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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순례단과 함께 델리로 이동하여 델리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한국문화원에서 금요즉문즉설 방송과 인도 교민을 위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새벽 3시 50분, 스님과 순례단은 상카시아를 떠나 델리로 출발했습니다. 버스에 탑승한 후 새벽수행과 명상을 하고 모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약 5시간을 달려 오전 9시에 델리 근처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휴게소 한켠에 자리를 잡고 스태프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순례단도 휴게소 곳곳에서 자리를 펼치고 아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오전 11시 20분 델리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세 팀으로 나누어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박물관 입구에서 먼저 도착한 첫 번째 팀에게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인도 대륙의 지형과 역사를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인도 대륙은 삼각형의 반도 형태입니다. 아라비아해와 벵골만, 인도양, 히말라야산맥으로 둘러싸여 예전에는 하나의 고립된 세계나 다름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의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300년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라파, 모헨조다로 등 수백 개의 도시 문명이 확인되었으며,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였음을 소개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관을 만나게 된다고 안내했습니다.
이어서 기원전 1500년경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이동해온 아리안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철기 문명을 가진 이들이 갠지스강 유역을 개간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베다 시대를 거쳐 카스트 제도가 자리 잡는 종교 시대, 사유가 깊어지는 우파니샤드 철학 시대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약 300여 개의 나라가 서로 다투던 이 문명의 쇠퇴기에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한 여러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님은 인도의 주요 왕조와 박물관 유물의 관계도 설명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왕의 마우리아 왕조가 인도를 통일한 뒤, 북쪽에서 내려온 쿠샨 왕조, 다시 본토에서 일어난 굽타 왕조로 이어지는 흐름을 소개하며, 현재 남아 있는 탑과 유물 대부분이 이 세 왕조 시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무갈 제국의 지배와 영국 식민지 시기를 거쳐 독립에 이르는 역사도 간략히 짚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삐쁘라하와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박물관 내 불교관에 모셔져 있으니 신발을 벗고 삼배를 드린 뒤 친견하라고 안내했습니다. 산스크리트 문자 전시실도 둘러볼 것을 권하며, 한글과 비슷한 형태가 많은데 실제로 한글 창제에 승려들이 깊이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유물을 둘러보았습니다. 관람 중 일부 전시물 앞에서는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삐쁘라하와에서 발견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불교관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순례단을 진신사리 앞으로 인솔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모두 삼배를 하겠습니다.“

순례단은 진신사리 앞에서 삼배를 올렸습니다.

첫 번째 팀의 박물관 안내가 끝난 후 스님은 순례단에게 자유 관람 시간을 주었습니다. 오후 1시 15분에 두 번째 팀이 도착하여 박물관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안내를 하는 중에 주인도 한국 대사관의 영사님들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박물관에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두 번째 팀 안내를 마치고 영사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성지순례를 원만하게 잘 마쳤습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스님, 잘 진행되셨다 하니 다행입니다.”
스님은 영사님들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번 순례 기간에 묵묵하게 함께해 준 민병덕 의원님에게도 인사를 전했습니다.

오후 1시 40분에 마지막 팀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 팀의 안내를 마치고 오후 2시 30분에 금요즉문즉설 방송을 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문화원 입구에서 직원들이 꽃을 들고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원장님께서 한국-인도 협업 미술 전시장에 일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대신 스님 오시면 원장실로 모시라 당부하고 가셨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스님은 원장실에서 원고를 교정한 후 현지 시간 오후 4시, 한국 시간 7시 30분에 즉문즉설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 32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인도 델리에 있습니다. 15박 16일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 성지순례를 했고, 오늘은 델리 박물관에서 유물들을 둘러보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친견했습니다. 이후에 순례단은 한국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고, 저는 한국문화원으로 와서 이렇게 여러분을 뵙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델리에 있는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가볍게 근황을 전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화를 알아차려도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자신의 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화 조절을 못해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다른 동기들보다 한 달 늦게 전역했고, 사회에서 수차례 형사처벌도 받았습니다.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화를 알아차려도 행동 조절이 잘 안 됩니다. 현재 병원에서 10개월 정도 꾸준히 약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 미래가 걱정되고, 화를 쉽게 내는 업을 바꾸고 싶습니다. 스님, 도와주십시오.”

