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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109번째 강연이 대만 타이베이(Taibei)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필리핀 세부의 김재은 이문순 부부의 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스님 일행은 새벽5시에 이문순님이 정성껏 차려준 아침식사를 감사히 먹고, 하룻밤 숙소를 제공해 주신 김재은 이문순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인생수업 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세부에서 숙소와 아침 식사를 정성껏 마련해 주신 김재은 이문순 부부
그리고 포항에서 와서 강연준비와 스님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보시해 주신 백연우 임재은 부부에게도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백연우님이 “제가 포항 정토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기억하세요?”라고 묻자, 스님께서는 백연우님에게 “포항에서는 스님한테 얼굴 도장이 안찍히니까 얼굴 도장을 찍으려고 세부까지 왔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 포항에서 세부까지 와서 강연에 함께하고 식사 준비도 해준 백연우 임재은 부부
5시20분에 숙소를 나와 세부의 막탄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김명탁 사장님이 차량 지원을 해주셔서 김화진, 이문순, 홍미자 세분의 세부 정토불교대학생 분들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스님께 “저희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라고 인사를 했고, 스님께서도 “열심히 공부하세요” 라며 격려해 주시고 공항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 세부 정토불교대학생들. 왼쪽부터 이문순, 홍미자, 김화진님.
오전6시55분에 세부 막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8시4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 이전을 위해 새롭게 불사를 진행하고 있는 건물을 둘러보았습니다. 마닐라 도심의 메인 센터 지역에 있는 건물인데다가 창고로 이용되던 6층 공간이라 가격도 적절하고, 실평수가 100평인데 화장실이 건물 내부에 공용으로 마련되어 있어 실제 사용 면적도 넓고 해서 스님께서도 “잘 마련한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 필리핀 마닐라 정토법당이 새롭게 들어설 공간
아직 임대 계약만 한 상태인데 앞으로 법당 내부의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할지 이원주 대표님과 현장에서 더 회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JTS 사무실 공간도 이곳에 함께 마련해서 필리핀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교육 사업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닐라 도심에 정토법당이 새롭게 문을 연다면 앞으로 더 많은 활동들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이동해서 국수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한 후,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다시 이동했습니다.
마닐라 공항까지 필리핀 JTS 이원주 대표님과 송지홍님, 필리핀정토회 윤경숙 총무님이 함께 마중을 나오셔서 공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왔습니다.
▲ 공항 마중을 나온 필리핀 정토회 식구들과 함께
대만(타이완, Taiwan)은 동아시아에 있는 섬입니다. 면적은 35,980 km²로, 거주 인구는 약 2300만 명입니다. 타이베이(Taibei)는 대만 북부에 있는 도시로, 현재 대만의 수도입니다. 면적 272㎢, 인구는 약 269만명, 타이베이 분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외항으로 지룽이 있고, 신베이 시(新北市)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청이 일본에 패하면서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해 대만은 일본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일본으로 넘어간 후에 타이페이는 대만 총독부의 정치적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에는 많은 새로운 관청과 공무원의 주택이 생겨났고, 중화민국 총통부를 포함한 타이페이의 많은 건물들은 일본 점령기에 세워진 것입니다.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이 결국 항복하면서 국민당이 대만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이후 대만 성장의 임시 관청이 타이베이 시에 세워졌습니다. 1949년 12월 7일에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 밀려 중국 본토에서 쫓겨났고 타이페이는 중화민국의 수도로 선포되었습니다.
1996년 3월 23일 국민의 직접선거로 총통을 선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대만은 중국 국민당 장기 집권을 마감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는 민주진보당(民主進歩黨)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선출됨으로써 제헌 이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기도 하였으나, 2008년 이후 다시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가 당선되어 총통에 취임 및 재선하여 현재에 이르다가 얼마전 지역 선거에서는 다시 야당이 강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한국 교민은 총 4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짐을 모두 부치고 게이트 앞에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데, 세계 100회 강연에 또 한번의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스님께서 “이제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끝까지 간다” 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가 갑자기 연착이 되었다는 공지가 나왔습니다. 무려 1시간 40분이 연착이 되어서 원래 12시50분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2시30분에 출발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루에 한번만 운항하는 저가항공 비행기여서 더 빨리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에서 필리핀으로 갈 때는 태풍 때문에 강연이 취소될 뻔 했는데, 이번에는 비행기 연착으로 강연에 늦어질 상황이 된 것입니다. 연착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텝진들은 점점 긴장이 되어갔습니다.
