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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튀르키예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스님은 오늘도 라마단식으로 새벽 3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가지안테프에서 이스탄불 공항으로 들어간 후 델리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가지안테프에서 2시간 거리에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있습니다. 이 유적지는 인류 문명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라고 합니다. 유적지로 가는 길은 사방이 넓고 탁 틔어있어서 마치 몽골의 초원 같았습니다. 지금부터 1만 년 전 ~ 1만 2천 년 전의 유적으로 인류 최고로 오래된 유적, 유물입니다. 9천년 된 우리 홍산문명과의 관계도 비교해 볼 겸 인도 델리로 가기 전에 아침 일찍 출발해서 유적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곳은 오로지 신전으로서 기능만 해서 생활상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유물은 없다고 합니다. 기존의 문명사는 농경이 시작되고 마을이 형성되고 종교의식이 형성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 유적으로 인해 종교의식이 먼저 형성되고 마을과 농경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기존의 문명사를 수정해야한다는 견해가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인데 이 인근을 전부 발굴하려면 7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옛 유적지인데도 그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유적지를 둘러보고 오는 길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유프라테스 강을 보았습니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니 11시 40분쯤 되었습니다. 12시 10분에는 샤팍 대표님과 미팅을 했습니다. 스님이 가시기 전에 인사를 하러 오고 싶다고 하여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며칠 동안 스님과 같이 다닌 것은 영광이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직접 와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선물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비했습니다.”
샤팍 대표님은 한글로 적은 감사패를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감사패를 받고 샤팍 대표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어제 지원을 하고 난 소감을 말하면서 앞으로의 지원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제 학교를 잘 둘러봤습니다. 화이트헬멧과 협력해서 학교를 신속하게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건물 복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학용품 지원, 학교 운영 등 많은 과제가 있습니다. 그 부분은 샤팍에서 책임감을 갖고 해주면 좋겠습니다.어제 학교를 지어달라는 여러 곳 중에 한 부지에 갔을 때 그곳에 난민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380가구가 있었는데, 사는 것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제가 보지 못한 곳에 이러한 곳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혹시 그러한 곳을 찾아서 지원 계획을 샤팍에서 세워주신다면 JTS에서 식량지원을 더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난민촌은 지원받기가 쉽지만, 국경 안쪽에 있는 소규모 난민촌은 지원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경 안쪽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더욱 어렵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답사해보고 지원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 수 있도록 놀이기구를 조금 더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캠프촌에도 아이들이 많으니까 마당에서 놀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지역을 선별해주면 JTS가 지원을 하겠습니다. 제가 말한 것만이 아니더라도 여러분들이 필요한 품목이 있다면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JTS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영향력이나 간섭이 없습니다. 모두 개인이 내는 작은 후원금을 모아서 이런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단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은 어떻게든 지원합니다. JTS는 모든 활동가들이 100퍼센트 자원봉사로 일합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자기 돈을 쓰듯이 아껴서 사용해 주시면 JTS와 함께 훨씬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혹시 JTS가 돈을 너무 아낀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신에 JTS는 정치적인 이유로 지원을 중단하지는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정말 후원자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활동하시는 거겠죠. 저희도 JTS와 같은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을 더 찾아보겠습니다.”
스님은 샤팍 대표와 미팅을 마치고 오후 3시에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 가지안테프에서 저녁 8시 15분에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는 이스탄불을 경유하여 내일 새벽 4시 40분에 델리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인도 델리에 도착한 후 오전에 히루 교수가 근무하는 비베카난드 서브마나티 대학을 방문하고, 국제불교행사가 열리는 호텔에 짐을 푼 후 오후 3시에는 한국문화원 원장님과 차담을 나누고, 오후 4시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오후 5시 30분에는 총영사님과 미팅을 하고, 저녁 6시 30분에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에 한국에서 열린 수현사 초청법회에서 있었던 즉문즉설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희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있어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중재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생겼을 때 제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항상 당신들 주장만 하셔서 화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막말로 정말 돌아버릴 것 같고 미칠 것 같아요. 평소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저한테 잘 해주시는데, 두 분 사이에 불화가 생겼을 때 제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게 문제에요. 주변 사람들은 부모님 사이의 문제는 너와는 별개이므로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자식으로서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게 너무 보기 싫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들어보니까 아무 일도 아니네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불화를 본인이 해결했다고 했잖아요? 해결이 되면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데 싸움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니까 답답합니다.”
“질문자는 밥을 한 번만 먹으면 되지, 왜 매일 밥을 먹어요? 밥을 먹는 것도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결혼은 했어요?”
“네, 했습니다.”
“두 부부 사이에 수많은 갈등이 있지만 이혼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서로 안 맞는 것이 많기 때문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는 게 많기 때문일까요?”
“서로 안 맞지만 참고 산다고 하더라구요”
“참고 산다는 것은 서로 맞는 게 많아서 일까요, 안 맞는 게 많아서 일까요?”