“질문자의 질문을 들어보니까 단순히 ‘성질이 더럽다’, ‘화를 잘 낸다.’ 하는 수준을 약간 넘어선 것 같아요. 즉, 정신질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약간 우울하더라도 치료까지는 필요하지 않는 경우는 성격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심해지면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처럼 지금 질문자는 성격적으로 화가 많은 걸 넘어서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화가 일어나면 스스로 자기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겁니다. 속된 말로 미친 사람처럼 그 순간에 어떤 행동이나 욕설을 홧김에 해버리게 됩니다.
첫째, 감정 조절이 안 된다면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가령 몸이 조금 아프면 스스로 휴식을 취해서 다시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를 조절해서 낫는 자가 치료입니다. 그런데 세균에 감염이 되거나 뼈가 부러지면 내가 어떻게 노력한다고 해서 상태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의 도움을 받거나 약을 먹어야 됩니다. 몸이 아플 때 스스로 개선시킬 수 있다면 자가 치료를 하고, 스스로 나아질 수 없는 상태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스스로 감정 통제가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서 약물 치료나 상담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미 약물 치료는 받고 있다고 하니까 첫 단계는 잘 대처한 것 같아요. 화가 나는 병에 걸렸을 때는 화를 참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참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이미 그건 병이 아니에요. 화가 나버린다면 아무리 화를 참으려고 해도 안 참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병원에 꾸준히 다니면서 약을 먹어야 됩니다. 흔히 우리는 화를 내는 걸 성격이나 정신적인 문제로만 봅니다. 그런데 화를 낼 때는 몸 안에서 화를 불러일으키는 물질이 분비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래서 약물 치료를 받으면 그런 분비를 중화시켜서 감정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전통적으로 한의학에서는 화가 나거나 하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기가 머리 위로 올라와서 정신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열을 배꼽 밑으로 내려보내야 된다고 말해요. 즉, 머리는 시원하고 손발이 따뜻해야 정신적으로 맑아진다는 것입니다. 손발이 차고 머리가 뜨거우면 뇌가 영향을 받아서 정신적인 작용에 혼란을 준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틈나는 대로 많이 걸으면서 하체 운동을 많이 해야 됩니다.
하체 운동에 좋은 것 중에 하나가 108배입니다. 108배는 하체 운동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화를 낼 때는 고개를 쳐들고 ‘왜?’ 이러잖아요. 이것은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이 강할 때 나오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과 반대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면서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라고 하면 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화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할 때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절을 많이 하면 화를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절을 하면서 ‘본래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면 나도 모르게 내가 옳다는 생각이 누그러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화가 올라와도 옳고 그름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화가 내려가게 됩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화가 날 때 화가 나는 걸 알아차려도 화가 걷잡을 수 없이 머리 위로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알아차려도 화를 참아내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처방받은 약을 먹고, 절을 많이 하고,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참회의 절을 하면 화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됩니다.
첫째, 질문자는 지금 환자니까 전문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어야 됩니다. 둘째, 하체 운동을 많이 해야 됩니다. 셋째, 절을 하면서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되뇌며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자꾸 해야 됩니다. 하루에 300배 정도, 매일 한 시간씩 절을 하면서 ‘부처님,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되뇌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 해보면 화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증상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개선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더라도 금방 ‘죄송합니다. 제가 성질이 못돼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사과해버리면 다른 문제가 안 생겨요. 즉, 사회생활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화를 안 내는 게 더 좋지만, 화를 냈더라도 금방 ‘죄송합니다. 제가 병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로 사과해버리면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화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를 냈더라도 그걸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네, 지금은 약을 어느 정도 투약했을 때 부작용이 없는지, 잠을 잘 자는지를 조절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그리고 스님 말씀대로 절을 많이 해서 앞으로 무탈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신과 약은 예민한 신경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약을 먹으면 약간 졸리고, 멍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들 때문에 환자가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약간 멍해지고 졸리는 건 한 번 자고 나면 괜찮아지지만, 화를 벌컥 내서 욕을 하거나 남을 때리는 사고를 치면 손해가 많아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약을 안 먹고 사고를 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둔해지는 게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도 감정 조절이 너무 안 된다면 약이 충분하지 않은 겁니다. 반대로 정신이 없고 졸음이 쏟아지면 약이 조금 많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약의 종류나 양을 조절하는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약에만 너무 의존하기보다는 절을 많이 하면서 ‘제가 부족합니다.’, ‘내가 옳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뇌며 참회의 절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현지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생방송 내내 접속이 불안정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대화를 마쳤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시청자들과 만나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원장실로 돌아왔습니다. 곧 한국문화원장님이 도착했습니다. 스님과 원장님은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원장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류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문화원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원장님은 최근 고민거리를 스님에게 꺼냈습니다.

