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방송, 영화, 연극인들의 모임인 '길벗'과 연탄 지원 봉사를 하는 날입니다.
일어나자마자 새벽 5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연탄 지원 봉사를 하는 곳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입니다. 구룡마을에 도착하기 전 잠깐 장례식장에 들렀습니다. 오랫동안 정토회에서 봉사하고 보시해 온 고(故) 이영주 보살님의 빈소에 들러 조문을 했습니다.
“보살님이 평소에 보시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셨어요. 돌아가실 때는 편안히 돌아셨습니까?”
“네, 편안히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아드님은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아드님과 함께 천도 기도를 함께 한 후 빈소를 나왔습니다.
차 안에서 작업복을 갈아입은 후 오전 10시 정각에 구룡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배우 조인성 씨, 임세미 씨, 조혜정 씨를 비롯해 노희경 작가님 등 많은 연예인과 방송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도착해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작업복과 마스크를 쓴 스님을 그제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추운 겨울, 아직도 연탄이 필요한 이웃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매년 따뜻한 손길이 이어져 왔는데, 작년부터 코로나19 탓에 후원도 줄고, 자원봉사도 발길이 끊겨, 구룡마을 주민들은 연탄을 아껴가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복지사각지대를 지원하는 JTS에서는 이 소식을 접하고 연탄 지원을 작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동네 주민이 나와 오늘 연탄을 배달할 집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길벗 모임과 함께 배달해야 할 연탄은 모두 3천 장입니다. JTS와 길벗 모임에서는 장애인, 중증 환자, 유공자 등 15가구를 선별한 후 가구마다 2백 장을 배달해 주기로 했습니다. 모두 어렵지만 특히 힘든 분들입니다.
연탄을 나르기 전 길벗 모임 참가자들이 스님에게 여는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오늘 밤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데, 마침 오늘 연탄 배달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연탄이 필요하신 분들이 오늘 밤부터 따뜻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연탄 봉사에 마음 내주시고,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해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인사했네요. 오늘 하루 다들 수고해 주십시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 연탄을 내려놓으면 좁은 골목에 엇갈리게 마주보고 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날랐습니다.
스님은 맨끝에서 연탄을 쌓았습니다. 좁은 공간에 허리를 숙여 연탄을 쌓아야 하는 고된 일이었습니다. 바쁘게 연탄을 이러 나르는 가운데 스님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이 보인다!”
스님의 목소리가 뒤로 전달이 되어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우리들 손이 보인답니다. 손이 보이지 않도록 빨리 움직입시다.” (웃음)
연탄은 한 가구마다 2백 장을 배달했습니다. 말없이 연탄이 쌓여가던 모습을 보던 주민이 2백 장이 모두 배달되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백 장이면 50일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어요. 하루에 4장씩 사용하거든요.”
지체 없이 다음 집으로, 그다음 집으로 배달을 계속했습니다. 연탄을 나르는 같은 동작을 계속하다 보니 중간에 허리가 아프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한 번씩 방향을 반대로 섭시다. 허리 운동도 되고 연탄도 나르고 일석이조예요.”
한참 연탄을 나르는데 김제동 씨도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언제 왔어요?”
“아무도 저를 못 알아봐서 조용히 일하고 있었어요. 동네 주민으로 보였나 봐요.” (웃음)
김제동 씨는 오늘 연탄 배달 봉사가 여덟 번째라고 합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질수록 까만 재가 묻은 얼굴들에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2시간이 지나 3천 장 배달이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온몸이 뻐근하지만 빈손으로 골목을 나오는 마음이 뿌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수고한 길벗 모임 참가자들을 격려 말씀을 주었습니다.
“연탄 배달을 하면서 저는 어릴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연탄배달 회사를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사업을 했으면 제가 돈을 좀 벌었겠죠. (모두 웃음)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습니다. 겨울이면 연탄을 땠어요. 그때는 전화도 잘 안 되니까 연탄 보급소에서 연탄 배달시키기가 굉장히 불편했어요. 연탄을 시키려면 보급소에 직접 찾아가서 얘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각 집에서 하루에 연탄을 몇 개 때는지, 이번에 주문한 연탄이 몇 개인지 이걸 딱 적어놓았다가 연탄이 떨어지기 며칠 전에 연락해서 ‘연탄 갖다 드릴까요?’ 묻고 배달해주면 어떨까?’ 그런 연탄 보급 회사를 설립하려고 생각했는데 절에 들어가는 바람에 회사를 못 차렸어요. (모두 웃음)
요즘 저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있습니다. 상추를 서너 시간 뜯고, 나서 제가 ‘이야, 이거 장에 팔면 몇 십만 원은 받겠지?’라고 얘기했더니 옆에서 ‘무슨 몇 십만 원이에요? 이, 삼만 원도 못 받아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너 시간 일을 했는데 2, 3만 원도 못 벌면 일당이 5만 원 밖에 안 된다는 거잖아요.
