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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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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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년 프로그램

바라지 전국 모집

기간 : 2026년 8월 / 1박 또는 2박 또는 부분참여 가능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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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8기

기간 : 8월 1일(토) ~ 8월 19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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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 : 도심 속 절캉스 / 1080배 정진 / 명상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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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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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엄마가 된 청춘, 청년을 품다

따르릉 “소정아 문 앞에 떡볶이 두고 왔다” 임신한 정소정 님에게 자주 걸려 오던 전화 중 하나입니다. 15년 전, 앳된 얼굴의 정소정 님은 마산 법당을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이후 열심히 법당 활동을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머리에 하나둘 흰머리가 생겼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배 도반들은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15년 전 마산 법당을 환하게 밝혔던 정소정 님과 함께 웃고 사랑했던 선배 도반들. 그들이 만들어낸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3년째 불교대학 청년반 담당을 맡고 있는 정소정 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024년 3.15의거 기념탑에서 6.13만일 대법회 평화 활동 지금 여기서 행복하자 고등학생 때부터 여러 책을 읽었는데, 지나고 보니 대부분 불교 관련 서적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법륜 스님 책도 접했습니다.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불교 교리보다 일상적인 주제로 질문을 받고 답하는 스님의 말씀이 신선했습니다. 법륜 스님을 알고 난 뒤, 2009년부터 매주 수행 법회가 열리는 대구 법당, 해운대 법당, 동래 법당까지 찾아가 법문을 들었습니다. 마산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다 마산에도 법당이 있다는 걸 알고, 2011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기 전부터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 과정에서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않으면 출가해서도 행복할 수 없다”라는 스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언니는 첫째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반면 둘째는 아들이기를 바랐던 부모님은 제 출생에 실망이 컸습니다. 저를 남자아이처럼 머리도 짧게 자르고 옷도 그렇게 입혔습니다. 아버지는 참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고 욱하는 성질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아버지가 망치로 집안의 살림살이를 다 부수면 언니랑 울면서 말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출가하고 싶었던 이유가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깨닫고 ‘지금 여기서도 행복해 보자’ 라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수행으로 불안을 잠재우다 늘 방황했습니다. 마음은 불안했고 자존감은 낮았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부정적이었으며 근심 걱정도 많았습니다. 불교대학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도반들은 부모님 세대였습니다. 나누기를 통해 부모의 갈등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도 얘기하면서, 부모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11월. 정토사회문화회관 청년 페스타 봉사활동.left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평화재단 청년포럼에서 열었던 청년학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법륜 스님 책 《방황해도 괜찮아》로 나누기를 하고 ,《새로운 백 년》으로 북콘서트도 열고, 법륜 스님과 함께 경주 역사기행도 갔습니다. 활동을 이어가면서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왔습니다. 청년학교 운영위원 전국 모임에서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그날 부처님, 저는 편안합니다. 부처님, 저는 행복합니다.라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2011년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해오고 있었지만, 스님께 기도문을 받은 뒤 더욱 정진했습니다. 이후 불안감이 줄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내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자 바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법륜 스님의 세계 100강과 함께한 새벽기도 2014년 8월 26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세계 111개 도시에서 115일간 법륜 스님의 연속 강연이 있었습니다. 편두통이 심한 스님이 무사히 강연을 마치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강연 기간 동안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언니와 또 한 명의 도반과 함께 매일 법당에 나와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쌓은 정진의 힘이 지금도 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115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던 어느 날, 셋이서 나누기를 했습니다. 언니는 열쇠로 법당 문을 열 때마다 무섭고, 저는 누군가 와서 해칠 것 같아 무섭고, 다른 도반은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섭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기도하는데도 셋이 일으키는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두 마음이 지은 상임을 깨달은 뒤부터는 무섭다는 생각 없이 담담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8월 26일12월 28일 115일 새벽기도 짜이 잔을 버리며 집착을 내려놓다 2014년 인도 성지순례 때 일입니다. 시장에서 법륜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짜이를 마셨습니다. 그때 저는 용기를 내어 스님이 드신 짜이 잔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찻잔을 볼 때마다 스님과 함께했던 인도 성지순례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도반이 자기 것도 가지라며 잔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탐났던 것은 찻잔이 아니라 스님의 잔이었는데, 속도 모른채 자기 잔을 건넨 것입니다. 사실 그 도반에게 가장 많은 분별심을 내고 있던 터라 내키지 않았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두 찻잔이 깨지지 않도록 천에 고이 싸서 가방 제일 안쪽에 넣어 두었습니다. 순례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귀국해서 가방을 풀었는데, 어느 잔이 스님의 잔인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애지중지 싸 들고 온 두 잔을 모두 버렸습니다. ‘아 이것 또한 집착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2014년 1월 인도 성지순례 바람에 흩어 사라진 미움과 원망 청년 활동을 하며 만난 남편과 2016년 결혼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저희가 결혼하기 1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를 겪었습니다. 의지하던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는 신혼 초 저에게 우리 아들은 나한테 남편이고 아들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습니다. 기댈 곳이 아들밖에 없었겠지만, 아들만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참 미웠습니다. 갑상샘에 이상이 있다는 제 말에는 위로나 걱정 한마디 없고, 남편 보약만 챙기는 모습을 보며 서운함이 컸습니다. 시어머니 댁에 가면 늘 마음이 상했지만, 저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니 차마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소정이는 시어머니 문제만 해결하면 보살이 될 거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제게 큰 숙제였습니다. 