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11.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지역 답사 4일째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모함할 때, 어떻게 해야 괴롭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지역에 지원할 구호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메단(Medan)에서 시장조사를 진행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7시 40분부터 안드레 님과 함께 구호물품 시장조사를 위한 회의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안드레 님은 화교 출신으로, 독실한 불자 가정에서 자랐고, 아버지를 도와 메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어제 박지나 JTS 대표님과 함께 장화, 삽, 괭이, 대야 등을 시장조사할 때 큰 도움을 주었고, 오늘도 하루 종일 함께 조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안드레 님에게 정중히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아체 주는 강성 무슬림이 사는 지역이라고 소문이 나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곳입니다. 홍수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니 안드레 님도 많이 도와주세요.”

안드레 님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이어서 오늘 시장조사 계획에 대해 안드레 님과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어제까지 피해 지역을 답사하고 주민들의 요청을 취합한 결과, 청소도구가 필요한 가구는 764 가구, 주방용품이 필요한 가구는 888 가구로 파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삽, 괭이, 스퀴즈 등 청소도구와 밥솥, 그릇, 주걱 등 주방용품, 사롱(천옷) 등 주요 구호물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한 시장조사를 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전 9시 30분, 숙소를 나와 주방용품을 조사하기 위해 시내 도매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도매상이 문을 닫은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안드레 님이 평소 거래하던 도매업체에 연락해 보았고, 특별히 문을 열어주겠다는 답을 받아 곧장 그 가게로 이동했습니다.

원래라면 여러 가게를 직접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번 긴급구호 일정은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이번은 1차 지원인 만큼 안드레 님에 대한 신뢰와 박지나 대표님의 풍부한 구호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방문한 가게에서 바로 가격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구호물품으로 주방용품 10개 품목을 선정했습니다. 선정된 품목은 숟가락, 접시, 컵, 국그릇, 프라이팬, 대야, 뒤집개, 밥솥, 주걱, 알뜰주걱입니다. 숟가락, 접시, 컵, 국그릇은 5인 가구 기준으로 각 가구당 5개씩, 888 가구에 나눠주기 위해 품목별로 4,440개를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프라이팬, 대야, 뒤집개, 밥솥, 주걱, 알뜰주걱은 각 가구당 1개씩, 888 가구에 지원할 수량으로 품목별 888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대량 구매이기에 단가를 조금만 낮춰도 더 많은 주민들에게 더 많은 물품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박지나 대표님이 오랜 시간 가격 협상을 이어갔습니다.

또한 17일에 각 마을에 배분하려면 16일까지 아체 주에 물품이 도착해야 하기에, 배송이 가능한지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내일까지 정확한 일정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이어 낮 12시 30분에는, 어제 안드레 님의 공장에서 확보한 삽, 괭이, 장갑 등 청소용품의 품질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스님은 삽을 직접 들어보고 튼튼한지 확인했습니다.


“튼튼하지 못하면 부러질 수가 있어요. 그러면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도 욕만 얻어먹을 수가 있습니다.”

안드레 님이 스님을 안심시키며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튼튼합니다.”

하나씩 물품을 점검한 결과 모두 상태가 양호했고, 바로 사용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는 숙소로 돌아와 구호물품 배분을 위한 최종 점검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피해 주민들이 리어카와 가스스토브도 필요하다고 요청하여, 이 품목들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발 빠르게 물품을 조사한 결과, 안드레 님이 준비하기로 한 삽, 괭이, 장갑, 리어카는 모두 16일까지 아체 주에 도착할 수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생필품은 예정대로 16일까지 준비할 수 있는 만큼만 준비해서 먼저 배분하고, 혹시 늦게 도착하는 나머지 품목은 박지나 대표님이 하루 이틀 더 현지에 머무르며 직접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품대금 송금은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정토회원들이 도와주기로 하고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로써 3박 4일간의 인도네시아 아체주 홍수 피해지역 답사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공항까지 배웅 나온 안드레 님에게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이건 향나무로 만든 단주입니다. 일요일인데도 쉬지 않고 수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안드레 님이 다니는 절에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큰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출국 수속을 밟고, 저녁 6시 50분 비행기로 메단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저녁 8시 50분, 중간 경유지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해 약 4시간을 대기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간단히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점심은 인도네시아에서 먹고, 저녁은 말레이시아에서 먹고, 내일 아침은 필리핀에서 먹잖아요.”

