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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6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대중과 함께 명상을 하고, 오후에는 경동교회 창립 80주년 기념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향류 법사님 장례식장을 조문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3층 설법전에는 240여 명의 대중이 자리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일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명상을 하는 방법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백일법문을 시작하고 아홉 번째 맞이하는 일요 명상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일요 명상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요동칩니다. 흔히들 ‘변덕이 심하다.’, ‘죽 끓듯 한다.’, ‘갈 때와 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타인을 폭행하거나, 도둑질하거나, 성추행하거나, 욕설 또는 거짓말을 하거나, 술에 취할 때, 우리의 마음은 흥분되고 들뜨게 됩니다. 또한 마음이 들뜬 상태일 때는 그러한 행동을 저지르기가 더욱 쉽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평정심’이라 부릅니다. 평정심이 유지되면 마치 잔잔한 호수가 주위의 경치를 또렷이 비추듯이 우리의 마음도 제법의 실상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우리의 마음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출렁입니다.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이 경치를 선명히 비추지 못하듯 우리의 마음이 출렁이면 법의 실상을 선명히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언행을 억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언행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보거나 들을 때 사람마다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각기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느끼며, 다르게 반응합니다. 같은 것을 보거나 듣고도 느끼는 감정이 서로 다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 또한 다릅니다. 심지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각각입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으로 인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일한 시공간에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왜 서로 다르게 알고, 다르게 느끼고, 다른 감정을 품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 이유는 각자의 무의식, 즉 심층 의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식(識)'이라고 부릅니다. 식이 다르면 같은 대상을 접해도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판단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식이 다르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적 자극이 동일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생각, 감정, 판단이 모두 다르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옳다고 여길 뿐입니다. 그래서 갈등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면 이러한 외부 자극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조용한 공간에서 움직임을 멈추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한 자극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그러나 외부 자극이 사라져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에 따라 감정이 생기고, 그 감정이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는 것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생각은 마음대로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은 멈추려 할수록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는 생각에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합니다. 마치 눈을 감아서 시각 자극을 차단하듯 생각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아,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 끌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합니다.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릴 뿐, 일체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지도 않고, 귀에 들리는 소리에도 의미를 두지 않으며, 냄새나 맛에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가려움증이나 통증 같은 감각에도 의미를 두지 않고,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르는 온갖 생각에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직 콧구멍 끝을 드나드는 호흡만을 알아차립니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극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극에 따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않도록 멈추는 것입니다. 통증이 느껴지면 ‘통증이 있구나.’, 가려움이 느껴지면 ‘가려움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입니다. 자극이 일어나면 ‘왜 통증이 있지?’, ‘어떻게 하면 통증이 없어질까?’ 이런 생각으로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점차 고요해집니다. 방 안에 먼지가 가득 일었을 때 선풍기를 틀거나 빗자루로 먼지를 털면 먼지가 더 많이 일어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안 해야지!’ 하는 순간 또 다른 생각이 생겨납니다. 가만히 두면 생각과 감정은 저절로 가라앉습니다.
일체의 동작을 멈추고 다만 들숨과 날숨만을 알아차립니다. 어떤 것이 일어나도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알 뿐입니다.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극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다음 생각으로 이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의미를 부여하면 그 즉시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애쓸 것도 없습니다. 그저 편안히 앉아서 코끝에 관심을 두고, 숨이 들어오면 ‘들어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숨이 나가면 ‘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 외의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감각들이 나름대로 그냥 놀도록 내버려 둡니다. 잘했니 못했니 할 것도 없고, 힘들다고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편안히 앉아 있다가 죽비 소리가 울리면 시작하고, 다시 죽비 소리가 울리면 끝내면 되는 것입니다. 다리에 통증이 있으면 ‘통증이 있구나.’ 하고, 가려움이 일어나면 ‘가려움이 있구나.’ 하고, 그저 알아차릴 뿐입니다.
지금은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애쓸 것도 없고, 잘했다 못했다 평가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할 때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집니다. ‘고요해야지!’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오히려 마음이 긴장하게 됩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스님의 안내가 끝나자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30분간 명상을 한 후 다시 죽비 소리가 울렸습니다. 10분 간 포행을 했습니다.
“다리를 풀 때는 참았다가 푸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가운데 다리를 천천히 풀고 일어나서 포행합니다. 앉아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좌선이라면, 걷는 동안 동작과 자세를 알아차리는 것이 행선입니다. 차이는 오직 앉아 있느냐, 걷고 있느냐 뿐이지 둘 다 똑같습니다.”
포행을 할 때는 자세와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다시 30분간 명상을 했습니다.