원래는 오후 3시에 도착 예정이었던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 오후5시에 도착했고, 스님 일행 모두가 최대한 빨리 입국장을 빠져 나가기 위해 짐을 들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5시30분에 짐을 모두 찾고 나오니, 스님 일행을 최대한 빨리 강연장으로 이동시켜 주기 위해 강담규님과 김태훈님이 차량을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중 나온 두 분과 공항 앞에서 기념촬영만 간단히 하고, 스님께서 제일 먼저 출발하고, 이어서 나머지 스텝들이 뒤따라 이동했습니다.
▲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 마중을 나온 김태훈님(왼쪽)과 강담규님(오른쪽)
스님을 차량으로 모신 강담규님은 추월에 추월을 거듭하여 전속력으로 강연장을 향해 달려, 강연 10분 전인 6시50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강연에 늦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늦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국립 대만 사범대학교 강당입니다, 강연장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세수도 못하시고 곧바로 대기실로 이동하여 대만 교민사회의 지역 인사 분들과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짧게 인사만 나누고 곧바로 강연장으로 입장하셨습니다.
7시가 되자 환영 영상과 소개 영상이 이어졌고, 사회자가 “오늘 스님께서 비행기가 연착되었지만 무사히 강연장에 도착했다”고 하자 청중들도 큰 박수를 치며 무사히 도착한 스님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습니다.
오늘 대만 타이베이 강연은 총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가 연착 되어서 겨우 시간에 맞춰 왔다고 하시면서 반가운 마음을 전하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빗방울이 내리던데 저녁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저도 저녁을 못 먹고 왔어요. 공항에서 겨우 겨우 시간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원래 3시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인데 연착이 되어서 5시에 도착했어요.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교통도 밀리고 했지만 강연 시간 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청중들 큰 박수)
사실은 일찍 도착해서 강의 하기 전에 머리를 깍고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10분 여유도 없어서 그냥 나왔습니다. 어르신들이 와서 기다렸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만 뵙고 강연장에 들어왔습니다.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체의 금기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보는 자리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야, 도대체 이게 뭐야?” 이런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가 고뇌하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같이 찾아나가는 자리입니다. 자, 그럼 누가 먼저 시작해 보세요.”
그러면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타인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상처 받는 것 보다 요새는 타인에 상처를 주는데 마음이 갑니다. 살다보면 의도 하든 아니든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일본을 미워하는데 대만 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합니다. 일본에 대해 제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본이 싫으면서 아이에게는 일본 친구를 좋아하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생인데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같이 공부하더라도 제가 일주일 전에 공부한 것보다 하루 전에 공부한 대만 사람이 더 성적이 좋으면 속이 탑니다.”
“교환학생으로 대만에 온 지 3개월 되었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또 가족과 떨어져 살다보니, 외롭고 슬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만 친구나 한국 친구들과 사귀어도 집에 또 다시 들어오면 외롭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행복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올해 대만 유학 3년차인 여학생인데요, 처음에는 대만이 너무 좋고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이제는 대만의 안 좋은 것이 많이 보이고 하나하나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학위를 받으려면 몇 년 더 남았는데 좋은 감정으로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교환학생인데요. 여기 올 때 질문을 많이 생각했었으나, 다른 사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고민보다는 스님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 일로 관계가 불편해졌지만 관계를 회복하고픈 아내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남편이 거짓말을 정말 싫어해요. 결혼 전에 거짓말을 절대 하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에 제가 먼저 약속을 깨버렸거든요. 남편이 너무 화를 많이 냈고, 실망을 많이 했고, 그래서 한 동안은 사이가 별로 안 좋다가 다시 화해를 하고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지내왔어요. 그런데 상처가 너무 깊었는지 그 때 일을 계속 얘기 하더라구요. 그 때 일을 잊자고 얘기했는데, 갑자기 또 얘기하니까 솔직히 제 마음도 불편하고 화도 나고 미안하기도 한 그런 일이 반복됩니다. 제가 잘 얘기해서 위기를 넘기기는 하는데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여자 아이들이 어릴 때 성추행을 당해서 굉장한 상처가 되었을 때 이것을 트라우마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지요. 계속 따라 다니죠. 그래서 그것은 정신과 의사나,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분들이 치료를 하면 조금 도움이 돼요. 그러나 그것은 쉽게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의 몸에 상처가 심하게 나면 몸이 나았다 하더라도 흉터가 남잖아요. 그런 것처럼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마음에 상처가 흉터처럼 간직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 흉터를 누가 건드리면 평소에는 괜찮은데 다른 살보다 더 아픈 경우가 있는 것처럼 그 부분을 건드리면 그것이 덧나요. 그래서 마치 지금 상처 입은 것처럼 그게 확 일어난다 말이예요.
