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29 김장 2일째, 정토경전대학 반야심경 7강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김장 2일째 날입니다. 새벽부터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공동체 대중 60여 명은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5시 30분부터 김장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밤새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에 씻어 건지기 위해 3단으로 나무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를 먼저 깨끗하게 씻고 자르는 일부터 했습니다.



큰 대야에 모든 소양념을 넣고 갖가지 채소와 골고루 섞어 김칫소를 부지런히 만들었습니다. 날이 서서히 밝아 왔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천막을 설치한 후 배추 씻기를 시작했습니다.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조인성씨, 김우빈씨도 아침부터 하루 종일 김장을 함께 했습니다.

먼저 미나리를 깨끗이 씻어서 김칫소 만드는 곳으로 배달했습니다.



그리고 배추 1800포기가 소금에 잘 절여져서 숨이 팍 죽어 있었습니다. 행자님 몇 명이 가슴 장화를 신고 대형 튜브 속으로 들어가서 배추를 건져 3단 나무 상자로 연결되는 미끄럼틀에 올려 두었습니다.

“배추 내려갑니다!”

배추가 미끄러져서 물에 퐁당 빠지면 양쪽에서 3단계로 배추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3개의 팀이 동시에 배추 씻기를 빠른 속도로 진행했습니다. 창고 안에는 깨끗이 씻은 배추가 차곡차곡 쌓여 나갔습니다.




오전 내내 배추 씻기에 집중한 결과 점심 무렵에 드디어 1800포기를 모두 씻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떨어진 배춧잎을 체로 알뜰하게 건져 모았습니다. 행자들은 대형튜브에 물을 빼고 정리를 했습니다.


배추에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밥 먹고 쉬었다가 합시다.”

오후부터는 김칫소를 배추에 넣고 버무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배추에 김칫소를 이리저리 문질러서 배추 전체에 색이 들게 한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 다시 김칫소를 채워 넣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김칫소가 떨어져 나오지 않도록 겉잎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점점 요령이 생겨서 김치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은 잘 만들어진 김치를 박스에 담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김치 가져다주세요!”

“네, 여기 김치가 갑니다.”

“무우 가져다주세요!”

“네, 여기 무 갑니다.”

배추의 뿌리 쪽이 서로 엇갈리게 하고, 자른 단면이 위를 보게끔 해서, 김칫소가 빠지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하나씩 담았습니다. 또 남은 무 조각을 썰어 김치 사이사이에 넣었습니다.

먼저 정토회와 평화재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신 사회 인사분들에게 보낼 택배용 김치 박스를 만들었습니다. 김치가 빨리 시어지지 않도록 외부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김치를 봉지에 담아 봉한 후 마지막에 박스로 포장을 했습니다. 점점 숙달이 되어서 저울에 달아보지 않아도 포장을 끝내면 정확히 10kg이 되었습니다.

선물용 김치를 모두 박스에 담는 작업을 마치자 해가 저물었습니다. 길벗팀도 쉴 틈 없이 김치 치대기 작업을 했습니다.

“지금 하루 종일 김장을 하고 있는데 안 힘드세요?”

“오늘부터 김치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웃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공동체 대중들이 먹을 김치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한 시간 정도 함께 김장을 하다가 정토경전대학 강의를 할 시간이 되어 양해를 구하고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는 경전대학 강의 좀 하고 다시 올게요. 미안해요.”

저녁 8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반야심경 제7강을 할 차례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 반야심경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지 말하고 있는 대목에 대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모든 보살이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해서 마침내 열반에 이르렀고,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행해서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이 문장은 대승 보살의 수행인 반야바라밀다 수행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보살이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해서 마침내 열반에 이르렀고,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를 행해서 성불했기 때문입니다.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수행은 가장 신비한 주문이자, 가장 밝은 주문이고, 가장 높은 주문이며, 같다고 비교될 만한 것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나아가기 위한 네 가지 요소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왜 이렇게 네 가지로 표현을 했을까요? 네 가지는 반야바라밀다가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데는 네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믿음(信)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마음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이 마음을 일으켜야 행위로 옮겨갑니다. 마음을 일으키는 가장 기본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거짓이라고 하면 아무도 따라 하지 않겠죠. 믿음이 없는 데 따라 할 리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이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은 제 말을 어느 정도 믿으니까 이렇게 듣고 있죠. 제 말을 불신한다면 아예 듣지도 않을 거예요.