“탁, 탁, 탁!”
30분간 세 번 명상을 한 후 마쳤습니다. 대중은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경동교회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20분에 경동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에서 운영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의 강대인 명예 원장을 찾아뵙고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정성헌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께서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스님은 두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두북수련원에서 채취해 온 엄나무 순을 선물했습니다. 강대인 원장께서는 오늘이 기독교의 가장 큰 기념일인 부활절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오늘이 부활절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탄신일이 가장 큰 명절이죠?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이 가장 큰 명절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편입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불교도 사실은 깨달은 날이 제일 중요한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깨달아야 부처가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남방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난 날, 깨달은 날, 돌아가신 날이 같은 날입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날이 나누어진 겁니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시국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분은 갈수록 국론 분열이 심해지는 현상을 우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서로를 적대하지 않고 대화 테이블에 앉도록 하려면 사회 원로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 다 함께 경동교회 8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십자가 아래 섰습니다.
스님은 먼저 경동교회 창립 80주년을 축하하며 경동교회의 창립자인 고 강원룡 목사님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경동교회 창립 80주년과 크리스천 아카데미 창립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경동교회를 창립하고 이끌어 주신 강원룡 목사님과 박종화 목사님, 그리고 현재 목회를 맡고 계신 임영섭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20대 중반에 강원룡 목사님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경동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와의 인연이 지금까지 50여 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작은 시골 교회를 다녔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카드도 받고, 동방박사 역할을 맡아서 연극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 역시 진리를 찾아가는 동방박사의 여정을 닮아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불교에서는 이를 ‘묘한 인연’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하느님의 섭리’라고 표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독교인이나 목회자를 통해서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강원룡 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강원룡 목사님께서 경동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신 것처럼, 저 역시 정토회와 여러 사회 단체를 설립하여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경동교회를 벤치마킹한 셈입니다. (웃음)
20대 중반에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농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강원룡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경험이야말로 제가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첫 번째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불교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대학생불교연합회를 중심으로 민중 불교 운동이 일어나면서 제가 대학생불교연합회 지도 법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에게 사회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학생들은 대부분 사회 과학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 운동을 했지, 불교를 통해 사회 변혁을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불교 안에 그런 사회 변혁 운동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보며 붓다라는 한 인간이 그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부처님이 성차별과 계급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하나하나 발견해서 학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사회 과학을 통해서만 민주화 운동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신앙에서 출발해도 충분히 사회 운동의 에너지가 나올 수 있음을 전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기 신앙과 사회 운동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참신하다고 여겼고, 저를 서울로 초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골에 살던 제가 서울 조계사에 와서 대학생불교연합의 지도 법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저를 기독교에서 훈련받아 불교에 파견된 사람이라고까지 오해했습니다. 시골에 살던 제가 갑자기 서울에 나타나 학생들과 어울려 사회 운동을 하니, 기독교에서 위장 취업을 해서 들어온 사람이라며 의심을 받은 거였어요. (웃음)
젊은 시절에 어려울 때마다 강원룡 목사님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직접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마련한 종교 간 대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을 계기로 ‘평화 포럼’에 참여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해 목사님과 함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창립 10주년 행사에서는 목사님을 주 강사로 모셔서 정토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교 수행을 배운 스승은 여러 스님이 계시지만, 사회적 스승은 강원룡 목사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종교인으로서 종교에 실망한 경험이 많습니다. 성경이나 불경 어디에도 복을 달라고 빌면 복을 준다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골방에 들어가 은밀히 기도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지, 길거리에서 ‘복 주세요.’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정토회를 처음 시작할 때도 주위에서 복을 빌지 않고서는 종교가 성립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복을 빌지 않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수행의 길을 강조합니다. 성경이나 불경에 기록된 것처럼 바르게 살고 이웃에 좋은 일을 하면 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법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나오는 여섯 가지 실천처럼 ‘작은 자들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는 이 가르침이야말로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사회적 실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강원룡 목사님께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갈등 해결에 앞장서셨듯이, 저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평화재단을 설립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에코붓다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차원의 구호 활동을 위해서는 ‘JTS(Join Together Society)’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JTS는 종교적 배경이나 이념을 떠나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차별 없이 돕는다는 원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권 개선과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좋은벗들(Good Friends)’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밑바탕이 된 아이디어들은 모두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현실에 맞게 구체화하여 오늘날까지 실천하고 있습니다.
