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18 백일법문 61일째, 금요 즉문즉설
“만날수록 괴로운 남자친구, 이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61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봉사자들이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정토회 청년 활동가인 김라결 님이 봄에 어울리는 ‘벚꽃엔딩’ 노래와 남북 화합을 염원하는 ‘붓’이라는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대중 260여 명이 자리하고, 유튜브 생중계에는 34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한 후 곧바로 질문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결혼하고 싶은 이상형의 남자가 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롤러코스터를 타며 불안한 마음과 시기심, 질투심이 든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만날수록 괴로운 남자친구, 이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저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슨 관계냐’고 물었더니 친구 같고, 연인 같고, 가족 같은 관계라면서, 그런 관계가 좋은 것 아니냐고 합니다. 저도 결혼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떠났겠지만, 평생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만남을 이어 왔습니다. 그런데 만날수록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며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습니다.

그 남자는 저를 만나면서 자존감도 높아지고, 일도 잘 풀리고 재테크에도 성공했습니다. 반면 저는 ‘정말 나를 좋아하는 걸까, 혹시 다른 여자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 속에서 재테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손실도 많이 났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같은 월급쟁이로 경제적 격차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큰 차이가 납니다. 그 사람이 잘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불안과 질투, 우울감이 먼저 듭니다. 2주 전에 데이트 중 제가 실수를 하자 그가 짜증을 냈고 그 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습니다. 지금은 제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도 만나보고 자기 계발에 집중할까 생각하면서도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고 괴롭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지금 관계에서 질문자는 ‘을’입니다. 그걸 자각하고 눈물로 매달리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너 없으면 못 산다’ 하며 매달리고, 그래도 발로 차면 나가떨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매달리는 것도 괜찮지만, 자존심을 지키면서 장기적으로 무난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 관계는 끊는 게 낫습니다. 지금 그 관계는 질문자에게 행복을 줄 수가 없어요. 이미 너무 기울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가 누구를 만나든 그것은 그의 자유인데 질문자는 질투하고 문제로 삼고 있잖아요. 이 마음이 심해지면 스토킹이나 증오로 이어질 수도 있고, 결국 질문자의 인생이 무너질 위험도 있습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지금 이쯤에서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관계를 끊는 게 제일 현명합니다. 반대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몇 년 더 만나다가 차이는 게 낫겠다 싶으면 그것도 괜찮아요. 그렇게 애걸복걸하고도 차이면 오히려 마음이 깔끔하게 정리가 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국 차이면 ‘그래, 너 같은 거 나도 싫다’ 하면서 미련이 남지 않아요.

인생이 별거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할 거냐의 문제예요. 지금은 이미 갑을관계가 성립된 상태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질문자가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겁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특히 남녀 관계에서 이런 구조는 썩 좋지 않습니다. 지금은 질문자가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상태니까 관계를 딱 끊는 게 낫습니다. 그게 잘 안되겠다면 자존심을 다 버리고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해요. 완전히 ‘을’이 되어서 아무 주장도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를 각오를 해야 해요. 스스로 선택한 노예라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결국 둘 중의 하나를 빨리 선택해야 해요. 시간을 끌수록 낭비입니다.”

“사실 저는 결혼 자체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사람이 저의 이상형이다 보니까 고민이 됩니다.”

“상대가 나의 이상형이라고 느껴지면 대부분 쥐약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관계는 평생 큰 고통이 됩니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미 관계가 기울어졌기 때문이에요. 한 치 앞만 내다볼 수 있어도 결국 나에게는 고통이 될 것을 알 수 있어요.”

“같이 있으면 대화도 잘 통하고, 취미와 관심사도 맞아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돼요. 갑질하거나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제가 좋아하니까 마음을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노예가 되든지, 관계를 끊든지, 확실히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자의 입장에서 감당이 안 되는 관계라는 뜻이에요. 요즘 같은 세상에 상대방에게 ‘우리가 무슨 관계냐?’ 하고 묻는다면 저라도 귀찮고 싫을 것 같아요. (웃음) 서로 좋아지면 더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올가미처럼 우리가 무슨 관계냐고 확인하는 자체가 상대 입장에서는 껌딱지처럼 들러붙는 귀찮은 일입니다. 질문자의 인생에도 도움이 안 되는 태도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물었더니 그 이후로 관계가 더 안 좋아졌어요. 다른 사람을 만나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요?”

“내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안 만나면 덜 합니다. 지금처럼 ‘딱 이 사람이다’ 싶은 남자를 만나니까 쥐약이 되는 거예요.”

