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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열여섯 번째 강연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인 보스턴(Boston)에서 열렸습니다.
어제 저녁에 댈러스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한용우 님의 댁에 도착한 스님은 밤 12시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2시입니다. 원래는 저녁 7시 30분에 해야 하는 생방송인데 그 시간에 스님이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어서 부득이하게 시간을 앞당겨 생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유럽에서 북미 서부를 거쳐 댈러스까지 오게 된 과정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습니다. 이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서 보스턴으로 가서 하버드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방금 영상에서 보셨듯이 유럽을 거쳐서 북미 서부에서 순회강연을 했고, 오늘 댈러스를 거쳐서 내일부터는 북미 동부에서 순회강연을 하고, 마지막에는 워싱턴 DC에 도착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미국의 조야에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질문자 모두 스님의 답변을 듣고 금방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도 이동하는 중에 생방송으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새벽 1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잠을 자기 애매한 시간이라 스님은 업무를 보았습니다.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 3시가 되어 다시 짐을 챙겼습니다. 하루 동안 숙식을 제공해 주고 운전을 해준 한용우 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선물한 후 댈러스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밟고 아침 6시에 댈러스 공항을 출발하여 뉴왁(Newark) 공항을 경유한 후 오후 1시 10분에 보스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경미 님 부부가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강연 통역을 하기 위해 제이슨 님도 워싱턴 DC에서 보스턴으로 왔습니다.
공항 출구를 나오자마자 스님은 서둘러 약속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보스턴 시내에 위치한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박영선 전의원이 스님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습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애시센터에서 직접 민주주의와 디지털 정당에 대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며 스님과 안부를 주고받고 한반도 평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3시에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박기범 교수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박 교수님은 다년간의 대북 의료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의료 상황을 개선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북한 주민들의 보건 의료 문제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스님은 곧바로 강연 장소인 하버드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캠퍼스를 성큼성큼 걸어서 신학대학 건물로 들어가자 수잔 해이워드(Susan Hayward) 교수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How are you?”
(어떠세요?)
“좀 피곤하지만 괜찮아요. 매일 한 개의 도시를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How many cities do you visit in total?”
(총 몇 개의 도시를 방문하나요?)
“21개 도시요.”
“It's really amazing”
(정말 놀랍습니다.)
수잔 해이워드(Susan Hayward) 교수님은 니와노평화상 선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지난 2020년에 스님이 니와노평화상을 수상할 때 인연이 되었습니다. 당시 스님을 니와노평화상 수상자로 결정하게 된 이유를 직접 발표한 분입니다.
강의실로 이동하여 인사를 나누고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교의 사회실천에 대해 강의하는 마이크 교수님을 스님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두 교수님은 그동안 스님에게 궁금했던 점에 대해 편안하게 질문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 활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마이크 교수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what about your overall budget for all your international work more or less, what is that? And where do you do your fundraising?”
(전체 국제 구호 활동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모금은 주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요?)
“JTS는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금은 받지 않습니다. 오직 개인이 내는 기부금만 받습니다. 왜냐하면 JTS는 어떤 정치적 영향이나 간섭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JTS가 활동하는 원칙이 그렇습니다. 먼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JTS가 한 일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예산은 없습니다. 사업이 결정되면 그때 모금이 들어옵니다.”
“How many employees do you have?”
(직원이 몇 명 정도 되죠?)
“현재 유급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JTS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이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자원봉사자는 아주 많습니다. 활동에 필요한 수만큼의 자원봉사자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 현지에 나가서 활동을 하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출가해서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상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 인건비가 들지 않습니다.”
수잔 해이워드 교수님도 질문을 했습니다.
“Can I ask a question about the Buddha’s understanding of Dana? So in Buddhist’s history, my understanding is that Dana was often understood that you give financial resources to support the sangha, the monastic community, so that the monks and the nuns can survive and practice by meditating and studying, and that you receive good karma from their practice. But it seems that there's a bit of a shift here. In that people are giving the charity, giving dana to the Jungto Society to do their work of humanitarianism rather than to do the work of study and practice in meditation. Is the idea that this kind of giving then provides the same kind of karmic benefit for the one who gives the donation? Or maybe I'm wrong, and this is the same as in the past, as is being practiced now. I'm curious.”
(불교에서 보시하는 행위인 다나(dana)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불교에서는 보통 재가 수행자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이 수행과 기도를 하게 되고, 보시한 사람들은 보시를 한 대가로 좋은 카르마를 받습니다. 하지만 정토회에서는 재가 수행자가 보시를 하면 그 돈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인도주의 활동을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도주의 활동을 통해서 좋은 카르마를 받는다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요?)
“정토회에서는 보시나 수행을 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든지 다시 좋은 생을 받는다든지 하는 식의 내생에 대한 대가나 복을 구하지 않습니다.