경동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실천적 활동은 정토회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러한 영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점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경동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활동은 교회 내부의 세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 어떤 기독교 단체보다도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 운동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이곳 출신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며 지난 80년의 세월에 대해 여러분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경동교회와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활동은 단순히 한 교회의 역사를 넘어,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완화하도록 하는 데에 국가적으로 큰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웃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경동교회 창립 80주년과 크리스천 아카데미 창립 6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참석한 교인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경동교회 80주년을 돌아보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충고의 말을 부탁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분명 불교적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계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부족한 저희 교인들에게 충고 말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간 붓다의 삶과 깨달음, 그리고 초기 가르침은 오늘날 한국에서 종교로 존재하는 불교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별 관계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오늘날 종교로서의 불교는 이름만 불교일 뿐 인도의 전통 신앙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신의 이름이 ‘부처’라고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복을 비는 방식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런 모습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하는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토회에서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간 붓다의 삶과 사상을 본받고자 하는 수행적 관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종교로서의 불교와 구분하여 수행으로서의 불교라고 표현합니다.
불교는 크게 종교적, 철학적, 수행적 성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그중에서도 수행적 성격을 중심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성격을 필요로 하는 분들은 종교적 불교로 나아가면 되고, 철학적 탐구를 원하는 분들은 대학이나 연구 기관으로 향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논쟁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대신 ‘어떤 관점을 갖고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입장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성경을 바탕으로 법문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주제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을 정도예요. 왜냐하면 성경 속에도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수행에 관한 가르침이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산상 설교가 그렇습니다.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 주어라.’,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벗어주어라.’, ‘네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 대어라.’ 이런 가르침은 그 자체로 수행입니다. ‘누구를 미워하지 마라.’를 넘어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가르친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억누르는 대신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미움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훔치지 마라.’ 대신 ‘베풀어라.’ 하고 가르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은밀히 해야 하며 조건을 붙이지 말라고 가르친 것도 수행적 관점과 매우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이미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조건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하느님을 못 믿는 자세입니다. 혹시 하느님이 내 기도를 못 들으시거나 빠뜨리실까 염려해서 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목사님들이 하시는 설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인 신약 성경보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구약 성경을 더 많이 인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활절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난 것이 곧 부활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부활의 의미를 너무 낮은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상황을 만든 사람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를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앞의 말씀은 저들을 용서하라는 뜻이고, 뒤의 말씀은 저들은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응징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소금 기둥을 만들어서 응징하는 하느님이셨어요. 그러나 예수님 이후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향해 그들을 용서하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던 교도소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지 모르는 거죠. 예수님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죄가 없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이해야말로 최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해가 곧 사랑입니다.
자신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일 텐데,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구약의 하느님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징벌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꾸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성자(聖子)가 아니라 하느님 그 자체가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성자에서 성부(聖父)로 거듭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어도 예수님의 정신은 결코 죽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랑의 하느님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이며 부활입니다. 몸이 되살아나는 것이 부활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이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성경을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즉 산상 설교나 마태복음 25장에 담긴 말씀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제 종교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르침에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느냐입니다. 종교인의 수가 많다고 해서 사회적 범죄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종교인과 무종교인 사이에 범죄율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폭행범, 성추행범, 사기범 가운데도 종교인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교인의 수가 많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 믿는 신앙을 통해 삶에 어떤 변화를 이루었고, 그것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삶을 통해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어떤 신뢰를 쌓아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에 감동하고, 그 감동으로 삶이 거듭나야 합니다. 경동교회가 걸어온 80년의 성과를 단순히 교회의 크기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강원룡 목사님과 여러분이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간증합니다.” (웃음)
강연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고, 스님이 설교단을 내려온 뒤에도 박수는 좀처럼 멎지 않았습니다. 얼굴마다 깊은 여운이 어려 있었습니다. 이어서 경동교회 박종화 원로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매달 한 번씩 정토회에 가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인도적 지원 문제를 비롯해서 국민 통합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를 위한 좋은 일들은 종교를 초월해서 할 수가 있습니다.
매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정토회의 초청을 받아서 설법을 하는데요. 제가 불자들에게 ‘성불하십시오.’라고 말한 것이 인터넷에 올라가서 기독교인들이 ‘목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고 비난해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목사라고 해도 절에 갔으면 ‘성불하십시오.’라고 해야지 ‘할렐루야!’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웃음)
종교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이 해야 하는 삶의 실천은 같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경동교회가 80주년 이후에도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길을 걸어가길 기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경동교회 임영섭 담임 목사님이 강연을 마치며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기 현수막을 보시면 80이라는 숫자 속에 동그라미가 세 개 있습니다. 동그라미 세 개가 경동교회의 역사를 말해주는 징검다리 돌 세 개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강원룡 목사님과 박종화 목사님이 튼튼한 돌을 놓아 주셨는데, 저희는 그것을 잘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기독교계가 많이 어려운데, 법륜스님께서 성경 공부를 하고 계신다 하니 더욱더 위기 의식을 느낍니다. (웃음) 저도 작년부터 정토회를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협력할 수 있는지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기념 강연을 마친 후 차담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경동교회 관계자들이 모두 자리하여 서로 소개도 하고 담소를 나눈 후 경동교회를 나왔습니다.
