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새길

정토불교대학

학사일정 : 2026년 9월 20일(일) ~ 2027년 1월 30일(토)
접수마감 : 2026년 9월 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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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백중기도

입재 : 7월8일(수) 오전10시 / 회향 : 8월 27일(목) 오전 10시
기도접수 : 7월 1일(수) ~ 8월 29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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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반나절 템플스테이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 천천히
내 마음의 속도에 귀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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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위한 가장 완벽한 체크인

정토 썸머 스테이

3개의 특별한 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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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년 직장인 출가

청년붓다 8기

기간 : 8월 1일(토) ~ 8월 19일(수)
장소 : 정토사회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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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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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워싱턴을 지키는 부드러운 강함

유학생이나 연구원들이 많아 늘 오고 감이 잦은 워싱턴 정토회. 그곳에서 묵묵히 활동을 이어온 몇 안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분인 이화영 님과의 첫 연락,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로 ‘부드러운 강함’이었습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필요한 것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지원 소임을 맡아온 깊은 내공이 지긋이 전해졌습니다. 법정스님인 줄 알고 갔다가 디자인 일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2008년에 미국에 왔습니다. 오빠, 언니, 저까지 모두 미술을 전공해 주변에 그림 그리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대 출신 남편을 만나 미국에 와보니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고 환경도 낯설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2010년에 임신을 했는데, 임신당뇨로 아기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했지만, 결국 아기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다가 나와야 했습니다. 산후조리는 엄두도 못 냈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도 없어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처음 하는 육아에 남편과 자주 다투기도 했습니다. 2013년, 아이가 세 살 때 우연히 포스터를 봤는데 법륜 스님을 법정 스님으로 잘못 봤습니다. 법정 스님이 운영하는 산사가 여기 있나 보다 하고 찾아갔는데, 일반 절과는 다르게 그냥 회관 같았고 스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안 다니려고 했는데 넓은 마당과 북적이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편과 아이는 “가자”, 저는 “안 간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연말 JTS 모임 종합병원이 된 몸 다른 분들은 소임 경력이 화려하신데, 저는 쭉 지원 담당이었습니다. 마치 민원센터처럼 밤낮없이 텔레그램을 켜놓고 답을 했고, 회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원 소임은 보고서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이 많아서 원래 눈이 약한 채로 컴퓨터를 계속 들여다보다 결막하 출혈이 두 번 왔습니다. 허리 디스크도 있었고, 작년에는 이석증이 생겼고 1년 가까이 팔을 아예 쓰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갑상선 수술을 받아 지금도 매일 호르몬제를 복용합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따로 없습니다. 병가는 수술한 그 해에 한 달 낸 것 외에는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완벽주의 성격 탓에 정토회 일이든 집안일이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려는 마음이 큽니다. 지금은 아이를 하루에도 여러 번 학교와 운동부로 실어 나르고,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삼시 세끼까지 챙기다 보니 정토 일과 가족 일 사이에서 늘 뛰어다닙니다. 예전만큼 건강하지는 않지만, 작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2016년 JTS 거리 모금 ‘모자이크’의 기적, 워싱턴 명상센터 개원식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모둠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 부족해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출되자마자 일이 몰아쳤습니다. 