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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전법회원들이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수행적 관점을 잡는 전법법회가 열리는 날이자, INEB(국제참여불교연대) 방문단이 정토회 견학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원고 교정을 마친 후, 오전 9시 정토사회문화회관 10층 사무실로 이동하여 손님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미팅 후에는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전법법회를 위해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INEB 방문단은 오늘 일정을 위해 새벽 예불을 마치고 오전 5시 30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문경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수련원 도착 후 대중들의 환영 인사를 받고, 유수 스님의 안내로 봉암사를 방문하여 둘러보며 오전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편,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전법법회가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오늘 전법법회에서는 상반기 정일사 정진과 회향 수련 안내가 있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으로 전법법회가 열렸습니다. 법사 단장 선주 법사님의 7차 서원행자 교육 후보자 추천 결과 보고와 연수원장 향광명 법사님의 상반기 정일사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대중은 스님께 청법가와 청법 삼배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400여 명의 전법회원들이 줌으로 입장한 가운데, 스님은 먼저 부탄 방문을 통해 진행된 JTS 프로젝트 현황과 현재 진행 중인 INEB 견학 프로그램에 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후 정일사 입재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공동체로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 회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수행은 자발적 선택입니다. 자발적 활동, 자발적 수행, 자발적 봉사는 매우 좋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책임과 의무 없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으로는 계획해서 일을 하기도, 규모 있는 일을 해 나가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정토회는 자발적인 수행공동체이지만, 수행이나 봉사에서 좀 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의 모임이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에 많은 자발적 봉사자들이 참여해야 이 활동이 지속 가능합니다.
전법회원은 수행이 자발적으로 자기를 위해 스스로 하는 것인 동시에, 마땅히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봉사하되 일정한 시간을 내어 일정한 역할의 봉사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일어나서 수행을 하고, 매주 법회에 참석합니다. 전법 행자로서 행복학교든 불교대학이든 경전대학이든 진행자 역할을 하거나, 진행자에 준하는 다른 봉사 활동을 합니다. 이렇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있기에 정토회가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행을 기반으로, 수행자로서 봉사 활동과 사회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이지, 그냥 보통 사람이 하는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탄에 가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집을 짓고 고치고, 수로를 놓고, 울타리를 치고, 상수도를 놓고, 도로를 수리하고, 보행로를 만들고, 학교를 고치는 일을 하지만, 노동자나 기술자가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로서 한다는 것은, 첫째 일을 하면서 힘은 들더라도 본인이 괴롭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랑하거나 생색을 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 살기도 바쁘고, 직장 생활, 가정생활도 바쁩니다. 이런 활동까지 더해지면 일이 늘어나 바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근심, 걱정, 괴로움, 미움, 원망이 많았는데 그것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일은 많아졌지만, 여유가 생겼다는 관점이 되어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더 잘하려고 하다 보면 부담이 되고 지치기도 합니다. 행복해지려고 했는데 행복하기는커녕 괴롭다는 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하려고 모인 게 아니라 수행자로서 모였기 때문에, 본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수행자로서 해야지, 본분을 놓치고 한다면 잘못하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게 본분인데, 노인들을 돌본다고 학교 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선생 자격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괴로워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면서 이런 일을 한다면 본분을 놓친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본분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정일사 기간에는 집중 정진을 해야 합니다. 어떤 핑계를 대고 빼먹지 말고 정진합니다. '내가 수행자다'라는 자각을 하자는 것입니다. 또한 회향 수련 때는 스스로 돌아보며 정진하면서 발견한 나의 문제점, 즉 화가 많다, 욕심이 많다, 게으름을 피운다 등에 대해 자각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도반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고치면 좋겠는지 선물로 받아 앞으로의 수행 과제로 삼습니다. 앞으로 2주간 정진에 좀 더 비중을 높여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정일사 입재 법문 이후 전법회원들이 수행, 활동을 하며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즉문즉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전 질문자 3명이 질문을 했고, 현장에서 1명이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정일사 기간 동안 정진을 잘 챙겨서 하라는 마지막 당부를 하며 전법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전법법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문경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2시경 문경수련원에 도착하여 스님은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오전에 봉암사 투어를 마친 INEB 방문단은 점심 식사 후, 명상원 정념당에서 덕생 법사님의 발표로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정토회의 대표 수련 프로그램인 '깨달음의 장'에 대한 설명과 약간의 맛보기 체험이 있었던 터라 관심이 높았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오후 3시부터 연수원장 향광명 법사님의 회원 교육 부분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정토회원이 되는 방법, 전법회원 교육 과정과 내용, 발심행자·서원행자·결사행자·법사에 대한 각각의 설명과 각 과정에 이르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회원 대상으로 하는 수련인 포살과 자자, 참회, 나누기 수련, 정일사 등 정토회가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수련 및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이어갔습니다.