‘물질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밥은 배고픈 사람이 먹어야 한다. 약은 아픈 사람이 먹어야 한다. 아이들은 누구든지 기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토회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며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토회에서는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더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지, 이런 사실을 알릴 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고 자발적으로 보시를 합니다.
보시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만나서 삶이 행복해진 사람들입니다. 어떤 대가나 복을 받지 않고도 그들은 행복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뭔가 좋은 일에 참여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정토회가 건전하고 좋은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또 사람들이 보시한 돈이 굉장히 효율적으로 쓰인다는 것을 보여줄수록 더 많은 보시를 하게 됩니다. 저희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아니, 이런 일을 하는데 이 정도밖에 돈이 안 든다고요?’ 이러면서 보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돈을 아주 절약해서 씁니다.” (웃음)
“Has the fundraising been successful so far?”
(지금까지는 모금이 잘 되었나요?)
“네. 그런데 현장에서 같이 활동하는 파트너가 돈의 사용이 투명하지 않거나 돈이 과소비된다거나 개인적으로 이용한다고 판단이 되면 저희는 해당 활동을 멈춥니다. 현장에서 자원봉사자가 없는 경우에도 활동을 멈춥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현장에서 협력하는 단체들은 ‘사무실 유지비와 인건비가 필요한데 자재비만 주면 어떡하느냐’ 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가 ‘우리는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라 함께 하는 단체입니다. 당신들도 뭔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고 말합니다.” (웃음)
수잔 해이워드 교수님은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변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현재 상황이 희망적인지 질문했습니다.
“Do you think there is hope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right now?”
(한반도의 평화가 지금 희망적이라고 보시나요?)
“지금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어야 인도적 지원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까지 와서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하는 겁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누고 스님은 강연장 옆 교실로 이동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스님의 강연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오후 6시부터는 영어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스님을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직접 얼굴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그동안 수행을 하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자각을 하게 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오히려 자각을 할수록 힘들어진 점도 있다며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에 깨어있지 못하고 과거의 생각에 빠져서 생긴 괴로움이에요. 지금에 깨어있으면 괴로움은 없어집니다. 자각을 한다고 해서 괴로워지지는 않습니다.
괴로움이란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볼 때 화면에 영화가 상영이 되고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면이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사람이 죽으면 슬프고, 어떤 행동을 보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화면을 끄면 아무것도 없어지는데 왜 슬프고 화가 날까요? 화면이 눈을 자극하게 되면 뇌가 지금 일어나는 일과 똑같이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에 적혀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의 뇌는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난 것과 같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겁니다. 혼자서 울었다 웃었다 하니까 옆에서 보면 미친 사람 같죠.
우리의 뇌는 생각을 하게 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느낍니다. 과거를 생각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영화를 보듯이 느끼게 됩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괴로움은 과거를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늙어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미래를 상상하게 되면 우리의 뇌는 현실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생깁니다.
수행이란 과거도 생각하지 말고, 미래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에 깨어 있는 것입니다. 자꾸 과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해도 기억할 뿐이지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기억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뇌가 현실처럼 착각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을 의학적으로 ‘트라우마’라고 말합니다. 아직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해요.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버리자고 다짐해도 아직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면 바로 감정이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 과거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과거를 생각해서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꿈과 같은 것인 줄 알고 금방 벗어나야 합니다. 셋째, 그렇게 해도 안 된다면 다른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장면이 바뀌게 되면서 감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질문한 내용은 과거를 생각한 것이지 자각을 한 것이 아니에요.”
“Thank you.”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곧이어 오늘 강연의 사회를 맡은 하버드대학교 불교학과 제임스 랍슨 교수님이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까지 20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When did you first come to the United States?”
(스님께서 미국에 언제 처음 오셨는지요?)
“제가 미국에 불교를 주제로 이야기하기 위해 처음 온 것은 19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모임입니다. 그때 대화의 주제가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 세 가지였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발표할 사람이 없어서 돌고 돌아서 저한테까지 요청이 왔었어요.”
랍슨 교수님은 기후 위기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최근 4억 불을 들여서 하버드대학교에 기후 위기에 대해 연구하는 센터를 새로 설립했습니다. 지금은 과학자들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사람의 마음을 바꿔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 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불교야말로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은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소비를 줄이는 것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과학이 어떻게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과학자들은 현재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어 스님은 랍슨 교수님과 함께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랍슨 교수님이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좌석은 빈자리 없이 꽉 찼고, 자리가 부족해 통로에도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은 ‘왜 괴로운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에 간다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에 좋게 태어난다는 것도 아닙니다. 왜 괴로운지 잘 살펴서 그 원인을 소멸하면 누구나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도 있고, 젊거나 늙은 사람도 있습니다.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으며, 종교도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각자 어디에 속하든 여러분들은 지금 괴로움 없이 살고 계십니까?
