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21 백일법문 64일째, 경전 강의·불교사회대학 13강, 막사이사이 재단 인터뷰
“개인의 착함이 집단의 선함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64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1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으로 56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스님은 12회에 걸친 수업을 통해 금강경 제1분부터 32분까지 한 문장씩 읽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있다면 무엇이든 질문하고 의문점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여섯 명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하나씩 답변을 해나갔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이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인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상을 지어야 할 필요도 있지 않느냐며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안전을 지키려면 상을 짓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요?

“금강경의 핵심 가르침은 상을 짓지 말라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일상에서는 상을 짓는 것이 오히려 안전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경계심을 갖고 조심할 수가 있고, ‘그 식물은 독이 있다.’라고 알면 안 먹고 피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상을 짓는 것에 해당하나요?”

“상(相)을 짓는다는 것은 대상을 단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독이다.’라고 단정하게 되면 독의 성분만 있다고 여겨서 더 이상 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금강경의 가르침은, ‘이것은 독이다.’라고 말하지만 독이라 할 정해진 성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적게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르면 약이 되지만 먹으면 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에는 독성이 있고, 약에는 약성이 있으며, 착한 사람은 착할 뿐이고, 나쁜 사람은 나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我)’라고 할 만한 고정된 본질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달라집니다. 어떤 인연을 만나면 독성이 드러나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나면 약성이 나타납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을 따라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는 선비가 착한 사람이고 주먹잡이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길을 가다가 어떤 여성이 강도를 만나거나 성추행을 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선비는 겁을 내서 도망을 가고, 주먹잡이는 강도를 제압해 여성을 구한다면, 그 순간 주먹잡이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인연에서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 불리거나 좋은 사람이라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물건을 몰래 잘 훔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군대에 가서 적의 비밀을 훔쳐 온다면 영웅이 됩니다. 모조를 잘하는 사람이 평소에는 도장이나 공문서를 위조해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전쟁 중에 적을 속이는 임무를 맡으면 영웅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사익을 얻기 위해 해킹을 하면 범죄가 되지만, 해킹을 잘하는 청년들을 선발해 국정원이나 CIA 같은 곳에서 적국의 정보를 캐는 일을 맡긴다면 그들은 유능한 정보요원이 됩니다. 결혼한 남자가 친구의 죽음 이후 남겨진 친구 아내가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며 호프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서 술도 팔아주고 도와줍니다. 이를 아내가 보면 남편을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친구 아내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렇듯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인연 속에서 ‘좋다.’, ‘나쁘다.’ 하고 평가될 뿐입니다.

우리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인연에서 그 사람의 행위가 나쁘게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할 뿐입니다. 그 사람 안에 ‘나쁜 성질’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들어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 주먹질을 일삼던 학생이 특공대에 선발된다면 군대에서는 훌륭한 군인으로 평가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고정된 본질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모두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좋다’, ‘나쁘다’, ‘착하다’, ‘악하다’ 하는 것은 특정 인연 속에서 규정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인연에 의해 그렇게 규정된다고 해서 그 성질이 본래부터 고정된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단정해 버린다면, 나쁜 사람은 결코 개과천선할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을 아흔아홉 명을 죽였던 앙굴리말라도 부처님을 만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인연을 새롭게 만나면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저지른 과거의 인연만을 기억하고 ‘죽여야 한다.’, ‘복수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 안에 고정된 나쁜 성질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실제로는 인연이 바뀌면 사람도 바뀝니다. 그런데도 복수심이 생기는 이유는 그 사람 안에 ‘나쁜 본질이 있다.’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산에서 ‘저것은 독초다!’라고 하면 당연히 안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약을 만들 때 쓰이는 할미꽃도 잘 말려서 묽게 차를 우려내거나 술을 담그면 건강에 좋은 약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특효약이라 불리는 것들의 대부분이 독성을 지니고 있지만, 미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르핀 역시 마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진통 효과가 뛰어나서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에는 거의 유일한 특효약입니다. 그것처럼 약성과 독성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상황과 용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이유에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약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들이 먹으면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답변을 하다 보니 벌써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금강경 제1분부터 32분까지 전체를 함께 독송했습니다.