“그래도 서로 맞는 부분이 많으니까 같이 사는 것 같아요.”
“같이 살아서 이익이 되는 게 많을까요? 손해가 되는 게 많을까요?”
“이익이 되니까 같이 살겠죠.”
“어떤 일이 나한테 이익이 많이 되거나 손해가 많다면 스님한테 와서 이렇게 묻지 않아요. 상대방이 문제가 좀 있지만 그래도 이익이 많다면 스님한테 와서 안 묻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봤을 때 손해가 많다면 역시 스님한테 물으러 오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이혼을 합니다. 스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할지 물을 때는 이익과 손해가 반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의 머리로는 어떤 게 조금이라도 나을지 판단이 안 되니까 스님한테 묻는 거예요. 아주 작은 손익이라도 더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스님한테 질문하는 겁니다. 그런데 스님이 생각할 때는 그 나물에 그 밥이에요. 49 대 51이면 어떻고, 51 대 49이면 어떻고, 52 대 48이면 어때요? 어떻게 하든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제가 답을 아무렇게나 하는 거예요. (웃음)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해도 후회하고, 저렇게 해도 후회해요. 왜냐하면 손해와 이익이 반반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하면 같이 살 때와 비교했을 때 손실이 생기니까 후회하고, 이혼을 안 하면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생기니까 ‘그때 이혼할 걸’ 하면서 후회해요. 어떤 결정을 해도 후회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살면 이혼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이혼하면 같이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해요. 그래서 이 문제는 해결책이 없어요. 1퍼센트라도 이익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이 좋을 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결정을 못 하겠다고 하면 동전을 던져서 선택하면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스님이 인생의 중대사를 너무 가볍게 이야기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제 말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괴로움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문제는 이혼을 한다고 해결이 되거나, 이혼을 안 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이 모순을 봐야 합니다. 같이 살려면 갈등이 생기지 않게 문제를 풀어야 하고, 헤어지려면 미련을 안 갖도록 문제를 풀어야 해요. 같이 살아도 괜찮고 헤어져도 괜찮은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자꾸 이혼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생각하죠. 괴로움이 없는 방법을 찾는 관점에서는 이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혼을 해도 후회가 없고, 함께 살아도 후회가 없는, 그런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모님이 싸울 때 질문자가 안 들여다봐도 두 분은 잘 삽니다. 질문자가 해결해줘서 사시는 것 같죠? 질문자가 3년 동안 집에 안 간다고 해서 부모님이 이혼하시는지 한번 보세요. 두 분이 서로 싸우더라도 질문자가 모르는 부부 간의 이익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부부도 엄청나게 싸워요. 남편이 집안일에 관심이 없어서 부인은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하고 농사도 짓는데 남편이 밖으로만 돌아다니니까 늘 싸웁니다. 옆에서 볼 때는 ‘왜 저렇게 싸우면서 살까?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나중에 들어 보니까 남편이 출장을 가면 부인이 무서워서 잠을 못 잔대요. (웃음) 예전에는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면 제가 상담을 해줬는데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한 마디도 상담을 안 합니다. 서로 싸우면서도 같이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남의 인생에 간섭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같이 안 살겠다는 사람한테는 ‘그 정도면 그냥 살아라’ 하고 조언하고, 같이 살겠다는 사람한테는 ‘그러면서 왜 사느냐?’ 하고 조언하고, 늘 이렇게 남의 일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데, 두 분 사이의 내막을 잘 살펴보면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도 부모님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둘째, 질문자는 부모님의 불화에 관여해서 늘 해결을 해왔다고 말했는데, 해결이 되었다면 문제가 없어요. 관여해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부모님이 사이가 안 좋아서 어려울 때 자식이 그걸 해결할 수 있다면 중재해서 문제를 해결하면 되죠. 질문자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문제가 생기면 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니까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별 일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에요.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님이 싸우는 게 습관이듯이 질문자도 관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서로 헤어지면 다시 그리워하고, 그래서 만나면 다시 싸우듯이, 질문자도 부모님을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싸우는 것이 보기 싫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싸우고 나서 둘 중에 누구든 먼저 전화가 오면 얼른 가서 해결해드리세요. 큰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질문자가 굳이 관여를 안 해도 부모님 사이의 갈등은 해결이 될 수밖에 없어요.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면 저절로 해결이 된다니까요. (웃음)
질문자는 관여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도 있지만,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인 해결이 됐다고 볼 수 있어요. 만약 싸우시고 나서 화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면, 질문자는 ‘내가 가서 해결했으면 화해를 하고 돌아가셨을 텐데’ 하고 후회할 수도 있죠. 그래서 사실은 관여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지금 질문자의 수준에서는 부모님 사이에 중재를 해서 해결해드리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궁리하지 말고 부모님이 부르시면 가서 해결해드리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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