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소식

2006년 정토불교대학 졸업생 권옥련 님의 '화해의 기술'

 

부산역에 도착해 핸드폰으로 미리 연락해 두었던 권옥련님께 전화를 걸었다.
벌써 도착해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눈에 알아본 인상.
권옥련 님은 30대라고 해도 믿을만큼 고운 미모가 돋보이시는
.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부산역을 빠져나가면서 간단한 소개를 했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했죠.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벌써 18년째에요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엄마랍니다.”

 

또한 그녀는 지난 2006 정토 불교대 졸업하고,
2007
년부터 동래 정토회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권옥련님은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어릴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듣고, 공부 잘하면 그저 최고인 알았다.

결혼도 부모님께서 하라는 대로 중매로 소개받아

안정적인 남자 만나 살면 되는 알았다.

 

“부모님 말씀대로 살면 되는 알았는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서 나이 마흔이 넘자 나를 모르고,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데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나름대로 대학까지 나와 살아가는데 ' 나는 이럴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법문을 들으며 착한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바쁜 일상과 뒤에 찾아오는 무료함,

부부간의 대화 부족으로 결혼생활은 점점 힘들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울산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곁을 떠나

아이들과 함께 언니들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를 돌아봐야겠다 싶어서였다. 이대로 살면 같았다.

 

 

2005 , 지인의 소개로 집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동래 정토회를 찾아가 법문을 접하게 것은 예기치 않은 행운이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 스스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오래 쌓여있던 섭섭함과 참아왔던 감정들은

하루 아침에 해소할 없었다.

 

결국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2006,

수련프로그램인 깨달음의 장에 다녀와 이혼을 작정했다.

자유롭기 위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변 어떤 사람들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동래 정토회 도반의 소개로 김용주 변호사를 찾아갔다.

구체적인 이혼 송사에 대해 물으려 찾아간 것이었다.

 

김용주 변호사는 “깨달음의 장에도 다녀오셨으니까 알지요? 그만하세요.

마디를 건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깨달음의 장’에 다녀올 것을 권했다.

그리고 문경 정토 수련원에 전화를 걸어 접수까지 즉시 해주었다.

 

남편은 수련을 마치고 돌아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깊은 화해의 몸짓이었다.

현재 그녀의 남편 역시 울산 정토회에서 수요법회에 나간다.

문제를 해결 없지만 이제 실마리를 찾아 조금씩 움직이는 중이라고 했다.

 

 

 

“저는 남편에게 여성스럽고 상냥하게 못했어요.

특히 예전엔 남편이 말을 하면 듣고는 있었지만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었죠.

그래서 말을 들으면서도 화가 났어요. 생각과 달랐으니까요.

지금은 사람의 말을 듣되 생각과 관계없이

사람의 생각은 저런 거구나 하고 듣기를 연습하고 있어요.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 만으로도 화해가 되고,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푸는 길인 같다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닿았다.

 

“요즘은 생각, 느낌이 어떻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예전에는 표현하지 않고 나를 몰라주나? 하는 섭섭함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기도도 되었어요. 잘못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법문을 듣고, 기도를 나가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죠.

, 나의 이런 점들이 이런 문제를 만들어 것이구나.

불교를 공부하면서 무엇보다 나를 알아간다는 기쁨이 있었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면서

생활이 안정적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래된 보살님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도움을 많이 받아요.

제가 원래 말이 별로 많지 않았었거든요.

나누기를 하면서 내가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참았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요.

 

 

“저희 가까이에 기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이 사셔서

그분 덕에 매일 법당에 나와 기도하게 되었어요.

덩달아 저도 집중해서 수행을 있었던 같아요. 억수로 행운이에요.

 

특히 그녀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자신을 많이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었단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할 때도 많고

생각을 알아주지 못하는 도반에게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30여분의 시간이 훌쩍 흘러, 지하철이 어느덧 지상으로 나왔다.

동래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래 정토회가 자리 잡고 있다.

‘미녀 항시대기’건물 4층에 자리한 동래정토회로 들어가는 1 입구는

유흥업소 간판이 하니 자리해있다.

그래서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기도 한단다.

계단을 올라 4층으로 올라가자 예쁜 글씨로 단장한 게시판이 눈에 띈다.

사무실로 올라가자 백일기도 과제인 오복이 뜯기가 한창이었다.

부산 아지매들이 걸죽한 사투리로 반겨주신다.

 


 

"우린 공부를 못해서 3년만에 불교대 졸업했어요.

졸업하고 오래된 사람들이라 별로 얘기가 없어요."

 

일을 하고 계신 보살님들은 동래 정토회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분들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럼 없고, 편안하게 말을 건네신다.

 

"이거 언제 나오는 거에요? 어디에 나오는 거에요?"

보살님들 질문이 쏟아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점심 공양을 했다.

오늘의 메뉴는 해초가 들어간 떡국.

한끼 먹고 나니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다.

입재식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함께 하는 도반들 속에서 활짝 웃는 권옥련 님의 얼굴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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