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17 금요 즉문즉설
"외도를 한 남편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차가운 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꽃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네요.

오늘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서 회의를 하루 종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헤어지고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55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자가 시청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요즘 폐교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폐교의 뜰에는 벌써 흰 목련과 진달래가 활짝 피었습니다. 봄이 예년보다 좀 일찍 왔네요. 비가 오면서 날씨가 좀 쌀쌀해지기도 했지만, 주말에 야외로 나가시면 아마 일찍 핀 매화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하동을 지나갔는데 매화가 대부분 지고 있었습니다. 봄이 이렇게 빨리 오고 있습니다.”

봄소식을 전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네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최근에 남편이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혼을 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용서를 빌고 있는 상황을 말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외도를 한 남편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해요, 어떡하죠?

“저는 다섯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 맘입니다. 작년에 남편의 외도 사실을 남편의 고백을 통해 알았습니다. 남편은 상간녀가 협박하고 있다며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고, 저는 그 파일을 증거로 현재 상간녀와 소송 중입니다. 남편의 바람은 결혼 전에도 한 번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저는 남편이 두 번이나 다른 여자랑 외도를 했다는 것에 실망했고, 지금 부부간의 신뢰가 무너져서 결혼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처럼 용서를 빌며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입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이 질긴 인연을 끊고 이혼가정에서 자라는 아들의 입장을 헤아려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제가 누구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야 할까요?”

“제 입장에서 먼저 얘기해 주세요.”

“이혼을 하게 되면 질문자는 후회를 할 것 같아요. 그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람피운 것만 빼면 남편이 괜찮은 사람이죠? 바람피운 것 말고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

“네, 한 번씩 욱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욱하는 성격을 빼고도 남편 하고는 도저히 살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저랑 성격이 안 맞습니다.”

“바람피운 것 말고도 앞으로 이 인간하고 살기가 참 어렵겠다고 하는 생각이 분명히 있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이혼을 하세요. 화를 잘 낸다, 돈을 잘 못 번다, 이런 것들은 이혼 사유가 되기 어렵지만 바람피운 것은 두 사람의 혼약에 어긋나니까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핑계로 이혼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같이 사니까 바람피운 게 큰 문제가 되는데, 이혼을 해버리면 그 남자가 어떤 여자를 만나든 나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져요. 즉, 바람피운 문제는 이혼하는 즉시 없어져 버려요. 그러나 그 남자와의 결혼생활에서 얻을 수 있었던 많은 장점들 또한 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혼자 살게 되면 그 장점이 다시 생각나게 돼요. 그러면 이혼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다른 문제가 더 있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바람피운 것 말고 큰 문제가 없다면 남편이 싹싹 빌 때 봐주고 같이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바람을 피우고 나서도 뻔뻔스럽게 자기가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질문자의 남편은 그래도 잘못했다고 빌잖아요. 한 번 봐주면 오히려 남편의 약점을 잡았으니까 앞으로 같이 사는 게 훨씬 수월한 측면도 있습니다. 목에 올가미를 하나 걸었으니까요. 나쁘게만 볼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굉장히 유리해진 거예요. 남편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질문자가 갑이 된 겁니다. 남편이 또 말을 안 들으면 ‘당신 그때 바람피우고 나한테 뭐라 그랬어. 싹싹 빌고 내 말 잘 듣겠다고 했지?’ 이렇게 겁을 주면서 데리고 살면 됩니다. 이것은 다른 건 다 괜찮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입니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싹싹 빌지 않으면 올가미가 안 됩니다. 지금 남편은 질문자에게 약점이 잡힌 것이니까 그 약점을 잡고 같이 사는 것도 괜찮아요. 그렇다고 남편이 또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은 할 수 없습니다. 또 잘못을 하면 그 약점을 잡아서 더욱더 내가 갑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만약 내가 갑질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뻔뻔스럽게 나오는 수준이 되면 그때 가서 이혼을 해도 되거든요.

그러나 바람피우는 것 말고도 문제점이 많다면 바람피운 것을 핑계로 이혼을 하라는 겁니다. 남편이 아무리 빌어도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구질구질한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헤어질 때 구질구질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더 초라한 건 없습니다. 딱 한마디만 하면 돼요.

‘나 이외에 다른 여자가 좋으면 그냥 그 여자하고 살아라. 나는 나 이외에 다른 여자와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남자 하고는 같이 살고 싶지 싫다. 그건 내 인생관이다. 그러니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남자 하고는 살기 싫다는 것이다.’