"발심행자는 전법회원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발심행자는 전법회원 교육을 모두 마치고 수계를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습니다. 서원행자는…. (중략) 정토회 회원이 되면 단계에 따라 교육받고 성장해 나갑니다. 또한 소임을 하면서 받는 진행자 교육, 지회장 교육, 리더 교육 등은 직무교육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해서 정토회는 부처님 말씀을 근간으로, 공동체의 청정과 화합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과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향광명 법사님의 발표 이후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를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보낸 후, 정토회의 사회 실천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션이 시작되기 전 스님과 참가자들은 JTS 민다나오 활동 영상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잠시 명상을 마친 뒤, 스님과의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오전에 봉암사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아주 아름답지요? 봉암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심지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1,200여 년 전, 선(Zen)불교가 중국에서 막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지어졌습니다. 중국에서 선불교를 배운 수행자들이 전국 각지의 깊은 산속에 절을 짓고 선불교를 발전시켰는데, 이를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고 부릅니다. 봉암사는 그 아홉 개 산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에 속합니다. 제 스승님 중 한 분이 봉암사 조실로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봉암사에서 정진하다가, 인연이 닿아 이곳 문경수련원에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스님은 봉암사의 역사와 문경수련원에 자리를 잡게 된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사회 실천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는 크게 네 가지 사회 실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 지구적으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입니다. 세 번째는 전쟁과 갈등이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네 번째는 남녀 차별, 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 등 인권 침해를 개선하고 난민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토회 산하에는 네 개의 사회활동기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붓다', 인도적 지원을 하는 'JTS(제이티에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평화재단', 그리고 인권과 난민을 지원하는 '좋은벗들'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빈곤 퇴치와 생존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JTS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스님은 JTS의 설립과 활동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불교 경전 중에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열반경'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부처님께서 그리드라쿠타(영축산)를 출발하셔서 쿠시나가르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쿠시나가르에 도착하셔서 마지막 열반에 드시던 날 밤, 시봉을 들던 아난다가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나면, 저희는 이제 어디에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지어야 합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염려하지 마라. 내가 열반에 든 뒤에도, 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과 같은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 둘째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어 치료해 주는 것, 셋째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돕고 위로해 주는 것,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를 잘 보호하고 후원(외호)하는 것. 이 네 가지는 곧 나에게 공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JTS는 바로 이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에 근거해서 활동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라는 슬로건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를 돕는 일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것이 바로 '아이들을 제때 교육하지 못하는 것'이라 보았기에,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라는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JTS의 목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UN(유엔)이 제시하는 인도적 지원의 원칙과도 일치합니다."

"JTS는 구호 대상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종교가 무엇인지, 성별이 무엇인지, 민족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가 지금 배가 고픈가, 병이 들었는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만 봅니다. 동시에 이 좋은 일에 동참하겠다는 분들이 있다면, 그 참여자 역시 어떤 차별도 두지 않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이 원칙을 고수하기란 참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특히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 북한 주민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니 안팎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 같은 이슬람 국가들을 도울 때도 주변 사람들의 저항이 심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구호 사업을 시작할 때는 '세계 최대 불상인 바미안 불상을 부순 사람들을 왜 돕습니까?'라며 사람들의 항의가 거셌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에서 굶주리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불상을 파괴한 것은 아닙니다'라고요.
이처럼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지지도 받지만, 수많은 오해와 반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JTS는 '가장 열악한 곳에 가장 먼저 지원한다'라는 원칙을 묵묵히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장 열악한 곳들은 대부분 내전이 벌어지는 분쟁 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늘 안전상의 위험이 따릅니다. 위험하니까 가지 말아야 할까요? 위험이 따르더라도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가야 하는 것이 JTS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 말씀드리고 질문받겠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의 질문에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스님의 이야기에 깊이 집중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 30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명상원 정정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대전·충청지부 봉사자들이 이틀 동안 다섯 끼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 저녁 세션의 시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명상원에 울려 퍼졌습니다. 참가자들은 명상원 정념당에 다시 모였습니다.

