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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 대화’를 주제로 국제화해학회 컨퍼런스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을 모시고 국제화해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하여 서울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행사가 열리는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면서 무더위가 한풀 꺾였습니다. 행사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각자 자료집을 읽으며 토론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국제화해학회를 주관한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소장이 인사말과 함께 오전 10시부터 컨퍼런스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화해’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 학회입니다. 이번 학회가 앞으로 한국에서 ‘화해’를 생각할 때 하나의 준거점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패널로 누구를 모실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제가 평소에 존경하는 법륜스님과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의 활동이었습니다. 오늘 대화 주제에 맞는 훌륭한 패널들이 참석해 주셨는데요. 멀리 스리랑카에서 오신 종교인 분들께 특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어서 박종화 목사님이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리랑카가 갖고 있는 갈등을 어떻게 화해시켰는지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남남 갈등과 남북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분께 이야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대화의 주제는 평화를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화해의 역군이 되자는 것입니다.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히 참가자 소개가 있은 후 먼저 아누라 목사님이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 아누라 목사님은 스리랑카의 종교 간 화합을 위한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30년 여정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스리랑카 내전의 상처를 딛고, 종교의 이름으로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낸 감동적인 실천 사례였습니다.
“스리랑카 내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진보적 종교 지도자들이 손을 맞잡고 '다르마샥티(Dharmashakthi)'라는 종교 간 협의체를 창립했습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극심한 분열 속에서도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정치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에 사로잡힌 정치 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고, 극단주의를 부추겼습니다. 그 결과 사회는 불신과 폭력의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스리랑카는 30년간의 내전을 겪으며 종교·민족 간의 극단적 불신에 시달려 왔습니다. 다르마샥티는 이런 상처의 현장에 종교적 치유와 사회적 연대를 통해 변화를 일으켜 왔습니다. 종교 간 대화를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다르마샥티는 10가지 기본 규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중 핵심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렇다’라는 일반화를 피하고, ‘나는 믿습니다’, ‘나는 이렇게 느낍니다’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가 1인칭 화법 원칙입니다. 이러한 대화 방식은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며, 각자의 개인적 신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 외에도 말 끊지 않기, 원치 않는 조언 금지, 종교와 상관없는 평등한 발언권 보장 등 다양한 원칙을 우리는 실천했습니다.
다르마샥티는 단순한 대화 수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정부 정책 변경까지 이끌어낸 사례도 있습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하도록 명령했을 때, 무슬림 공동체는 매장을 종교적 의무로 여겼기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저희는 이 매장 권리를 용기 있게 지지했고, 결국 종교 관행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경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르마샥티는 종교적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사회적 대응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다르마샥티는 고등학생 대상 프로그램 ‘에카무투 랑카(Ekamuthu Lanka)’를 통해 종교 간 이해와 협력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신념의 차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인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의 평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다르마샥티는 종교 지도자의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양측 갈등 당사자와 직접 만나 중재하는 '목회 외교'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종교적 정체성은 정치인들에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그 차이가 공존하며 꽃필 수 있는 신성한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앞으로 다르마샥티는 청년 종교 리더 양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평화 메시지 확산, 극단주의와 정치적 분열에 대한 지속적 대응을 해나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 간 협력은 이상이 아니라, 실천과 용기, 인내를 통해 이루어낼 수 있는 현실적인 길입니다.”
아누라 목사님의 발표를 통해 다르마샥티가 진정성 있는 대화와 상호 존중을 위해 얼마나 섬세한 기준과 태도를 세워 왔으며 다양한 실천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스님이 ‘남북 화해와 한반도 및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들의 노력’이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남북 간 갈등은 여전히 깊고 첨예합니다. 남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지,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남한 내부에서도 갈등과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 보고자 한국의 여러 종교 지도자가 모여 지난 27년간 함께 활동해 왔습니다. 오늘 저는 한국 종교인들이 화해와 평화를 위해 걸어온 발걸음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다 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심해지면 분쟁이 되고, 전쟁으로까지 번지기도 합니다. 이런 갈등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다시 갈등으로 커집니다. 그래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한다면 갈등과 분쟁을 풀어낼 실마리가 생길 것입니다.
