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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열일곱 번째 강연이 미국 동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뉴저지(New Jersey) 주에서 열렸습니다.
어제저녁 토론토에서 강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스님은 저녁 9시에 정토불교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하고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다시 새벽 1시부터는 경전대학 입학식 생방송을 했습니다.
새벽 2시에 방송을 마치고 잠이 깬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고 한국과 소통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잠시 휴식한 후 새벽 5시 30분이 되어 다시 길을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강연 총괄 한승란 님과 운전 지원을 해준 장형원 님, 숙식을 제공해 준 이현정, 파울로 님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토론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에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무사히 출국 수속을 밟고 탑승구 앞에서 출발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해가 떠오르고 오전 8시 45분이 되자 비행기는 캐나다를 떠나 미국으로 출발했습니다. 1시간 30분 남짓이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단잠을 자고 10시 20분에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뉴욕 정토회 회원 김명호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토론토 강연에 늦지 않기 위해 007 작전을 펼칠 때 만나고 다시 얼굴을 봐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역전의 용사들이 돌아오셨네요.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잘 다녀왔습니다.”
김명호 님 댁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한 후 오후 1시 30분부터는 인근 한국 식당에서 뉴욕 정토회의 초기 회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이 식당에 도착하자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기념사진을 찍고 식당으로 들어가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토회는 1차 만일결사를 잘 끝내고 2차 만일결사를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고생하신 여러분들 다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마침 제가 해외에 와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도 한 번 오시라고 노보살 님들을 초청했습니다.
“내년쯤 한국에 한번 오세요. 3월 말부터 4월에 꽃이 피니까 그때 오시면 좋아요. 이제 나이 들어서 한국에 와서 만날 가족도 없고 하니까 정토회로 오세요.”
”내년에 다 같이 가면 되겠네요.”
“버스 한 대 빌려놓을게요.”
오후 3시가 되어 강연장으로 이동해야 해서 아쉽지만 작별을 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 준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스님은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허드슨 강을 지나 조지 워싱턴 다리(George Washington Bridge)를 건넜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뉴욕 맨해튼의 다운 타운이 보였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 다리 건너 빌딩 숲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약 이곳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성공을 하더라도 저 많은 빌딩 숲 속의 건물 중 한 채밖에 더 사겠는가? 저 많은 빌딩 가운데 한 채 갖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많은 대나무 중 대나무 한 그루를 잡았을 뿐인데 그걸로 뭘 하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다시 방향을 잡게 되었죠.”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다리답게 가는 길이 계속 막혔습니다. 차가 막힌 덕분에 차 안에서 잠을 푹 잘 수 있었습니다. 1시간 30분이 걸려 오후 4시 30분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뉴저지 테너플라이에 위치한 KCC 한인동포회관(Korean Community Center)입니다. 한국에서 이민을 온 분들이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도록 도와주고 미국사회와의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강연 총괄을 맡은 백은주 님이 달려 나와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에 일찍 도착한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장에는 준비해 둔 좌석이 꽉 차서 봉사자들이 여기저기서 의자를 가져다 깔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좌석이 320석이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추가로 의자를 깔고도 자리가 부족하여 봉사자들은 모두 서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총 39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오후 4시 50분에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스님을 찾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는 풀뿌리 단계에서부터의 적극적인 시민참여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미주 한인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유권자 운동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스님은 김 대표님의 고민을 경청하고 조언을 해준 후 최근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전쟁의 위험을 이야기하면서 미주한인유권자연대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작은 역할이라도 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곧이어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고우 스님이 대기실로 찾아왔습니다. 고우 스님은 지난 2016년에 조계종에서 마련한 출가콘서트에 패널로 출연하여 스님과 함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5년 전 출가 콘서트에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엇을 전공하고 있어요?”
“인권을 전공하고 있어요. 스님께서 내년에도 해외에 오신다면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꼭 강연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고우스님과 대화를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린 후 5시 30분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강연장 뒤편에서 스님이 걸어 나오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다들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경주 근교에 있는 폐교에서 줄곧 농사만 짓고 살았습니다. 제 꿈이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었는데, 마침 팬데믹 기간이 찾아와서 조기에 은퇴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니까 운동도 되고 좋았어요. 저는 평생 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같은 방에서 잠을 계속 자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곳에 등을 붙이고 자는 생활을 가장 오래 해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렇게 3년을 농사꾼이 되어 보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도 잘 지내셨어요?” (웃음)
이어서 스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 교민들이 작은 역할이라도 해주기를 당부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이유는 오늘처럼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며칠 후부터 일주일 동안 워싱턴 DC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한반도에 긴장이 매우 고조되고 있습니다. 남한은 일본, 미국과 군사협력을 하면서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전략 자산을 동원하고 최첨단 무기로 북한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실제 공격용 무기로 쓸 수도 있다고 남한을 협박하면서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러시아의 군사 기술이 북한에 제공된다면 북한의 재래식 무기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까지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재앙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런 재앙을 막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미국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에 이래라저래라 설득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좋지 않으냐 하는 관점에서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가이익과 일본의 안보에도 큰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동결시키는 조치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도 유리합니다.