그래서 성추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심리치료를 해서 트라우마를 완전히 해소를 하지 않으면 연애하거나 결혼할 때 굉장히 어려움을 겪어요. 왜냐하면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할 때 서로 사랑한다는 행위의 동작 속에서 본인이 성추행 당했던 그와 같은 경험의 동작이 나타나면 갑자기 여성이 분노하고 화를 내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남자가 볼 때는 포옹하다가 갑자기 여자가 난리를 피우니까 ‘이 여자가 미쳤나?’ 이렇게 생각을 할 거잖아요. 그래서 관계가 불행해지는 거예요. 그러면 육체에 무슨 흔적이 남아있는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정신의 상처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치료를 해야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이 정신적 상처에 대해서 무지했어요. 그래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돌아와서도 몸둥이 치료만 하지 정신 치료는 안하고 그랬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상처 때문에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범죄를 일으키고 그랬단 말이예요. 지금 우리 사회도 똑같아요. 북한에서 남한에 한 3만명의 북한 탈북이주민(새터민)들이 내려와서 사는데 경제적인 지원은 해주고, 직장도 구해주고, 집도 구해주고 이런 것은 하는데 이분들에 대한 정신적인 치료는 안해줘요. 그런데 그분들이 왜 한국사회에 적응을 못할까요? 북한에서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을 받고 일하던 사람들이 중국에서 하루에 5달러도 부러워하면서 중국이 사회주의 천국이라고 하던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하루 일하면 하루 5만원, 50달러를 받는데도 왜 일을 안할까요?
다들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있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저 미친 놈들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정도로 적응을 못하는 거예요. 그들 내면의 세계에서는 적응이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 단순히 문화가 차이가 나는 것도 있지만 상처가 계속 덧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조기 축구회에서 북한사람이 축구를 잘 하니까,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 보고 ‘북한에도 축구공 있나?’ 물어본 거예요. 북한에 굶어죽는다고 하니까 그냥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이 북한사람이 화를 내고 주먹으로 때려가지고 경찰에 불려가고 난리가 났는데요. 이것은 어쩌면 우발적인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심리적인 상처란 말이예요. ‘내가 여기 와서 산다고 무시하나? 북한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축구공도 하나 없는 줄 아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여기 와서 약간의 차별을 받은 분노가 깔려있다가 이런 순간에 순식 간에 머리가 홱 돌아서 폭발하는 거란 말이예요. 이번에 세월호 같은 경우에도 심리치료를 하잖아요. 요즘에는 전세계가 이런 것을 알아서 치료를 해야한다고 알잖아요. 사실 육체 치료보다 심리 치료가 훨씬 더 중요해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은 다 다르다고 했잖아요. 남편은 그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신적인 치유가 안되는 거예요. 화해해서 잊자고 해도 또 그 생각이 나고, 또 그 생각이 나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죽을 때까지 참회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 30대도 안 되었는데 죽을 때까지 사죄를 해야돼요?” (청중들 웃음)
“항상 그 얘기가 나오면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이렇게 계속 해줘야 상처는 있지만 덧나지는 않아요. “아이고, 미안해” 하면 그 선에서 멈춰요.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지금 몇번 얘기하는 거예요? 사과 충분히 했잖아요. 내가 다시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이런 식으로 나가면 과거의 상처 때문에 계속 싸우게 돼요.
질문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은 가해자가 갖는 특징입니다. 가해자는 첫째, 가해한 줄을 모르고, 둘째, 가해한 줄 알아도 ‘미안하다’ 그러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피해자는 첫째, 내가 받은 피해는 100인데 사과하는 태도가 10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진정성이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문제제기를 했는데 가해자가 더 신경질을 내니까 ‘저것은 더 진정성이 없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그 때는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그때는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정말 미안했어요.’ 이렇게 자꾸 해주면 큰 문제가 안돼요. ‘내가 그것을 가지고 또 얘기를 해야 돼요?’ 이렇게 하면 해결이 안돼요. 빨리 이혼하는게 나아요.” (청중들 웃음)
“그러면 이제 계속 사죄를 하게 되면요?”
“사죄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문제가 붉어질 때마다 받아치지 말고, 그 옛날 얘기 또 나오면 ‘아이고,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여보, 아이고 미안해요’ 이렇게 하면 돼요. 그냥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돼요. (청중들 웃음)
질문자에게는 남도 아니고 본인 남편이잖아요. 질문자가 남편을 이해한다면, 그 얘기만 나오면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그렇게만 하면 돼요.