오후 4시에 경동교회를 출발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어젯밤, 정토회 결사행자이신 향류 법사님께서 1년 넘게 이어온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정토회 법사단은 향류 법사님께서 오랜 시간 활동하신 대전에 빈소를 마련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저녁 7시에 빈소에 도착했습니다.
영정 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 삼배를 한 후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남편 되시는 곽영술 거사님은 정토회 불사위원회에서 많은 역할을 맡아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스님은 거사님을 꼭 끌어안고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마음이 아프시지요.”
거사님은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향류 법사님은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대전법당 총무, 중부권 국장, 대전정토회 대표를 역임하며 정토행자들의 귀감이 되어온 분입니다. 법사님과 대전 지역에서 함께 활동했던 많은 분들도 빈소를 방문하여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참석한 대중 모두가 영정 앞에 자리한 가운데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염불을 하기 전에 스님이 영가를 위해 법문을 했습니다.
“향류 정경주 영가시여! 영가께서 오늘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니 여기 모인 가족과 대중, 결사행자, 법사단, 지부장, 지회장, 전법회원, 일반회원 등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이 슬퍼하며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법을 배우는 목표는 생사가 둘이 아님을 알아 태어나고 죽음에 대해 걸림이 없기 위해서입니다. 영가께서 오늘 이렇게 홀연히 가신다 해도 간다고 할 것이 없고, 오신다 해도 온다고 할 것이 없는, 그런 도리를 알 때 우리는 열반에 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영가의 떠나심을 보며 슬픔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다시 부처님의 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위대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도 수행자들이 스승의 떠나심을 슬퍼해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니룻다 존자가 '이 몸에 성스럽다 할 것이 없고, 이 느낌에 즐겁다 할 것이 없고, 이 마음에 항상한다 할 것이 없고, 이 법에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환기시켜 대중이 평정심을 찾아 부처님의 열반을 고요한 가운데 맞이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생각을 일으키면 슬픔을 가눌 수 없지만, 그 생각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평정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니 영가께서는 영식을 오롯이 하여 이 법사의 질문에 쾌활하게 답을 하소서.
영가시여!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감촉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서 무엇이 영가의 본래면목입니까?
지금까지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것이다’, ‘내가 옳다’ 이렇게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영가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영가의 본래면목이라고 할 것입니까?
영가께서 쾌활하게 대답하셨다면 즉시 해탈 열반에 들 것입니다. 만약 대답함에 머뭇거림이 있다면 여기 모인 대중의 왕생극락을 비는 간절한 염불의 공덕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시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고 직접 법문을 들어 깨달음을 얻으시고 부디 해탈 열반을 성취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영가의 가족과 영가와 함께 활동했던 모든 대중은 헤어짐의 슬픔을 억누르며 오직 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겠습니다. 이 염불 공덕으로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이어서 다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염불을 했습니다.
장엄 염불을 하며 정성껏 천도재를 지낸 후 스님은 대중을 향해 앉았습니다. 그리고 향류 법사님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향류 정경주 법사님은 정토회의 법사로서 돌아가신 분 중에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첫 번째로 변정 법사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변정 법사님은 정토회에 법사 체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법사가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 법사 체계가 만들어진 후에는 향류 법사님이 처음으로 돌아가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류 법사님은 정토회를 만난 뒤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수행하고 전법을 하셨습니다. 본인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남편, 아들, 전 가족을 정토회 활동으로 이끄셨습니다. 봉사만 한 게 아니고 보이지 않게 많은 보시를 하셔서 정토회가 오늘에 이르는 데 많은 기여를 해주셨습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그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니 정토회의 모든 대중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천도 기도를 해주셔야 하는 그런 분입니다. 정토회에 공로가 많은 분이니까 정성을 다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정토회 활동가들이 빈소를 방문하여 시간대별로 천도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은 슬픔에 잠긴 곽영술 거사님과 더 대화를 나눈 후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대전을 출발했습니다.
차로 2시간을 달려 밤 10시가 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64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금강경 강의를 마무리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필리핀 막사이사이 재단과 인터뷰를 한 후,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13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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