물론 지금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하면 제일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안에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대북 강경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계 각국을 돌아보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지만 국내 정당 간의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을 했는데, 지금은 마치 내전을 하다시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런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은데 한국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꼭 어떤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현재 민주주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점점 더 갈등이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누구를 욕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들을 우리가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최소한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은 이런 갈등 속에서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식량 부족 상황에 배고픔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국가 위기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의 과제로 삼았으면 합니다.
사실은 저 같은 외국인이 미국의 조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미국 국회의원들은 무엇이 가장 필요합니까? 첫째, 표가 필요하고, 둘째,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여러분들이 후원금을 모아서 그들에게 보내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요청해야 합니다. 또 투표권을 갖고 ‘잘하면 지원해 줄 수도 있다’ 이렇게 요구해야 조금이라도 그들을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천 명이 노력하는 것보다 미국 시민 한 명의 노력이 더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 강의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생겨서 보답을 하고 싶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유권자 운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어서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을 신청한 분은 20여 명이 넘었는데 두 시간 동안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 간병을 17년 하고 나서 다시 아버지를 간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며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것이 부담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질문자의 지금 정신 건강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아 보여요. 질문자가 건강하면 아버지를 간병할 수 있지만 현재는 질문자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의 간병에 대해서는 오빠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는 자신의 정신 건강을 돌보는 자기 치료를 좀 더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치료를 하고 있어요. 약도 잘 먹고 있고요.”
“질문자도 환자인데, 환자가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좀 무리가 되죠.”
“다행히 아직 아버지가 밉지는 않아요. 나중에 미워지는 순간이 올까 봐 그게 무서워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간병하지 않으면 미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간병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제 아버지인데요.”
“왜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질문자의 문제입니다. 간병을 안 해도 됩니다. 내 아버지이니까 내가 간병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질문자의 생각입니다. 질문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 의무는 아니에요.”
“그럼 아버지를 누가 간병해요?”
“오빠가 하겠죠. 질문자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간병이 어렵다고 오빠에게 말하면 됩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이지 아버지의 간병과는 상관이 없어요.”
“정말로 제가 간병을 안 해도 될까요?”
“안 해도 되고 말고요. 간병을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아기를 낳은 엄마라면 아기를 돌보지 않을 경우 자연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 생명을 보호하려는 생존 본능이 있어요. 그래서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명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생물이든 새끼가 생기게 되면 그 새끼가 성년이 될 때까지는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성애라는 거예요. 모성애는 종족 보존의 본능입니다. 모성애가 없으면 종족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처녀의 몸으로 있을 때는 자신의 생명이 제일 중요하지만 아기를 낳게 되면 어미는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게 됩니다. 새의 경우 새끼가 있을 때 다른 적이 공격하면 어미가 죽음을 무릅쓰고 덤비거든요. 닭도 병아리와 같이 있을 때 사람이 다가오면 평소에는 도망가는데 그때는 절대로 도망가지 않고 날개 짓을 하고 사람에게 덤빕니다. 이것은 생명의 본능이에요. 그 본능이 없으면 그 종이 유지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여성이 ‘나는 아기를 낳아서 못 키우겠다’라고 하는 건 아기를 낳기 전의 생각입니다. 막상 아기를 낳게 되면 저절로 아기를 보호하는 본능이 발동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본능이 마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너무 자신의 직업과 꿈,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서 본능이 마비된 겁니다. 요즘은 가끔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러나 자신의 일을 더 중요시하고 아기를 내팽개치는 행위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새끼가 성년이 되면 어미와 새끼는 각각 독립된 생명이 됩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새끼를 위해 어미가 따라다니는 경우도 없고, 어미를 위해 새끼가 따라다니는 경우도 없어요. 각각 독립된 생명입니다. 자기가 자기 생명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자연생태계에서는 어미와 새끼 사이에 갈등이 없습니다.
아기를 낳고도 돌보지 않는 것은 정신 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성년이 되었는데도 어미가 더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집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녀가 성년이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은 의지심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의지심을 못 버리면, 성년이 되었는데도 부모에게서 독립을 하지 못하게 되고 늘 부모의 간섭 속에 살아야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면,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은 자연 생태계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이렇게 어긋나게 사니까 고통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것처럼 질문자가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생태계의 원리이기 때문에 의무사항입니다. 그러나 자연생태계에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는 일은 없습니다. 인간사회에만 존재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효라 하지만, 못해도 그만이에요. 부모를 때리거나 학대하면 불효가 됩니다. 그러나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불효가 아니에요.