갈등은 사람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렇다면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상처를 준 사람은 진솔하게 사과할 수 있어야 하고, 상처를 입은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들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며 책임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를 더욱 과민하게 받아들여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만 돌리며 사과를 요구합니다. 이런 태도가 반복되면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종교인들은 종교가 달라도 인간관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사랑과 자비, 용서를 바탕으로 문제를 바라봅니다. 종교의 다름은 의식과 문화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지 본질적인 가르침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모여 본래 가르침을 함께 실천한다면 문제를 풀어갈 힘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세계는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만 돌아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은 전쟁이라기보다는 거의 학살에 가까운 비인간적·비인도적 행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이스라엘의 행동을 옹호하는 일부 목소리는 자유주의 세계가 지켜온 도덕성을 오히려 스스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란 문제만 보더라도 핵 협상 대화 중에 상대에 대한 사전 통보 없이 공습이나 폭격을 가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선제 폭격은 국제법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들은 늘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폭격과 테러까지도 정당하다고 믿는 이 관점이 피해를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누구나 정의로운 전쟁을 주장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정의로운 전쟁, 착한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인명을 앗아가고 재산을 파괴하며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상처만 남깁니다. 전쟁의 직접적 피해뿐 아니라 전쟁으로 고향과 나라를 떠난 난민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 전쟁 피해 지역을 둘러보면 어떤 이유로든 전쟁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 역시 지금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언제든 대량 살상을 불러올 수 있는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75년 전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을 겪었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전쟁의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기에, 내가 어떤 종교를 믿느냐보다 이 전쟁을 어떻게 막고 평화를 지켜낼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종교인들이 힘을 모아 이런 일을 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종교가 달라도 서로 힘을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극심한 기아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일입니다.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그 고통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전쟁이나 적대관계 같은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데 종교인으로서 그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함께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남북 사이에 놓여있던 두터운 장벽을 허무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북이 적대관계에 있다 보니 누군가 북한을 돕거나 이해하자고 하면 한국 사회 안에서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종교인들은 용기를 내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렸지만, 남한에서는 감자가 과잉 생산되어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그 감자를 사들여 남한 농민의 손해를 줄이고, 북한의 굶주린 주민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북한만 돕는 것이 아니라 남한 주민의 어려움도 함께 돌본 이 운동은 남북 간 두터운 장벽을 뚫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힘을 모아 북한의 대량 아사를 막기 위해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운동은 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던 북한에 대한 적대 의식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지원만큼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많은 종교인이 북한을 직접 방문했고, 남북 정상회담도 열리면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졌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남북 관계가 막힐 때마다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왔고, 물꼬가 트이면 이후의 교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2008년 다시 남북 관계가 경색되자 우리는 또다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며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정부가 반대했지만, 끝까지 설득해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식량을 전달했습니다. 식량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막힌 물꼬를 다시 틔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계기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문이 다시 열릴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를 둘러싼 남한 내부의 찬반 갈등이 매우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이 갈등을 해소하고자 우리 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사회 원로들과 함께 ‘국민 통합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은 북한과의 교류를 찬성하는 진보 진영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이 서로 합의하여, 교류와 협력을 지나치게 앞서가지도, 그렇다고 중단하지도 않으며 꾸준히 이어가자는 취지였습니다. 비록 두 걸음 나아갈 것을 한 걸음씩 내딛는 속도일지라도 교류와 협력을 멈추지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이 선언문은 국회 본회의에서 채택되어 단순한 종교인들의 연대 활동을 넘어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2016년에는 종교인이 연합하여 국민 통합 선언을 했습니다. 그 뿌리는 100여 년 전 일본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9년 3.1 독립선언 당시 3개 종교 단체의 종교인 33명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이 정신을 계승하여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하는 데 기초가 되도록 국민 통합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2017년에는 남북 관계가 최고로 악화되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전쟁 위기까지 고조되었습니다. 이때도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쟁 반대를 외치며 시국 선언과 만인 평화 선언을 하고, 광화문에서 평화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 종교인들은 남북 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작은 역할이나마 계속해 왔습니다.
