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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젬강 주의 발도(Bardo) 게옥, 싱칼(Shingkhar) 게옥에 있는 5군데의 현장을 점검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판탕 JTS 센터에서 새벽 4시 30분에 부탄활동가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리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7시에 판탕 JTS 센터를 출발하여 발도 게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 첫 번째 현장인 발도 게옥의 디갈라(Digala)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디갈라 치옥은 도로 보수, 주거 신축, 보행로 제작 등 3가지 사업이 진행되는 곳 입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보수된 도로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디갈라 치옥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르막으로 되어있는데다 돌과 풀이 무성하니 산길인지 도로인지 헷갈리고 위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도로 주변이 말끔히 정리되고 차가 다니는 길에 넓찍하게 시멘트가 깔려있으니 이동하는 길이 한결 편리하고 안전했습니다.
도로 보수 구간을 둘러본 후 스님은 주거 개선 신축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주거지는 아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스님은 화장실과 주방 공사가 아직 시작 전인 것을 보고 현장 기술자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싱크대 높이를 80센치미터 정도로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싱크대와 화장실 변기를 설치할 때에는 시멘트가 묻지 않도록 작업한 당일에 걸레로 잘 닦아내야 합니다. 깨끗하게 잘 지어주세요. 집을 잘 짓는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당신을 많이 부를 거예요. (웃음)”
스님은 이어서 신축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집을 지으니까 좋습니까?”
“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웃음)”

스님은 집주인과 목수에게 염주를 선물하고 디갈라 마을 주민들이 만든 보행로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주거지역에서 절까지 이동할 때 사용하는 90미터 길이의 보행로입니다. 그런데 절이 가파른 곳에 있다보니 흙으로 된 보행로를 따라 걷다보면 중간에 경사가 심한 구간에서는 미끌어질 위험이 있었고, 계단 끝부분 마저도 경사면으로 되어있어서 특히 노인들과 어린이는 다니기에 매우 불편했습니다.
주민들은 힘을 모아 돌을 깔고 그 위에 시멘트를 깔아서 깨끗하고 미끌어질 위험이 없는 안전한 마을 보행로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디갈라 마을의 작은 시설들이 주민들의 손으로 하나씩 개선되면서, 마을 전체가 조금씩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오전 9시 30분에 두 번째 현장인 랑덜비(Langdurbi)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랑덜비 치옥은 스님이 2년 전 시범사업을 시작할 당시, 마을에 있는 작은 집을 구해서 몇 명의 한국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첫 샘플하우스 공사를 진행했던 곳입니다. 당시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니 랑덜비 치옥을 다시 찾게 된 것이 더욱 반갑고 뜻깊게 느껴졌습니다.
랑덜비 치옥 주민들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50미터 보행로를 만들고, 그 옆에 82미터 배수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흙과 오수가 뒤섞여 질척이던 길이 배수로가 따로 마련되면서 주민들은 깨끗하게 보행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을 전체의 환경도 한결 쾌적해졌습니다.

랑덜비 마을 주민들은 이번 성과에 힘을 얻어 내년에는 보건소 내부에도 보행로를 만들고 싶다며 스님께 의견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직접 살펴보니 보건소 내부는 평지인 데다 잔디까지 깔려 있어 굳이 콘크리트로 바꿀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스님은 오히려 이번에 새로 정비한 보행로를 더 연결해서 만들고 배수로 또한 더 길게 연장하는 공사를 주민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스님과 부탄 활동가들은 랑덜비 치옥의 보행로 준공식을 마친 후 오전 11시에 세 번째 현장인 콤샤르(Khomsar)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몇 년 사이 정부 차원의 도로 정비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진 덕분인지, 예전보다 콤샤르 치옥까지 가는 길이 한결 편리해져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콤샤르 치옥에서는 초등학교 보수 사업과 농수로 제작 공사가 있었습니다. 콤샤르 초등학교에 도착하자 교장 선생님이 먼 길을 찾아온 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차와 모모(부탄식 만두)를 정성스럽게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선생님들과 함께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콤샤르 초등학교는 학생 수 141명의 꽤 큰 학교입니다. 그러나 학교 규모에 비해 화장실이 부족해 보였고, 스님은 JTS 프로젝트 사업으로 남자 화장실 4칸을 신축하고 여자 화장실 6칸을 보수하도록 했습니다. 더불어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행정실 천장이 갈라져 있어 수리하고 도색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교직원 20여 명이 이번 JTS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했다고 말했습니다.

스님은 차담을 마친 후,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전반적으로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자 화장실에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자 화장실문 바로 앞에 오수 배출구가 위치해 있어 향후 사용 시 불편함이 예상되었습니다. 또한 화장실 입구 바닥의 수평이 맞지 않아 비가 오거나 청소할 때 지저분한 물이 고일 우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수 배출구의 방향을 문 안쪽으로 조정하고 화장실 바닥 수평을 잘 잡아서, 준공 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을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콤샤르 초등학교를 떠나기 전에 교장 선생님과 게옥의 멍미(부군수)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2년 전, 콤샤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사용하는 책상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살펴보시고 필요하다면 아이들 책상을 구매할 수 있도록 JTS 프로젝트에 신청해 보세요."