“그런 남자는 만나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남자를 만나도 되는데, 대신에 쥐약을 먹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해요. (웃음) 손해와 이익을 따지지 말고 ‘당신은 나의 왕입니다’ 하며 그의 노예가 되어 버리면 됩니다. 내가 딱 찍은 남자라면 노예가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가든지, 아니면 관계를 끊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마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다가 상처만 잔뜩 입고 난 뒤에야 스님이 한 말이 생각날 거예요. 지금처럼 눈에 백태가 끼면 스님의 말이 안 들립니다. ‘딱 이 사람이다’ 하는 감정이 제일 위험해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사라지니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감정에 빠졌을 때는 노예가 되기를 자처하든지, 아니면 관계를 끝내든지, 둘 중 하나로 결론을 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정토회에서는 행사를 할 때 에너지 절약을 위해 가능한 카풀로 태워서 오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을 항상 태워서 와야 하는 게 불편합니다.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 몸이 불편한 아이가 사건과 사고가 많고 험난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 여자친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주고받는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결혼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습니다.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 드라마 작가로 일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원하는 방향과 제가 원하는 방향이 다를 때 어떤 관점을 갖고 일을 해나가야 할까요?

질문을 하고 싶어서 손을 든 분들이 더 많았지만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12시가 되자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대중과 함께 지하 1층 공양간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성남주민교회를 설립하여 평생 빈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오신 이해학 목사님과 일행 분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시국 현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후 7시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이성진 보살님 자매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때마다 보살님의 집에서 머물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 한국에 방문한 김에 잠깐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차담을 나눈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 나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장 접수를 하거나 질문 신청을 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튜브에 58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서 17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길벗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난아진 님의 공연으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신나는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아홉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잘못했다고 빌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유부녀와 바람피운 남편, 다시 잘해보자는데 믿어도 될까요?

“저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남편은 평소에 반듯한 사람인 척했기에, 순진했던 저는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은 오래전부터 여러 여자들과 문란한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그중 한 명은 유부녀였는데, 제 남편과 재혼하려고 최근에 이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저는 울면서 남편에게 매달렸어요. 그러자 남편은 ‘앞으로 당신이 나한테 잘해주면 그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가정에만 충실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일주일 만에 남편을 용서하고 잘해주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또 몰래 그 여자와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발각됐고, 그 일로 저는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꼬리를 완전히 내렸습니다. 통장을 모두 저에게 넘기고 용돈만 받아 쓰겠다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데리고 사세요.”

“그런데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거짓말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사시면 돼요.”

“그게 너무 괴로워요. 같이 살다 보면 병이라도 생길까 봐 무서워요.”

“지금까지 그 남자랑 살아온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새로 누구를 만나서 산다면 또 얼마나 귀찮고 힘들겠어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도 없어요.”

“정말 확신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요. 남자 없이 혼자 먹고사는 데에 큰 문제는 없나요?”

“아니요. 문제는 있습니다. 제가 이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나가서 직접 일해 보세요. 막상 부딪혀 봐야 깨닫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바람피우는 남자랑 사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어요. 자꾸 따지고 시비하면 마음이 상하고 병까지 생길 수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괜찮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남자가 바람피워도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당장 이혼하고 혼자 살아갈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이혼을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남편이 지금 안 그러겠다고 말했으니, 일단은 한 번 봐주세요.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마!’ 하고 겁은 줘야 합니다, 통장은 이미 받았으니 내가 가지면 됩니다. ‘또 거짓말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거짓말은 또 합니다. 그걸 매번 따지고 들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어요.

남편은 다시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너 또 그러면 이혼할 거야!’ 이렇게 딱 한 마디만 하세요.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일일이 반응하다 보면 질문자가 훨씬 더 괴로워집니다.

질문자는 이미 몇 번이나 남편을 용서했고, 지금도 이렇게 스님한테까지 찾아와서 묻고 있어요. 그건 혼자 살 자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인생관이 분명한 사람은 남편을 욕하지도 않고, 싸울 필요도 느끼지 않아요. ‘그 여자 좋아? 그럼 가. 나는 내 길 갈게’ 하고 곧바로 관계를 정리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런 문제로 스님에게 묻지도 않아요. 지금처럼 ‘이번엔 진짜일까? 거짓말일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뜻이에요. 자존심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남편이 꼬리를 내리니까 마음이 흔들리는 겁니다. 다시 속을까 걱정되고, 또 반복되면 괴로울 것 같고요.

그러니 지금은 이 정도 선에서 정리하세요. ‘그래, 다시는 하지 마라!’ 딱 한 마디만 하고 넘기세요. 통장도 받았으니 잘하신 겁니다. 돈은 싹 정리해서 챙겨두고, 지혜롭게 대처하세요. 너무 따지고 들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남편의 행동이 쉽게 고쳐질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스님도 남자라고 남편 편을 드는 거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여자든 남자든 반복되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적인 욕망이든, 심리적인 불안이든,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도 남편을 다시 들여다보세요. 왜 자꾸 다른 여자를 찾는지, 내가 뭘 못 해줘서 그런 건 아닌지, 부부 관계에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계속 이런 행동을 한다면 병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라면 더 이상 용서할 일이 아니에요. 그럴 때는 단칼에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남편을 이해해 주든지, 치료를 받도록 하든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있으세요?”