2024년에도 남북 관계는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들은 6월 13일에 장수 죽림정사에 다시 모여 1만 인 평화 선언을 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염원이 직접적으로 남북 관계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못했더라도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낮추는 출발점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종교인 모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북한 주민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인도적 지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남북 관계 문제로 인한 남한 내 대립과 갈등을 완화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 국민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북 관계 개선 활동과 더불어, 우리 종교인들은 한국 안에서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현안에도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은 종교와 민족이 다양해 갈등이 잦습니다. 한국 내 종교인 모임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와 불교가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무슬림이 많지 않지만, 아시아에서 어려움을 겪는 지역에는 무슬림 지역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와 국가를 넘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차별 없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은 기독교인이 주류를 이루지만, 소수 무슬림과 원주민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무슬림 지역의 MILF(모로민족해방전선)와 원주민 지역의 NPA(신인민군) 같은 반군 조직과 정부군 간의 분쟁으로 많은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주민과 무슬림 분쟁 지역에 학교를 지어 아이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습니다. 지난 20년간 70여 개의 학교를 세워 민다나오의 평화를 가져오는 데 작은 기여를 했습니다. 또 인도의 달리트 계층은 불가촉천민이라는 신분 차별로 인해 교육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계급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세워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역 의료 봉사와 마을 개발도 함께 이어왔습니다.
아시아 지역에는 홍수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잦습니다.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으로 파괴된 시리아 북부 지역에 학교를 복원해 4천여 명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고, 파키스탄 홍수 피해 지역에는 이재민들을 위해 수백 채의 집을 지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지역에도 지원 활동을 했고, 캄보디아에는 여성 교육을 위해 여학생 기숙사를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졌습니다. 발전한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통받는 이웃을 돕는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남북 관계로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오늘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의 발표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었습니다. 특히 스리랑카는 민족 갈등뿐 아니라 종교 간 갈등까지 함께 겪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종교 지도자들이 용기와 지혜로 평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고 실천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아직 남북 간 평화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남한 내 국민적 갈등 해소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화해라는 것은 선언하거나 연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해를 이루려면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져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종교인들은 평화나 화해를 연구하거나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는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 상처와 고통을 덜어내는 데 작은 기여라도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참석자 모두가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실천으로 평화를 이루어 온 종교인 모임의 활동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나누는 행동이라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이어서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님은 종교인 모임이 그동안 해온 일을 회고하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저희의 모임 이름이 ‘민족의 통합을 위한’이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입니다. 27년간 활동을 해왔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아사지 스님은 다라마샥티의 활동에 관해 구체적인 사례를 더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996년, 스리랑카에서는 종교 간 화합을 위한 통합된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에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함께 있는 모습만 봐도 의심부터 하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었죠. 저는 이와 같은 사회적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자 다르마샥티(Dharma Shakthi)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불교 사원을 무슬림들의 기도처로 제공하며 ‘기적’과도 같은 종교 간 경계 허물기를 실현했습니다. 이러한 전례 없는 활동은 이후 5년간 교회, 사원, 모스크 등에서 함께 축제를 개최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네팔에 이주한 타밀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한 화해 선언과 리더들의 포용적 연설 기회를 마련하며, 갈등의 불씨를 지혜롭게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아사지 스님도 종교 간 연대가 컨퍼런스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와 용기, 그리고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화가 점점 깊어갈 무렵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토론 시간이 짧게 주어진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부족한 대화는 오후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계속 나누기로 하고 컨퍼런스를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토론 시간이 부족하여 다들 아쉬웠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계속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오늘 아누라 목사님이 발표한 내용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발언을 할 때 ‘국민이 원한다.’, ‘많은 사람이 원한다.’ 이렇게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르마샥티 모임에서는 1인칭으로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국민이 그렇게 원합니다’ 이렇게 일반화를 해버리거든요. 이것이 화해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칙 같았습니다.”
서로의 소감을 공유하며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2층 쉼터로 이동하여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토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통역을 거쳐야 하다 보니 속도는 더디었지만,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다 함께 6층 국제회의장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사회원로분들과 종교계, 시민사회 활동가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 대화’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시작했습니다. 국제화해학회와는 별도로 평화재단에서 주관하여 좀 더 깊이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홍진 신부님의 사회로 참가자 소개를 한 후 큰 박수와 함께 컨퍼런스를 시작했습니다.
