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4.12. 농사일
“아이를 키우는 이혼남인데,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인 여자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랜만에 햇살 아래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텃밭으로 나갔습니다. 겨울 동안 앙상했던 나무가지들이 봄 기운을 입고 빽빽이 자라 있었습니다. 엉켜 자라는 가지를 잘라 내면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자라고,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해 병충해가 줄어듭니다.

“어떻게 가지를 쳐야 잘 잘랐다고 할까.”

스님은 나무에서 한 발 떨어져 가지가 자란 모양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새순을 남겨 두고 나무가지를 정성껏 쳐내, 그늘 속에 숨은 햇살을 틔워 주었습니다.

가지치기를 마친 후에는 제피(조피)잎을 땄습니다. 가시 사이로 여린 잎을 톡톡 땄습니다. 제피 특유의 알싸하고 싱그러운 향이 손 끝에 남았습니다. 다섯 그루의 제피 나무에서 잎을 따고 나니 작은 소쿠리가 가득 찼습니다.

뾰족한 가시나무 위로 연둣빛으로 고개를 내민 엄나무 순도 땄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공양을 하고 잠시 휴식한 후 오후 2시가 넘어 두릅을 따기 위해 산 윗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진달래는 다 지고 연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두릅나무 군락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나무들이 죽어 싹을 틔우지 못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과수원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2주 전에 스님과 거사님들이 가시나무를 쳐내고 과수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거사님들이 거름을 주고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제법 과수원 같네요.”

밭 주변을 돌며 살아 남은 두릅을 땄습니다.

두릅나무가 있을 만한 곳을 다 돌고 나서 산 윗 밭으로 갔습니다. 6년 전, 법사님들과 함께 이 밭에 모란을 심어 두었습니다.

모란은 발아율도 낮고 씨앗을 심은 후 싹이 트기까지 약 1년, 꽃을 피우기까지는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립니다. 재작년에 4년 만에 처음으로 모란 꽃이 피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꽃이라서, 모란은 ‘기다림의 미학’, ‘고귀한 인내’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스님은 이 꽃을 백일법문을 듣는 대중들에게도 보여 주기 위해 두 그루를 캤습니다.

산을 내려와 모란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고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오후 4시가 넘어 울력을 마치고 스님은 원고를 교정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서울로 이동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점등식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이혼남인데,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인 여자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혼하고 아기를 한 명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그 친구는 한 7년 정도 만난 남자친구가 있고, 현재 그와 동거 중입니다. 여자친구와 조금 가까워지다 보니 조금 깊은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여자친구가 그 남자친구와 같이 있을 걸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또 저는 아이가 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라 걱정이 됩니다. 여자친구 역시 중간에서 많이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어떤 태도와 마음을 가져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을까요?”

“질문자의 처지에서는 그게 스트레스이고 괴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연애 한번 못 해 본 남자가 들으면 전혀 괴로워할 일이 아니죠. ‘결혼도 한번 해 봤고, 자식도 있고, 또다른 여자를 만나서 연애까지 하고 있는데 괴롭다니, 여기서 좋다고 자랑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별일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나쁜 일이 있어서 괴로운 게 아니라, 좋은 일에 더 욕심을 내서 생긴 괴로움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워할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욕심을 더 내서 생긴 문제예요. 질문자는 이혼했고 아기가 있지만, 지금은 혼자니까 연애를 해도 됩니다. 지금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연애까지 하고 있으니 그걸로 됐어요. 더 욕심낼 게 없어요.