가해자는 사과 한마디로 끝낼려고 자꾸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오늘 술먹고 확실하게 해버려?’, ‘오늘 끝장을 한 번 내보자. 무슨 짓이든 다할께’ 이렇게 접근하는데 상처가 안지워졌기 때문에 이런다고 해결이 안돼요. 영상이 자꾸 떠오르니까 그래요. 어떤 의심할 일이 있으면 또 그게 떠오르고, 의심할 일이 있으면 또 그게 떠오르고 그래요. 질문자는 그때마다 ‘우리 남편 그때 상처가 참 심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해요. 잊혀지지 않고 상처가 재발할수록 질문자는 ‘아, 상처가 정말 뿌리 깊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사과가 갈수록 더 깊이 저절로 나와요. ‘아, 정말 그때 우리 남편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하고 이렇게 저절로 나와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별로 그런 마음이 아니네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그것을 가지고 그래? 어떻게 사람이 거짓말을 안하고 살아’ 하는 것이 질문자의 솔직한 마음인 것 같네요. 무슨 거짓말 했는지 한번 얘기해봐요.” (청중들 웃음)
“아, 안돼요…”
“그러지말고 말해봐요. 해버려야 이게 딱 해소가 돼요.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안돼요. 남자친구 만났지요? (청중들 웃음) 아니예요?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말을 못해요?”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요”
“돈을 좀 숨겨두었어요?” (청중들 웃음)
“좀 썼는데, 제가 안썼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럴 때는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여보, 내가 꼭 쓸 일이 있었는데 엉겹결에 그냥 내 방어벽이 나와서 그래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이렇게 자꾸 얘기하면 돼요. 그것은 앞으로 죽을 때 까지 의심을 받고 살아야 해요. ‘나는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간단해요.” (청중들 웃음)
“그런데 이 얘기를 남편이 듣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그런데 남편이 좀 쪼잔하기는 쪼잔한가봐요. 그런데 그런 쪼잔한 남자를 누가 선택했어요?” (청중들 웃음)
“제가요.”
“그러니까 그것을 감수해야지요.”
“제 과보지요.”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남편을 이해해야 돼요. 질문자가 생각할 때는 ‘그것 뭐 한번 그랬다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남편에게는 그 일이 처음은 아닐 거예요. 남편은 또 자기가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어쩌면 본인이 기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부모라든지, 자기가 좋아했던 누군가로부터 그 문제에 대해 굉장히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질문자의 거짓말이 더 큰 상처가 되었을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은 또 그런 까르마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 부인하고는 이런상처를 안 받으려고 해서 처음부터 질문자하고 약속까지 했는데도 ‘어떻게 너가 이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이 되니, 부인에 대한 믿음이 확 깨어져 버린거예요.
‘우리 남편이 그런 문제에 대해서 좀 민감하신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항상 ‘여보 미안해요’ 이렇게 해주면 좋아요. 보통 사람이면 10번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요. ‘저건 으례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반쯤 알아들으면 되거든요. 그러나 남편은 상처가 덧나 있어서 딱 부딪히면 민감해져요. 그러니까 그런 남편을 이해만 하면 큰 문제가 아니예요. ‘나한테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 남편한테는 큰일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하고 항상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여보, 미안해요’ 이렇게 해주면 큰 문제 아니예요.”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근심 가득했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한층 가벼워진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참석한 남편에게도 마음을 담아서 한마디 합니다.
“여보, 미안해!”
이 모습을 보고 스님도 웃으시고 청중들도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줍니다.