우선 명상센터 개원식이 있었는데, 팬데믹 동안 공사가 계속 이어져 밖은 거의 공사장처럼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5월 17일 개원식을 치를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습니다. 오래된 자재를 치우고 지하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대대적인 청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회관에 계시는 분들은 밤낮없이 일했고, 뉴욕 지역 회원들도 주말마다 도우러 왔습니다. 급할 때는 밤에 일을 마치고도 내려와 주었습니다. 행사 때 필요한 100명분 공양도 행사 전 주부터 내려와 준비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밤낮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당백으로 마음을 모아준 덕분에 개원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정말 ‘모자이크 붓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 미주정토회관 명상센터 개원식 준비 중인 이화영 님 개원식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오프라인 봉축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워싱턴 도반들 모두가 “지난 3개월이 꼭 3년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을 만큼 치열한 나날이었습니다. 6월에는 해외 지부가 주관하는 나눔의 장이 있어, 회원들을 챙기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피하고 싶다가도 후딱 해치우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계속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오래 가려면 나를 돌보면서 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정말 내가 못 할 상황이 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못 하게 될 테니, 그전까지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 요즘의 마음가짐입니다. 수행을 하면서 편해졌습니다. 원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고집이 세고 자아도 강한 편이었는데, 수행과 소임을 거치며 점점 둥글둥글해진 것 같습니다. 갱년기 탓에 집에서 불쑥불쑥 성질을 내기도 하지만 뒤끝은 없습니다. 욱했다가도 금방 사과하고 돌아옵니다. 요즘은 사춘기 아들과 갱년기 엄마가 만나 집안이 시끌시끌합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도를 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동굴 안에서 수행하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만큼 지나 있는 느낌입니다. 30대 초반에 미국에 와서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었고, 2013년에 시작한 정토회 활동도 벌써 2026년이 되었습니다. 크게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 새삼 현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제 삶은 정토, 가족, 그리고 그림입니다. 원래 섬유미술을 전공해 염색과 섬유 조형 작업을 했지만, 화학 염료를 많이 써야 해서 환경을 생각해 지금은 손을 놓았습니다. 대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그림을 그립니다. 자연을 워낙 좋아해 꽃을 모티브로 많이 그리다 보니 제 방은 그냥 꽃밭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실컷 그려보고 싶고, 그림과 디자인 재주는 필요할 때 조금씩 정토회에도 보태고 있습니다. 방구석 무명가수가 아니라 방구석 작가일까요. 이화영 님의 꽃 그림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꼭 뭘 해내야겠다기보다, 꾸준히 자연스럽게 가고 싶습니다. 정토회에서 수행하고 활동하며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고, 이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연이 닿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 서원은 제 자신이 가장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요. 그리고 우리 워싱턴 정토회 도반들은 저보다 건강이 안 좋은데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배우며 지금까지 수행하고 소임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도반들이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2026.5월 봉축법회 준비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화영 님은 소리 없이 강한 사람,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도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이화영 님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생각나, 지치던 리포터의 마음에 잔잔한 힘이 되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화영님 곁을 지켜온 도반들 역시 이런 묵묵함에 크게 의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화영님, 고맙습니다. 글김경진 희망리포터 편집곽도영

