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2.2 인도성지순례 5일째, 라즈길
“왜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마음이 불안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 등 유능한 제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최초의 불교 사원인 죽림정사를 기증받은 라즈길을 순례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순례단 B팀과 함께 새벽 5시에 수자타 아카데미를 출발하여 라즈길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1시간 30분을 달려 6시 30분에 왕사성 서문 밖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제띠안(Jethian)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제띠안 까지 가는 길이 어두웠습니다.

어젯밤 라즈길에서 숙박을 한 A팀도 제띠안 수투파 아래에 모두 집결했습니다. 1250명이 모두 가사를 수하고 세계평화 행진을 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사이 날이 밝았습니다.

행진을 시작하기에 앞서 스님은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의 만남을 기념하여 세워진 스투파 자리에 올라서서 이곳 제띠안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제띠안(Jethian)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야산에서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등 천 명에게 설법을 하시고 그들과 함께 이곳 왕사성으로 오셨습니다.

당시 왕사성에는 빔비사라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왕사성으로 오신다는 이야기가 부처님보다 먼저 왕사성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과 빔비사라왕의 만남

우르벨라 가섭은 나이가 80이나 되었고 당시 유명한 수행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우르벨라 가섭이 어떤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빔비사라왕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행이 왕사성으로 온다고 하니까 왕은 신하들과 여러 왕족들을 데리고 이곳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여기 골짜기로 들어가면 왕사성의 서문이 나오는데, 왕은 신하와 왕족들을 데리고 서쪽 성문을 나와서 부처님 일행을 마중했습니다. 성으로부터의 거리가 약 1 유순이라고 하는데 이는 15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그렇게 먼 길을 마중 나와서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 부처님과 빔비사라왕이 만나게 됩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곳이 탑터인데, 바로 부처님과 빔비사라왕이 만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탑을 세웠던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허물어져서 이렇게 벽돌만 남아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래쪽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니까 그쪽에 탑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탑을 여기 산 위에 세웠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쩌면 대중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위로 올라와서 설법을 하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는데 확실한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빔비사라왕과 마찬가지로 당시에 모인 대중들도 저기 저 젊은이가 진정 소문에 들리던 우루벨라 가섭의 스승인가, 아니면 우루벨라 가섭이 저 젊은이의 스승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이 우루벨라 가섭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우루벨라 가섭님이 어떤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저는 그 말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말은 세 살 먹은 어린아이가 여든 먹은 노인을 보고 이는 내 손자요 하는 것만큼이나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우루벨라 가섭이 노구를 이끌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부처님 앞에서 합장공경을 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분은 나의 스승이고, 나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내가 이 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을 만나고 나서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그러자 많은 대중들은 ‘아, 저 젊은 수행자가 소문에 들리던 그 고타마구나’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빔비사라왕은 이번에는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문 고타마시여, 저는 왕자 때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제가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왕자가 수십 명이 되니까 그중 한 명이 왕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왕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보드가야도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던 마가다국의 땅이니까 그 소원도 성취가 된 것이죠.

‘세 번째는 제가 그 부처님을 친견하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성취가 되었어요.