금강경 독송을 마친 후 스님이 다시 한번 금강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금강경의 내용이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까? 더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법문을 들을 때 정말 집중해서 듣고 있다면 ‘내가 지금 스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있다.’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만약 ‘나는 지금 집중하고 있다.’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집중에서 벗어났다는 얘기예요. 집중하고 있다는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집중하고 있을 때는 집중한다는 생각조차 없어요. 금강경에 나오는 여러 표현은 모두 이러한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에요. 다만 말이 좀 옛날 말투라서 낯설게 들릴 뿐입니다. 그러면 오늘로써 금강경 강의를 마치고, 다음 시간부터는 반야심경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필리핀 막사이사이 재단에서 스님을 찾아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올해가 한국과 필리핀이 수교 75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하여 주한 필리핀 대사관과 막사이사이 재단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정신의 위대함을 기리다’라는 주제로 역대 막사이사이상 한국인 수상 모임을 개최하였습니다. 내일 행사를 앞두고 스님과 인터뷰를 하러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막사이사이 재단 관계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막사이사이 재단에서는 여섯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특히 스님이 작년에 2023년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교류하고 연대했던 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과 교류하거나 함께 진행 중인 활동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김임순 님이 운영하는 거제도 애광원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년 전, 태풍으로 인해 애광원 숙소가 큰 피해를 입은 당시 피해 복구를 지원한 일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마다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과 나들이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과 나들이를 가려면 자원봉사자가 많이 필요한데, 이 일에 정토회의 많은 회원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 간의 교류일 뿐 아니라, 애광원이 기독교 단체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교 간의 협력의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작년에는 인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출신 수상자 세 분을 직접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인도에서 빈곤층을 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라비 칸난(Ravi Kannan R) 씨와는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으나 아직 공동 사업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홍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약간의 지원을 했습니다. 동티모르에서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유제니오 레모스(Eugenio Lemos) 씨와는 주민들의 식수 공급 문제 해결을 위한 시범사업을 협력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 효과가 입증되면 협력 범위를 넓힐 계획입니다. 이 외에 아직 다른 수상자들과의 특별한 교류는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종교 지도자이신데, 어떤 가치를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수상자들과 교류하고 협력하시나요?”

“정토회는 환경 운동도 하고 있고, 구호 활동도 하고 있고, 난민을 돕는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이 정토회가 하는 일과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일은 아닙니다. 모두 저희가 추구하는 사업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정토회가 해외에서 구호 사업을 할 때는 모든 것을 직접 나서서 하기보다 그 지역에서 이미 해당 분야의 일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단체와 협력하여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화이트헬멧(White Helmets)과 협력하고 있고, 파키스탄에서는 FRDP라는 단체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정토회가 하려는 구호 활동이나 환경 활동과 유사한 일을 이미 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면 그들과 함께 공동 사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들이 각 나라에서 하고 있는 활동 역시 정토회와 함께 협력해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23년도 수상자들의 활동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앞으로도 협력을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또한 정토회가 하고자 하는 일과 같은 성격이라면, 굳이 따로 하기보다 협력해서 함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갈등과 전쟁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며 아시아인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떤 관점을 가져야 지치지 않고 꾸준히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평화보다는 갈등이 커지는 시대,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지금 세계는 갈수록 갈등과 전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도 힘들다 보니, 평화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아시아인들에게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거나 희망이 분명하게 보이는 일만 골라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실패의 가능성이 크고 희망이 없어 보이더라도 그 일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면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고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를 우리가 온전히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이 기후 위기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평화보다는 갈등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약하지만 평화를 위해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현재 한반도의 남북 관계 역시 이전보다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평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저는 최소한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궁극적으로는 통일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처럼 점진적인 목표를 세우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최상의 목표를 한 번에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현재 남북 관계에 대한 전망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평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해야 합니다.”

막사이사이 재단 관계자들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님이 하고 있는 일에 감동을 받아서 90분 다큐를 제작하고 있는데 곧 편집이 완료되어 세상에 나올 예정이라고 소개하며 인터뷰에 응해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영어로 번역된 책과 부채를 선물했습니다.


“오신 김에 정토사회문화회관을 한번 둘러보고 가세요.”

막사이사이 재단 관계자들은 정토회 국제연대팀의 안내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정토회 활동가들 몇 사람을 인터뷰한 후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3강 강의를 했습니다. 현장에는 20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수업에는 19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성경 속에 담긴 수행적 관점에 대해 배웠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의 강의 주제를 소개했습니다.