테라바다식 예불을 올린 후, 오늘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인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탄 활동에 관한 JTS 영상을 시청한 후, 스님은 오후 세션에 있었던 ‘절하기’ 관련 질의응답 중 보충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참가자들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녁 8시 30분, 스님과의 대화 시간이 모두 끝났습니다. 참가자들은 여러 질문에 세세하게 설명해 준 스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미얀마의 베트남 스님은 스님의 정성스러운 발표와 안내에 깊은 감동을 받아, 전통 방식에 따라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인사를 올렸습니다.

세션이 진행되는 중간에 참가자 스님들이 경건하게 염불(Chanting)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신에 바탕을 둔 사회 실천 활동의 실제 사례를 보여준 스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깊은 감동을 염불에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저녁 8시 30분, 하루를 마감하는 참가자들의 그룹별 나누기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말뿐만 아니라 일상의 행동으로 직접 모범을 보여주시는 모습에서 큰 배움과 활력을 얻었습니다.“
"봉암사에서 훌륭한 문화유산을 볼 수 있어 특별했고, 지난 10년 동안 품었던 의문들이 명확하게 풀리는 경이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대중의 수준에 맞춘 정교한 교육 커리큘럼이 인상 깊었으며, 교육을 마친 수많은 이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구조가 정말 놀랍습니다.“
"정토회와 JTS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중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세심하게 답변해 주시는 스님은 영감을 주는 진정한 '슈퍼 리더'이십니다."

나누기를 마친 참가자들은 차량에 탑승하여 정토연수원으로 이동한 뒤, 배정된 숙소에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과의 대화 시간을 마치고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INEB 일정 4일 차로 문경수련원을 둘러보고, 정토회 자원봉사와 전법 활동을 주제로 세션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향광명 법사님 발표 시간에 나온 ‘108배 절하기’에 대한 질의응답과 스님의 보충 설명을 덧붙여서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정토회 소개를 들을 때 절하기가 굉장히 자주 등장하고, 하나의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해 보입니다. 왜 그렇게 절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향광명 법사님이 답변했습니다.
“우선 왜 절을 하는지 질문하셨는데요. 절을 하다 보면 내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게 됩니다. 이를 ‘하심(下心)’이라고 합니다. 어떤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 때, 절을 하며 반복해서 몸을 숙이다 보면 그 생각을 내려놓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절은 몸이 고단한 수행입니다. 그 힘든 과정을 견뎌내며 마음속 저항을 뛰어넘는 경험도 하게 되지요. 이러한 이유로 정토회에서는 절을 중요한 수행 방법의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덧붙여서, 절을 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효과도 있습니다.”
“육체적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는 절 수행을 어떻게 안내하시나요? 저희 종파에서도 절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장애가 있는 분들도 함께 수행하고 있어 궁금합니다.”
“이곳에도 절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고, 연세가 드시면서 점점 절하기를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명상하도록 안내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새벽 5시에 108배 수행을 하는데, 절을 하기 어려운 분들은 그 시간에 20분 정도 명상을 하도록 합니다.”
이어서 앞선 세션을 참관하던 스님이 절하기와 관련하여 보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앞선 시간에 여러분과 대화하며 ‘정토회에서는 왜 절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조금 보충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두 사람이 누워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계속 누운 채로 말다툼할까요?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아서 이야기하게 됩니다. 앉아서도 갈등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서게 됩니다. 일어서서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내가 옳다’고 주장할 때 나타나는 몸의 자세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들면 어떻게 할까요? ‘죄송합니다’ 하며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더 잘못했다고 느끼면 허리를 굽혀 사과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이 더 커지면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크게 잘못했다고 느낄 때는 이마를 땅에 대고 사과하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의 몸은 마음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몸도 꼿꼿이 세워집니다. 교만한 사람을 두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겸손해지거나 자신을 낮출 때는 몸도 자연스럽게 숙여집니다. 그래서 절을 한다는 것은 곧 ‘나를 내세울 것이 없다’라는 자세를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은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반대로 몸을 먼저 숙이면 마음도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절을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숙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은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절을 하면서 마음에 새로운 관점을 새기는 수행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 ‘남편이 문제다’라고 생각할 때, 절을 하면서 ‘우리 남편은 부처님입니다’라고 되뇌어 봅니다. 그러면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의 말에 진심으로 ‘네’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마음의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관점을 바꾸어 가는 것이 바로 절 수행입니다. 즉, 절을 마음으로 닦는 하나의 방편으로 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절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서로 경쟁하듯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몇 배 하셨어요?’
‘저는 1000배 했습니다.’