특히 질문자처럼 건강이 안 좋아서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질문자가 부모를 돌보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집착입니다.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내가 몸이 아무리 아파도 아버지 간병을 어떻게 그만둡니까?’ 하고 묻는 이유는 질문자가 그만큼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질문자가 병이 드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까 아버지를 탓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할 이유도 전혀 없어요. 힘들면 안 하면 되니까요.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미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아버지를 미워할 바에는 간병을 안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할 게 없어요. 질문자가 힘에 부치면 안 하면 됩니다. 힘에 부치면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힘들어서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불효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불효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 제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온 지 20년이 넘었고 앞으로도 혼자 계속 살게 될 것 같습니다. 다수가 사는 방식이 아닌 혼자 사는 방식이 비정상인가요?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꿈에 나오면 죄책감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구천을 떠도는 어머니의 영혼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좋은 엄마와 좋은 아내가 되고 싶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많이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질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시집살이를 오래 해서 시댁을 미워하는 마음이 큽니다. 친정 부모님은 사위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는데 시댁은 왜 요구가 많을까요?
TV에서 아동 범죄 사건을 접하면 화가 납니다. 스님은 교화가 불가능한 인간이 있다고 보시나요?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현장에서 한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한 분이 손을 번쩍 들고 즉석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행복하십니까?”
“네!”
스님의 짧고 간명한 한마디에 청중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행복을 즐거움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행복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릅니다. 수행에서 말하는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얼마나 빨리 달리고 얼마나 힘이 세야 건강한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은 상태를 건강하다고 말하잖아요. 그것처럼 괴롭지 않은 것이 행복입니다. 저는 특별히 괴로운 일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칼로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이래도 안 괴롭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안 돼요. 괴로움이 찰나찰나 일어나지만 그것을 붙잡고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근본 무지가 해결되어도 찰나에는 무지가 일어납니다. 순간적으로 과거의 습관대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잠들면 나뭇잎도 잠든다.’
그러나 바람이 잠들어도 계속 흔들립니다. 어떤 상처를 입었으면 그것을 기억에 담아두고 그 생각만 하면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은 상처를 준 사람과는 아무 관계없이 자신이 만든 거예요.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한 대 때려서 화가 났다는 것은 제1의 화살을 맞은 겁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면서 계속 화를 내는 것은 제2의 화살을 맞는 것과 같습니다. 화살을 맞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살다 보면 제1의 화살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2의 화살은 맞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카르마는 결혼했다고 바뀌거나, 스님이 되었다고 바뀌거나, 교회나 절에 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바뀌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어려우면 미국에 가면 해결될 것 같고, 혼자 살다가 어려우면 결혼하면 해결될 것 같고, 결혼했다가 어려우면 이혼하면 해결될 것 같죠? 잠시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외부 경계에 부딪히는 자기 마음의 작용을 살펴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종교를 믿는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하셔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고 나날이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옛 인연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안부를 물어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인을 받으려고 늘어선 줄이 무대에서부터 강연장을 한 바퀴 감싸 안았습니다.
한 학생은 목발을 짚고 와 사인을 받으며 인사를 했습니다.
“다리를 다쳤는데 스님을 뵙고 싶어서 왔어요.”
“잘 왔어요.”
사인회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두 분이 대표로 봉사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소감을 말하는 중에 어제 긴박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어제 허리케인의 북상으로 토론토 강연장에 스님이 도착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뉴저지 강연 봉사자들이 생방송 연결을 위해 비상 대기 상황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스님의 무리한 스케줄에 대한 걱정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제는 토론토에서 강연이 취소가 될 뻔해서 정말 난리가 났었어요. 이런 일을 우여곡절이라고 하죠. 그런 이것은 전생의 죄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비행기가 결항이 된 일일 뿐인데 우리에게는 큰 문제가 된 겁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예상했겠어요? 화내봐야 나만 손해이고, 마음이 조마조마해 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연을 못 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최선을 다해 본 겁니다. 결국은 강연장에 20분 늦게 도착했지만 무사히 강연을 잘 마쳤습니다. 그것처럼 너무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하면 집착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집착하지 말라고 하면 또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라고 표현합니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되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관점에 서서 일을 해나가시면 좋겠어요. 일이 많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이 아닙니다. 알았죠?”
“네!”
저녁 8시 30분이 되어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뉴욕과 뉴저지에서 활동하는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한 후 뉴욕 퀸즈 대학교에서 해외순회 즉문즉설 열아홉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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