북미유럽지회 2026.08.19. 91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무비판적 순응에 희생된 수많은 이웃, _ ‘순이 삼촌’을 기억하며 _2026년 6월 제주 4·3 평화역사 기행

2024년, 제주 4·3의 역사 속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온 후, 이 역사를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현충일을 기해 3일간의 여정으로 다시 ‘제주’로 향했습니다. 역사 기행 전부터 준비팀에 합류하여 사회자의 진행 글을 작성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역사 기행 날이 다가와도 막상 사전 학습 도서, 현기영 작가의『순이 삼촌』을 읽는 것은 자꾸만 미뤘습니다. 잔인한 역사를 마주하며 그 슬픔을 느끼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 마음은 한결 밝아졌습니다. 첫 번째 장소 관덕정으로 이동하며 비로소 역사 기행이 시작되었음이 실감 났습니다. 안내를 맡은 법음 법사님은 역사 이해를 위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알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당부하듯 말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조천읍 북촌리’에 위치한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입니다. 북촌리는 제주 4·3 사건 당시 하루에 400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당한 단일 마을 가운데 가장 큰 희생이 발생한 곳입니다. 기념관에는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여러 그림과 강요배 화백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자료가 거의 남지 않아 이러한 기록들은 더욱 귀중했습니다. 천명, 하늘의 울음 너븐숭이 4·3 기념관에서 제주 4·3 사건의 유족인 이상언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희생의 규모와 그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서 그들은 단순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처절했던 한 시대의 삶을 살아 내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뒤 마을 길을 걸으며 소설『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장소와 북촌 초등학교 등 희생자들의 터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삼촌은 여인이다. 소설 중에서 순이 삼촌 기념비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제주 도민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합니다. 해설사가 일일이 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3시간이 넘도록 호명과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제주 동쪽의 ’광치기 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름다운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이곳 역시 무고한 주민 400여 명이 군경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장소입니다.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여러 차례 여행 왔던 곳이지만, 재작년 역사 기행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러한 아픔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기행의 사회자 역할에 집중하니 현장의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발원문을 두 사람이 낭독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떨리며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제주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모든 생명과 오랜 세월 슬픔을 안고 살아온 유가족들의 아픔을 깊이 새깁니다. 두려움과 혐오, 침묵과 폭력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제주라는 이 섬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오늘 제주의 아픔 앞에서 개개인의 삶을 돌아봅니다.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이해로 갈등을 풀어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국가 폭력과 전쟁, 증오와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그 순간, 제주 동쪽의 바다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는 3만 명이지만, 그들의 유족은 몇 명이며, 또 그 유족들의 가족은 얼마나 많을까요…… 다시 왜?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살육의 피해를, 입어야 했던 이유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이 있습니다. 4·3 평화 공원에 안치된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명상할 때입니다. 행방불명인 묘역 흐린 하늘 아래를 걷고 있는데, 묘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 그 까마귀는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명상을 제안했습니다. 잠시 당황했지만, 자리를 찾아 묘지를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 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집중했습니다. 새소리가 들리고 숲의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듯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알아차렸습니다. 명상하는 모습 어느새 이곳이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고 고요한 순간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명상이 언제 끝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눈을 뜨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은 따뜻이 묘역에 내렸습니다. 그 밝음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고, 누군가는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아픈 역사와 고통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평화를 경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신비로웠습니다. 함께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묘지를 바라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번 역사 기행을 통해 도반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함께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슬픔에 압도되지 않았고, 그 마음을 함께 잔잔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3조, 우리는 도반 일정이 끝난 뒤, 조원들과 마음 나누기를 하며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특히 제주를 주제로 시를 쓰고 낭독했던 시간은 그날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프로그램 팀과 산책하고 체조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행 내내 따라다녔던 왜?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 팀원들과 산책길에서 문득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마음 나누기 시간에 다른 회원이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서 아이히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실행한 실무 책임자였지만,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평범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사고방식이 어떤 맥락에서는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느꼈습니다. 이것을 ‘사유의 무능과 무비판적인 순응’의 결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을 지시한 사람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묻게 됩니다. 극단적인 공격성은 때때로 내면의 두려움과 상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엔 ‘무감각과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남았고, 여기에 대한 해독제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 질문에 ‘수행’이라는 단어가 해답처럼 바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바른 법 만난 자신이 행복할 수 있어 기쁘고, 수행자의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잘 전하는 것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길임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전쟁과 분쟁, 사람들의 갈등과 증오를 마주할 때면 여전히 무력해지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평화를 위해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먼저 꾸준히 수행하면서 내 안의 두려움과 화를 알아차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평화를 만들며 제주 4·3 사건을 잊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속솜허라’라는 말이 있는데, ‘숨을 죽이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부모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사건 후에는 피해자였지만,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았던 제주도민들이 들었던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지독한 그 시절이 지났어도 살면서 애써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화를 위한 발걸음, 제주에서 단체 사진 작은 실천으로, 역사 기행 참가자들이 쓴 시를 시집으로 엮어 제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에게 전하는 싶은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아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넘어 세계 평화까지 큰 꿈을 품어봅니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 4·3 사건 진상 조사 보고서, p.536』 제주 4·3 평화 재단 홈페이지 게시글 글김수영 사진김민성 편집황재윤

통일 2026.07.24. 1,86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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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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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