어느덧 7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2시간 4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강연을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모두 행복하게 살길 축원해 주시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재미있었어요? 희생을 하면 안됩니다. 희생은 좋은 게 아니예요. 너를 위해서 한 일이 나에게도 좋다 이렇게 희생이라는 생각이 없어져야 해요. 이렇게 너도 좋도 나도 좋은 길을 가야 합니다. 벌이 꿀을 옮겨주고 열매를 맺고 하는 것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이잖아요. 이것이 연기적 세계입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이 진리입니다. 이런 조건을 갖추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려면 궁금해 해야 해요. 궁금해 하는 자세가 바로 탐구입니다. 궁금해하는 자세로 임하면 재미가 생겨요. 그렇게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다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자의 안내로 다시한번 스텝들, 청중들이 스님께서 마지막 남은 세계 100회 강연을 잘 마치시길 기원하며 스님께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어서 앞서 강연장에 급히 들어오는 바람에 지역 인사 분들과 차담 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했고 기념 사진도 찍지 못해서, 다함께 무대 앞에 모여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강연 끝까지 함께해주신 주요 인사 분들을 소개해 드리자면, 우선 오늘 강연이 가능하게 되기까지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홍법원 주지 성준 스님과 도반 스님들 타이페이 대표부 김미옥 영사님, 중화민국 한인회 이희준 회장님, 민주평통 황희재 대만지회장님, 재 대한민국상공회 정일우 회장님, 천주교 박규우 신부님 등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입구에서는 책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마음이 한층 밝아진 청중들은 길게 줄을 서서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하면서 사인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께 선물을 건내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스님 건강하세요”, “세계100강 끝까지 잘 마치세요” 라고 하면서 응원의 얘기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준 봉사자들 전체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오늘 봉사자들은 타이베이의 한국 사찰인 홍법원에서 나와 자원봉사를 해주신 분도 있고, 인터넷 공지를 보고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함께 해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강연 전체 총괄을 맡아 준 김용애님과 실무 준비를 도맡아 준 김태훈님에게는 스님께서 직접 사인한 깨달음 책을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 모두 가장 수고한 두 분이 스님께 책을 선물 받자 열렬한 환호를 하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 대만 타이베이 강연 총괄을 해주신 김용애님(왼쪽)과 김태훈님(오른쪽)
김용애님은 앞서 공항 마중을 나와 운전을 해주신 강담규님이 남편입니다. 강담규님이 대만에 주재원으로 오면서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분인데, 중간에 남편이 중국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17년 간 대만에서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두 부부는 스님과는 오래된 인연이여서 스님께서 대만에 오실 때 마다 마중을 나와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이번에 대만 강연도 총괄을 도맡아서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 일행이 머물 호텔 숙소 경비도 두 부부가 보시해 주셨고, 강연장 대여 경비는 김용애 강담규 부부의 자녀들이 보시해 주셨습니다.
김태훈님은 중화민국 한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인데, 이번에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고 김용애님과 호흡을 맞추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봉사자들 모두 김태훈님이 이번 강연의 가장 큰 공로자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어서 봉사자 모두에게는 단주를 손목에 끼워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스님께 직접 단주를 선물 받았다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이 109일째 연속 강연”이라면서 “마음나누기를 함께하지 못하고 일찍 숙소로 들어갈테니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라”고 하시며 합장 인사를 하고 숙소로 이동하셨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마닐라에서 오신 한금화 동아시아 지구장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먼저 강연을 총괄한 김용애님은 “법륜 스님 유튜브 법문을 듣고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저 개인은 미약하지만 스님의 공덕과 봉사자들의 힘으로 오늘 강연을 무사히 치룬 것 같다” 라면서 “이번 강연을 통해 스스로도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며 보람있어 했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유럽 1강에서부터 어제 108강까지 매일 스님의 하루를 읽어오고 있는데, 스님의 강행군을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면서 “봉사란 나를 알아가는 공부임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홍법원을 다니면서 강연 준비 봉사에 참여하게 된 한 분은 “그동안 내 가족 챙기기에도 바빴는데 자발적으로 온몸으로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그동안 집과 절만 왔다 갔다 했는데 이번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을 위해서 사는 길도 있구나 발견했다” 면서 “이번 행사가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실무를 도맡아 준 김태훈님은 “강연 준비를 하다보니까 3kg이 빠졌다”고 하면서 “공항에서 스님 마중을 나갔는데 스님께서 제 손을 잡고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순간, 3개월 동안 3kg 빠진 그 고생이 한번에 다 녹아내렸다” 며 기뻐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봉사자 한 분은 “김태훈 사장님이 빠진 3kg이 저한테 와서 살이 쪘다” 면서 “너무 편하게 지내고 많이 못도와줘서 미안하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마음나누기를 다 듣고 한금화 지구장님은 “먼 거리에서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카톡으로만 실무 지원을 해주었는데도 이렇게 행사를 잘 치러주셔서 놀랐다”고 하면서 너무나 감사해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은 “이런 행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자기 것을 고집하지만, 점점 자기를 돌아보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면서 “오늘 강연을 하면서 모두들 일 따로 하고 수행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수행이 하나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면서 수고한 봉사자들 모두에게 격려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늘 하룻밤 묵을 숙소인 호텔로 돌아오니 밤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원고 교정과 한국에서 온 보고서들을 점검하고 일과를 마치셨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109번째 대만 타이베이 강연도 잘 마쳤습니다. 내일은 110번째 강연이 홍콩에서 열립니다. 홍콩에서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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