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1. 삼일절 107주년 기념 특별법회, 통일의병대회
"'통일 왜 해요?'라고 묻는 학생들,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3·1절 107주년 기념 특별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9시 30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기념사를 해주기로 한 원로 종교인 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기념식 행사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오늘 삼일절 특별법회는 선조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고자 마련되었습니다. 과거를 단지 역사로 기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뜻을 이어받아 우리가 직접 평화를 위해 나서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슬로건도 '그날의 외침, 나의 몸짓이 되다'로 정했습니다.

3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10시 정각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며 대한독립의 큰 뜻을 선언했던 선열들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이어서 청년지부 서른 명이 연극 공연으로 1919년 3월 1일의 함성을 재현했습니다.

거리와 광장에서 독립을 외쳤던 그날의 청년들처럼, 무대 위에서 간절했던 그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공연에 이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중략)”

청년들이 낭독하는 독립선언문을 들으며 잠시 100여 년 전 그날의 숨결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나라 대한' 합창이 이어졌습니다. 한 명이 켠 촛불이 박자에 맞춰 옆으로 번지기 시작하자 무대 조명도 함께 밝아졌습니다.

대한이 살아온 걸음걸음 그 힘으로 일어나 ?
우리들 사는 이 땅위에서 꽃을 피우자


객석에도 청년들이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노래했습니다. 이내 청중 모두가 하나 되어 목소리를 합쳤습니다.

다음으로 참석한 대중들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 삼창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평화통일 만세!”

그날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지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분들도 모두 선창자의 외침에 힘차게 “만세!”로 화답했습니다. 만세를 외친 뜨거운 마음을 모아 모두가 함께 삼일절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대 위에는 정토회 회원 330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전국, 세계 곳곳에서 함께 부르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

삼일절 노래가 끝나자 대중들은 열정적으로 공연을 해준 청년지부 활동가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열기를 이어받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종교의 벽을 넘어 하나가 되었던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3·1운동의 중심축이자 민족자결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천도교의 박남수 전 교령님을 모시고 기념 축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107년 전 오늘, 우리 선조들은 제국주의의 총칼 앞에서도 자유와 평화의 뜻을 밝히기 위해 맨손으로 일어났습니다. 천도교와 불교, 기독교가 한 번 손을 맞잡자, 민족 자결이라는 대의를 밝히는 함성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외칠 만세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자연을 위해, 평화를 위해, 비우고 나누는 삶을 위한 만세여야 합니다. 그리고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 움직임이 107년 전 3·1혁명처럼 공간과 시간을 넘어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역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은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사회 곳곳에 밝은 빛을 전하고 있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축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에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남이 해주는 독립이 아닌, 스스로 선언한 힘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말하는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자로서의 담대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1919년의 광장에는 종교도, 계급도, 성별도 없었습니다. 오직 독립이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 모두가 평등하게 손을 잡았습니다. 독립은 한 번의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고, 미래 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주는 과정, 바로 그 평화 통일이 지금도 진행 중인 독립입니다...”

다음은 정토회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부모법회 회원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은 매년 삼일절 행사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기개를 담은 ‘독립군가’와 함께 가꾸어야 할 미래를 노래하는 ‘참평화의 꽃’ 두 곡을 불러주었습니다.


무대 배경에는 아이들이 평화를 꿈꾸며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독립군가와 평화의 노래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듬으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 함께해 온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홍진 신부님의 기념 축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매년 이날만 되면, 저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2년 전 이 자리에서 정토회 회원 모두에게 가톨릭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사죄의 인사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도 다시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민족의 도도한 역사가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지 못했던 가톨릭의 부끄러움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면서 김홍진 신부님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발표한 담화문을 낭독했습니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로 이루어진 천주교 지도부는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하고 신사 참배를 할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천주교인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기억하려는 것은 지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아픔과 좌절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던 그들을 본받기 위함입니다...”

담화문 낭독을 마친 김홍진 신부님이 덧붙였습니다.