‘아, 나는 800배밖에 못 했는데…’
이런 마음으로 절을 하면 마음이 숙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相)이 올라와 마음이 더 꼿꼿이 일어서게 됩니다. 따라서 수행은 절이라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절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절을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절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절이 훌륭한 전신 운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대부분 운동이 부족한 편인데, 그런 점에서 하루에 108배만 꾸준히 해도 당연히 좋은 운동이 됩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쌓인 피로나 운동 부족으로 생긴 여러 신체적 문제가 절을 통해 완화되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절 자체가 육체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절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날씨가 덥거나 몸이 피곤할 때는 더욱 하기 싫어지지요. 수행에서 업(業)을 극복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듯 ‘하기 싫은 마음’을 넘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기꺼이 해봄으로써 내면의 저항심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점차 어떤 일이든 ‘할까 말까?’ 망설이거나 ‘하기 싫다’라며 물러서기보다, ‘일단 해보자’ 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길러집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에게 절 수행을 권하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절을 할 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라’는 내용의 명심문이나 발원문을 함께 주기도 합니다. 절은 단순한 신체 동작이 아니라, 마음을 훈련하는 깊이 있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절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수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절을 하나의 유용한 수행 방편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특히 평소에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명상을 하면 오히려 잡념이 더 치성해지기 쉽습니다.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정하거나 신경증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명상을 시키면, 열 명 중에 한 명 효과를 볼까 말까 하고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하루에 300배씩 절을 하도록 하는 것이 육체 건강에도 좋고, 정신 건강을 회복하는 데도 훨씬 효과적입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에는 오랜 전통 의학이 있는데, 이 전통 의학에 따르면 머리에 열이 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고, 반대로 손발이 차가운 것도 건강에 이롭지 않습니다. 늘 머리는 차갑고 손발은 따뜻해야 건강에 좋은 법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기(氣)’의 흐름으로 설명하곤 하지요. 기가 위로 치밀어 오르면 정신적인 질환이나 심리적 불안 증세가 많이 생깁니다. 따라서 위로 올라간 기를 아래로 가라앉혀야 하는데, 그 중심 기준이 바로 배꼽(단전)입니다.
기를 아래로 내리기 위해서는 하체가 튼튼해야 합니다. 절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체가 아주 강해집니다. 꼭 절이 아니더라도 많이 걷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도록 하는 것보다, 절을 하게 하거나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게 하는 것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참가자는 질문 대신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불교 국가 출신이지만 따로 절 수행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과거 캐나다 ‘찬(Chan) 템플’에서 수행할 때 자연스럽게 배운 대로, 아침마다 자리에 앉아 몸을 숙이는 방식으로 108배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몸이 무척 유연해졌지요. 주변 어르신께 권해드리기도 했는데 지속하진 못하셨습니다. 오늘 절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경험이 떠올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참가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스님의 따뜻한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앉아서 절을 하더라도 머리를 숙이기 때문에 겸손해지는데, 즉 교만을 내려놓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앉아서 하는 절은 하체를 단련하는 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번뇌가 많고 생각이 복잡한 분들은 기를 아래로 내리기 위해 하체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한국식이든 티베트식이든 일어서서 하는 절을 하시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또한 명상하시는 분들은 오래 앉아 있다 보면 허리에 부담이 가고 하체가 약해지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하루에 108배씩 절을 한 뒤에 명상을 하면 신체 건강을 지키는 데도 아주 좋습니다.
사실 명상을 제대로 하면 마음의 원리를 깨닫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겸손해집니다. 진짜 문제는 ‘나는 명상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수행자다’라는 상(相)에 집착할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겸손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남보다 낫다는 착각에 빠져 거만해지기가 쉽습니다.

한국 선불교에는 ‘선(禪)이 최고다’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선불교 외의 다른 수행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고, 그로 인해 겉으로는 굉장히 자신감 있어 보이지만 동시에 교만한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수행자는 마땅히 겸손해야 하는데, 수행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면 오히려 거꾸로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종교 지도자가 신도나 대중에게 마치 귀족이나 왕처럼 거만하게 대하는 모습 역시 수행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수행자는 비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해라.’
‘나의 제자들아, 수행자는 교만해서도 안 된다. 겸손하라.’
즉, 수행자는 당당하면서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칫 교만해지거나, 반대로 비굴해지기가 쉽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낮추어 허리를 굽히는 것과, 권력이나 힘에 눌려 억지로 몸을 굽히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후자는 겸손이 아니라 비굴일 뿐입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는 자세는 전쟁에서 패한 자가 항복할 때 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겉모습만 보고는 그것이 진정한 겸손인지, 아니면 비굴함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귀한 경험담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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