결혼 문제는 상대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아이가 있어도 결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상대가 승낙하면 결혼하면 됩니다. 거절하면 결혼은 못 하는 겁니다. 그런데 결혼을 못 해서 괴롭다면 그건 욕심에서 비롯된 거예요. 아기 하나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결혼을 못한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자는 ‘내가 원하면 뭐든지 다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아닙니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더 나아가서 ‘결혼까지 하고 싶다.’ 하는 바람은 이루어지면 좋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2000만 원을 벌고 싶어서 괴롭다고 합시다. 가난한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괴로울 일이 아니겠죠. 학교 시험에서 2등을 한 학생이 1등을 못 해서 괴롭다고 하지만, 다른 학생들은 괴로운 일로 보지 않아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결혼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결혼을 못해도 괜찮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질문자의 괴로움은 욕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결혼에 대해 합의가 되면 다행이고, 합의가 안 되어도 그만이에요. 그래서 별일 아닙니다. 결혼하고 싶으면 제안해 보면 됩니다. 남녀 관계는 서로의 약속이에요. 내가 아무리 좋아도 상대가 싫으면 못 하는 것이고, 상대가 아무리 좋아도 내가 싫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확인해 보면 돼요. ‘자기도 알다시피 나는 아기가 있어. 나는 당신이 좋고 결혼까지 하고 싶어. 당신은 어때?’ 이렇게 물어보고, 상대가 ‘아직 결심이 안 서.’ 이렇게 대답하면 ‘그럼 연애하는 것까지는 괜찮아?’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연애하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하면 ‘그래. 나는 언제든지 결혼할 생각이 있으니 준비되면 얘기해 줘.’라고 말하면 돼요.

그러다가 나중에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서 결혼까지 하겠다고 하면, 지금의 관계는 정리하면 됩니다. ‘당신을 좋아하지만, 나는 아기 때문에 결혼이 필요해. 결혼할 여자가 생겨서 우리의 관계는 여기서 끝내야겠어. 미안해.’ 이렇게 말하고 끝내면 됩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옳으신 말씀 같습니다. 그러면 여자친구의 거절을 제가 받아들여야겠네요.”

“받아들여야죠. 안 그러면 강제로 결혼을 하시겠어요?”

“받아들이기가 심적으로 힘들어서요.”

“그게 왜 힘든가요? 힘든 이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 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안 돼서 힘든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질문자보다 더 힘들어야 해요. 저는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국론 통합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전에 대통령의 권한을 일부 축소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과거처럼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도 줄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왔고, 관계자들과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뜻대로 안 되고 있어요.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즉문즉설을 하듯이 그저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뿐입니다. 저도 뜻대로 안 되고 있고, 질문자도 뜻대로 안 되고 있어요. 두 가지 상황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일 같으세요?”

“스님이 하시는 일이 더 큰 일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지금 와서 과거를 돌아보면 좋은 일도 많습니다. 작년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잘못된 비상계엄에 실패하면서 남북 간의 긴장이 좀 완화됐습니다. 서로 합의해서 그렇게 된 일은 아니지만, 한쪽의 자극이 줄어들면서 상황이 잠잠해졌어요. 이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굉장히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고 제가 그동안 동분서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위험은 줄었는데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헌법 개정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면 어떡하겠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는 거죠.

이처럼 우리는 나쁜 상황도 받아들여야 하는데, 하물며 질문자의 일은 나쁜 일이 아니에요. 단지 더 좋은 걸 원하지만 그게 안돼서 괴로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아기를 하나 낳고 나서 또 아기를 낳고 싶은데, 부인이 동의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부인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질문자의 문제는 연애나 결혼 자체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돼야 한다.’ 하는 욕심입니다. 질문자는 결혼뿐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로 욕심을 낼 겁니다. 1,000원을 벌면 2,000원을 벌려고 하고, 5,000원을 벌면 10,000원을 벌려고 할 거예요. 물론 돈을 더 벌면 좋지만 안 벌어도 괜찮습니다. 돈을 더 못 벌어서 괴로워한다면 죽을 때까지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항상 현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청혼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해서 여자친구를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연애해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 결혼까지 하면 더 좋겠지만 이것 만으로도 고마워.’

이렇게 연애를 하면서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헤어져야 합니다. 자꾸 욕심에 치우치면 감사할 줄 모르게 됩니다.”

“계속 감사한 마음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원래 감사한 일이잖아요. 연애를 못 하다가 하게 됐으면 그 자체로 좋은 일이죠. 좋은 일에는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나야 합니다. 일부러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사한 일이 생기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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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언제나 새날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

2025-04-17 04:18:41

중도

질문자의 상황보다 스님의 상황이 더 크다는 것도 스님의 생각이십니다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입니다
더이상 헌법개정에 관여하지 마시고 큰 스승님으로 계셔주시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2025-04-16 12:34:04

지명화

고맙습니다.

2025-04-16 10: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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