“3·1혁명이라 불려야 할 이 날, 정토회 회원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한 모든 분들이 혁명의 완성을 향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중들은 세 분의 종교 지도자들이 전해준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이어서 온겨레의 노래를 3절까지 다 함께 불렀습니다. 온겨레의 노래는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이자 이 운동의 막후 기둥이셨던 용성진종조사께서 직접 작사하신 곡입니다. 300여 명이 함께 부르니 강연장이 힘찬 기운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어서 참석한 대중 모두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삼일절 기념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3·1절 107주년을 맞아 세계대전 전야를 방불케 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3·1독립선언의 자주와 평화 정신을 되살려, 청산이 아닌 포용으로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앞에서 되새기는 3·1운동 정신

“오늘은 기미년 3·1독립선언이 있은 지 107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제와 오늘 뉴스를 보셨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강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강대국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강대국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일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만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는 강대국이 주도하는 힘의 논리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3·1독립선언 107주년에 즈음하여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 마치 1차·2차 세계대전 전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강대국들은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주변 나라들을 침공했고, 그 침공이 확대되면서 결국 세계대전으로 비화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위험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3·1독립선언은 일본의 부당한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억압받는 가운데, 그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우리가 자주민임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논리에 의해 형성된 국제 질서 속에서, 당시 세계 최강국인 영국과 동맹을 맺은 일본의 행위에 대해 세계는 침묵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강대국의 침공을 두고 우리가 침묵하는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3·1독립선언을 한 우리 선조들은 참으로 위대했고, 큰 용기를 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실패가 예상되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3·1운동은 당시의 성패를 떠나,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때 이러한 방향을 제시한 운동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에게도, 주변국과 세계에도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일본의 패망과 연합국의 승리로 '주어진 독립'을 얻은 나라라는 꼬리표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루어지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3·1운동은 지금의 대한민국에 매우 소중한 역사입니다. 나아가 그때 이미 앞으로의 백 년, 곧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내다보며 방향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실적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출발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19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 정신에 기반하여 수립되었습니다.

또한 3·1운동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그보다 25년 전인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나 정부 수립 직전까지 나아갔지만 무능한 조선 왕조가 일본군과 청나라군을 끌어들여 동학 혁명군을 무참히 학살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다시 일어난 것이 3·1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조 사회에서 왕조에 저항하는 일은 역적으로 규정됩니다. 그럼에도 전 국민이 동학혁명에 과감히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30년 앞서 최제우 대신사가 '이제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선언한 동학사상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서양 문명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외부의 영향만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 내부에 이미 민주주의 의식이 싹터 자라고 있었고, 그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동학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동학혁명의 실패는 3·1독립운동으로, 그 좌절은 다시 4·19혁명으로, 광주항쟁으로, 6월항쟁으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며, 오늘의 대한민국, 곧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3·1운동은 단순히 빼앗긴 나라를 되찾자는 독립운동을 넘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은 광복으로 이루어졌지만,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빈곤과 가난에 찌들었던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외래 사상과 문화에만 기대던 모방 문화를 넘어, 우리 문화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오늘날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민이 만든 역사, 광복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

이렇게 3·1독립선언은 이미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분노에 찬 상황이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단지 나라를 되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꿈꾸는 나라는 우리의 자주성을 굳게 세우면서 이웃 나라와 평화를 이루는 나라였습니다. 자주독립을 이루되 세계 평화에도 기여하는 새로운 나라를 지향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는 독립선언서가 독립을 향한 열의나 전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한 위상에서 돌아보면, 3·1운동의 정신은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이미 그때 분명히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정착시키고,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일입니다. 3·1독립선언의 정신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새로운 나라'는 단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국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분단을 극복해 통일된 나라가 되는 동시에, 오늘날 인류 문명이 맞닥뜨린 막다른 위기 속에서 개인은 행복하고, 세상은 평화롭고, 자연은 아름답게 보전되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나라여야 합니다.

또한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평화적이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함으로써,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 현실을 보면, 남북 간 대립과 갈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심하다고 할 만큼 첨예하고, 남한 내부의 정치 세력 간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우리를 36년간 지배한 일본과는 대화를 하고 협력하면서, 같은 대한민국 안의 다른 정당과는 대화를 거부합니다. 우리와 전쟁을 치른 북한과는 대화와 협력을 말하면서, 같은 대한민국 의회 안의 다른 정치 세력과는 대화를 거부합니다. 이런 모순된 사고방식은 국내 갈등은 물론이고,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에 놓인 과제를 풀어 가는 데도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에 한·일 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면, 과거의 원한을 접고 미래를 향해 협력해야 합니다. 남북 협력이 세계적 갈등 구조 속에서 평화를 지켜내는 길이라면, 전쟁의 책임만을 끝없이 따지기보다 미래의 이익을 위해 과거를 용서하고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친일 청산', '공산주의 청산'처럼 청산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에는 기여하지 못했더라도,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면 이들의 공로도 인정해야 합니다.

