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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점안식 및 개원식
1. 타타가트 부드 비하르 (Tathagat Buddh Vihar) 법당
1) 법당명 : 타타가트 부드 비하르 (Tathagat Buddh Vihar)
2) 주소 : Ganga Darwaja, Angulibagh, P.O. Farrukhabad, Dist.Farrukhabad, U.P.
3) 원래 법당은 40년 전에 건축되었으나 이번에 UP 주 정부로부터 건축비용 전체 1,000,000루피를 지원받아 새 법당을 구 법당 옆에 신축
4) 주지 스님 : 비쿠 나그라탄 (Bhikkhu Nagratan) Mob. 88536-34081 암베드까르 불교 계열의 인도 스님
사진 1 : 타타가트 부드 비하르 법당 점안식 모습
5) 기존에는 한국에서 제작된 불상을 지원했으나 인도의 뜨겁고 습한 기후에 불상의 금박이 벗겨져 이에 대한 보수가 어렵게 되거나 이동 중에 파손되는 등의 문제점에 대한 대책으로 올해 2012년부터 인도 현지 (석불제작으로 유명한‘쮸나르’지역)에서 3.5피트 (약 1미터) 크기의 사암으로 만든 석불을 시범제작해서 지원함
6) 불상은 정토회 국제불교지원 사업 후원금으로 지원함
사진 2 : 타타가트 부드 비하르 법당에 지원된 불상
사진 3 : 타타가트 부드 비하르 법당 개원식 모습. 인도 현지 스님과 지역의 많은 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됨
2. 아다르시 부드 비하르 (Adarsh Buddh Vihar) 법당
1) 법당명 : 아다르시 부드 비하르 (Adarsh Buddh Vihar)
2) 주소 : Vill. Ratanpur Kirkich, P.O.Ratanpur Bara, Dist. Mainpuri, U.P.-205120 본가온에서 약 3Km 떨어진 위치
3) 창건자 : Rooplal Shakya. 퇴역 군인으로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음. 자식이 없어 외롭게 살았는데 법당을 세우게 되면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줄 것 같고 석가족 마을에 법당이 없어 짓게 되었다고 함
4) 2010년 4월에 공사 시작해서 현재 건축 완료. 법당 크기 17피트 * 21피트 (5.1미터 * 6.3미터)
사진 4 : 아다르시 부드 비하르에 지원된 불상
3. 개원법회 법문과 즉문즉설
1) 법당 개원에 대한 축하의 말씀
2) 부처님의 일생
3) 절 세우고 불상 모신다고 다 절이 아니다. 여기 와서 불교 공부도 하고 기도도 해야 절이다. 붓다담마를 알아야 한다. 나는 샤끼 (석가족)이다는 말만 하면 안 된다. 샤꺄 마을부터 절을 짓기 시작하고 다른 지역으로 넓혀가야 한다. 명상센터도 필요하고 많은 대중이 모여 수련할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특히 석가족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이 지역에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다. 인도 불교가 새로 시작되는데 샤꺄가 앞장서야 한다.
사진 5 : 아다르시 부드 비하르 야외 개원 법회 모습
4) 즉문즉설
(1) 대승과 소승 불교 어느 것이 더 높은 것인가?
- 높고 낮은 게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2) 부처님은 자아(아트만)을 부정하고 윤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자세히 알고 싶다.
- 불교의 목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습관에 의해 담배를 피는 것인데 불교는 이 습관을 오늘 바로 멈추는 것이다.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자아라는 게 있다면 멈출 수 없다.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아트만이 없다는 것이다. 아트만이 있다면 윤회를 멈출 수 없다. 담배 피는 습관이 있지 담배 피는 아트만은 없기 때문에 담배를 끊을 수 있다.
(3) 부처님께서 세상이 고통이고 감옥이어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뜻인지 다시 한 번 얘기해 달라.
-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다. 세상은 늘 이 두 가지가 되풀이된다. 좋은 거, 나쁜 거 합쳐서 두크, 고통이라 한다. 즐거운 상태인 ‘수크’와 괴로운 상태인 ‘두크’ 이 두 가지가 윤회하는데 이 두 가지로부터, 이 반복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즐거운 상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괴로운 것이 계속 도는 이것이 괴로움이다.
II. 이따와 불교 수련
1. 개요
1) 일시 : 2012년 1월 19일 (목) - 21일 (토) 2박 3일
2) 장소 : 유피 (U.P.) 주 이따와 (Etawah) 시
3) 참가자 : 이따와 도시와 인근 지역 석가족 불자 200여명
4) 법문 내용 : 부처님의 일생, 불교 근본 교리, 국제 불교 및 인도 불교 현황, 즉문즉설
2. 수련
1) 강의 : 부처님의 일생, 국제 불교 및 인도 불교 현황
2) 법문
사진 6, 7 : 이따와 불교 수련 모습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남이 만드는 것 아니네.”
