고 그것이 제 문제임을 알게 해 준 곳입니다.

감자 한 알. 김치 한 사발. 밥 한 그릇에도 감사해 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낭비하고 있는 삶은 아닌지, 공부에 게으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를 다시 점검하게 됩니다.

김남순 보살님은 명상을 하고 계신 수련생들을 뒤에서 지켜보면 그렇게 거룩할 수가 없다는 말씀에서 바라지가 단순히 밥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욱 조심스러워 지고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니 신심이 더해졌습니다.

내가 참고 살아서 이 가정이 유지되었다고 착각하고 살았었는데, 이제 눈을 뜨고 보니 남편이 공덕이었습니다.

포악하고, 고집스럽고,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이 사람을 서 버리지도 않고 살아준 거사가 정말로 감사합니다.

남편 덕에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에 데리고 다닐 수 있고,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누울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은혜로운 삶인지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이 행복을 지켜준 당신 고맙고 고맙습니다.

이제 제 거사도 깨장을 다녀오고, 불대에도 입학하고 아침마다 수행을 합니다. 이리 훌륭하신 사람을 미처 못 알아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시댁어른들께도 살아계셔서 감사함을 표현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그 어둡고 외롭고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 업식을 조금이라도 덜 물려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이라는 스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기에 저는 하루도 이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 마음 그대로, 이 행복 이 기쁨 그대로 회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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