"공사를 하다 보면 오늘처럼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는데, JTS는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해당 마을에서 기술을 갖춘 주민이 이 프로젝트에 기여하거나, 지역 정부의 예산으로 기술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JTS와 부탄 지역 정부가 공동으로 마을 개선 사업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낮 12시경, 스님은 점심 공양을 위해 발도 게옥 사무실 인근으로 이동했습니다. 점심 공양을 하며 젬강 주 기획담당관인 놀부 님과 젬강 주의 빈곤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현재 젬강 주의 빈곤율이 40퍼센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집 없는 사람의 문제만 해결되어도 젬강 주의 빈곤율은 크게 떨어질 거예요. 그러려면 젬강 주 전체를 대상으로 집 없는 사람의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현재 JTS 마을 개선 프로젝트는 소득 하위 20퍼센트 그룹만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기준을 조금 조정할 필요가 있겠어요. 빈곤층 기준에서 살짝 벗어나더라도 실제로 집이 없는 사람들이 프로젝트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땅이 없는 것과 같은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젬강 주에 집 없는 사람이 없도록 해보면 어떨까요."

스님은 점심 공양을 마치고 콤샤르 치옥에서 진행한 농수로를 점검하기 위해 산 길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는 길에 스님은 부탄 활동가들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정에서는 수로를 점검하든 도로를 점검하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선으로 잡아 주세요. 내려가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경사진 곳을 올라가려니 힘이 드네요(웃음).”
스님은 4륜 구동 차량처럼 두 다리와 지팡이 2개가 있어야 오르막 길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경사가 심한 구간에서는 뒤에서 행자님이 스님을 밀어주어야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4륜 구동에 보조 바퀴까지 달고 다니게 되었네요(웃음)”
스님의 재치 있는 농담에 함께 동행하던 활동가들도 힘든 줄 모르고 함께 웃었습니다.
콤샤르 치옥 주민들은 지난해 JTS 마을 개선 프로젝트를 통해 1킬로미터 길이의 농수로를 보수해 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구간에서 물이 흘러넘치면서 농수로 아래에 있던 주택과 농경지가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콤샤르 치옥 주민들은 다시 힘을 모아 농수로를 추가로 보수하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콤샤르 치옥의 촉바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농수로를 보수하고 잘 쓰고 있나요?”
“네, 잘 쓰고 있습니다.”

“농수로는 매년 유지보수가 필요하니 시멘트를 매년 신청해서 농수로를 일상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큰 문제가 발생한 후에 보수를 하려면 일이 커지게 됩니다. 농수로 안 쪽으로는 낙엽이 잘 쌓이기 때문에 청소도 자주 해주어야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기존에는 모내기 전에 한 번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모내기 전이라도 우기에는 청소를 해야 합니다. 수로 안에 낙엽이 쌓여 있으면 우기에 물이 넘칠 수 있어요. 농수로를 관리하다가 문제가 생겨 급하게 해결해야 할 때는 JTS에 바로 연락해서 시멘트를 받아서 보수를 진행해 주세요.”
스님과 부탄 활동가들은 콤샤르 치옥을 떠나 네 번째 현장인 바르도(Bardo)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바르도 치옥에서는 주거 개선 2건과 울타리 설치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울타리 설치 현장은 철조망 자재가 아직 배달되지 않아 특별히 점검할 것이 없었습니다. 멀리서 나무 기둥으로 울타리 위치를 잡아둔 것만 확인한 후 주거 개선 사업이 진행 중인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먼저, 혼자 사는 할머니가 신청한 신축 화장실 공사 현장을 확인하러 갔습니다. 화장실 공사는 80퍼센트 정도 진행되어 배관 작업과 정화조 작업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 전체가 보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천장이 너무 낮아서 이 상태로는 생활하기가 불편하겠어요. 천장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건 간단한 보수가 아니에요. 땅을 파고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해서 천장 높이를 높이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면 방에 습기가 찰 가능성이 많습니다.”

스님은 JTS 주거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삶에서 보이는 조그마한 불편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집주인 할머니에게 전반적인 집 보수 공사를 원한다면 JTS에 신청해 지붕재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꼼꼼하게 설명한 후 다음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집 역시, 이번에 화장실을 새로 지었지만, 작년에 시범 사업으로 전반적인 보수를 이미 마친 곳이었습니다. 스님은 이 집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한 가족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삼촌을 봉양하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 삼촌도 연로하여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집은 원래 지원 대상이 아닌데, 오랜 시간 몸이 불편한 삼촌을 모시고 사는 공덕으로 이렇게 복을 받았네요. (웃음) 어르신을 잘 모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이 집에 벌써 3번이나 왔네요. (웃음)”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
집주인은 치즈와 버터, 쌀을 스님께 공양물로 올렸습니다.