식사 후에는 탑승구 앞에서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 0시 55분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출발해 필리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5시에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고, 곧바로 민다나오 가가얀데오르로 이동해 하루 종일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 지역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10월에 부천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모함할 때, 어떻게 해야 괴롭지 않을까요?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불교계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미움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요즘 주변 사람들이 저를 미워하고 욕하고 모함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사니까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 욕을 얻어먹었네. 오래 살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복 중에서 최고의 복은 명(命)이 길어지는 복인데, 좋은 일을 하고 칭찬을 들으면 그 복을 다 받아버려서 오히려 큰 복이 안 됩니다. 그런데 칭찬 대신 욕을 얻어먹으면 그 복은 큰 복이 됩니다. 그러니 욕을 얻어먹으면 ‘큰 복이 되겠구나’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좋은 일을 하고 이생에서 받는 복은 작은 복이고, 천국에 가서 받는 복은 큰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좀 다니세요. (웃음)

예를 들어, 수녀님들이 소록도에 가서 평생 헌신하실 수 있는 이유는 이생에서 칭찬받을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그마한 복은 묻어두고, 하늘나라에서 엄청나게 큰 복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그분들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금강경에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또 법화경의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욕하지만, 욕하는 그들이 곧 부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가벼이 여길지라도 나는 그들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고 부처님으로 대하겠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면 그들의 비판을 듣고 반성하면 되고, 내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나를 비판한다면 오히려 복이 쌓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상대가 욕을 좀 더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금강경에는 ‘복을 짓되 복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의 ‘불수불탐(不受不貪)’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복을 받지도 않고 탐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어떡해야 할까요?”

“그건 껄떡거리는 병, 즉 사랑고파병입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중생의 가장 큰 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데, 대부분 받기만 원하고 주려는 생각은 안 합니다. 모두가 받으려고만 하니 받을 가능성이 없어요. 그래서 사랑고파병에 걸리면 자기만 애태우며 껄떡거리지,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 잘 봐주세요’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말 잘 봐주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식대로 봅니다. 그건 그들의 자유예요. 내 권리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건 그 사람들한테 맡겨야 합니다. 왜 남의 권리를 뺏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사는 데 별문제가 없는 건가요?”

“토끼는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사나요? 그냥 삽니다. 나무는 인정받고 자라나요? 그냥 자랍니다. 사랑받고 인정받지 않아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생살이가 힘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기 어렵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것과 안 피우는 것 중 어느 쪽이 쉬울까요? 안 피우는 게 훨씬 쉽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담배를 피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사러 가야 하고, 입에 물어야 하고, 불을 붙여야 하고,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어야 하고, 재를 떨어야 합니다.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다면 쉬운 길을 가면 되는데, 왜 어려운 길을 갈까요? 바로 중독성, 즉 습관 때문입니다. 습관이 들면 쉬운 일이 어려운 일이 되고, 어려운 일이 쉬운 일이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은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안 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중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사랑고파병’에 걸려서 껄떡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사랑을 줄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받기만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정받고 사랑받으면 얻을 수 있는 게 더 있잖아요. 그걸 포기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내가 ‘주세요’ 한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주고, 주기 싫을 때는 주지 않습니다. 내가 요구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주세요’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반대로 ‘주세요’ 했는데 상대가 주지 않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니 ‘주세요’ 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주세요’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까요? 천만에요. ‘주세요’ 해도 안 주는 사람이 있고, ‘안 받겠습니다’ 해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고 안 주고는 상대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라지 않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실제로 오고 가는 것은 똑같은데, 바라면 사랑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바라지 않으면 사랑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학에서 경우의 수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납니까? 주사위를 던지면 숫자 6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입니다. 이것을 수학적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여섯 번 던지면 6이 반드시 한 번만 나올까요? 아닙니다. 여섯 번 다 6이 나올 수도 있고,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실험적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사위를 백 번, 천 번, 만 번 계속 던지면 실험적 확률은 점점 수학적 확률에 가까워집니다. 리밋(limit)으로 보면 n이 무한대로 갈 때 6분의 1에 수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도 이런 경우의 수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마음속으로 ‘도와주세요’ 하고 바라거나, ‘안 도와주셔도 돼요’라고 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상대방이 ‘도와준다’와 ‘안 도와준다’라는 두 가지 선택을 합니다. 이를 합치면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생깁니다. 바라는데 안 주는 경우, 바라는데 주는 경우, 안 바라는데 안 주는 경우, 안 바라는데 주는 경우,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이 경우들을 생각해 봅시다. 바라는데 안 주면 기분이 나쁩니다. 바라는데 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안 바라는데 주면 훨씬 더 기분이 좋습니다. 안 바라는데 안 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결국 ‘안 바랄 때’는 기분이 더 좋거나, 최소한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랄 때’는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합니다. 어느 쪽이 이익일까요?”

“안 바라는 것이 이익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학적으로도 정확합니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이 훨씬 쉬운데, 담배에 중독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 피우는 것이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냥 사는 것이 훨씬 쉬운데, 사람들은 그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제 설명을 듣고 ‘그렇구나’ 하고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습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바라는 마음을 가져봐야 결국 내 손해니까, 바라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지’ 하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왜 안 주나?’ 하는 불만이 올라오게 됩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므로, 꾸준히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누구나 괴로움 없이 살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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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1-14 08:25:24

지나가다

주고 바라지 않았는데 상대가 주니 귀챦습니다. 주지도 말아야 겠습니다. ㅠ

2026-01-14 07:27:36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1-14 07: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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