둘째,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으면 어떨까요? 주위에서 믿음은 있는데 이해가 없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이해가 없는 것을 ‘맹신’이라고 합니다. 믿기는 믿는데 밝음이 없어서 어리석게 믿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소중하지만, 맹신이나 미신은 매우 위험합니다. 맹신이나 미신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치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도 있고, 앎도 있어야 합니다. 맹신이나 미신에 빠지게 되면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할 위험이 있어요. 이것이 종교가 갖는 큰 오류입니다. 그것이 진리라면 믿음과 앎이 동시에 있어야 해요. 앎은 없고 믿음만 있다면 큰 화를 불러옵니다. 이와 반대로 아는 건 많은데 믿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이런 사람은 지식은 많아서 아는 것은 많은데 반면에 실제로 행함이 없죠. 행위가 안 따라오기 때문에 ‘사량 분별이 많은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 ‘실천이 없는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이렇게 비판을 받게 됩니다.

셋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서 언행일치가 돼야 해요. 실천이 없으면 공허한 말에 불과합니다.

넷째, 체험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데 소득이 없으면 헛일이잖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서 증득을 해야 합니다.

진리로 나아가려면 믿음, 이해, 실천, 증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신해행증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병에 걸렸다고 해 봅시다. 먼저 치료하면 내가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 낫는다’, ‘치료하면 낫는다’ 하는 믿음이 있어야 치료를 하거나 약을 먹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그 약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어떻게 치료되는지를 모른다면 약을 잘못 먹고 죽을 수도 있고, 병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원리에 의해서 치료가 되는지를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원리를 알기만 하고 약을 먹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이 안 되죠. 꾸준히 약을 먹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병이 나아야 합니다. 약을 먹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치료만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병이 낫는 체험을 해야 됩니다. 이것을 ‘증(證)’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문제는 믿음만 있고 이해가 없는 겁니다. 철학은 이해만 있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실천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신해(信解, 믿고 이해하는 것)가 겸해져야 합니다. 거기에 행(行)이 겸해져야 해요. 신해행(信解行)이 겸해져서 마지막으로 증득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 수행자라고 할 수 있어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부처님 법에 대한 믿음은 있는데,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젊은이들은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는 있는데, 부처님 법에 대한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올바른 행이 나올 수 없고, 체험은 더욱더 하기가 힘듭니다.

간절하게 믿으면 기적이 일어난다 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수많은 영험담이 있습니다. 믿고 기도했더니 병이 나았다거나, 믿고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깊은 믿음은 보통 신비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확연히 알아버리는 이 깨달음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대신주(是大神呪)라고 표현한 겁니다.

시대신주(是大神呪), 큰 신비한 주문이고

신비하다는 뜻의 ‘신(神)’을 쓴 것은 믿음을 뜻합니다. 가장 신비하다는 말은 가장 깊은 믿음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그런데 가장 깊은 믿음은 깨달음입니다. 확연히 깨달은 것보다 더한 믿음은 없어요. 어떤 믿음이라고 해도 우리가 말하는 믿음에는 약간의 의혹이 있습니다. 그 믿음에는 아닐 수도 있는 미진함이 있어요. 그런데 확연히 알아버리면 어떤 의혹도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최고의 믿음에 속해요. 굳이 종교적으로 말하면 깨달음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시대명주(是大明呪), 큰 밝은 주문이며

사람들이 보통 어떤 문제에 대해 최고로 잘 아는 사람에게 해박하다고 말하잖아요. ‘그 사람한테 물어보면 훤히 안다’ 이렇게 말하죠. 밝을 ‘명(明)’을 쓴 것은 앎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 깨달음보다 더한 앎은 없습니다. 확연히 깨달아버리는 것은 어떤 앎보다도 위대한 앎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거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는 약간의 의혹이 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은 확연한 앎이 됩니다.