스님은 발도 게옥을 출발해 다섯 번째 현장이자 오늘의 마지막 답사 장소인 싱칼 게옥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 싱칼 게옥에 있는 싱칼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과 부탄 활동가들은 마을 사람들이 설치한 울타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전체 넓이 19에이커의 광활한 장소에 5.2킬로미터의 울타리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울타리의 철조망을 일곱겹으로 쳤으니 철조망 길이만 무려 36킬로미터 이상입니다. 스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곳에는 주로 어떤 짐승이 들어오나요?”
“멧돼지, 노루, 원숭이가 들어옵니다.”
“멧돼지는 땅을 파고 들어오는데, 멧돼지를 막기 위해 아랫쪽에 철조망을 촘촘하게 설치했나요?”
“네.”
“1년 정도 지켜보면서 어떤 짐승이 어느 부분으로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보강해 봅시다. 울타리를 설치할 때 만족스러웠나요?”
“네,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철조망을 사서 설치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개인이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은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없으니 서 있는 자리에서 염불을 하고 준공식을 마쳤습니다.
“호법선신(護法善神)들의 옹호로 마을에 동물들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기원합니다.”

스님은 잠시 시간을 내어 싱칼 치옥의 주민들과 JTS 프로젝트에 관해 대화를 나누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다른 필요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부분을 지원할 수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울타리 설치 공사를 하느라 수고했습니다. 직접 했나요, 노동자를 고용해서 했나요?”
“그룹을 만들어서 직접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웃음) 1년에서 2년 정도 동물 피해가 있는지 지켜보면서 나중에 울타리를 보강해야 한다면 보강 작업까지 함께 진행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니 남은 작업이 몇 가지 있네요. 하나는 울타리 사이로 사람이 출입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달아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울타리를 연결하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굳이 큰 나무를 심지 않아도 됩니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얇은 나무를 지금 심어두면 나중에 그 나무가 자라면서 울타리를 더 튼튼하게 고정하고 잘 지지해 줄 거예요.”

“모두들 일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른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생활에 필요하거나 도움이 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제안해 주세요.
JTS가 활동하는 목표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개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어 삶을 개선할 수 있고,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집안 시설이 열악한 사람은 수리를 통해 생활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보행로를 다 같이 힘을 모아 설치할 수도 있고, 식수가 마땅치 않다면 식수 시설도 개선할 수 있으니 촉바와 논의해서 여러분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제안해 주세요.”
스님은 오늘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5시 30분경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함께한 부탄 활동가들과 숙소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뒤, 저녁 공양은 하지 않고 일찍 휴식에 들어가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젬강 주 낭콜(Nangkor) 게옥으로 이동하여 프로젝트 현장을 점검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즉문즉설의 대화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역사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유관순 열사처럼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자각에 의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시대나 특정 집단의 세뇌에 의한 것일까요? 만약 세뇌에 의한 것이라면 그 희생은 가치가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자라 온 환경을 보라.’라는 말이 있어요. 가정환경, 친구 관계, 사회환경을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은 역사적·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볼 수 있어요.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르게 자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인의 특성을 불교에서는 ‘인(因)’이라고 하고, 그 시대적·사회적 조건을 ‘연(緣)’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특성을 콩의 씨앗이라고 비유하면, 콩의 씨앗은 밭에 심어야 싹이 틉니다. 밭에 심지 않고 공중에 매달아 두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아요. 이렇듯 인(因)과 연(緣)이 결합해야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두 열사도 만약 그들이 일제 강점기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이 아니라, 왕족이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삶은 시대의 영향과 개인의 특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에요.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 시대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어떤 개인도 시대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람의 특성과 그에게 주어진 조건이 서로 맞물려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마치 씨앗과 밭이 만나야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개인의 자각과 시대적 상황이 함께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두 열사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세뇌가 잘 되는 특성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대를 고찰해서 자발적으로 그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일까요? 혹은 둘 다일까요?”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두 가지 경우가 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의 일부 무슬림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종교적으로 강한 영향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라서 전사(戰士)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신념은 그런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우리가 보기에는 일종의 세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오늘날 북한이나 일부 종교 단체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 역시 출가한 것이 어떤 세뇌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스스로 자각해서 흔들림 없이 자기중심을 갖고 살아간 분이에요. 이처럼 자기희생을 감수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에도 세뇌에 의해 행동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스스로 자각해서 행동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경우가 다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아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경우는 알기 어렵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죽어서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싸우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세뇌의 영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천당에 가려는 것도 아니고, 부처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이 길을 가는 것이 옳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결이 좀 다릅니다. 그때는 그것을 희생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떤 보상이나 복을 구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이런 경우라면 자각의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여도 스스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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