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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9시부터 뉴욕/뉴저지 정토회, 이어서 LA 정토회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11시가 넘어 이사회를 마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산윗밭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주말, 거사님들과 함께 산윗밭과 과수원을 정비할 울력을 앞두고 사전에 어떤 울력을 할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밭 입구에서부터 스님은 해야 할 일을 찾아냈습니다. 울타리도 많이 무너져있었습니다.
밭에는 5년 전에 심어놓은 목단에 새순이 돋아있었습니다.
“이야, 목단에 새순이 났네요!”
스님의 목소리에는 봄의 생명력에 대한 기쁨이 담겨 있었습니다.
밭을 다 둘러보고 과수원으로 올라가 일감을 확인했습니다.
매화나무에도 작은 꽃봉오리가 곧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개간하지 않은 터도 둘러보았습니다. 칡이 나무를 온통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과수원 세 곳을 다 둘러보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아직 겨울빛이 도는 메마른 땅에 냉이가 벌써 자라 있었습니다. 행자님들과 함께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캤습니다.
마을에는 벌써 홍매화가 피어있었습니다. 스님은 발길을 멈추고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나한테 신고도 없이 벌써 봄이 왔네요.” (웃음)
아직 바람은 서늘했지만 들이쉬는 숨마다 봄기운이 서려있었습니다. 추위에 움츠린 어깨가 펴지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지난겨울에 뿌려놓은 고수도 싹을 틔우고, 원추리도 앞다투어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텃밭에 비닐을 걷어보니 상추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1시가 다 되어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창고로 가서 지난 가을에 저장해 둔 배추와 무를 열어보았습니다. 거의 두 달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한 데다 날이 따뜻해져서 배추 겉이 좀 상해 있었습니다. 상한 잎을 떼어내고 먹기 좋게 다듬었습니다.
흙이 가득 묻은 냉이도 씻어 문경과 서울에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을 했습니다.
채소 손질을 마치고 스님은 텃밭 주변에 풀을 매기 시작했습니다.
한 소쿠리 가득 풀을 뽑았습니다. 스님은 대야에 물을 받아 풀뿌리에 묻은 흙을 씻어냈습니다.
“스님, 풀을 왜 씻으시는 거예요?”
“흙이 아깝잖아요. 훍을 밭에다 뿌리려고요. 옛날에는 이렇게 풀을 씻어서 소에게 먹이곤 했어요.”
스님은 풀을 두 번 씻어 나온 흙을 밭에 다시 뿌렸습니다. 씻은 풀은 퇴비장에 뿌렸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짐을 챙겨 4시가 다 되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스님은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3시간 30분을 달려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1일 수행법회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욕심에 확 사로잡혀 버리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어리석음이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원인이 된 어리석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것이 바로 무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화가 나서 눈에 뵈는 게 없다’ 하고 말할 때도 화가 원인이지만 결과는 어리석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고, 지나 놓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되는 거죠.
큰 의미의 어리석음은 탐, 진, 치를 합해서 한마디로 말할 때의 개념입니다. 좁은 의미의 어리석음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때의 개념입니다. 좁은 의미의 어리석음은 이치에 어리석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치란 인연과보를 말합니다. 이런 인연을 지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고, 저런 결과가 나타났으면 저런 원인을 지었다고 하는 ‘인연과보’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리켜서 ‘어리석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남에게 빌릴 때는 나중에 이자를 쳐서 갚아야 될 결과를 알고 빌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빌리는 것만 생각하고 나중에 이자를 쳐서 갚을 생각을 하지 못하면 지나 놓고 나서 돈을 빌린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부담을 갖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욕심을 낸 것도 아니잖아요. 이것을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나서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원인을 지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그냥 어떤 일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음이에요. 그러나 내가 어떤 원인을 지어서 이런 결과가 왔는지를 알면, 즉 인연의 이치를 알면 원망할 일은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원망은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내가 모르는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고, 이런 이치를 알아서 원망하지 않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행위를 할 때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해서 조심합니다. 아무리 눈앞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몸에 나쁘거나 비만이 된다면 멈출 줄 아는 것을 ‘지혜롭다’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은 이치에 밝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치에 밝지 못하다는 것은 인연과보에 무지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원인을 지었으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고, 이미 결과가 일어났으면 원인 규명을 금방 해서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딱 일어났을 때 원망하지 않고 ‘내가 이런 원인을 지어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금방 받아들이는 거죠. 이렇게 어떤 현상의 원인을 아는 것을 ‘숙명지’라고 합니다. 내가 어떤 원인을 지으면 그 결과를 예측할 줄 아는 것을 ‘천안지’라고 합니다.
이치에 밝은 것을 ‘지혜’라고 하고, 이치에 어두운 것을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도 어리석어지고, 성냄이 일어나도 어리석어집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두 어리석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나누면 하나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어리석어지는 것이고, 하나는 자신의 성질에 사로잡혀서 어리석어지는 것이고, 하나는 이치를 몰라서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콜럼버스정토회와 시애틀정토회의 이사회에 각각 온라인으로 참석하고, 점심에는 얼마 전 봉암사 동안거를 다녀온 묘하이 스님과 미팅을 합니다. 오후에는 필리핀 JTS와 필리핀정토회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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