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28. 바라나시(Varanasi), 마하보디소사이어티 방문
“이 분 덕분에 우리가 성지순례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바라나시 태국 절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바라나시에 도착한 A팀 참가자들은 새벽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마치고 새벽 6시에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강가강 인근까지 간 후 걸어서 강가강에 도착했습니다. 순례자들이 도착하자 곧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강가강은 인도 북부를 흐르는 큰 강으로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이 강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으며, 죽은 뒤에 이 강물에 뼛가루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해가 뜬 강 위로 배를 띄웠습니다. 순례자들은 서로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강 한가운데서 일출을 만끽한 후 배는 화장을 하는 가트 주변으로 향했습니다. 시신을 태울 장작을 옮기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 시신을 태우기 전이었습니다. 가트에서 조금 내려오자 사람들이 차디찬 강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강 한가운데 이르자 순례자들은 가트 앞에서 어린 소녀들에게서 산 꽃을 띄웠습니다.

“1,250명의 수행자들이 무탈히 순례를 마치기를 바랍니다.”

배는 라즈가트에서 멈췄습니다. 라즈가트에서 버스까지 걸어가는 짧은 순간에도 구걸하는 아이들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인도 성지순례 전체 프로그램을 점검하며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A팀 참가자들이 강가강을 구경하고 돌아오자 10시부터 인도 성지순례 실무 준비팀과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한 장소인 사르나트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도 성지순례를 시작하게 됩니다. 1,250명이 결집하는 첫 번째 행사인 만큼 다시 한번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점검했습니다.

“1,250명이 스투파 앞에서 이렇게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네, 좋습니다. 원래는 새벽 6시에 출발해서 사르나트 행사를 진행하는 일정이었는데, 새벽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추워요, 그래서 10시에 사르나트에서 행사를 하는 것으로 조정합시다.”

강가강에는 새벽에 다녀오기로 하고 사르나트 행사를 오전 10시에 하기로 결정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11시에는 태국 절의 주지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태국 순례객들만 받기에도 방 개수가 부족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방이 많이 비었습니다. 여러분께 방을 넉넉히 제공해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저희가 코로나 덕을 많이 봤네요. 좋은 숙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감사 인사를 하며 보시금을 전달하자 주지 스님도 나무로 조각한 아쇼카 석주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대각회) 방문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마하보디소사이어티를 방문했습니다. 태국절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걸어서 마하보디소사이어티까지 갔습니다.

가는 길에 사르나트 신물간다꾸티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순례자들도 만났습니다.

마하보디소사이어티에 도착하자 주지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사르나트 순례를 도와주시고 있는 주지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 저희 순례자들을 위해 애써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내일 아침 7시부터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진행하려고 했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오전 10시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수정했어요. 저희를 위해 일찍 출구를 열어주시려고 노력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혹시 오전에 출구를 여는 것이 수월하지 않으면, 저희가 10시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바꾸었으니까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제가 출구를 여는 허가를 받으려고 편지를 보냈는데 아직 답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네, 저희 쪽 프로그램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에 설령 안 된다고 해도 괜찮아요. 아침 7시부터 진행하려고 했을 때는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해서 사전에 출구를 열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전 10시부터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미리 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스님은 인도의 성지를 가꾸는 데 앞장서 준 다르마팔라님과 마하보디소사이어티에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하보디 소사이어티(Maha Bodhi Society)는 인도의 불교 성지를 보존하는데 가장 먼저 나선 단체이기도 하고, 가장 공로가 큰 단체입니다. 제가 다르마빨라(Dharma pāla)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이곳에 오면 늘 신물간다꾸티를 방문합니다. 1913년 다르마빨라 스님께서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저의 스승님이신 도문 스님의 스승 스님인 용성 조사님께서 다르마빨라 스님으로부터 사리 3과를 받은 인연이 있기도 합니다.

사리 3과 중 하나는 서울에 있는 조계종 본부의 진신사리탑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의 진신사리탑이 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용성 조사님께서 다른 하나는 동남쪽에 탑을 세우라고 유훈을 남기셨는데 아직 탑을 세우지 못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는 스님과 오늘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인도에서의 성지순례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미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순례자들이 그룹을 나누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1,250명의 대중과 함께 이동을 하는데, 1,250명이 이동할 수 있는 국내선 비행기표를 다 구할 수 없어서 델리에서부터는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나머지 그룹들도 현재 버스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어제 제가 탄 버스는 18시간 걸려서 이곳에 도착했어요.”

“18시간이요?” (모두 웃음)

“델리에서 이곳에 오는 길은 아주 멀어요. 델리에서는 비행기가 하루에 몇 편 정도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게다가 1인당 실을 수 있는 짐도 15킬로로 제한되어 있고요.”