‘네 번째는 제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해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뱉은 가래를 다시 집어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실 부처님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왕사성에서 ‘웃타카 라마푸트라’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할 때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왕사성에서 걸식을 하는데 빔비사라왕이 왕궁의 누각에서 내려 보다가 한 젊은 수행자가 발우를 들고 지나가는데 너무나 여법하게 걸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시켜서 ‘저분이 누구인지 가서 한번 알아보아라’라고 해서 아랫사람이 가서 알아보고 ‘북쪽 카필라성의 태자인데 출가를 해서 수행하고 있는 고타마라고 합니다’ 이렇게 전하니까 왕이 직접 나가서 부처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북쪽 카필라바스투의 왕자가 출가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출가수행자가 당신이 맞습니까?’
‘네.’
‘젊은 나이에 이런 훌륭한 용모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신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게 여동생이 있는데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제 여동생과 결혼을 해서 이 나라의 반을 줄 테니 함께 다스리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대답을 안 하셨어요.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혹시 나라를 같이 다스린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가 해서 ‘당신 같이 훌륭한 사람이 출가수행자라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 나라를 통치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보좌하겠습니다.’하고 다르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남의 나라를 대신 다스리는 게 미안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그렇다면 내가 수많은 군대를 당신에게 지원해 드릴 테니까 다른 나라를 쳐서 큰 나라를 만드십시오’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떤 불만이 있어서 출가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나라도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 어찌 제가 남의 나라를 탐하겠습니까? 제가 제 나라도 버리고 출가했는데 어찌 남의 나라를 뺏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입 안의 가래가 더럽다고 뱉은 사람이 남이 뱉은 큰 가래를 보고 그걸 집어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없듯이 저는 세속에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이런 수행자라면 정말 큰 도를 이루겠다 싶어서 ‘만약에 당신이 도를 이루게 된다면 잊지 말고 꼭 나를 구제해 주십시오’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 빔비사라왕이 멀리 이곳까지 부처님을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왕과 대중을 위해 설법을 했습니다. 왕은 그 설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수다원과는 법의 이치에 눈을 뜬 단계로 다른 말로는 초견성(初見性)이라고 하죠. 그렇게 법에 눈을 뜬 왕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기록에 따르면 그곳에 모인 대중들 대부분이 이치에 눈을 뜨고 수다원과를 증득했다고 합니다. 이제 왕은 자신의 다섯 번째 소원을 말합니다.

‘저의 다섯 번째 소원은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왕궁에 들러주십시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 청에 대해서는 거절을 하셨습니다. 출가수행자는 굳이 왕궁과 같이 화려한 곳에서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자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뜻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어디에 머물면 좋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성 밖에 왕의 소유였던 대나무숲을 수행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이 1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도착한 곳

대나무숲을 베누바나(Venuvana)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숲이라면 기꺼이 받겠다고 해서 그곳에 수행자들이 머물게 되고, 그렇게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행사가 끝나면 바로 죽림정사로 가서 법회를 하려고 해요.

대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당시에 위대한 종교지도자인 우르벨라 가섭이 교화되고, 당시 인도에 있던 300여 개의 나라 가운데 최대의 규모였던 마가다국의 왕인 빔비사라왕이 교화되면서 부처님의 교화 여정이 비교적 순탄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모두 성도 후 1년 안에 일어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드가야에서 성도하시고, 바라나시의 사르나트로 가셔서 옛 친구 다섯 명을 교화하셨습니다. 또 당시 바라나시 최대의 부자였던 구리가 장자의 아들 야사를 교화하고, 구리가 장자와 그의 아내를 교화하고, 야사의 친구 55명을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보드가야로 다시 돌아가셔서, 6년 고행을 하실 적에 이미 어떤 수행자들인지 잘 알고 있었던, 우르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일행 1천 명을 교화했습니다. 그렇게 교화된 1천 명의 제자들이 우리가 온 그 길을 4, 5일 동안 걸어온 다음, 이곳에서 빔비사라왕을 만나고 이 길을 따라 왕사성으로 들어가서 죽림정사에 머문 것입니다.”

이어서 관련된 내용이 담긴 경전을 함께 독송했습니다. 순례단이 경전 독송을 하고 있는 사이에 스님은 스투파에서 내려와 행진 대열의 선두에 자리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80년을 오로지 인류의 행복과 해탈을 위해 걸어오셨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 7가지 법을 설하시면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제띠안에서는 순례단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선언과 평화행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만국기와 불기를 꺼낸 후 세계평화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우리 1250명의 정토행자는 1차 만일결사를 원만히 회향하고, 이제 2차 만일결사를 새로이 시작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1,000명의 제자들과 함께 전법의 깃발을 들고 보드가야에서 제띠안까지 걸어오셨듯이, 이역만리 한반도에서 세계전법의 깃발을 들고 붓다의 고향을 찾아온 법륜스님과 1250명의 정토행자는 함께 다짐합니다...

......부처님을 닮고자 합니다. 부처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언제나 내가 가진 기쁨을 이웃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모든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고, 모든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겠습니다.