나라의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투쟁에서는 올곧은 투쟁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키는 일에는 경제 전문가, 지식 전문가, 기술 전문가 등 수많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를 좀 더 포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청산과 척결에 매달리며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길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런 뜻을 보인다면, 우리는 과오를 끝없이 들추기보다 그들을 포용하고, 앞으로 닥칠 새로운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참여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독립운동의 역사에서는 비판받을 지점이 있더라도, 이후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면, 그 사실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구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80여 년을 대체로 미국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 혹은 미국이 '지는 해'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자주성을 확보하면서 대한민국의 앞날을 세계인들과 함께 만들어 갈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앞으로 정토회가 3·1절, 광복절, 개천절을 준비할 때도 이러한 관점을 중심에 두었으면 합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정부가 못하면 민간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동학혁명도, 3·1운동도, 4·19 혁명도, 촛불혁명도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선조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만들어 온 대한민국을 계승하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날의 함성이 오늘 우리들의 몸짓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오늘 기념식의 주제는 바로 그런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비록 적은 사람들이 모여 작게 시작하지만, 광복 100주년을 내다보며 지금부터 준비해 갔으면 합니다. 앞으로 19년 후 광복 100주년을 그리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이제 우리의 몸짓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하며 3·1절 기념 특별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모시고 지하 식당으로 이동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점점 고조되는 국론 분열과 전쟁의 참상을 언급하며 깊은 우려를 나누었습니다.

기념 축사를 해준 종교인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회관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제19차 통일의병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통일의병 입문 과정을 마친 예비 통일의병 13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선배 통일의병들이 유튜브로 접속한 가운데 수행문을 함께 낭독하며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정토회의 창립 취지를 되짚으며 수행을 바탕으로 사회 실천을 함께하는 것이 정토회 회원의 길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를 '수행공동체'라고 합니다. 정토회는 수행을 기반으로 하되, 우리 사회에 닥친 여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 활동도 함께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실천적 과제는 이 땅의 평화를 지켜내고, 분단을 극복해 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창립 당시부터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 땅에 확산하는 수행운동과 민족의 과제인 평화통일을 이루는 일, 이 두 가지를 목적으로 삼아 설립되었습니다.

수행만이 아니라 사회 실천을 함께 해야 하는 이유

다만 사회 실천 활동은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토회 안에서도 수행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사회 실천 활동에는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사회 실천 활동에는 관심이 많지만 수행은 별로 내키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환경운동에만 관심이 있다면 환경단체를, 통일운동에만 관심이 있다면 통일운동 단체를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수행이나 명상에만 관심이 있다면 수행 중심의 불교 단체를 안내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자기 변화를 이루는 동시에 우리 사회를 더 평화롭고 정의롭게 바꾸는 실천에도 함께하겠다는 뜻이 있다면, 그런 분이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토회가 바로 이런 관점으로 설립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불교 안에서도 이런 흐름을 '실천불교'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Engaged Buddhism'이라고 합니다. 국제적으로도 각 나라에서 이러한 실천 불교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고, 그들과 연대하는 ‘국제참여불교연대(INEB)’라는 단체도 있습니다. 정토회는 그 연대 속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전법회원이 되려면 수행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수행은 당연히 기초이고, 기본이며, 바탕입니다. 거기에 더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대비하는 환경 의식,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인식, 사회 정의와 성평등, 인권 존중,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함께 갖추어져야 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민족의식도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국적을 가진 분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한국 국적이 아닌 분들은 각자의 나라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같은 취지를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토회 회원이면서 본인이 한국인이라면, 최소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려는 관점은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지금 '통일의병'이 된 것입니다. 만약 '통일의병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부처님 법만 공부하겠다'고 한다면, 정토회원으로 활동하기보다 각 사찰의 불교대학 같은 곳에서 불교 신자로서 신행 생활을 하는 길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창립 취지에 '바른 불교관과 바른 민족사관을 갖춘 사람을 정토회 회원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토회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이러한 역사 의식과 사회 의식은 갖추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비 통일의병들은 전법회원 교육을 수료하고 통일의병이 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다섯 번에 걸쳐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학습 과정에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통일과 평화를 가르치려 할수록 극우화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통일의병이자 수행자인 교사로서 어떤 마음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통일을 왜 해요, 극우화되는 MZ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저는 중학교 교사입니다. 학생들에게 통일과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전달하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극우화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통일의병이자 수행자인 교사로서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현상을 바라봐야 할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반발을 사서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입이 아니라 대화로 풀어간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지, 사실이 아닌 것을 주입하려는 게 아니니까요. 먼저 학생들이 어떤 부분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그 지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학생들이 북한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면도 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시나 취업에 특혜를 받는다고 하면 극렬히 반발하지 않습니까? 그런 감수성을 가진 학생들이 북한 지도부를 보면, 지도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되는 문화를 달갑게 볼 리가 없습니다. 어른들이야 '북한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왕조 시대도 그랬으니 별일 아니다'라고 여길 수 있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북한의 세습 문화나 중국의 언론 통제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니 '왜 중국이나 북한을 나쁘게 보냐'고 나무라는 대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라온 환경에 따라 관점이 달라집니다. 왕조 시대적 관점과 민주주의 시대적 관점이 다르듯,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북한의 정치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에 머물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약이 입에 쓰다고 안 먹으면 병이 낫지 않아 나만 손해입니다. 낫는 것이 중요하다면 입에 쓰더라도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처럼 북한의 정치 시스템이 싫더라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낫지 않겠느냐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 가야 합니다.