"스님, 요즘 K-문화 위상이 많이 올라가고 있는데, 문화원 가까운 곳에서 사고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제 10대 초반부터 6살까지 세 자매가 집에서 뛰어내려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학교도 안 가고 한국 게임에만 빠져 있었다'고 진술했고, 주변 친구들도 '그 아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한국 이름도 갖고 있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제 하루 종일 'K-드라마 때문에 인도 여자아이들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현지 주요 언론에서 보도되었습니다.
관할 경찰을 통해 들어 보니 집안 환경 문제도 있어 보이는데, 한국 문화 때문이라고 계속 보도가 되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다행히 현지 젊은층 사이에서는 '그게 어떻게 한국 문화 때문이겠느냐'는 분위기가 더 우세합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한류에는 이러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인이 우리 문화를 좋아해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어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한류에 중독되어 문제라고 합니다. 한류 문화는 기본적으로 소비 문화입니다. 음식이든 화장품이든 영화든 다 소비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아이들의 한류 소비가 늘어나니 부모들이 힘든 것입니다. 우리는 한류 덕분에 돈이 벌리니 좋아하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한류가 문제입니다.
한류로 인한 이익만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그 나라의 여성 교육이나 빈곤 퇴치에 투자해야 합니다. 한쪽에서 버는 돈을 다른 한쪽에 투자해야 지속 가능합니다. 일본이 왜 민심을 잃었느냐 하면,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인도주의적인 지원도 해야 합니다. 너무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면 언젠가 젊은 층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게임도 지나치게 중독성 있게만 만들면 일시적으로는 잘 팔리지만, 나중에는 저항이 생깁니다. 지금 문화원 입장에서는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변명하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국 교민회장님이 스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교민회장님과 빠르게 변화하는 인도 속에서 교민 사회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덧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 6시, 문화원 지하 강당에서 인도 교민들을 위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연에 앞서 교민회장님이 매해 잊지 않고 교민 강연을 열어 주는 스님께 감사의 뜻으로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에 올라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년 1월 성지 순례객을 안내하기 위해서 인도에 옵니다. 올해는 성지 순례객 500명이 버스 13대로 16일간 순례했습니다. 델리에서 출발해서 바라나시, 보드가야, 라즈기르, 바이샬리, 쿠시나가르, 그다음에 네팔로 가서 룸비니를 들렀다가 다시 인도로 넘어와 쉬라바스티, 상카시아를 거쳐 오늘 델리에 왔고, 오늘 저녁 비행기로 다 돌아갑니다.