오후 컨퍼런스는 대한성공회 박경조 주교님이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범한 과오를 고백하고 참회한 적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유대인에 대한 박해,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 일,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과학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등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참회했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도 우리가 걸어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자리를 먼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후에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아누라 목사님이 다르마샥티의 활동을 자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스리랑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종교인들의 헌신적인 활동에 모두가 경의를 표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도종환 전 문화체육부 장관님이 무대로 올라와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
“저마다 내 생각만 옳다고 믿고,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신의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평화는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모임을 통해서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여러분들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로 올라와 도종환 전 장관님의 축사에 화답했습니다.
“종교는 믿음을 가장 중요시하고, 평화를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현실의 종교는 사랑보다는 미움을 조장하고, 평화보다는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길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도종환 전 장관님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원인은 ‘믿음에 대한 확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것이 확신이다.’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확신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확신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종교인 모임이 해온 일을 스님이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스님의 발표가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갖진 후 본격적으로 토론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참석자들은 다르마샥티의 평화 실천 방식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하면서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는 그 경험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다르마샥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의사결정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종족 갈등 이후 스리랑카 정부는 어떤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는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누라 목사님은 “무장 충돌은 끝났지만, 정치적 갈등은 여전하다”라며 헌법 개정, 소수 민족자치 확대, 언어 정책 변화 등 정부의 개혁 시도를 설명했습니다.
김성곤 전 국회의원님은 법륜스님에게 한국 사회 내 갈등을 보며, 기독교와 공산주의 간 대화도 필요한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코리아에서 가장 심각한 종교적 갈등은 사실상 북한과 남한의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큰 탄압을 받았고, 남한에서는 반대로 기독교인들에 의해 공산주의자들이 탄압받았습니다. 해방 이후 80여 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갈등 밑바탕에는 공산주의자와 보수 기독교 간의 보이지 않는 적대감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종교 간 대화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사회적 갈등의 책임은 진보와 보수, 그리고 남한과 북한이라는 두 축의 대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법륜 스님과 정토회가 용기 있게 기독교와 공산주의 간의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진보 세력의 관점에서는 남북 간의 대화를 ‘남북 대화’라고 정의하지만, 보수 세력은 ‘진보 세력 간의 대화’로 여깁니다. 그래서 진보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대화는 진정한 남북 대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남북 간의 대화가 진정한 대화가 되려면 한국의 보수 세력과 북한이 직접 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남북 대화를 추진할 때는 언제나 보수 세력의 일정한 지지와 합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대화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랬듯,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 대화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따라서 진보 정부 시기에는 두 걸음씩 성급히 나아가기보다는 보수 세력과 일정 부분 합의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보수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한국 보수 세력의 대북 적대감도 상당 부분 완화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보수 세력의 의지처는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바뀌어야 한국 보수 세력의 입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한국 보수와 북한 간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 정상화’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북한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북한이 대화할 수 있도록 한국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국 보수와 북한의 대화는 질문자가 말한 대로 ‘한국 기독교와 북한의 대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가 북한 정부와 직접 대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북한 정부가 특정 종교 세력과 대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삼열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님은 스리랑카에서 타밀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한다고 하지만 실제 시험이나 행정에서는 차별이 있지 않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다르샤카 힌두 사제가 대답했습니다.
“헌법상 타밀어도 공식 언어이나, 과거 정치인들이 싱할리어만을 강조하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재는 공무원에게 두 언어 사용을 의무화하고, 교육·행정·의료 등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차별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시험도 각 언어로 치를 수 있어 언어 차별 문제의 90%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주선원 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님은 스리랑카 내의 종교 갈등에 외세의 영향은 없는지, 자주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르도스 무슬림 리더가 대답했습니다.