“딸만 둘 있습니다. 첫째 딸은 성년이고, 둘째 딸은 지금 고3이에요.”

“그렇다면 지금은 용서해 주세요.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만 기다려 보시고,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상태는 지금 스님이 ’그냥 봐주라’ 이렇게 말할 때 마음이 놓일까요? 아니면 ’ 당장 이혼해라 ‘ 이렇게 말할 때 마음이 놓일까요? 생각으로는 이혼해야 할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냥 봐주라’ 이렇게 말할 때 오히려 안심이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한 번 넘기는 게 낫습니다. 상대가 빌거나 잘못했다고 할 때는 봐주는 게 좋아요. 그 순간 너무 몰아붙이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깁니다. 물론 다시는 안 그럴 것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어요. 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잘못을 저지르면 그때 다시 혼내주면 됩니다. 아이들도 다 컸고, 지금 와서 다시 새 사람을 만나서 살아가는 일도 쉬운 건 아니잖아요. 덜컥 이혼하고 나면 외롭고 불편한 현실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만약 남편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굴었다면 봐줄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지금은 꼬리를 내리고, 잘못했다고 빌고, 통장까지 내놓는 시늉을 하잖아요. 그럴 때는 한 번쯤 봐주는 게 낫습니다. 정말 남편을 버릴 생각이라면, 통장도 챙기고 실속도 챙긴 다음에 조금 더 지켜보다가 결정하세요. 괜히 욱해서 발로 차고 나가면, 본인만 손해입니다. 봐달라고 할 때는 한 번쯤 봐주는 게 현명한 길이에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아홉 명까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아홉 번째 질문자는 암 수술을 앞둔 분이었습니다.

암에 걸렸는데도 웃음이 나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제가 정토회에 와보니, 저는 생각보다 꽤 건강하게 잘 살아온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제 남편은 저를 늘 손가락질받아야 하는 사람처럼 여겼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스님께서 ‘너 잘 살아왔어’라고 말해주셨을 때 그 한마디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그 힘으로 배우자를 전법하겠다는 원을 세웠고, 이번에 마침내 남편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는 건강을 잃고 이제 암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암에 걸렸는데도 실실 웃음이 나요. 슬프지가 않습니다. 제가 괜찮은 건지, 이상한 건지 헷갈립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좀 모자라는 거죠” (웃음)

“위암 초기인데 암이라는 단어가 크게 느껴지는지 주위 사람들이 많이 걱정해요.”

“요즘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세요. 그 정도는 암 취급도 안 합니다. 위암 초기는 가볍게 수술만 해도 사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실실 웃음이 나오는 겁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너무 안쓰럽게 보면서 9년 동안 밥 한 끼 같이 안 먹던 사람까지 밥 먹자고 해요. 그게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밥을 먹자고 하면 밥을 같이 드세요. 자기들이 사주고 싶다잖아요. 암에 걸린 내 상황을 전법의 수단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아픈 척하면서 이렇게 말해보세요.

‘이게 내 마지막 소원인데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 줘.’ (모두 웃음)

이 한마디로 열 명쯤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시킬 수 있어요.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데 꼭 불자만 연등을 켜는 건 아니잖아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연등 하나 켜볼까?’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연등을 켜면 복을 받는다는 걸 떠나서, 그 문화를 빌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연등을 하나 켜보라고 권해 보는 거죠. 평소에는 종교적인 거부감으로 다가올 말도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만 원, 이만 원이라도 받아서 지진 피해 지역에 보낸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보이지 않게 복을 짓게 되는 거예요. 연말이면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잖아요. 구세군 종소리만 들려도 ‘연말이구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시하듯, 암에 걸린 내 상황도 하나의 인연입니다. 그 인연을 살짝 이용해 보세요.

‘너 정말 내 병이 낫기를 원하니? 만약 네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내 병이 금방 나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서 교화의 인연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 거사도 병을 핑계로 문병하러 온 사람들을 교화했습니다. 질문자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사홍서원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6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1080배 정진이 진행되고, 오후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오프라인반, 온라인반, 기본반 수강생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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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평화의 연등 하나 켜는 마음... 병에 걸린 것도 인연으로 부처님 법 전하는 데 쓸 수 있다니 보살행인 것 같습니다. 유쾌하고 감동적인 법문 감사합니다 스님.

2025-04-21 10:29:37

임무진

주어진 상황을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기분 좋네요. 깊게 고민하지 말고 가볍게 넘어갑니다.

2025-04-21 10:29:00

KSY

매일 감사드립니다.🙏

2025-04-21 10: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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