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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내 삶의 보석!!
유럽지회 독일모둠 모둠장인 최은실 님은 희망리포터가 불교대학 진행을 맡았던 학생의 어머니입니다. 불교대학 나누기 시간에 가끔 어머니와 가족 이야기를 나눠 주어 주인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하며 최은실 님도 울고, 저도 울었습니다. 반복되는 힘든 시련을 정토회 도반과의 인연으로 스스로의 수행으로 이겨내고, 지금은 불법의 감사함을 되갚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최은실 님. 그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야당 정치가의 막내딸 저는 야당 정치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모진 고문과 투옥을 당했고, 가택 연금까지 당했습니다. 집에 두 명의 형사가 새벽부터 밤까지 상주하기도 했습니다. 삼촌, 고모와 한 방을 써야 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정치 지망생들로 개인 공간이나 사생활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와 생계유지로 늘 바빴습니다. 저는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말썽 없이 생활해 어머니에게 칭찬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과 어둠을 안은 채 부모님의 사랑을 갈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뇌졸중과 의료 사고로 인해 독일행 아버지는 민주화된 정부에 등용되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하루아침에 가세가 급속도로 기울었습니다. 의료 사고로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는 지인의 권유로 1997년 독일로 건너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주치의를 소개해 준 분의 의대생 아들이 당시 통역을 맡았고,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저와 결혼했습니다. 통일의병 활동 중 2025년 평화 챌린지 한국보다 자유로울 거라 예상했던 독일에서의 결혼 생활은 달랐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남편과 저는 환경, 문화, 성격 차이가 점점 커져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은 제 아버지와 똑같이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으며 자기주장이 강했습니다. 저도 어머니처럼 늘 남편에게 맞춰야 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낯선 독일에서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동안 저는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매일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급기야 큰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제 질환에 마땅한 치료법을 찾을 수 없었던 의사는 풍토병으로 진단하며 고국으로 돌아가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독일로 남편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여러 병원에서 치료받고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몸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상생활조차 어려워 매일 누워 지내다가,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겠다는 생각에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명상과 수련을 했고, 요가 강사로도 일했습니다. 남편은 독일에서와 달리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만나며 늘 바빴습니다. 독박육아는 여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남편에게 가정에 더 많은 시간을 내라고 요구했지만, 일을 핑계로 밖으로만 돌았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나날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10년을 보낸 뒤 남편의 사업마저 실패하면서, 빈털터리로 독일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4년 만인 대법회에 유럽지회 도반들과 정토회와의 인연 2019년 다시 독일로 이주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간간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가 독일에서 불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에 등록했고, 불법을 공부하며 저의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하나씩 배웠습니다. 그러던 중 암을 진단 받았습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수술까지 2년에 걸친 혹독한 치료 과정은 매일 제 한계를 시험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토록 가혹한가? 내가 전생의 무슨 죄로 이렇게 고통을 받나? 내가 정말 잘못 살아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즉문즉설을 통해 법륜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머리 위에 간판이 떨어져 피가 철철 나는데, 내가 왜 이 길로 왔을까? 좀 더 늦게 왔더라면… 내 앞사람이 더 빨리 갔더라면…하며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울고만 있을 거냐고 혼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병에 걸린 이유가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에 불안해하지도 말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제 마음을 살피며 치료를 잘 마쳐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매일 밤 울며 잠들었지만,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과 용기로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2024년 6월 13일 만인 대법회 통일 기도 후 보석 같았던 시간 암 치료는 힘들었습니다. 독한 항암제를 맞고 집에 오면 기운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빙빙 돌아 누울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더 지옥 같았던 건 마음이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고통과 화, 슬픔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수업은 제 마음과 힘든 상황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였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화면을 끄고 누워서 수업에 참여하다가 나누기할 때만 겨우 일어나 앉기도 했지만, 수업에는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 핑크색 울 모자를 쓴 제게 도반들은 “색이 잘 어울려요, 예뻐요”라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독일에서 온라인으로 만난 도반들의 수행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최은실 님을 보면 제 문제는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할 때 용기가 더 났습니다. 매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아침 정진 때 저를 위해 기도한다고도 했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이 고마움을 갚을 방법을 찾다 전법 교육을 받았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보라 당시 둘째 아들이 한창 사춘기였습니다. 방황하며 학교에 가지 않고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파서 누워 있는데, 어떻게 아들이 옆방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자판을 두드려 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울면서 도반에게 힘들다고 나누기했고, 법사님과 상담했습니다. 법사님은 “아이의 마음을 좀 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다 갑자기 독일로 와서 낯선 환경에다, 엄마가 병 때문에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마음은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불안해 자꾸 게임의 세계로 도망가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나도 이렇게 두려운데 아이는 얼마나 더 두려울까. 