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5.15 스승의 날, 캄보디아 ▶ 스리랑카 이동
“베풀고 나서 괴롭지 않으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

▲ 스님의 하루를 오디오로 듣고 싶으신 분은 영상을 클릭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캄보디아 시각으로 새벽 5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7시부터 스승의 날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서울지회, 문경지회 등 공동체 지부 구성원들이 발우공양을 마친 후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해 있었습니다. 스님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 함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서울 지회에서 행자님 한 명이 직접 손으로 만든 카네이션을 스님께 전달한 후 문경 지회에서도 꽃다발을 스님께 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카네이션을 받는 시늉을 했습니다. 카네이션이 랜선을 타고 스님께 전달이 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며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스님, 항상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의 눈시울이 금세 붉게 변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행자님들을 위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드립니다. 해외 답사 일정도 이제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를 통해 외국인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정토회를 방문하도록 한 행사를 진행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토회를 방문하셨던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현장에 와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둘러보니까 대부분이 자기 나라에 와서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정토회가 만들어서 실천하고 있는 모델들이 그들에게는 큰 자극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정토회가 동남아시아의 불교 발전과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이번 방문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는 다수가 온 것이기에 그들이 누구인지를 제가 잘 몰랐습니다. 그때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제가 방문해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들어보고, 그들이 하는 일도 직접 둘러보면서 이해와 교류의 폭이 많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점검해보는 일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계승이 되도록 하는 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청년들 간의 교류가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다음 시대는 그들이 중심이 되니까요.

불교인들은 누구나 다 인도에 가보게 되기 때문에 특히 수자타아카데미를 비롯하여 인도JTS가 하는 사업들이 동남아시아 불교 활동가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JTS에서는 경비 절약을 위해서 활동가 파견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여러분들도 시간을 내어서 한 번씩 견학을 다녀올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내에서만 활동하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말만 듣고 아는 것은 금방 잊혀지지만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새로운 동력이 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현장에서 자기 체험과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더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1박 2일 정도 충분한 시간을 내어서 제가 답사한 내용을 여러분께 보고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세워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

그동안 여러분 모두 검소하게 생활하느라 여러 가지 불편과 그에 따른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불편을 느끼며 생활한 것이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모델이 되고 희망이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화를 나눠보니까 ‘정토회 활동가들이 그런 환경에서 산다면 우리도 해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가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어제도 여학생들의 기숙사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학생들은 집에서 후원을 안 해주어서 방을 얻어 살기에는 임대료뿐만 아니라 가스비와 식사비를 내기가 어렵다며 여학생 기숙사 건립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한국 대학에서는 방 하나를 한 사람이 쓰는 데 비해 자기들은 형편이 안 되어 방 하나에 다섯 명씩 쓰고 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토회도 활동가들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그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모두 검소하게 산다는 원칙을 잘 지켜준 덕분입니다.

물론 불편한 것은 앞으로 계속 개선해 나가야겠지요. 힘든 것을 억지로 참고 사는 것은 오래 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미래 문명과 인류 전체를 생각한다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검소하게 산다’ 하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지고, 동남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여러분들이 지난 30년 동안 어려운 조건에서 일해 온 것들이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작은 희망이 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고,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 하찮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일과 정토회가 하는 일이 미래 사회에 새로운 길을 여는 데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각 지회별로 행자님들이 법사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 후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승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캄보디아를 떠나 스리랑카로 갑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거쳐 스리랑카로 가는 저가 항공을 이용하다 보니 비행기를 타는 시간보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부족했던 잠도 자고, 원고도 교정하고, 한국과 소통하며 업무도 보았습니다.

답사팀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이번 답사를 통해 국제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교류를 전담할 부서를 신설해서 청년 교류 프로그램과 국가별 한국어 전문 통역사 양성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 열악한 지역을 위한 구호, 개발 사업도 좀 더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겠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공항에서 저녁 9시에 비행기를 타서 스리랑카 시간으로 밤 10시에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와 한국JTS에서 쌀을 배분하고 있는 내륙지방인 우바주까지 밤새 차를 타고 7시간 동안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법회가 따로 없어서 2주 전에 한국에서 열린 경전대학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베풀고 나서 괴롭지 않으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요?

“저는 무주상보시를 배우면서 생긴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아직 수행이 많이 부족해서인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베풀었다는 생각이 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베풀었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서 잠자고 있다가 괴로워질 때가 되어서야 ‘아직도 무주상보시가 안 되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무주상보시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요?”