이때 선생님이 ‘학생들이 극우적이라서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것은 가르치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대화를 통해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만 모든 생각이 한 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니, 고쳐질 것은 조금씩 고쳐지고, 끝내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선배들이 보기엔 문제아처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정부에 반대하면 선생님은 ‘공부는 안 하고 비판만 한다’며 야단을 치셨고, 우리는 속으로 ‘선생님은 위선자다’라고 했잖아요. 권위로 눌러 봐야, 돌아서면 또 딴소리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화 세대인 부모를 보는 젊은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는 민주주의와 노동 투쟁을 외치는 부모가 정작 집에서는 서로 싸우고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아이들 눈에는 그게 위선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반발이 생기는 겁니다. 역사적으로도 부모가 보수면 자식이 진보가 되고, 부모가 진보면 자식이 보수로 가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이론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실제로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대화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하면 안 돼요. '네가 틀렸으니 바꿔'가 아니라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이런 시각은 어때?' 하며 템포를 늦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변하는 만큼, 나 역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접근하면 오히려 반발을 삽니다. 우리야 통일의 필요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통일은 왜 해요? 북한 사람들과 같이 살면 우리만 손해 아니에요?'라고 거리낌 없이 묻기도 합니다. 우리 귀에는 불경스럽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곧바로 우경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네,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남북한이 각각 미·중러 진영으로 나뉘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감정적 반감이 생겨 괴롭습니다. 한쪽 시야에 매몰되지 않고 통일의 원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죠?
  • 역사 공부에서는 '우리'가 강조되지만, 불교의 연기법은 모든 존재의 연결을 말하고 있어 두 관점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꼈습니다. 통일의병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 스님의 강의를 통해 통일을 '체제의 일원화'가 아닌 '경제·문화의 통합적 발전'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정토회 활동을 통일의병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 정토회 안에서 정작 통일의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아 활동이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통일의병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미래 계획은 무엇인가요?

궁금함을 모두 해소한 후 정토회 통일의병의 역사, 그리고 신규 통일의병들의 우리 민족 역사 공부로 뜨거웠던 순간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신규 통일의병을 대표해서 한 분에게 스님이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위 정토행자는 정토회 통일의병 입문 과정을 이수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통일의 주역으로서 통일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기에 통일의병으로 임명합니다.”

이어서 신규 통일의병 전체에게 스님이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선배 통일의병들이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신규 통일의병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정토회에서는 제19차 통일의병에 입문한 134명이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키고, 국민이 고통에 빠졌을 때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큰 마음을 내었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의 소망을 이어가고, 분단된 조국이 하나 되는 그날을 그리며 통일을 준비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어떤 임무든 주어지는 즉시 행동에 옮길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의 이 작은 정성이 모여,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여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통일의병 서약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둘.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시대를 연다.셋. 우리는 주변국과 상생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발원문을 낭독하고, 통일에 대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신규 통일의병들은 그룹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스님은 곧바로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차로 4시간 이동하여 저녁 8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늦은 저녁식사를 한 후 여러 업무들과 원고 교정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에 머물며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는 허리 통증 치료를 하기 위해 병원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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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

늘 감사합니다.

2026-03-04 07:52:01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3-04 07:06:48

정태식

“강대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강대국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습니다.
3·1독립선언 107주년에 즈음하여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면, 마치 1차·2차 세계대전 전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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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세상이 동물의 왕국처럼 되고,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결정으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2026-03-04 06: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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