저희는 성지순례를 다닐 때 호텔에서 자지 않고 순례자 숙소에서 잡니다. 밥도 식당에서 사 먹지 않고 각자 해 먹고 다닙니다. 저는 참가자들이 성지를 순례해서 배우기보다는 이런 생활에서 배운다고 생각하거든요. 침낭 하나 가지고 자고, 아무거나 먹고, 먼지 마시고 다녀도 다들 기쁜 얼굴로 다닙니다. 이렇게 다니다가 한국에 가면 새로운 세상 같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무엇 때문에 못 살겠어요? 그런데 그 마음이 사흘을 안 넘어가는 게 문제입니다. (웃음)

인도에서 2주 이상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은 요즘 현대인들이 볼 때는 좀 특별한 생활일 겁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에게는 보통 생활이고, 저희가 어릴 때도 일반적인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런 순례자의 생활을 직접 경험해봄으로써 자각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풍요롭고 편안한 곳에 살고 있는지, 대한민국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좋은지를 자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 살면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온갖 불만이 많습니다. 이번에 청년들이 50명 정도 왔는데 대부분 다 장가도 못 가고 시집도 못 갔어요. 인도에서는 밥도 먹기 힘들어도 사람으로 태어나면 다 장가가고 시집갑니다. 네팔에 해발 2천 미터 정도 되는 탄센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 차 타고 올라가면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같은 산들이 잘 보입니다. 이런 산속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다 잘 살고 있습니다. 저도 결혼 안 하고 사니까 청년들이 결혼 안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상관은 안 합니다. 내가 선택해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결혼을 못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하는 거예요.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고 하는 것은 속된 말로 눈이 높아서 하는 말입니다. 뭐가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해야 결혼 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하는데, 좋아하면 좋지만 안 좋아해도 얼마든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다 살아집니다.
‘어렵다.’ 하는 것은 마음이 어려운 것이지 몸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노예이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학대를 당하면 몸이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마음이 어려운 것입니다. 마음이 어렵다는 것은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에게 담배 안 피우는 게 어려운 일입니까? 쉬운 일입니까?”
“쉬운 일이에요.”

“쉬운 일이지요. 그런데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는 담배 안 피우는 게 어렵습니다. 그러면 담배를 안 피우는 게 어렵다는 것은 담배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까, 습관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까? 습관 때문에 오는 문제입니다. 오히려 담배 피우는 게 어렵습니다. 돈 있어야지, 담배 사야지, 빼 물어야지, 피워야지, 재 떨어야지, 청소해야지, 할 일이 많잖아요. 안 피우는 것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안 피우는 게 어렵다는 것은 그것이 습관이고 중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인도에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자기 습관을 고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몸에 밴 습관, 마음에 밴 습관을 고집하고 있어서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안 피우는 것을 어렵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런 이치를 깨닫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 핵심은 신비로운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습관을 바꿀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습관은 인도말로 ‘카르마’라고 하는데, 습관이 너무 안 고쳐지니까 카르마가 ‘운명’이라는 뜻이 된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것을 운명이나 숙명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 습관이 들면 바꾸기는 좀 어렵지만, 운명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려울 뿐이지 바꿀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까지 와서 살면서 ‘인도는 정말 살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자기 습관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아이들이 게임 그만두는 게 어려울까요? 쉬울까요? 어렵습니다. 엄마는 ‘그만해라.’ 이렇게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또 자기 일은 어렵다고 하지요. ‘이게 쉬운 줄 아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습관을 고집하면 죽기보다 더 어렵고, 습관을 놓아버리면 사는 데 아무 일도 없습니다.

둘이 살다가 혼자 살면 어렵다고 하는데 이것도 습관입니다. 혼자 살다가 둘이 살아도 어렵습니다. 혼자 살다 결혼하면 좋다고 하지만, 둘이 살아보면 어렵습니다. 또 둘이 같이 살다가 하나가 죽든지, 헤어지든지 해서 혼자 살게 되면 또 어렵습니다. 이게 다 습관입니다. 산에 있는 짐승도 다 혼자 사는데, 혼자 사는 게 왜 어렵겠어요? 혼자 살아도 어렵지 않고, 같이 살아도 어렵지 않은데, 자기 습관을 고집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각하기 위해서 이렇게 순례를 다니는 것입니다.