2026년 4월 정토사회문화회관 학사 페스티벌.right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곱게 자란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습니다. 8남매의 맏이였던 시아버지는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고, 술과 도박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낳기 전 첫 아이를 난산으로 하늘나라에 보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흰색 천에 덮여 작은 두 발만 보였다고 합니다. 그 이듬해 낳은 자식이 저희 남편이었으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을까 싶었지만, 그 마음이 제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4년 만에 두 번의 유산 끝에 아이를 낳고 보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첫 아이를 잃고 난 뒤 낳은 그 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점점 몸이 약해져 저와 종종 병원에 갑니다. 햇살이 따뜻하고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던 어느 날, 병원을 나와 함께 걷는데 시어머니가 달리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의 시어머니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제 분별과 기억으로 만들어 낸 ‘미운 시어머니’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꺼내 미워하고, 다시 접어 두었다가 또 꺼내 미워하는 일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제 마음속에 있던 시어머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시어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날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 ‘미운 시어머니를 가을바람에 조용히 날려 보냈습니다. 바람에 흩어져 사라지듯 미움도 원망도 내려놓고, 이제는 시어머니를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2024년 8차 죽림정사 전법 교육생 간담회 가족에서 도반이 된 남편과 언니 저와 자라온 환경이 정반대인 남편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로 시어머니가 매일 안아주며 키웠습니다. 그렇게 귀하게 자랐어도 사회생활 하며 겪는 스트레스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시어머니처럼 우울증이 올까 걱정했습니다. 깊은 대화 끝에 남편은 지난해에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매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08배를 놓친 날에는 다음날 200배 절을 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수행이 남편의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해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언니는 2011년 제가 경전대학에 진학할 무렵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정토회 활동을 같이하다가 청년학교가 시작되면서 언니는 창원 지역 담당을 맡았고, 저는 운영위원으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둘 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언니는 울산에서 저는 창원에서 청년 불교대학 반 담당을 맡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인도 성지순례도 다녀오고 같은 소임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자매라는 인연을 넘어 같은 길을 걷는 진정한 도반이 되었습니다. 2014년 1월 인도 성지순례 언니와 함께 친정 엄마 같은 보살님 제 마음의 친정 엄마 같은 도반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시 예불 당번으로 공양미와 차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들고 법당으로 가던 중 문턱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바닥에 쏟아졌고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에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그때 공양간에서 공양 준비하던 그 도반이 조용히 오더니 다시 갖고 오셔요. 제가 치울게요 하며 묵묵히 바닥을 정리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놀란 마음은 금세 편안해졌습니다. 꾸중도 핀잔도 없이 제 마음부터 보듬어 주던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법당 활동에서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저와 도반들을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유산으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을 때, 임신으로 몸이 무거울 때도 공양을 차려주고, 반찬과 간식을 준비해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습니다. 부처님 법을 전할 때도 먼저 상대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마음이 전달되어 상대의 마음이 열릴 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그 도반에게 받았던 따뜻한 챙김은 제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 제가 청년 불교대학에서 반 담당 소임을 하는 가장 큰 원천이 되었습니다. 제가 받았던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이 그 도반에게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2019년 5월, 마산 창동 거리. 도반과 함께 한 JTS 거리 모금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라며 아이를 낳고는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모둠활동으로 JTS 거리모금을 나갔습니다. 멘트를 읽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제삼 세계 어린이들을 잊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세상을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했고, 2024년 8차 전법회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청년 불교대학 돕는이를 시작으로 진행자와 반 담당을 맡았는데, 마음이 힘든 청년들이 많습니다. 늘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학생, 부모에게 상처받고 단절하고 지내는 학생 등 정신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많이 공감합니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불안할까’ 청년들이 괴로움 없이 가볍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원이 생겼습니다. 2026년 1월 1일 봉림사지에서 새해맞이 통일 염원 천배 정진이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산속이라 춥고 어둡고 무섭다는 생각과 온갖 마음이 일어났지만, 절을 하면 할수록 간절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앞으로도 청년 불교대학 소임을 계속하며 모든 청년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발원합니다. 2026년 1월 1일 봉림사지 통일 염원 천배 정진 20대에 정토회를 만나 전국을 누비며 활동하던 열정과 2011년 천일결사 입재 후 꾸준히 정진해온 내공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속 깊은 선배의 수행담을 듣는 듯했습니다. 어린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인터뷰 내내 즐겁고 활기찼는데, 그 분위기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오랜만에 밝고 힘찬 에너지를 주는 분을 만나 편안하고 행복했습니다. 잔잔히 여운을 남긴 정소정 님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기도하면 바윗돌만 한 재앙이 돌멩이만 하게 온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의 진정한 뜻은 바위처럼 크게 느껴지는 일도, 수행 정진하면 여여하게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글손해경 희망리포터 편집윤정환

창원지회 2026.08.05. 23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_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_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의 무능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김수영 사진김민성 편집황재윤

통일 2026.07.24. 1,312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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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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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