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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스님은 봄햇살 아래에서 농사일을 했습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텃밭에는 한 달 전에 스님이 심어 놓은 상추와 고수가 소복이 자라 있었습니다. 매일 백일법문을 하느라 알뜰히 돌보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준 채소가 고마웠습니다.
스님은 서울공동체 대중과 평화재단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먹을 수 있게 상추와 고수를 수확했습니다. 먼저 상추를 한 장씩 정성을 기울여 뜯었습니다. 상추 잎마다 송홧가루가 묻어 있었습니다.
“어제 미리 물을 주고 나서 상추를 뜯어야 했는데, 미쳐 생각을 못했네요.”
햇살을 듬뿍 받은 상추 잎은 연둣빛으로 반짝이며 생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바라만 봐도 신선한 향이 전해졌습니다.
상추를 뜯다 보니 햇살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는 것 같네요.”
상추를 종류별로 포장하기 위해 여러 개의 대야에 상추를 나눠 담았습니다. 잎을 뜯을 만큼 다 뜯고 나니 앙상한 뼈대만 남았습니다.
지난겨울에 심어둔 고수가 무럭무럭 자라 벌써 꽃을 피우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가위를 들고 고수를 싹둑싹둑 잘라 대야에 담았습니다.
스님은 상추와 고수를 다 수확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다시 허리를 숙이자 곳곳에 잡초가 많이 자라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호미를 가져와 잡초를 뽑고, 흙을 가볍게 뒤집어 주었습니다. 풀을 매려고 앉아 보니 여기도 잡초, 저기도 잡초, 여기저기서 잡초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잡초를 뽑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상추 모종을 심은 텃밭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여기는 모종이 냉해를 입어서 상추가 거의 자라지 않고 있었습니다. 겉잎만 따준 후 잡초를 뽑고 흙을 뒤집어 주었습니다.
올봄에 씨앗을 심고 비닐을 덮어 놓은 곳으로 가서 비닐을 활짝 걷어내고, 상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상추는 안 자라고 잡초만 자라고 있네요. 너무 오래된 씨앗을 잘못 심었나 봐요.”
상추 씨앗은 2년이 지나면 발아가 거의 안 된다고 합니다. 옆에서 묘덕 법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솜씨가 없는 게 아니고 씨앗이 문제였네요.”
스님은 호미로 땅을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다른 걸 심읍시다.”
국화도 제법 키가 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전지가위를 가져왔습니다.
“국화는 밑동에서 가지가 벌어져야 나중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미리 가지치기를 좀 해둡시다.”
스님은 국화의 밑동에서 가지가 잘 벌어질 수 있도록 전지가위로 윗부분을 싹둑싹둑 잘라냈습니다.
채소는 햇볕이 쨍하면 수확하자마자 시들기 때문에 곧바로 포장해서 박스에 담았습니다. 종류별로 모아서 담으니 여러 박스가 되었습니다. 묘덕 법사님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양이 제법 많네요. 서울에 가져가면 대중이 한 번씩은 맛볼 수 있겠어요.”
농사일을 마치고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리 운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오늘은 상체 운동만 실컷 했어요.”
텃밭에서 채소를 수확한 후 풀까지 매고 나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수확한 채소를 담은 박스를 차에 가득 싣고 오후 1시 30분에 두북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4시간 30분을 달려 저녁 6시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고 원고 교정을 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께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3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어릴 때부터 결정 내리는 걸 어려워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기보다 되는 대로 살다가 힘들면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의 경험이 적어지고, 이제는 작은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솔직히 드러내기보다는 저를 포장하고 꾸미며 살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친한 친구들에게 손절당하는 상황까지 생기면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요?”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결정을 내리고 싶으면 그냥 내리면 되고, 결정을 못 내리겠으면 결정을 안 내리고 그냥 놔두면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자꾸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망설인다는 건 양쪽 비중이 비슷하다는 얘기예요. 이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은 이혼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이익이 비슷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혼 안 하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90%이고,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10%라면 망설이지 않아요. 기분 나쁠 때만 잠시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돈도 못 벌고 폭력도 행사하고 술주정도 하고 바람도 피우고 얼굴도 못생겼다면, 고민이 될까요? 그냥 자기가 결정해 버립니다. 스님한테 물으러 왔다는 것은 두 개가 비슷하다는 얘기예요.
여러분은 스님한테 질문할 때 ‘이쪽이 더 낫다.’ 하고 결론을 내려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얘기를 들어 보면 ‘두 개가 비슷하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도 좋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도 좋다는 말은 어떻게 해도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기도 해요. 이혼을 하면 이혼한 후에 후회하고, 이혼을 안 하면 그때 이혼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겁니다. 둘 다 반반이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이것을 뒤집으면 어떻게 되나요?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이제까지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앞으로 못 살 이유는 없어요. 계속 같이 살자 해도 되고, 이제 혼자서 살아보자 하는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개가 비슷한데 꼭 결론을 내야 한다면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면 됩니다. 꼭 결론을 안 내도 된다면 그냥 놔두면 됩니다. 내버려 두면 내가 결론을 안 내려도 상황이 바뀌어서 저절로 결론이 납니다. 상대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가버리든지, 마음을 바꿔서 다시 매달리든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됩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둘 있는데 누구랑 결혼할지 모를 때도 당장 결정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기도만 하고 있다 보면, 그 와중에 한 명은 다른 여자가 생겨서 가 버립니다. 그러면 한 명만 남으니까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둘 다 가버려도 역시 해결돼요. 내가 결론을 내든, 그냥 놔두든, 결국 저절로 결정이 됩니다.
이걸 가지고 조마조마해하는 것은 다 욕심이에요. 노력은 안 하고 결과만 좋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49대 51 사이에서 1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고 잔머리 굴릴 필요가 없는 거예요. 망설여진다면 ‘아,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아무거나 선택하고, 급하지 않다면 그냥 놔두세요. 적어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 생활에서 누군가는 경제를 중시하고, 누군가는 신뢰나 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주변 조언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경제에 도움 안 되는 남자와 왜 함께 사느냐.’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는 데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들은 사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길 가는 사람이 툭 던진 말이거나, 점쟁이의 한 마디일 뿐이지요. 애초에 묻지 않았다면 고민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만약 물었다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결론을 내리지도 않은 채 ‘나는 결론을 못 내리겠다.’고 하는 건, 정작 본인이 가지 않으면서 ‘가고 싶은데 못 간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을 내리고 싶다면 팍 내려 버리면 되고,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면 그냥 놔두면 됩니다.
자신을 조금만 살펴보세요. 이것은 의도와 내면의 심리 사이의 모순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지 말고, 지금 자기가 어떤 마음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가 정말 결론을 내고 싶은지, 아니면 아직은 그냥 놔두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결론을 내고 싶은데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몰라서 망설이는 것이라면 비율이 비슷한 상태이니 제 얘기를 참고해서 아무거나 팍 선택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결론을 내고 싶지 않다면 그냥 놔두세요. 결국 이런 망설임은 다 심리 불안에서 오는 겁니다. 더 심해지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심리 불안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 불안이라는 원인은 보지 않고, 자꾸 바깥을 보면서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71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반야심경 2강을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5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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