세상의 배고프고 병들고 배우지 못한 이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겠습니다. 인종, 민족, 성별, 종교, 계급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보호하며, 모든 이 앞에서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물질 문명과 소비주의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검소한 생활이 넉넉한 삶임을 알아 하나뿐인 지구를 잘 보존하겠습니다......

2023년(불기 2567년) 2월 2일
정토회 32차 인도성지순례단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1250 수행자 두 손 모음

이어서 평화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순례단도 부처님처럼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이곳 제띠안에서 평화행진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먼저 세계평화 현수막이 제일 앞으로 나가고 그 뒤를 이어 스님과 1250명이 따라갔습니다. 순례단은 불기와 만국기를 손에 들고 50분 정도를 걸었습니다. 우선 평화를 나의 가슴에 새기는 평화명상 걷기 시간을 20분간 가졌습니다. 묵언하면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평화명상을 마치고 다 함께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면서 신나게 행진을 해보았습니다.

“세계평화, 나로부터!”

“인류에게 행복을, 행복! 행복! 행복!”

여광 법사님의 선창으로 힌디어로도 구호를 외쳤습니다.

“웨시브 싼띠, 함가랑께!”
(세계 평화, 내가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온 하동협 님의 선창으로 영어로도 구호를 외쳤습니다.

“No War, Yes Peace!”
(전쟁은 가고, 평화는 와라!)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손에 손 잡고, 우리의 소원, 아랫집윗집, 앞으로 등 힘차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덧 반환점에 도착했습니다. 가사를 벗고 차량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걸어왔던 길을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오늘 1250명의 순례단이 염원하고 함께 외친 평화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 울려 퍼져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앞당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버스를 주차한 곳으로 돌아와 각자 싸 온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바위 한편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은 후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가 옛 왕사성의 남문을 지나 북문으로 나오자 금방 죽림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대나무 숲과 카란다(Karanda) 연못이 남아 있어 죽림정사가 있던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죽림정사를 돌아보며 대중과 어떻게 탑돌이를 하면 좋을지 길을 둘러보았습니다.

곧 순례자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스님은 입구로 가서 대중과 함께 연못을 돌아 명상 공원까지 조용히 걸어왔습니다.


1250명이 모두 자리하자 스님이 이곳 죽림정사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이곳은 불교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竹林精舍)입니다. 여러분 모두 죽림정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 일어난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탁발 나온 앗사지를 보고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가 부처님께 귀의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고, 수닷타장자가 왕사성에 왔다가 부처님을 뵙고 귀의한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펼쳐졌습니다. 마하가섭 존자가 이곳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이곳은 왕사성으로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부자들도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이 지역에서 아주 존경받는 바라문 집안이 있었는데, 바로 마하가섭의 집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같은 브라만이라고 해도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 모두 7대로 브라만족 위에 다른 피가 섞이지 않아야 최고의 브라만이라고 인정해 줬는데, 마하가섭은 그런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부유했습니다.

이렇게 신분도 높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집안에 마하가섭이 태어났는데, 이 아들이 나이가 되어도 결혼을 안 하는 거예요. 보통 그런 부잣집 아들이면 유희를 즐길 텐데 마하가섭은 일절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부처님도 출가하기 전 젊은 왕자 시절에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지냈고, 야사도 그랬잖아요. 그런데 마하가섭은 쾌락을 즐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님이 계속 결혼을 하라고 독촉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남자에게만 재산상속권이 있고, 남편이 죽고 나면 남편의 재산이 부인에게 전해지는 게 아니라 국가로 몰수되었습니다. 이처럼 여자에게는 재산상속권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결혼을 하라고 독촉하니까 마하가섭이 꾀를 내어서 전단 향나무에 아주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해서 어머니께 드리면서 이런 여자가 아니라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향나무 조각을 가지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여자를 찾았는데, 마침 향나무 조각의 모습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어요. 그러자 마하가섭이 결혼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하고 첫날밤에 마하가섭이 아내에게 ‘나는 사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당신과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형식적으로만 결혼을 유지하면 어떻겠냐’고 고백을 했어요. 마하가섭의 아내도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마침 자기도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합의를 해서 가족들한테는 평범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척하고 지냈습니다. 부모님들은 손자 소식을 기다리는데 몇 년을 기다려도 아기를 안 낳는 거예요. 이것저것 좋다는 것을 다 먹여봐도, 부부관계를 하지 않으니 아기가 생기지 않았겠죠.

