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초법당
나를 비우는 아침기도

예전에 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을까? 늘 꿈에 부풀어 계획했지만 매번 현실에서는 좌절했다. 작심삼일.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려고 수많은 자기개발 프로그램에 비싼 돈을 주고 기웃거려 봤지만 결국 내 삶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평생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될 수 없는 걸까? 천일기도 입재하기 전까지 나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돈 한 푼 안 드는 기도를 통해 그런 변화가 찾아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치유와 휴식의 아침 수행

그 무렵 나는 천일결사에 입재하여 아침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는 매일 아침 내 마음에 치유와 휴식의 시간을 줬고 그렇게 나를 돌아보던 중 뜻밖에도 왜 내가 늘 하는 일마다 작심삼일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내 업식의 ‘노예’라고 불릴 만큼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21세기를 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노예가 있겠냐마는 그 당시의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을 ‘노예’ 이외에는 달리 찾을 수가 없다.

당시 내 생활에서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던 것이 과연 몇 가지나 되었을까 싶다.

나는 화가 나도 그 화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결국 화를 내야 했고, 식사 중에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한 번도 참아본 적이 없었기에 늘 과식 후에 속이 더부룩해야 했다. 커피 때문에 위염이 생겨 위장약을 먹으면서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했다. 너무 낭비하지 말자고 생각하면서도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자제하지 못하고 써야만 했다. 왜 이럴까? 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늘 뭔가에 끌려 다니게 되는 삶을 산걸까?

그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가 다른 불필요한 곳으로 대부분 빠져 나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다. 그 불필요한 곳이란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며 내 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던 탐욕과 화와 어리석음이라는 세속적인 오물이었다.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방 안에 자꾸 새로운 짐들을 쑤셔 넣으려 해봐도 결국 아무런 짐도 넣을 수가 없는 이치와 같았다. 뭔가를 새로이 채우려면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방을 먼저 비워야 했지만 나는 그 단순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고 매번 어리석은 판단으로 헛된 노력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침기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부정적인 업식들이 너무 강하게 내 내면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들의 지배를 잠시라도 벗어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상에서 깨어있기 수련 후
▲ 일상에서 깨어있기 수련 후

나를 비우는 아침 기도

아침 기도는 나를 비우는 의식이다. 욕심과 화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방에서 하나씩 그 짐을 덜어 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습관들로 다시 나를 채울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렇게 비워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면 주인행세 하던 업식이 내가 노예의 삶을 청산하겠다는 데 순순히 보내 줄 리가 있겠는가.

지도법사님은 이 부분에 대해 그런 업식의 발악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라고 하신다.

업식의 유혹에 끌려 좆아 가지도 말고, 반대로 그 끌림을 부정하고 고통을 참으려고만 하지도 말며, 그저 하나의 대상으로 가만히 지켜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만 머무르는 것이 중도의 삶임을 일러 주신다. 그러다 보면 모든 유혹은 마치 파도가 일어나듯 그 정점을 향해 치닫고 그러다 스스로 소멸하여 사라진다고 하셨다.

그렇게 화와 탐욕과 어리석음을 비워나가는 비법을 아침기도를 통해 서서히 체득해 나가면서 예속되기 이전에 내가 누렸던 자유로웠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뭔가에 속박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어떤 저항이나 어려움 없이 그냥 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다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 트기 시작했다.

인사동 거리 캠페인 후 도반들과 함께
▲ 인사동 거리 캠페인 후 도반들과 함께

나의 수행은 하루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나의 변화를 막는 업식의 강한 저항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하려는 나에겐 잠시 만족할 틈도 없이 또 다른 고통과 도전이 기다린다.

나는 가파른 절벽의 중간쯤에 서 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절벽을 계속 올라가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 남아서 힘이 빠져 떨어질 때를 기다리거나.

그래서 이른 아침 나의 기도는 늘 간절하다.

글_관리자

전체댓글 0

0/200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서초법당’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