좋아하는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내면 행복해진다. 만족할 줄 알 때 행복해진다. 기대가 크면, 바라는 게 많으면 불행해진다. 욕심내면 불행해진다. 그래서 부처님이 욕심을 버려라 하셨다. 바라는 게 적으면 만족하기 쉽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느냐, 불행하게 사느냐는 자기에게 달려 있다. 핵심은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불행해진다.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혼자 사느냐, 결혼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종교의 문제도 아니다. 신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들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종교인도 이해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 담마는 그대로 따라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꽃밭에 살면서도 꽃을 좋아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 내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지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해보자.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우리 모든 괴로움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법의 이치, 마음의 작용을 모르기 때문에, 쥐가 쥐약인줄 모르고 먹어 그렇듯... 그래서 고통은 어리석음, 무지에서 비롯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의 가르침, 마음작용의 법칙을 가르친다. 꽃을 보고 내가 좋아하면 내가 좋고 싫어하면 내가 싫어진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된다. 행복해지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아진다. 불행하다면 내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생각, 마음을 바꿔야 한다. 이 마음 작용을 몰라 자꾸 남을 탓한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이 곳 저 곳 다니지만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고통의 원인은 첫 번째 욕심이며 두 번째 화를 내는 것이며 세 번째 어리석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은 사람을 늘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마음을 버려라 한다. 그러려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쉴라, 사마디, 빤야)를 닦는다. 불자란 이런 사람이다.
사진 8 : 이따와 불교 수련에서 법문하고 계시는 법륜스님과 통역을 맡은 쁘리앙카 법우
3) 즉문즉설
(1) 전기도 없는 그 시기에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기록했나?
외워서 한 것이다. 입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기원전 1세기경에 빨리어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전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요약해서 신문 기사 쓰듯 정리해서 외운다. 암송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오히려 기록할 때 틀리는 것이 더 많다. 불경과 성경은 기록 방식이 달랐다. 성경은 예수님 돌아가시고 80-10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 ‘마태’라는 사람이 어른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기록한 것이 마태복음. ‘누가’라는 사람이 들어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다 같은 방식이다. 불경은 부처님 사후 바로 그 해 왕사성 (라즈기르) 칠엽굴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모여 경을 결집했다. 마하가섭이 사회를 보고 경은 아난드가, 계 (쉴라)는 우팔리가 초안을 내었다. 아난드가 먼저 말한다. “내가 제다바나에 있을 때 이렇게 들었다...”라고. 다른 500명이 듣고 맞다 하면 경전 하나가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이 이의 제기하면 수정한다. 빠졌다하면 보충한다. 500명이 편집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100년 후에, 200년 후에 한 번씩 수정하게 된다. 현재는 빨리어로 기록된 경전이나 처음에는 모두 암송했다. 400년 후 빨리어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정확하나 100%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외우다보면 잘못 할 수 도 있다. 기록하고 번역하다보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분적인 것이다. 단어는 틀릴 수 있으나 줄거리는 그대로 전해내려 왔다.
(2) 전생과 내생에 대해 알고 싶다. 내생에 어떻게 되는가?
사진 9 : 전생과 내생에 대해 질문하는 힌두 사두
- 질문자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가?
- 모른다.
-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죽은 뒤에 일을 알아서 무엇 하려고 그러느냐? 이건 믿음에 관계된 얘기이다. 조그만 쥐도 신이라고 믿으면 신이 된다. 원숭이도, 나무도. 그건 개인의 믿음에 관계된 것으로 자유이다.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따라서 담마가 아니다. 내생, 전생, 하늘도 마찬가지이다. 믿음, 종교, 신앙은 개인의 자유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법칙이 있고 확인할 수 있다. 무엇을 믿느냐는 개인의 자유이다. 무슬림은 알라를 믿고 크리스챤은 여호와를 믿고 힌두는 크리쉬나, 가네쉬 이런 신들을 믿는다.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개인의 믿음은 그 사람의 자유인 것이다.
(3) 석가족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알려 달라.
- 경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설명해줌
(4)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 다른 테라밧타 국가에서 온 스님들은 법륜스님과는 다르다. 그들은 절만 짓고 교육이나 법문 등을 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과도 교류가 없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 서로 다를 뿐이다. 누가 더 훌륭하고 나쁜 게 아니다. 그냥 서로 다르다. 좋다 나쁘다는 본인이 결정한다. 본인이 법륜스님이 하는 게 좋아 보이는 것이다. 본인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5) 한국 불교는 어떤 것인가? 선불교이다.
사진 10 : 한국 선불교에 대해 질문하는 한 수련 참가자
사진 10 : 한국 선불교에 대해 질문하는 한 수련 참가자
4) 정리 법문
부처님 법은 바로 지금, 여기, 나에 대한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날씨가 춥고 더운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날씨 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다. 좋고 나쁜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내 마음에 들면 좋은 날씨이고 내 마음에 안 들면 안 좋은 날씨이다. 날씨가 어떻든 거기에 대응해 살 수 있을 때 날씨로부터 자유롭다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날씨든 사람이든 거기에 구애받지 않을 때 진정한 자유이다. 바깥 환경이 어떻든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게 자유이다.
서로 다를 뿐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평등이고 이렇게 하면 평화가 온다. 일단 자기가 행복해야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한다. 계율을 지키면 가정도 화목하고 우리 사회가 평화로워진다. 이것이 가장 근본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존중해야한다. 남녀, 종교, 카스트 이런 것들과 관계없이. 서로 다를 뿐 우열이 없으니 서로 존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