결국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그러자 두 사람은 합의를 했어요. 마하가섭은 자기는 집을 떠날 테니 재산을 모두 아내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도 재산이 필요 없다고 했고, 결국 두 사람은 왕에게 재산을 주면서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등을 맞대고 서서 한 사람은 이 쪽으로 가고, 다른 사람은 저 쪽으로 갔다고 해요. 등을 맞댔다는 건 앞으로 만나지 말자는 의미예요. 둘이 원수가 된 것이 아닌데도 서로 존중하고 합의해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마하가섭은 이미 부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로 바로 부처님을 만나 출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하가섭의 아내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요. 당시에는 여성 출가수행자가 허락되지 않았을 때니까, 마하가섭의 아내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죠. 아쉽게도 따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하가섭이 부처님을 찾아갔을 때 부처님께서 ‘내 이미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부처님께서 ‘내 이미 너를 기다린 지 오래다’ 이렇게 말한 제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수닷타 장자입니다.

그렇게 마하가섭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고 나서 출가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과 함께 걸식을 했습니다. 당시 수행자들은 대개 집에서 입던 옷을 입고 그대로 출가를 했습니다. 마하가섭은 부잣집 아들이니까 자기는 헌 옷을 입고 출가했는데도 아마 다른 수행자들에 비해 옷이 좋았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걸식을 하는데 밥을 먹다가 부처님이 마하가섭의 옷을 만지면서 ‘옷이 매우 부드럽구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하가섭이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기가 입은 옷은 값비싼 비단옷이었고, 부처님은 다 떨어진 분소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마하가섭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입던 옷을 부처님께 드리고, 부처님이 입던 분소의를 자기가 입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마하가섭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대해 매우 엄격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부잣집 아들로 자란 마하가섭이 출가생활을 하면서도 부잣집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처님께서 그런 부분을 지적하자, 확 바뀌어서 수행자 중에서도 가장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두타제일 마하가섭’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두타라는 건 늘 숲 속에 산다는 의미입니다. 극단적 고행주의는 아니지만 늘 숲 속에 머물 정도로 검소하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옷도 다 떨어진 걸 그냥 입고 그러다 보니 비구 중에서도 마하가섭은 조금 지저분하게 지냈나 봐요. 어느 날 오늘 우리처럼 대중이 모여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데 마하가섭이 늦게 왔어요. 마하가섭처럼 장로다 보면 아무래도 대중들이 자리를 비켜주기 마련인데,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고 해요. 안 비켜줬다는 건 평소에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했다는 거죠.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하가섭을 불러서 자신의 자리 절반을 내주고 앉게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대중들은 ‘저렇게 지저분하게 지내는 마하가섭이 어떤 존재이기에 부처님께서 저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하가섭은 나와 같다. 내가 선정을 닦으면, 마하가섭도 선정을 닦는다. 내가 크게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바라보듯이 마하가섭의 인자함도 이와 같다. 내가 대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듯이 마하가섭도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그 후로는 대중들도 마하가섭을 존중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를 선(禪)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마하가섭에게 이심전심으로 법을 전했다는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마하가섭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결집하는 일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결집한 경(經)과 바른 행위를 결집한 율(律)을 정리했습니다.

저기 산 중턱에 동굴이 있는데, 동굴의 입구가 꼭 나뭇가지 두 개 같이 두 군데고, 그 안에 방이 일곱 개가 있어서 칠엽굴 또는 삽타파니 케이브(saptaparni cave)라고 불립니다. 삽타(sapta)가 숫자 7을 의미한다고 해요. 이 칠엽굴에서 경전과 율장의 결집이 처음으로 이뤄졌습니다.