나도 독일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데, 아이는 얼마나 더 힘들까. 그래서 그렇게 도피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제야 아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법사님과 도반들의 도움으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2025년 9월 뒤셀도르프 법륜 스님 즉문즉설 강연 수행이 가져온 변화 지나고 보니 저의 괴로움은 모두 제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괴로움의 가장 큰 원인은 집착이었습니다. 제가 옳다는 생각, 무엇인가를 꼭 달성하고자 했던 집착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제가 노력한 만큼 그 보답이 꼭 돌아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저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졌습니다. 나이가 들고 병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은 몸도 그저 지금의 나임을 순순히 받아들이니 괴로운 마음이 사라지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많이 힘들고 우울할 때도 그냥 처져 있지 않고 모둠장 일에 집중하다 보면 우울감이 사라집니다. 수면 장애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그냥 할 일을 하다 보면 잠 못 이루는 시간을 괴로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전에는 우울증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했는데 온라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말주변도 늘었습니다. 많이 밝아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저와 성격이 너무 다른 남편을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시작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하니 남편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연구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의 행동이 덜 거슬렸고 화도 짜증도 줄었습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2026년 독일모둠 첫 오프활동 아이들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엄마, 왜 그렇게 아빠의 쓸데없는 농담에 웃어줘?” 아빠가 착각하니 그런 쓸데없는 농담에 웃어주지 말라고도 합니다. 제가 “진짜 웃겨서 웃는데”라고 하면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합니다. 전에는 남편이 미웠기 때문에 그런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남편의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아이들과 남편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정토회 이야기를 꺼내면 아이들은 듣기 싫다며 귀를 막고 지겨워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변하니 딸이 정토불교대학에 관심을 보였고, 지난 학기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경전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어 아들도 이번 학기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무런 권유도 하지 않았는데 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스스로 불교대학에 입학하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예전에는 제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못 미치는 제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웠습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늘 후회하고 원망했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고 스스로를 사랑합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괜찮습니다. ‘많이 힘들었구나. 괜찮아, 내일은 좀 좋아지겠지, 좀 쉬어’ 이렇게 제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입니다. 수행도 그렇게 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합니다. 2024년 해외지부 회원들을 위한 경주남산 탐방 독일 모둠장 봉사 독일 모둠은 독일 전역에 살고 있는 한국인 40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대부분의 활동을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지역적 한계가 있습니다. 모둠장으로서 모둠원들이 법회, 정토회 활동, 행사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안내합니다. 정토회와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는 전법 활동도 합니다. 이번 학기에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생과 전법활동가 신청자, 정토회원이 모두 늘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활동가를 배출해 독일 곳곳에서 재미있고 유익한 대면 모둠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전법도 열심히 해 독일 모둠이 더 커지면 좋겠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서로 도우며 함께 모자이크 붓다를 만들어 가는 것이 참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최은실 님은 암과 투병하던 그 힘든 시절, 경전대학에 다니며 도반들의 응원을 받았던 시간을 보석 같다고 했습니다. 피하고 싶은,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석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최은실 님의 수행담을 듣는 제 마음이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최은실 님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딸, 아들과 법륜 스님이 함께 가는 인도 성지순례를 가고, 의학 공부 중인 아이들이 의사가 되면 남편과 온 가족이 정토회 의료봉사도 가고 싶다고 합니다. 수행으로 변화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정토회와 인연 맺은 최은실 님의 아이들이야말로 전법의 빛이 아닐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습니다. 최은실 님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글최선주 희망리포터 편집곽도영
무엇으로든 새겨지고 남으리라_사천왕사지 광복절 특별 정진
정토회 부산, 울산지부에서는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81주년 특별 정진 행사를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 무렵 경주 사천왕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안쪽으로 진입하니 공터엔 이미 차들로 가득합니다. 행사를 위해 캄캄한 새벽부터 온 회원들이 보였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 살피며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출발할 때는 어두웠는데 서서히 날이 밝아 옵니다. 밝아 오는 아침, 언덕길을 오르며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 두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와 당간지주 한 쌍이 나란히 보입니다. 사천왕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무심코 보면 휑하기까지 합니다. 산속의 재잘거리는 물소리도 없지만, 이곳엔 우리 선조들의 신묘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정표와 당간지주 사적비 사적비는 이곳이 호국 도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 통일 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었습니다. 명랑 법사의 제안대로 이곳에 절을 짓고 ‘문두루 비법’을 쓰자 당나라 대군을 실은 배가 서해에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정토 회원들이 왜, 이곳에서 11년 동안 통일 기도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절터 안으로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입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고 말끔히 정리해 놓았지만, 운동화에 이슬이 흥건히 배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기도를 이어온 도반이 많다는 생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금당 터에는 회원들이 차분하게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천왕사지 기도를 한결같이 해 온 그들이 실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흰색 티셔츠에 수수하게 차려입어 초록색 풀잎과 잘 어울렸습니다. 