저는 강연료를 안 받고 있지만, 어디 가서 강연을 한두 시간 하면 몇 백만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농사짓는 걸 보고 강의를 하나라도 더 하지 고급 노동력을 썩힌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이 과연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강의든 농사일이든 똑같이 일을 하는 거잖아요. 노동의 강도로 비교하면 농사일이 더 힘든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강연은 그 가치가 너무 높이 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불균형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 수입이 몰린다고 볼 수 있어요.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수입이 많은 거라고 생각하면 나중에 거품 위에 살 수 있습니다. 공중에 붕 떠서 살 수 있어요.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면 ‘나는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봐. 나는 능력이 안 되나 봐.’ 이렇게 좌절하게 됩니다. 타인의 칭찬과 환호에 너무 들뜨면 자신을 착각하게 됩니다. 또 농사짓고 살면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또 침울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연예계 활동을 하다 보면 젊은 시절부터 인기가 많을 수 있어요. 그러면 자기가 뭐 대단한 존재인 줄 착각하고 인생을 거품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인기가 떨어지면 엄청난 좌절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시간 내서 봉사를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고 인기가 있어서 돈이 들어오는 데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나 그것이 꼭 나의 재능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지 마세요.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 상 나에게 좀 과다하게 온 것일 뿐이에요. 그러니 필요한 만큼 쓰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고, 또 시간 나는 대로 봉사를 하는 게 좋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돈과 교환하는 삶에서 벗어난다면 훨씬 더 자기를 잘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남에게 칭찬받고, 인기를 얻으려고 봉사하는 게 아니에요. 나이가 적든 많든, 병이 있든 없든, 인기가 높든 낮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구호활동을 하느라 오지를 많이 가봤습니다. 오지에 가보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걸 알 수 있어요. 한국에서 사람들이 ‘스님, 스님’하고 따르면 자기가 별 것 인양 착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거든요.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관점을 늘 간직하고 사는 것이 자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받으며 살아가는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좀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재능 있는 여러분들이 자기 재능과 관계없이 단순히 노동을 하는 연탄 봉사를 한 건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좋은 일입니다. 이곳 주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오늘 좋은 일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길벗 모임 대표인 노희경 작가님도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방금 스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제 말을 덧붙이고 싶지가 않네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길벗 모임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마음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곧바로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으로 내려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5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차에서 내려 퇴비를 비닐하우스 안에 뿌리는 일을 마저 했습니다.
“작업복 입은 김에 퇴비 뿌리는 일까지 마무리를 해버립시다.”
해가 지고 나서야 작업복을 벗고 손톱 밑, 발톱 밑에 낀 연탄재를 씻어냈습니다.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일요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88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하루를 소개하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새벽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연극, 영화, 방송 등 연예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마음공부를 하는 ‘길벗’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서울 변두리에는 아직도 판자촌이 일부 있습니다. 그곳에 오늘 연탄 3천 장을 지원하는 행사를 했는데, 연예인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고, 저도 함께 봉사를 하고 왔습니다.
판자촌이다 보니 차가 다니지 못하니까 한 줄로 서서 릴레이 방식으로 멀리까지 손으로 연탄을 날라야 했습니다. 장갑을 끼고 비닐 옷을 입고 연탄이 묻지 않도록 조심을 했는데도 나중에 장갑을 벗어 보니까 옷 안도 그렇고 온통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뉴스를 보니까 미국 중부 캔터키주 쪽에 토네이도가 불어서 큰 피해가 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사망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다 같이 그들의 명복을 비는 시간을 잠시 갖겠습니다. 사망한 분들의 가족들이 아픔을 추스르고 편안한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잠시 합장하고 기도를 한 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스님의 명상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합니다. 긴장하지 않고 한가한 마음을 냅니다.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마음으로 편안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움직일 일도 없고, 생각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호흡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호흡이 뚜렷이 알아차려집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멈추면 저절로 호흡이 아주 분명히 알아차려집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40분 간 명상을 해 보았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읽어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두북 농사팀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8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