사리풋트라와 목갈라나는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이미 두 제자는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리고 마하가섭 존자가 상수제자가 되어 아난존자가 경(經)을 읊고, 우파리 존자가 율(律)을 읊어서 경전의 제1결집이 이뤄지는데, 그곳이 바로 저 칠엽굴입니다.

이렇게 활동을 하신 부처님의 제자가 마하가섭입니다. 그리고 선(禪) 불교에서는 석가여래부촉법 제1대가 마하가섭 존자입니다. 그분이 바로 이곳에서 출가를 하셨습니다.”

스님은 죽림정사가 최초의 절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불교 교단의 기반을 형성하며 본격적인 교화활동이 펼치지는 교두보 역할을 한 곳임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설명한 내용이 경전 속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함께 읽어보고,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며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정성을 다해 세계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에서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스님이 죽림정사에서 꼭 생각해보아야 할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의 왕인 빔비사라왕은 인도에 있었던 300여 개의 나라 중 가장 큰 나라의 왕이었다는 점입니다. 빔비사라왕은 성도 제일 크고, 집도 제일 크고, 마차도 가장 좋은 걸 가지고 있었고, 부인도 많았고, 보석도 이 나라에서 좋다는 보석은 다 가지고 있었고, 음식도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건 빔비사라왕이 다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물질적으로는 부러울 게 없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왕은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고, 여전히 남의 것을 탐하거나 빼앗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마음이 불안할까요?

당시 백성들은 나라에서 가장 좋은 물건이라고 하면 모두 왕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빔비사라왕은 끊임없이 좋은 물건을 가져와서 생활을 하는데도 도대체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부인이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부인이 많으니까 아들들도 많았어요. 그렇게 되면 왕자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왕위쟁탈전이 벌어집니다. 코살라국의 왕도 나중에 부처님을 만나 참회할 때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해서 형제 100명을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반면 부처님은 집도 없고, 옷도 분소의를 입고 다니고, 밥도 얻어먹고 다녔습니다. 가족도 떠나서 살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부처님은 늘 태평스럽고 평화롭게 사셨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을 가진 우리도 늘 불안하게 살아가죠. 당시 왕들은 침실에도 경비를 세울 정도였으니 어디를 가도 삼엄한 경비 속에서 지냈던 거예요.

이게 참 모순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부처님은 자유롭고 행복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가진 왕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끊임없이 남의 것을 뺏으며 살았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길까요?

부처님은 출가하기 전 왕자의 시절에 더 행복했을까요, 출가한 후 수행자의 시절이 더 행복했을까요? 부처님의 기록을 봐도 수행자 시절에 훨씬 더 자유롭고 여유로웠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어릴 때도 고민이 많았지만, 왕이 될 때나 왕이 되고 나서 더 골치가 아파졌어요. 왕이라면 사회적 지위로는 최고에 오른 거잖아요. 부처님께 고백했듯이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고, 그걸 다 이뤘다고 했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게다가 빔비사라왕은 결국 아들한테 쫓겨나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

여기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게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어요. 빔비사라왕은 늘 부처님을 찾아가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부처님이 왕을 찾아가서 호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누구를 만나도 음식 달라거나, 옷을 달라거나, 집을 달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종교인들이 생각해 볼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어느 종교든 정치인을 만나면, 정치인이 고민을 털어놓기보다는 종교인이 정치인들에게 건물을 지어달라, 병원을 지어달라 등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인이 세속적인 걸 구걸하면 세속인이 종교인을 얕잡아 보게 되지 어떻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겠어요?