사회 제도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오늘은 불교의 사회사상 가운데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자 합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개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개인의 삶도 달라집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이 이미 익숙하게 이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둘째, 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인 ‘연기적 세계관’에 대한 이해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연기에 대해서는 물질적인 차원에서도 설명하고, 생명 차원에서도 설명하고,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설명하고, 여러 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전히 ‘모든 것은 단독자가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하는 정도로만 겨우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연기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연기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면 물이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는 물질이 된다는 과학적 사례들을 이야기한 후 사회도 이와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같은 법률적 시스템을 갖추고, 그 안에서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착하다고 해서, 그 국가가 곧 선한 성질을 지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착한 사람들만 모여서 조직을 만들었는데도, 그 조직이 나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착한 사람이 모였는데 왜 나쁜 집단이 될까요?

일본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비교해 보면, 한국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성실하거나 더 착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일본 제국주의라는 집단은 전혀 다른 역할을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그 사이에 사람들의 본질이 갑자기 바뀌었을까요? 사람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다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지금처럼 민주적인 독일이 될 수도 있고, 당시처럼 파시즘 체제의 독일이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어떤 시스템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할 때는 흔히 이런 관점에서 접근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내용은, 사회라는 집단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집단의 구성원이 개인과 전혀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한국 사람 개개인이 다 착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사회가 바르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 100명을 모아놓고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착하게 수행하더라도, 그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거나, 세상을 파괴하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순수하게 해내고 있을 뿐인데도, 그 ‘전체’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라고 하는 구조, 즉 시스템이 구성원인 개인의 성향과 관계없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개인은 사회구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전생 때문도 아니고,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사주팔자 때문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 여러분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단지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특히 국가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거대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사회적 구조 속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착함이 집단의 선함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대부분의 종교는 ‘개인이 얼마나 착한가?’ 하는 주제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악독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 일을 할까요? 지금 한국의 방위산업체에서는 전투기를 만들고, 자주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핵폭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일들을 착한 사람들이 하고 있을까요? 나쁜 사람들이 하고 있을까요?

물은 산소와 수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지지만, 그 성질은 산소나 수소 각각의 성질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는 마치 산소와 수소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성질이, 둘이 만나면서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 부품 하나하나의 성질과 그것들이 조립된 자동차 전체의 성질도 다릅니다. 그것처럼 우리 개개인의 성격과 그 개개인이 어떤 질서와 구조에 의해 결합된 집단의 성격도 전혀 다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삼성이라는 기업은 사회에 이익을 줄 수도 있고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정토회 회원들은 다들 조금씩 부족한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정토회라는 조직은 사회적으로 아주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모자이크 붓다’를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종교는 개인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도록 좋은 역할을 많이 해왔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짜인 집단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개인이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를 자각하고, 사회구조를 바꾸면 개인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회구조 자체가 개인의 선함과 무관하게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깊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즉, 공산주의 국가가 얼마나 인권을 침해하고,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종교는 ‘개인이 착하고 성실하면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해 왔습니다. 반면 사회주의 또는 사회학에서는 개개인이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을 바꾸면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개선되는지를 주로 이야기해 왔습니다. 개인의 행복이나 불행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해 온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여러분들도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개개인이 모여있는 집단이 개개인과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제3의 성질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산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은, 인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개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말입니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여러분 모두 개인적으로는 착한 역할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집단이 어떻게 짜여 있고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독재에 가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 더 깊이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이어서 사회 제도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앞에서 말한 주제가 다소 어려웠나요? 이제부터는 개개인이 사회구조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즉, 전생이라든지 사주팔자라든지 그런 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걸 우선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대를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여러분이 만약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살았다면, 그 시대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성적도 좋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진학했어요.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사법고시를 쳐서 합격해 검사가 되었어요. 그렇다면 출세한 거죠, 성공한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맡게 되는 역할은 뭘까요? 도둑이나 사기꾼을 잡는 일도 하겠지만, 독립군을 잡는 일도 하게 됩니다. 국가 질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독립군은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반국가 사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를 잡고, 그들을 재판에 넘기고, 죄를 묻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빠서 그런 역할을 하는 걸까요? 아니에요. 이 사람은 매우 착하고, 공부도 잘했고,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시스템 안에서 맡게 된 역할이 그런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전쟁이 끝났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출세해서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하루아침에 친일부역자가 되어버렸어요. 집도 빼앗기고,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가겠죠. 일제 강점기에도 학생은 공부 잘하는 게 과제였고, 농사꾼은 농사 잘 짓는 게 과제였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 잘하는 게 과제였고, 공무원은 자기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는 게 과제였고, 사업가는 사업 잘하는 게 과제였을 겁니다. 그러나 개개인만 보지 말고, 한반도에 살던 조선 민족 2천만 명을 전체적으로 놓고 본다면 어떨까요? 조선 민족 2천만 명의 공통된 고통이 어디서 왔을까요? 개인의 삶은 조금씩 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즉,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개개인은 조금씩 다 다르지만, 전 국민을 공통 기준으로 보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독립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독립이라는 과제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올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시대적 과제에 눈을 떠야 하고, 공부를 하더라도 시대적 과제에 눈을 떠야 하고, 장사를 하더라도 시대적 과제에 눈을 떠야 했던 거예요. 그래야 독립이 되었을 때 하루아침에 인생이 실패로 돌아가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잘하는 선택은 검사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백 명 중 한 명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검사를 하더라도 독립운동가는 잡지 않아야겠죠. 그게 시대적 과제니까요. 내가 농사를 짓더라도 독립운동 단체에 쌀 한 되라도 내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입니다. 만약 검사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를 몰래 빼주는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일제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언젠가 잡혀서 처벌을 받았겠죠. 그렇게 못하면 최소한 자기 월급 중의 일부라도 독립운동단체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독립이 된 뒤 세상에서는 나를 친일파라고 척결하려고 할 때, ‘내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 월급 중의 일부를 독립군 자금으로 보냈다.’ 이렇게 말하면 친일 잔재가 청산되는 과정에서 조금은 참작이 될 겁니다.