이렇게 딱 입장을 밝히고 이혼소송을 내면 됩니다. 과거에 연애를 할 때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은 이혼 사유가 안 됩니다. 그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결혼하고 나서 바람피운 것을 갖고 얘기해야 합니다. 연애할 때는 ‘이 여자가 괜찮을까, 저 여자가 괜찮을까?’ 하면서 양다리를 걸쳐도 아무런 죄가 안 돼요. 그러나 지금은 남편이 혼인 서약을 어긴 것이니까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피운 것 말고 다른 부분은 괜찮다면 약점을 잡아서 협박도 좀 하고 갑으로 살면서 남편의 행동을 한 번 더 지켜보면 좋겠다 싶네요. 왜냐하면 질문자가 후회를 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혼자 살면 아이 키우기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때 싹싹 빌 때 봐줄 걸’ 하고 후회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말은 이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혼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에요. 같이 살아도 괴롭지 않게 살아야 되고, 이혼을 해도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려면 나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가져야 돼요. 그래야 후회가 없습니다. 같이 살려면 남편의 잘못을 계속 문제 삼으면 안 돼요. 같이 살면서 상대를 계속 불신하면 같이 살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받아 놓고, 나머지는 없었던 일로 해줘야 합니다. 다시 잘못을 범하면 그때 가서 다시 결정하면 됩니다. 계속 의심하고 문제 삼으면 서로가 피곤해져요. 행복하기 위해 같이 사는 것이지 괴롭기 위해 같이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선 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네요. 제가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찌 보면 작은 문제일 수도 있다는 관점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모습을 뒤로하고 다음 질문자와의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최근에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저는 몇 년 동안 운이 좀 안 좋은 일들을 겪었어요. 고연봉의 회사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망했고, 제가 하는 일이 외부 요인으로 급속도로 위축이 되어서 수익성이 떨어졌던 일도 있었고, 개인 신변에도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이렇게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상황이 좀 좋아지긴 하였으나 운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나쁜 운과 좋은 운을 구분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운이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걸까요?”

“첫째, 운이 좋은 사람과 운이 안 좋은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둘째, 더 깊이 들어가면 좋은 운과 나쁜 운이라는 것도 없어요.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면 좋은 운이라고 하고,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쁜 운이라고 할 뿐입니다. 좋은 운과 나쁜 운이라는 건 없습니다.

질문자 스스로는 나쁜 운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가 볼 때 질문자는 그런 나쁜 운보다 백 배 천 배 더 좋은 운을 겪었어요. 그 기간 동안 돈을 좀 잃어버렸거나 몸이 아팠거나 직장을 그만뒀거나 잘렸거나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겪은 것은 맞지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대운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대운을 가진 건 생각 안 하고 조그마한 일에 사로잡혀 있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나쁜 운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괴로움은 질문자의 올바르지 않은 관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등산을 간다고 합시다. 결과적으로 그 산의 정상에 올랐느냐가 중요하지, 올라가는 과정에 개울이 있었다, 길이 가팔랐다, 땀을 많이 흘렸다, 신발이 벗겨졌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다 지나 놓고 나면 그런 건 얘깃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내가 정상에 도달했다고 할 때 그 과정은 복잡할수록 더 재미가 있는 거예요. 얘깃거리도 많이 생기고요. 지금 내가 안 죽고 산 것이야말로 대운입니다. 이러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내가 안 죽고 살아서 여기에 왔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저러한 일을 겪은 건 지금 살아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봐요. 질문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중요하지, 3월 말 고사에서 등수가 중간까지 미끄러졌다가 4월 말 고사에는 5등 안에 들었다가 6월 말 고사에는 다시 중간 등수까지 돌아왔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질문자는 운이 하나도 없죠. 그러나 꼴찌를 기준으로 하면 자기는 대운을 가진 겁니다. 꼴찌를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기준을 1등에 두니까 절망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지금 내가 여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예요.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겹친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에요.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면 '오늘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다 ‘, ‘오늘 학교를 나가다가 신발을 바꾸어서 신었다’, ‘세수하다가 옷을 좀 적셨다’, ‘화장실에 갔는데 변이 안 나왔다’ 하면서 하루에도 열 가지, 천 가지를 갖고 좋으니 나쁘니 따질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전체적으로 보면 별일 아닙니다. 생활하는 과정에서 매일 생겨나는 문제잖아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따로 없는데 무슨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겠어요?

질문자가 욕심을 내서 높은 기준을 갖기 때문에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랐는데 뜻대로 안 된 게 많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본인이 본인에 대해서 ‘나는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들도 '저 사람은 운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질문자한테 무슨 도움이 돼요? 남들이 ‘너는 참 운도 없다’ 이렇게 말해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운이지!’

이렇게 말하고 넘어가야지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오는 운도 도망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관점을 바꾸어서 긍정적으로 살겠습니다.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일도 많았고, 최악의 상황이 된 것도 아닌데, 자꾸 제 욕심을 갖고 상황을 안 좋게만 봤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긍정적으로 보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우유부단한 제가 너무 싫습니다. 결혼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자 합가를 했다가 1년 후 분가, 외할머니께서 임종하신 후 다시 합가 했고, 그리고 또다시 얼마 전에 아내와 아이만 분가를 시켰습니다. 저는 불효자일까요?

  • 얼마 전 사이비 종교에 관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한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뒤섞여 불쾌감이 듭니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네 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서 대화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시청자 여러분들도 대화를 들으면서 각자 자신에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생방송을 종료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문경 봉암사에서 열리는 서암 큰스님 열반 20주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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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큰스님. 감사합니다. 지금 살아있어 감사함은 부처님을 알고, 가르침을 받고 있고, 고귀한 승가가 존재함을 알수 있게 된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2023-04-02 09:00:18

노현주

감사합니다.

2023-03-23 09:04:50

보각심

지금 이대로 감사한줄 깨닫습니다. 내가 원하는것은 이만큼이지만 관점을 바꾸면 이정도로 살아가는것도 박수받을만한 일입니다.

2023-03-22 11: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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