시무상주(是無上呪), 이것보다 더 높은 것은 없고

우리가 어떤 실천을 할 때는 단계가 있습니다. 태권도를 하든, 검도를 하든, 어떤 실천에는 단계가 있어요. 그래서 ‘누가 제일 높다’라든지 ‘누가 최고다’ 이런 말을 많이 쓰지요. 그런데 최고의 실천은 확연한 앎입니다. 반야는 확연한 깨달음입니다. 확연한 깨달음은 그 어떤 높은 단계의 실천보다 더 높은 단계이므로 반야는 최고의 실천이라는 뜻입니다. 고수가 수련을 계속해나가다 최고의 단계에 올라가면 ‘문리가 터졌다’, ‘통달했다’라고 말합니다. 통달했다는 말은 확연히 알아버렸다는 거예요.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더는 비교할 바가 없다

무엇을 최고로 얻었다고 할 때는 비교의 결과잖아요. 우리는 누가 더 높은지, 어느 것이 더 큰지, 어느 것을 더 많이 얻었는지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무등등’은 같다고 말할 것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확연히 더 높아서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천상천하 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라고 합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신들과 인간계를 통틀어서 부처님과 비교될 만한 존재 자체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비교할 바 없는 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네 가지는 반야 바라밀다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반야는 최고의 믿음이고, 최고의 앎이고, 최고의 실천이고, 최고의 증득이다.’

신해행증을 빌려서 이렇게 강조한 거예요. 깨달음보다 더 한 종교적 믿음도 없고, 깨달음보다 더 밝은 철학도 없고, 깨달음보다 더한 사회적 실천도 없고, 깨달음과 비교할 그 무엇도 없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회적 실천을 능가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 수행 또는 육바라밀을 행함으로써 제법이 공한 도리를 증득하게 되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수행 방법

육바라밀 수행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뭐든지 얻겠다고 하잖아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야 기분이 좋죠. 그게 뜻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요. 오늘도 그렇고,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겁니다. 얻어서 행복을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할 때 불행은 필연적이에요. 그래서 괴로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얻는 행복은 구걸하는 행복입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면 바로 괴로움이 따라오기 때문에 자기를 스스로 옭아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주겠다고 마음을 내보세요.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보세요. 남에게 도움을 얻겠다고 하지 말고 도움 주는 사람이 되면 사실은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대승불교의 수행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겠다는 사람이 남을 죽일 리는 만무하잖아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마음을 내는 사람이 남에게 손해 끼칠 리는 만무하잖아요. 남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즐겁게 해 주겠다는 사람이 남을 괴롭힐 일은 만무하잖아요. 진실을 말하겠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맑은 정신을 갖겠다는 사람이 술 먹고 취할 일은 만무하잖아요. 소승불교의 수행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소극적 행동을 방패로 삼는다면, 대승불교의 수행은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소승은 계율을 중요시하고 대승은 발원을 중요시합니다.

반야심경을 배운 오늘부터는 마음을 낼 때 자꾸 무엇을 안 하겠다는 마음을 내지 말고 도움을 주겠다고 마음을 내고, 이해하겠다고 마음을 내고, 사랑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봅니다. 마음을 자꾸 부정적으로 내지 말고 긍정적으로 내보는 거예요. 그랬을 때 여러분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요?”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를 이야기한 후 생방송 수업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김장을 하고 있는 창고로 향했습니다.

“얼마나 했어요?”

“거의 다 했습니다. 내일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요. 내일 작업을 더 해야 하니까 그대로 두고 마무리를 합시다.”

고무장갑과 장화를 벗어 두고, 간단하게 뒷정리를 한 후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김장 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 김장을 마치고 뒷정리까지 깨끗하게 한 후 오후에는 스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김장 울력을 모두 마칠 예정입니다. 저녁에는 수행법회 생방송이 있습니다.

전체댓글 88

0/200

윤은정

스님의 한 말씀 한 말씀으로 저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3-01-20 15:53:21

선우

감사합니다

2022-12-24 17:01:32

보각

감사합니다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보겠습니다

2022-12-13 20:17:43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