사회 변혁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언제나 시대적 과제가 있습니다. 어떤 시대는 독립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독립은 되었지만 국가 건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국가 건설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면, 경제개발이 시대적 과제가 됩니다. 나라가 독재 체제에 놓여 있다면,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가 되겠죠. 이렇게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은 항상 그 시기에 가장 큰 핍박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과제를 해결해 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제일 큰 공로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인간의 운명이 사주팔자나 전생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거나, 신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5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사주팔자가 나빴고, 요즘 태어나는 사람들은 사주팔자가 좋아졌다는 말이 되는 거잖아요. 5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고생했고, 지금 태어나는 사람들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편하게 사는 걸까요? 50년 전에는 하느님이 한국 사람을 저주하고, 지금은 축복을 내려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핵심은 개인은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사회로부터 개인이 고통받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를 한번 보세요. 그때 사회는 여성과 천민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열심히 일해라’, ‘착하게 살아라’ 이렇게 가르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들을 옭아맨 족쇄를 먼저 풀어주는 게 맞을까요? 당연히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사회 변혁이 중요한 거예요.

부처님도 성차별과 계급 차별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체를 당장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출가 공동체인 상가(僧伽) 안에서는 그런 허위의식을 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과 당시 사회에서 기득권층으로부터 많은 저항을 받았습니다. 깨닫기도 어렵지만, 설령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실천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누구나 살기 좋은 사회에서 살고 싶은 갈망을 갖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아 합니다. 그래서 사회 변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대가를 치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 열사들이 감옥에 가고 고문을 당하는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민주화가 이루어진 거예요.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얽매여 살아온 인간의 삶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라는 출생 신분에 묶여 있었습니다. 주인이 주는 밥을 먹고, 시키는 일을 하고, 때로는 사고 팔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노들이 땅에 묶여 살았습니다. 영주가 배정해 준 땅에서 농사를 짓고, 세금을 내며 생계를 유지했죠. 그 농노들이 신분에서 해방되어 노동자가 될 때도 돈을 주고 ‘자유권’을 사서 노동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유럽에 가보면 ‘자유시(CIVITAS)’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들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함부르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진정한 자유인일까요? 엄격하게 말하면, 노동자도 돈에 묶여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분에 묶여 있었고, 그다음은 땅에 묶여 있었고, 지금은 돈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자신이 돈에 팔려 다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얼마 주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다. 예를 들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회사에 입사해서 20년을 다녔다고 가정해 봅시다. 월급을 500만 원씩 받고, 그 돈으로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사에서 월급을 1,0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하면, 회사를 옮길까요, 안 옮길까요? 아마 대부분은 옮기겠죠. 결국 우리의 선택 기준은 돈이에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미래 사회가 ‘자원봉사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선택해서 필요한 곳에 내 재능이나 시간을 사용할 뿐, 나를 어떤 대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팔지 않는 거죠. 남녀의 성을 비유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을 강제로 착취당하는 건 노예입니다. 돈을 받고 성을 파는 건 노동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예요. 그런데 성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좋아서 나누는 것이 바로 자원봉사입니다. 자원봉사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자원봉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팔면 돈이 되는데, 어떻게 안 팔 수가 있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 물론 지금 여러분은 재능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조금씩은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토회는 자원봉사를 확대해 나가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는 자원봉사가 보편화된 사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미 조금씩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직 정신적으로는 준비가 안 됐을 뿐, 형식은 이미 자원봉사의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물건을 팔 때, 손에 직접 돈을 주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내 머릿속에서 돈을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돈이 나갔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월급을 얼마 받았다.’, ‘밥값으로 얼마를 썼다.’ 