“사람들의 마음을 분석해보면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의 사람은 주는 것은 없이 받겠다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고, 이해를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베푸는 사람은 없고, 받으려는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괴로운 사람들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받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결혼생활이 힘든 이유도 서로에게 득을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인물, 재산, 능력, 가정, 성질 다 따져서 나한테 득이 될 만한 사람인지를 계산해서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까 별로 득이 안 된다 싶으니까 실망을 하게 되죠. 만약 손해까지 났다 싶으면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어떻게 사랑이겠습니까? 그냥 거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래일 뿐인데 거래의 대상자가 잘못 선정된 거예요. 그래서 이혼이란 상대와의 거래를 끊고 새로운 다른 대상을 찾아서 또 다른 거래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을 만약 장사라고 생각을 한다면 거래 대상을 잘못 선정했을 뿐이니까 지금처럼 이혼을 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이 따르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서로가 득을 보려고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샀을 때 주가가 떨어지면 ‘재수가 없구나’ 하면서 팔고 다른 주식을 또 사면 되듯이 상대를 미워하지는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결혼생활은 어떻습니까? 실제로는 장사를 하고 있으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은 계산적으로 생각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사랑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러니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 심보가 장삿속이라는 것을 알면 상대방의 심보 역시 장삿속이라 하더라도 미워할 이유가 없겠죠. 원래 결혼이란 일반 장사보다 훨씬 더 큰 이익을 원하는 장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상대가 잘났나 못났나보다 의리가 있나 없나를 가지고 사귀게 되고, 동업을 할 때는 상대가 신용이 있나 없나를 갖고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결혼을 할 때는 의리도 있어야 하고, 신용도 있어야 하고, 경제적 이익도 있어야 하고, 따지는 게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한 명 잡아서 평생 벗겨 먹을 심보로 상대를 고르고 있다’ 하고 말하는 겁니다. 서로가 그런 심보로 상대를 찾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바가지를 쓰게 되는 겁니다. (웃음)

결혼을 사랑이라고 자꾸 포장을 하니까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숫제 장사라고 생각하면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다고 여길 텐데, 사랑이라고 포장을 해 버리니까 배신의 과보만 남게 되는 겁니다.

제 말은 결혼은 장사이니까 결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장사로 결혼을 했을 때는 장사인 줄을 알라는 겁니다. 사랑일 때는 사랑인 줄을 알라는 말이고요. 사랑이라면 손익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상대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나 또한 이익을 따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살이가 괴로운 이유는 인간관계에서 이익만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장사가 잘 안되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 상대에게도 이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사람은 무턱대고 공짜로 얻으려는 도둑놈 심보를 버리고 투자를 합니다. 그러면 예전보다는 이익이 돌아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확 줄어드는 거예요.

가령 장사를 할 때도 나만 덕을 보려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덕을 보게 해주면 서로 신뢰가 생깁니다. 그래서 관계가 오래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거래하는 것보다 나하고 거래하는 게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회사에 취직을 하면 월급만 많이 받으려고 하고 회사가 잘 되든 못 되든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요. 반대로 사장은 노동자가 괴로운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쓰고 회사의 이익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장이 노동자들에게 다른 회사보다 덕을 많이 보게 해주면, 즉 월급을 많이 주든지, 혜택을 많이 주면,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에 갈 이유가 없어져요. 노동자가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해줄수록 회사에게는 이익입니다. 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사장이 나를 고용하는 이유가 손해를 보려는 것은 아니라 회사에 이익을 보려고 고용을 하는 겁니다. 그걸 알면 내가 사장한테 덕을 좀 보게 해주면 되는 거예요. 내가 회사에 있는 것이 이익이 된다면 사장이 나를 내보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나에게도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거예요.

첫 번째 단계의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을 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도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덕을 보게 해줬는데도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좋은 말을 했는데도 욕을 얻어먹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단계의 사람은 내가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그가 나한테 좋은 말을 하든 욕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관점을 갖는 사람입니다. 결과에 대해 괘념치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것에 대해 괘념치 않으니까 내가 할 일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무주상보시’란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라고 하는 겁니다. 무주상보시를 하면 괴로워하거나 미워할 일이 없어져요. 내가 할 일은 내가 하면 되고, 상대방이 나한테 어떻게 하느냐는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손해가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관계를 끊으면 되지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손해가 나는 사람하고는 거래를 안 하면 되지 그 사람을 욕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첫 번째 단계 수준을 벗어나서 겨우 두 번째 단계를 흉내만 내고 있어요. 이익을 주면 이익이 돌아와야 되는데, 이익을 줬는데도 손해가 가끔 오니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는데’ 하고 의심이 드는 겁니다. 그러니 한 번에 세번째 단계로 건너뛰려고 하지 마세요. 이런 원리에 따라서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훌륭하고 저렇게 되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불교의 가르침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만 이익을 보고자 하면서 괴롭게 사는 것도 자기 선택이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좀 오래 지속하는 것도 자기 선택이고, 아예 이익을 받을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도 자기 선택입니다. 그러니 자유롭게 선택하면 됩니다. 이것을 선택하면 더 좋다고 스님은 말하지 않습니다. 스님은 결혼해라 마라 이런 얘기를 일절 하지 않잖아요. ‘내가 혼자 사니까 당신도 혼자 사시오’ 이런 말도 하지 않잖아요.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그중에 어떤 삶을 살 것이냐는 각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알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예측이 어긋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좀 나쁩니다. 하지만 금방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하고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없습니다.”

“네, 제가 그동안 계산기를 두드렸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귀한 법문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67

0/200

드림하이

‘무주상보시’란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라고 하는 겁니다. "

2023-08-17 18:25:37

보문성

내가 좋아서 하고 상대가 내게 하는 일은 괘념치 않는 단계.
그런 단계가 있는 것을 알아듣는 것 만도 감사합니다.

2023-05-27 08:26:24

무구의

고맙습니다.

2023-05-24 09:48:25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