“네, 그래서 저희도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버스를 타고 오기로 결정했어요. 여러 해 동안 인도성지순례를 했지만 이렇게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오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거에는 4~500명이 인도성지순례를 했는데, 이번에는 만일결사 회향 기념으로 1,250명의 대중과 함께 오는 것으로 정했어요. 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제자가 1,200명 또는 1,250명이라고 나오잖아요. 우루벨라 가섭의 제자 1,000명,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의 제자 250명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1,250명의 승단을 이루었으니, 우리도 1,250명의 대중과 함께 이곳에 오기로 정했습니다. 라즈기르(왕사성)에 있는 제띠안에서는 걸어서 평화행진도 할 계획이에요.”

“당시 제자들한테는 버스도 없어서 모두 걸어 다녔겠어요.” (모두 웃음)

대화를 나누고 주지스님은 다르마팔라 기념관과 신물간다꾸티 곳곳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법당도 참배했습니다.

참배를 하고 스님은 주지스님께 성지를 잘 가꾸어 주셔서 감사하다며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부처님의 일대기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이걸 보고 수자타아카데미에 있는 법당도 부처님의 일대기로 꾸몄어요.”


마지막으로 다르마팔라님의 사리탑 앞에서 교육 자료로 사용할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여기는 사르나트입니다.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다르마빨라의 사리탑입니다.

다르마빨라(Dharma pāla, 1864~1933)는 스리랑카 출생입니다. 1864년생으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 영국인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곳은 기독교를 가르치는 학교였는데, 불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걸 듣고 각성하여 올바른 불교를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당시 불교 부흥운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불교를 부흥시키는 동시에 스리랑카의 독립도 추구하는 운동이었죠. 다르마빨라는 평생 불교를 위해 한 생을 바치겠다고 원을 세우고, 결혼도 하지 않고 불교운동을 했습니다.

이처럼 자기 소유를 멀리하는 삶, 즉 무소유를 추구하는 걸 빨리어로 ‘아나가리카(Anagarika)’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르마빨라 스님을 ‘아나가리카 다르마빨라(Anagarika Dharma pāl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헌신적으로 불교운동을 하던 다르마빨라 스님은 어느 날 인도에 성지순례를 왔는데 인도에 있는 부처님의 유적들이 모두 폐허가 되어 있고, 대부분 힌두교가 소유하고 있어서 부다가야에서 참배를 하려는 데도 힌두교인들이 참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겪게 됩니다. 그 일을 계기로 크게 발심해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인도 성지 가꾸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부처님의 성지를 다닐 수 있도록 처음으로 개척하신 분이 바로 다르마빨라 스님입니다. 특히, 미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세계 불교도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이곳에 ‘신 물간다쿠티(Mulagandhakuti, 녹야원)’, 즉 새로운 녹야정사를 짓고 보드가야 대탑 옆에도 마하보디 소사이어티(Maha Bodhi Society)를 설립해서 많은 불교인들이 보드가야 대탑에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신 분입니다.

1893년에는 미국 시카고 종교회의에 참석해서 테라밧다 불교를 공식적으로 미국에 처음 전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913년 일본 동경에 들렀다가 한국을 방문해서 용성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별생각 없이 방문을 했는데, 용성 스님을 만난 다음 감동을 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사리 3과를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1과는 조계사에 기증을 했는데 탑을 세우지 못하다가 1930년에 진신사리탑을 세우게 되었고, 1과는 전남 백양사에 진신사리탑을 세웠고, 나머지 1과는 아직 탑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르마빨라 스님이 만든 단체가 ‘마하보디 소사이어티’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대각회(大覺會)입니다. 용성스님께서 만든 단체도 대각회(大覺會)이고, 용성스님이 1911년 서울에 지은 절도 대각사(大覺寺)였습니다. 영어로는 마하보디 템플(Maha Bodhi temple)이죠.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처럼 용성스님과 다르마빨라 스님은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교류가 있었고, 다르마빨라 스님은 스리랑카 불교부흥운동과 함께 세계 불교부흥운동을 일으키셨고, 용성스님은 열약한 조건에서 한국의 새로운 불교운동과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불교도들이 이렇게 성지순례를 할 수 있도록, 성지를 잘 갖추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신 분이 다르마빨라 스님입니다. 이곳은 그분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사리탑입니다.”

스님은 주지스님에게도 다르마팔라님을 소개할 말이 있는지 청하였습니다. 주지스님은 흔쾌하게 영상 촬영에 응해주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신물간다꾸티를 나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인도 성지순례의 전체 일정을 다시 점검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설한 장소인 사르나트에 1,250명의 수행자들이 결집하여 인도 성지순례를 시작합니다. 참가자들은 수계식에서 가사와 발우를 받고 수행자가 되어 순례를 하게 됩니다. 스님은 사르나트에서 수계식을 마치고 보드가야 근교 수자타아카데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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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오늘날 불교도들이 이렇게 성지순례를 할 수 있도록, 성지를 잘 갖추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신 분이 다르마빨라 스님입니다. "

2023-11-12 10:14:02

해탈지

다르마빨라스님께서 우리가 순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니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2023-02-21 21:18:37

임호경

신물간다쿠티-대각 다르마 빨라스님과 용성 스님의 조우가 대각의 인연입니다. 잘보고왔습니다.

2023-02-17 17: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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