순례를 하는 중에 땀 흘리고 못 씻는 날이 생기면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 합니다. 한국에서는 매일 씻으니까 하루만 안 씻어도 힘든 거예요. 그러면 씻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까, 안 씻어서 힘들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까?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려면 안 씻어서 힘들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씻을 수 있는 호텔에서 안 자고 씻을 수 없는 순례자 숙소에서 자는 것입니다. 씻으려면 찬물에 씻어야 하는데, 인도에서 요즘 찬물에 씻으면 춥지요. 그래서 찬물에 씻는 게 나은지, 안 씻는 게 나은지는 각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것이 다 습관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나 네팔에 가보면 안 씻고도 몇 달씩 삽니다. 저도 어릴 때는 거의 안 씻고 살았습니다. 때를 밀 때는 일년에 한 번 설 전날에만 소죽 끓이는 솥에 물을 데워서 사용했어요. 옛날에는 아이들 보고 씻으라고 하면 죽기보다 더 싫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매일 씻는 사람은 안 씻는 걸 못 견뎌 합니다. 이게 다 습관인데, 습관이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말로 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직접 경험해봐야 합니다. 안 씻어서 막 성질을 내고, 춥다고 하고, 못 먹었다고 짜증을 내는데, 사실 하루 안 먹었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직접 테스트해 봤는데 70일까지 단식을 해도 안 죽었습니다. 배고프면 ‘이러다 죽지 않을까?’ 하는데, 이것은 두려움이고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전부 다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면 어느 순간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일어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행복을 먼 데 가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신의 고민이나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1시간 40분 동안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의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대화를 마칠 무렵 한 여성 분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간절히 원해서 얻은 아이가 7살이 되었는데, 아이가 잘못될까 봐 항상 불안하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갖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벌써 7살이 되었는데요. 가장 원하는 걸 얻었는데, 제 마음은 왜 아직도 힘든지, 그리고 이 힘든 게 언제까지 힘들지를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것이 힘이 듭니까?”
“아이가 잘못될까 봐 항상 불안하고, 그 이유가 저 때문일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됩니다.”
“옛날 어른들은 아이를 보통 일곱 명씩 낳아서 대충 내버려두고 키웠습니다. 왜냐하면 다 케어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에요. 가난한 집안에서는 밥도 나무를 떼어서 해 먹어야 하고, 옷도 무명이나 삼베로 만들고, 빨래도 전부 냇가에 가서 해야 되고, 밭도 매야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아이를 일곱 명이나 키우려면 현실적으로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갓난아기만 엄마가 돌보고, 대부분 아이들은 언니가 돌봅니다. 아이들끼리 크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자기들 사이에서 사회성도 생깁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자랄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아이를 하나밖에 안 낳는데, 게다가 질문자처럼 엄청나게 오래 기다렸다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얻은 기쁨이 크면 클수록,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이것이 고락이 윤회하는 모습이에요.
내가 돈에 대한 집착이 크면 클수록 돈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커집니다. 돌멩이 하나를 주웠을 때 기대가 별로 없으면, 그 돌멩이를 잃었을 때 괴로움도 별로 없습니다. 금을 가졌을 때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금을 잃었을 때의 괴로움도 커집니다. 이것이 윤회입니다. 질문자는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두려움도 다른 사람보다 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이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스님이 남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질문자는 시집도 갔고 아이도 한 번 낳아봤고, 아이가 지금 크게 장애가 있거나 아픈 것도 아니고 잘 크고 있으니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이가 다치면 병원에 가면 되는 거고요.
아이를 어렵게 얻었기 때문에 기대가 크고, 기대가 크기 때문에 염려가 커지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아이에게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엄마의 기대가 클수록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자기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기대를 저버릴까 봐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심해지면 반항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평생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부모로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미국 대학에 가서 즉문즉설을 해보면 아시아권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 걱정을 합니다. 가족 전체가 이민을 와서 맏이 한 명을 공부시키기 위해 온 가족이 농장에서 일하고, 아이는 온 가족의 삶을 자기 어깨 위에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아이는 자유롭게 자기 삶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삶으로 보면 그것은 속박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이에게 주는 속박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삶의 불안정을 아이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인생을 사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아이도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방치하거나 학대하라는 말이 아니라, 아이에게 너무 집중하면 그것이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은 특히 아이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을 마치고 아이들과 따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성지순례에 함께했던 국제국 회원과 낮에 박물관에 찾아왔던 영사님도 교민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순례를 함께한 태국 스님도 교민 법회에 참여하여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교민 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한국문화원 2층에서 교민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밤 9시가 넘어 공항 근처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긴 하루를 마치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델리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고 상카시아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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