법의 상속자가 될지언정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

왕이라고 하더라도 세속적인 삶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거나 무언가 해결하지 못해서 수행자를 찾아와서 묻고 답을 얻어갈 때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생겨납니다. 이 위대한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초라해져 버렸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도 수행자라는 사람들이 재벌의 하수인이 되고,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어서 늘 왕이나 권력자들에게 돈 좀 얻어서 절 크게 짓는 걸 하려고 합니다. 스님들도 수행을 하는 게 아니라 절을 크게 짓는 걸 인생의 성취 마냥 뿌듯해합니다. 과연 이렇게 ‘내가 이걸 이뤄놓았다’ 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일까요? 부처님께서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비구들이여, 법의 상속자가 될지언정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말라.’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도 비록 재가수행자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돈을 벌고 사회적 역할을 맡아서 생활하지만 그런 것에 껄떡거리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고 지위가 올라가는 걸 굳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수행자라면 그런 것에 껄떡거리지 않고, 그런 것에 기죽지도 말고, 그런 것 좀 된다고 목에 힘주거나 거들먹거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곳에서 보여주신 부처님의 삶의 모습에서 이런 가르침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산속 동굴에서 조용히 지내셨어요. 왕은 왕족들 안에서 무슨 분란이 있거나 주변국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면 부처님을 찾아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께서 차분히 이야기를 해주면 마음의 위로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였던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짓왕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처님을 찾아와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는 고민이 해결되어 기뻐하는 모습들을 초기 경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 수행자가 됐으면 직장 생활에서 너무 승진하고 출세하는 것에 껄떡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성실하게 일했는데 돈이 벌리고, 승진을 하면 좋은 일이에요. 그 정도로 받아들여야지, 거기에 너무 껄떡거리면서 사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 것에 비굴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직급이 낮아도, 급여가 적어도, 집이 작아도, 괜히 자기 집을 남의 집과 비교해서 기가 죽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집도 없고, 옷도 없고, 밥도 얻어먹은 부처님은 늘 당당하셨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그런 부처님의 모습을 한번 마음에 새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법문을 한 후 합창단의 선창으로 ‘부처님께 바칩니다’ 노래를 함께 부른 후 죽림정사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순례자들이 죽림정사를 둘러보는 사이 스님은 교육 자료로 사용할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나무와 달리 무리를 지어 자라는 인도 대나무 앞에서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이 왜 대나무 숲에서 수행을 했는지 설명을 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1시 30분에 최초의 여성 출가가 이루어진 바이샬리로 향했습니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다 바퀴에 구멍이 나기도 했습니다. 인도인 운전사와 조수는 능숙하게 타이어를 갈고 다시 도로를 달렸습니다.

파트나에서 하지푸르로 넘어가는 마하트마 간디 다리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정체해 있었습니다. 갠지스강 중하류를 가로지르는 5750m에 이르는 마하트마 간디 세투 다리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입니다. 1만 2천 명의 보행자와 85,000대 이상의 차량이 매일 이 다리를 이용하다 보니 무척 길이 막혔습니다.

“창 밖을 보세요. 갠지스 강입니다. 5개의 강이 만나서 여기서부터 하나의 갠지스 강이 되어 흐릅니다. 강이 바다처럼 보일 정도로 넓어요.”




6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7시가 넘어 바이샬리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을 준비해 먹고 성지순례 일정을 점검하고 원고 교정을 본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원숭이가 부처님에게 꿀공양을 올렸다는 원후봉밀터에서 법회를 한 후 쿠시나가르로 이동하고, 이동하는 중에 고팔간지(Gopalganj)라는 도시에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2023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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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모든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고, 모든 생명을 아끼고 존중하겠습니다. 인종, 민족, 성별, 종교, 계급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보호하며, 모든 이 앞에서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물질 문명과 소비주의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검소한 생활이 넉넉한 삶임을 알아 하나뿐인 지구를 잘 보존하겠습니다."

2023-11-13 10:03:39

해탈지

많이 가졌음에도 불안하고 괴로운 삶을 사는 빔비사라왕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유롭고 평온하셨던 부처님의 삶을 거울삼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야겠습니다

2023-03-01 20:27:00

이창희

스님법문 다시 들으니 그때 조느라고 듣지 못했던 법문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제띠안과 죽립정사가 눈에 선하고 열차가 온다고 오래시간 기다렸던 곳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그때는 졸지않고 스님법문 잘 듣고 그 현장을 마음에 세길 것 같습니다.
껄덕거리지 않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2-26 09: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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