“외세의 개입은 언제든 존재하지만, 다르마샥티는 모든 종족과 종교를 평등하게 대하며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왔습니다. 극단주의와 외세 간섭에 단호하게 맞서며,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협력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주선원 상임의장님은 법륜스님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자주와 개방 간의 균형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에 대해 늘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왔습니다. 제게 이 단어들은 본질을 감추는 위장된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민족 자주정신을 가진 사람들이고, 보수주의자들은 외세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이 점령군으로 들어와 강력한 개신교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 또한 개신교 정책을 강하게 지원해 개신교가 급격히 세력을 키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개신교인들이 미국의 정신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네오콘 같은 세력들은 평화와 화해를 가로막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인들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갖는 날이 오거나, 미국이 한국에 대한 외압과 간섭을 멈추는 날이 와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제발 보수와 진보라는 말로 본질을 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여, 구교인 가톨릭은 그 선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고 가는데, 아직 개신교는 강하게 미국 정신에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자의 견해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자주적’이라는 개념이 때로는 폐쇄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개방적’인 태도가 지나치면 외세 의존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북한이 겪는 어려움의 근본에는 폐쇄적인 자주성에 있습니다. 반면 남한은 개방성을 바탕으로 발전했지만, 외세 의존이라는 부작용 역시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너무 단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언제나 양면을 함께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해방 직후의 국제정세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를 평가해서는 안 되고, 변화한 세계정세를 감안해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입니다. 이 거대한 파도에 한국과 북한, 일본까지 모두 휩쓸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북 간의 갈등이 중심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겐 협력이 더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의 변화된 정세에 대응하려면 상호 협력이 더 이익이 됩니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그런 경향이 있었던 점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지금도 똑같은 시각을 고집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를 중심에 두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고집이라면 진정한 자주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변화하는 상황을 점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참석자들은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어 했지만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순차 통역을 해야 하다 보니 짧은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아쉽지만 대화를 마무리하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전 교령님이 마무리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3.1 운동 당시 서로 다른 종교가 협력했던 전통을 강조하며 미래의 위기도 잘 극복해 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전쟁터에서 평화를 실현해 가는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을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지금은 기후 위기, 생명 위기, 평화 위기의 시대입니다. 이 위기를 넘기려면 종교인 모두가 다 함께 나서야 합니다.”
스리랑카의 30년 평화 여정은 분쟁의 역사 속에서도 종교가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이어주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컨퍼런스를 통해 한국의 종교인들도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대화의 장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행사장을 나가는 참석자들 한 분 한 분에게 악수를 건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스님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 분들과 함께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일찍 쉬시도록 안내를 해드린 후 스님은 평화재단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원불교에서 온 원광 잡지의 기자님이 스님과 잠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기자님은 27년간 이어온 종교인 모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지, 스님이 오랫동안 평화 운동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원불교의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인 모임을 하면서 혹시 서로 갈등은 없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종교인 모임에서는 매달 조찬 모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7년간 모임을 해오는 동안 갈등도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만약 이 모임이 종교 간 대화를 목적으로 했다면 ‘불교가 이렇다.’, ‘기독교는 저렇다.’ 하며 갈등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종교는 개인의 믿음에 맡기고, 북한을 어떻게 도울지,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이런 사안은 의견을 조율하면 될 문제이지, 갈등이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지난 선거 때 성명을 발표하자는 얘기가 나왔는데요. 우리 모임은 전원이 찬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되어 있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내부 집단 간 갈등이 있는 대표로 모였기 때문에 대화를 시작할 때도 무척 조심스러웠겠죠. 만약 우리가 노동자나 기업체를 대변해서 만났다면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각 종교를 대변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각자 종교인으로 모였을 뿐이지, 불교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환경 문제, 인도적 지원, 평화 같은 공동 과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국내 갈등 상황에서 통합을 모색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는 조율된 상태입니다. 다만 남북 간 갈등이 심해지거나 정부 정책과 달리 가야 할 때는 의견 차이가 조금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 모임에는 종교 간 갈등은 따로 없습니다. 동의하지 않으면 스스로 나가면 됩니다. (웃음)
북한 동포 돕기를 몇 년간 함께해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기 때문에 특별한 의견 충돌이 없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대표나 직책도 따로 없어요. 시작할 때부터 심부름꾼 정도로만 생각하고, 독립된 단체로 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평화를 위한 행사나 활동이 있으면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우리가 대신 심부름 해주는 역할을 하자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모임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님은 저녁 8시가 넘어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를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과 함께 경동교회, 천도교 중앙대교당, 조계종 총무원,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도라산 통일전망대를 차례대로 방문하고 둘러본 후 각각의 장소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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