메고 온 가방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고 뒤쪽에 따로 줄지어 세워둡니다. 신발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않으려고 신발주머니까지 챙겨왔습니다. 기도 정진에 임하는 자세에서 섬세한 정성이 묻어납니다. 기도할 자리에는 파란색과 연두색 대형 방수포를 깔고 방석을 놓고 다시 기도포로 반듯하게 방석을 덮어 감쌌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석 위에 기도포 사찰에서는 새벽예불 전에 스님이 목탁을 치며 경내를 돌고 염불을 외웁니다. 도량을 청정하게 정화하고 잠자는 만물과 대중을 일깨우는 불교의 첫 의식입니다. 목탁을 들고 도량석을 도는 서명주 님은 10년째 일요일마다 통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기도 정진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도량석을 시작할 때는 실수할까 봐 약간 긴장도 했는데, 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서인지 기도할수록 힘이 더 났습니다. 매주 이렇게 잘 쓰여서 좋습니다. 10년 전 처음 참여했을 때 이렇게 바깥에서 자연 풍광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게 참 가슴 벅찼습니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할 수 있는 이 사천왕사지 기도가 좋아서 매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참여합니다. 법사님도 도와주고, 해운대 법당 도반들 도움으로 목탁 집전도 배워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중울산 지회 서명주 님 현장에는 여러 곳을 두루 비출 수 있게 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하나에 현장에 모인 정토 회원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행사를 여는 지등명 법사님의 정감 어린 말씀은 평화통일 특별 정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마중물이 됩니다. 이어 지회별로 참석한 도반들의 소개가 있습니다. 부산 정토회, 울산지부 산하 총 7개 지회에서 현장 152명, 온라인 89명이 참석했습니다. 동래지회 지회장님은 아침에 동북아 역사 기행에서 귀국하자마자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봉림사지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는 유수 스님도 올해는 사천왕사지에 왔습니다. “가야와 합병한 신라가 일치단결의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나아가 통일을 염원했던 곳이 바로 사천왕사지입니다. ‘관‧세‧음‧보‧살’ 한 자 한 자 집중해서 절하다 보면 내 업식을 알아차리는 때가 옵니다. ‘영험’은 바로 그런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 입정의 시간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또렷이 구별되면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습니다. 다음으로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발원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낭독합니다.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채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시대적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길, 그래서 화해와 협력의 길이 열리길 발원합니다.……” 절을 시작하기 전, 입정 반드시 평화통일을 이루어오리다. 광복절 평화 기도, 300배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마음을 오롯이 집중하며 간절히 절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아내와 함께, 신용필 님 많은 사람 가운데 쉬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고 있는 신용필 님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지금 마음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을 늘 생각하며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그만 원이 모여 나라의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이 모든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오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쉼 없이 몸을 숙였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300배도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어느덧 해가 떠올라 대지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가 새벽에 일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운 정성처럼 지금 사천왕사지에 염원이 깃들고 있습니다. 절을 마치니 몸은 땀에 젖고 손은 따스합니다. 모두 자신의 옆 사람과 손을 맞잡았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고 ‘만세삼창’까지 외쳤습니다. 목소리에 기운이 넘칩니다. 북녘으로 뻗어 올린 오른팔처럼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평화통일’이 그곳까지 가 닿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회원들은 진행팀에서 보시한 찹쌀떡과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랬습니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여럿이 모둠별로 둥글게 둘러앉아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나눕니다. “몇 년 만에 사천왕사지에 왔지만, 기도하니 마음이 좋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이어서 정진해 온 분들이 고맙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도하는 힘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참석하겠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할 때 정신이 맑게 깨어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상할 때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유독 잘 들렸습니다. 절을 할 때는 오늘, 이곳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습니다.” “작년 광복절에 오고 일 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온라인보다 이렇게 직접 사천왕사지에 있으니, 제가 오히려 기를 받는 것 같아 더 좋습니다. 여기를 꾸준히 지켜주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 기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유수 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켰던 도반들에게 감사합니다.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한 배 한 배 정성 들여 기도했습니다.” 김금수 님, 임분옥 님, 한영숙 님, 김은하 님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몇 시간은 좀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준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들과 만나 인사하고 몇 시간 잘 쓰이다 보면 일상의 작은 괴로움은 온데간데없고 충만한 기운이 가득 차오릅니다. 광복절, 사천왕사지에서 함께 특별 정진으로 기도하니 행복이 몇 배가 됩니다. 평화 기도는 언제나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아가면 어느 날은 삼 백배, 오 백배, 천 배, 만 배가 됩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엎드리며 행하는 실천은 절대로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토회 회원이든, 누구에게든, 혹은 사천왕사지에 스며들어 통일을 앞당기는 기운이 되든, 이 모든 염원과 실천은 그 무엇으로든 반드시 새겨지고 남을 것입니다. 글과 사진최상훈 지원황재윤 편집여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