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이 단식을 마감했답니다.
시작일2003.11.17.
종료일200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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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그래도 부산시청앞 안 떠날것”
지율스님 고속철 관통반대 45일 단식마감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
올들어 부산시청 앞 광장은 여느 도량 못지않게 치열한 수도장이 됐다. 천성산의 뭇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사르며 정진해온 지율스님 때문이다.
경부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에 항의, 지난 봄 38일간 단식하며 천성산의 뭇생명을 위해 참회와 기도를 계속해온 그는 그 뜨겁던 여름, 38일간 매일 3000배를 올린 것에 이어, 10월 초부터 다시 음식을 끊었다. 17일로 단식 45일째, 단식 세계 기록이다.
그런 지율스님이 17일부터 단식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도롱뇽을 소송 당사자로 경부고속철 공사 중지 가처분 소송을 하는 17만여 도롱뇽소송인단의 구명운동이 직접적인 계기지만, 이대로 세상을 떠나서는 안되겠다는 지율스님의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새롭게 천성산지킴이가 된 17만 시민과 함께 40일이 넘도록 사람의 생명이 시들어가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정부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것이다.
단식 40일을 넘긴 지난 13일과 14일, 부산시청 앞에서 만난 지율스님은 작고도 까칠했다. 가늘어진 목은 작은 머리를 겨우 지탱하는 듯했고, 여윈 몸은 누더기 승복조차 힘겨워하는 듯했다. 식어가는 차가운 손…, 간혹 어지럼증을 호소한 지율스님은 그날 낮기온 20.1도를 기록한 부산날씨가 추운지 자꾸 햇볕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단식하고도 밤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결코 드러눕지 않는 것은 천성산의 뭇 생명을 살리고 말겠다는 지율스님의 결심에 몸이 처절하게 공명해 준 탓일까. 기자가 단식현장을 찾은 날, 놀랍게도 그 몸을 하고도 그는 노트북 앞에 앉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당신은 우리가 떠나 보낸 희망의 배에 가득히 살상의 무기를 싣고 돌아왔습니다. 아, 그러나 그것만은 마셔요. 이 땅에 뿌려지는 전쟁과 살상의 무기를 거두워 주셔요. 기다림은 우리 몫이었지만, 님이 조금만 주의하고 자신의 발 밑을 내려 본다면 님이 밟고 서있는 곳은 바로 피투성이가 된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빛이 되고 소리가 되었던 어두운 밤의 기억을 당신은 정녕 잊고 있는 것입니까.”
단식 중 내내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기도하며, 천성산 홈페이지(www.cheonsung.com)에 글을 올리고 도롱뇽 소송 캠페인 버튼을 나눠주고 소송인단을 모집해 온 그는 단식을 풀어도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머잖아 첫 공판이 시작되는 도롱뇽 소송도 준비해야 하거니와, 공개 모집을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만에 17만을 넘어선 소송인단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주 고속철도공단이 천성산 터널 공사를 계약하겠다고 합니다. 공사를 기정사실화하고, 발주받은 기업에 공을 넘기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한, 17만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있는 한 천성산의 뭇생명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
기사 게재 일자 2003/11/17 | 기사 저장 시간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