괴로움이 있다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에 대한 탐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괴로운가?’ 하는 주제로 여러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어떤 얘기를 하셔도 좋습니다. 환경문제나 정치문제로 머리가 아프다든지,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내용도 좋습니다. 핵심은 ‘우리는 왜 괴로운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9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여성으로서 본인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멀리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걸어갑니다. 눈으로 멀리 보는 것은 이상입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한 발 한 발 걷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이상과 현실에 서로 차이가 있다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보기만 하고 걷지 않는다거나, 눈을 감고 서 있기만 하다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당신의 괴로움은 이상과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 없이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좀 더 직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질문자가 말씀하신 이상과 현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So, like, to be more specific, for example, I'm a graduate student in the science field. And I'm experiencing for the first time discrimination between women and men. So what I mean by the ideal is that women and men should be treated equally which is how I feel. And the reality that I'm encountering is that although my professor is a woman scientist, maybe that person mistreats women as well. That is a reality that sometimes I encounter.”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예를 들어, 저는 과학 분야의 대학원생입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 간의 차별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마주치고 있는 현실은 제 교수님이 여성 과학자이지만, 가끔 그분도 여성을 부당하게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끔 제가 마주치는 현실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웃음)
스님은 웃으며 가볍게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차별할 것이 없다는 것을 질문자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 능력이 더 뛰어난 것을 교수님께 보여줘야 합니다. 여성도 과학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 이 문제는 바로 해결됩니다. 이런 차별을 좌절로 느끼지 마시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계기로 삼아보시면 어떨까요?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들은 주로 자기 경험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과거의 여성들은 사회적 조건 때문에 남성보다 교육을 덜 받았습니다. 차별도 있었고요. 여성이 실력을 드러낸 사례는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학업 중에 결혼하면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질문자의 교수님은 그런 경험을 가지고 계셔서 여성보다 남성을 가르치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원칙을 얘기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면 차별을 극복하려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평등하게 된 사회의 혜택만을 바라지 말고 지금의 차별을 스스로 극복하는 노력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질문자에게는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가혹하게 대답했나요?” (모두 웃음)
“No. it's okay. I think you said a very good solution”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주 좋은 해법을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치매가 있어도 수행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시고, 저도 치매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카스트 차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북한 난민들은 소수자로서 차별을 받습니다. 그들도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일본과 한국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서로 협력해 나갈 수 있을까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불안감과 외로움을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요?
아기를 가져도 계속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자꾸 생각나서 힘듭니다. 어떻게 아쉬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대화를 나누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괴로울 때는 괴로워하는 마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듯이 바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합시다. 벨이 울립니다. 못 일어날 때 여러분은 뭐라고 합니까? ‘일어나고는 싶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라고 말하면서 몸을 탓합니다. 하지만 몸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정확하게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일어나기 싫다’ 하고 말해야 맞는 표현입니다.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말을 세 번만 소리 내어 말해 봅시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일어나기 싫다는 의미입니다. 벌떡 일어나면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을 살 때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일어나세요. 그러면 번뇌가 사라집니다. ‘놓아야 한다’라고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놓아보세요. ‘해야 한다’라고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해보세요. 그냥 합니다. 그냥 놓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합니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안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해보세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다면 그만두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괴로운 이유는 공부는 하기 싫지만 학위는 따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보세요. 다 써놓은 후에 다시 읽어보세요.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세요. 그러면 논문을 완성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자신의 실력만큼만 하면 됩니다. 더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못하게 됩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한다면 공부는 재미있어집니다. 만약 천문학을 공부한다고 합시다.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목적만 갖기보다는 우주에 대해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연구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따로 놀이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연애를 하고 있다면 애인과 같이 연구를 해도 좋습니다. 연애를 따로 하기 위해서 꼭 술을 먹지 않아도 됩니다.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도 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연애와 공부는 서로 모순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을 선불교에서는 다선일체(茶禪一體) 또는 선농일치(禪農一致)라고 표현합니다. 즉, 선(禪)과 차(茶)를 마시는 것, 선(禪)과 일하는 것이 서로 둘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이 곧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은 다 망념(妄念)이고 번뇌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곧바로 해버리세요. 잘못되면 고치세요. 잘못했으면 사과하세요. 모르면 물으세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틀렸는데 안 틀린 척하고,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우길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인생을 자유롭게 사세요.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됩니다. 그러면 부족한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질문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질문한 분들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한국인 유학생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다가와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는데 스님 법문을 듣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강연 직전까지 미팅이 이어져서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를 나와 밤 10시에 이경미 님의 댁에 도착해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캐나다 토론토로 이동하여 해외순회 즉문즉설 열일곱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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