이렇게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것을 지워버리면, 결국은 일하고 밥 먹고 사는 것이잖아요. 월급을 받지 않고 자원봉사만 하고 사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도 똑같습니다. 일하고, 밥 먹고,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다만 집값은 얼마이고, 활동비는 얼마이고, 이렇게 계산하지 않을 뿐이지 똑같이 밥 먹고 살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계산하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들어와서 자원봉사 하며 사는 삶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미래 사회는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해서 움직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동의 해방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내가 하는 일이 자기 일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일이 되었을 때는 몇 시간을 일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밤새워 일을 하더라도 노동 시간을 따져보지 않게 됩니다. 필요에 따라 물건을 사용하고, 필요한 만큼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 입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아직은 조금 멀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주로 불공정한 경쟁에서 생기는 제약을 없애는 데 집중하며 제도를 개선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히 제약을 철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회가 일정 부분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 경쟁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우선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고, 과정에서의 경쟁이 공정해야 하고, 결과도 어느 정도 공평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공평해지려면 제도적으로 기본 생활을 보장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사람은 태어나서 사춘기를 보낼 때까지는 가정환경과 상관없이 균등하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하고, 성인이 된 뒤에는 공정한 경쟁을 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노년기에 접어들면 다시 기본적 생활을 공평하게 보장받으며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나 1인당 소득 수준에 비해 사회복지비 지출은 선진국 평균보다 적은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연기법의 관점에서 본 사회 참여와 제도 개선의 중요성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독립을 이루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독재정권하에서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 수많은 민주 열사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앞으로도 사회 구조를 바꾸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 지불이 따라야 합니다. 그 대가를 기꺼이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만 사회 변화는 일어납니다. 대가 지불 없이 그냥 저절로 변화가 오기를 바란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나 하나라도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래서 복권을 사거나, 부동산 투자에 매달리고, 주식이나 코인으로 한 방에 인생을 바꿔보려는 데 몰두합니다. 이런 생각이 만연하다 보면 결국 사회 전체가 함께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지금까지는 대학 등록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훨씬 낮은 인도조차 대학 등록금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국가 장학금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그 지원 대상을 조금씩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무료로 하는 문제 역시 국가 예산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제도 개선을 통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우리가 모두 함께 토론하고 합의해 나갈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 비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바탕에 두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 앞으로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불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상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불교가 추구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상보다 강의가 늦게 끝나서 질문을 하나만 받고 답변을 한 후 강의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사회 제도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불교의 사회 참여’를 주제로 한국의 다양한 사례에 대해 배우기로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58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7강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대한민국에서 정신의 위대함을 기리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막사이사이상 한국인 수상자 모임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7강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8

0/200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5-04-24 11:17:27

도종

스님 감사합니다 ㅎㅎ

2025-04-24 10:50:08

보람

장토회에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고 스님께 법문 듣는 제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한민국은 스님과 같은 지도자가 있기에 평화의 길을 계속 산택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5-04-24 10:06:03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