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1차 만일결사 회향수련 2일째 날입니다. 온라인으로 회향수련에 참가한 2900여 명의 대중이 다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소감 나누기와 조별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회별로 줌에 접속하여 자신이 작성한 소감문을 읽고, 조별 토론 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1차 만일결사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개선해야 할 것은?
•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토회가 어떤 활동을 할 것인가?
• 발전하는 과학기술 중에 정토회가 도입하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 온라인정토회에서 정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 세계 시민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행복학교는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까?
• 리더 그룹이 고령화되어 갈 때 청년 전법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 외국인 수행자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 2차 만일결사 때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각자 아침 식사 시간을 가진 후 9시 30분에 다시 전체가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각 지부에서 선정된 토론 내용과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의 사업 방향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스님은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메모했습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발표 시간을 가진 후 지난 30년과 미래 30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 신청을 했는데, 여섯 명이 선정되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법륜 스님이 돌아가시면 즉문즉설이나 법문을 누가 하게 되는지 질문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누가 즉문즉설을 하게 되나요?

“현재 정토회는 법륜스님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스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정토회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스님을 대신해서 즉문즉설이나 법문을 할 후계자가 있으신지요?”

“부처님 생전에 ‘부처님이 떠나시면 제2의 부처님은 누가 돼야 됩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당시에 데바닷타는 3번이나 자기가 제2의 부처가 되겠다고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허락되지 않자 분파를 일으켰어요. 부처님이 한 분 계셔서 법을 설하셨고, 수행자들은 그 법에 기초해서 정진하여 전 세계로 확산을 시켰습니다. 꼭 제2의 부처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 사고는 세상의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 제2의 부처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대승불교입니다. 이미 설해진 내용은 시대를 넘어서 적용되더라도, 시대가 바뀌면 그 표현과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날 정토회가 새로운 불교를 제창하는 것도 조선조 봉건 사회, 전근대 사회로부터 민주 사회로 전환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그에 맞는 변화가 없으면 기존의 사상이나 이념, 종교는 소멸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대에 맞춰 새로이 변화해야 합니다. 신분차별을 버리고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든지, 남녀 차별을 버리고 성평등을 받아들인다든지 하는 변화를 해야 합니다.

1900년대 용성 큰스님께서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전통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크게 변화했다고 보이지 않을 수 있죠. 그렇지만 그 시대 상황에서는 파격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신 거예요.

지금 우리는 전통의 영향이 미미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토회는 전통의 맥을 잇되 새로운 변화를 함께 도모하고 있습니다. 현대문명의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까지도 다 받아들여서 부처님의 법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 낸 것입니다. 지난 만일 동안 이 법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실험이 어느 정도 검증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이 법을 확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만약 유럽이나 인도나 이란에 부처님 법을 전한다고 생각해봅시다. 현재 정토불교대학을 현지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정토회 활동에 한국문화적인 것이 아주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당연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볼 때는 한국 문화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타국에 전법을 하려고 할 때 그 나라의 문화에 맞지 않으면 그 나라 문화에 맞게 한번 탈바꿈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인 정토행자가 1, 2대로 내려가다가 그런 탈바꿈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한 100년, 200년이 지나면 사회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어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바뀌었듯이 사회가 크게 바뀐다면 현시대의 문제의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또 새로운 방향이 나와야 합니다. 사회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은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법을 효율적으로 확산시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미 제가 강의한 불교대학을 교재로 해서 불교대학을 진행하잖아요. 누군가 새로 강의하지 않아도 됩니다. 진행자가 더 필요할 뿐이죠. 즉문즉설도 만 개 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자꾸 물어서 제가 대답을 하지, 이제 저는 입을 닫아도 됩니다.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만 개 이상의 즉문즉설에 이미 여러분들이 궁금해하는 관점과 내용들이 다 들어 있어요. 앞으로는 법사님들이 이 원칙에 맞게 마치 불교대학 진행자처럼 회원들을 상담하고 미진함을 보완하는 상담사가 되면 되지요. 그래서 법륜스님이 없는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진행자와 법사가 출현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앞으로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서 사고방식이 완전히 바뀐다면 그때는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스님이 오래 살아서 더 지도해주세요.’라고 하는 건 바른 관점은 아니에요. 제가 출가 한지 53년이 넘었고 새로운 불교를 위해서 헌신한 게 40년이 지났어요. 30년을 하루 같이 일하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서서 ‘스님, 그만하세요. 여태껏 충분히 하셨으니 이제는 좀 쉬세요.’ 이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누가 즉문즉설을 하자고 해도 ‘이제까지 물은 것만 해도 만 개가 넘는데 필요하면 그걸 찾아보면 되죠. 뭘 자꾸 또 묻나요?’ 이렇게 얘기할 때가 됐습니다.

제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해야 법륜스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 죽었다고 눈물 흘리고 아쉬워하면 그 사람은 법륜스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스님은 할 만큼 했다. 그 정도 하셨으면 됐다. 나머지는 우리가 해보자.’ 이런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법륜스님 건강하십시오.’라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렇다고 빨리 죽으십시오.’ 이럴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은 대부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안 죽고 살아 있으면 좀 거들 일은 있습니다. 1차 만일결사를 하는 동안 정토회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너무 소홀했어요. 그동안에 원을 세워서 일하는 데만 집중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제대로 격려하지 못했거든요. 이제 시간이 나면 그분들하고 좀 놀아줘야 돼요. 시간이 나면 얘기도 좀 들어주고 밥도 같이 먹고 위로도 해주고 이렇게 놀아주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리고 아직 젊은 세대가 개척하기 어려운 분야가 좀 있습니다. 농사는 초기에 땅도 좀 얻어주고 함께 일도 해줘야 해요. 또 정토회가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끔 여러분의 고민을 나누는 즉문즉설은 해야 할 거예요.

한 사람이 어떤 일은 일정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서 다음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이렇게 연속적으로 지속하는 건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부처님 법을 계승해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제 저는 그런 여러분을 지켜보고 격려하는 역할을 해야겠죠.

또 해외 개척도 아직 기초가 조금 덜 닦였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 영어 불교대학 진행하는 걸 보면 서양을 개척하는 일은 잘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똑똑하고, 교육을 서양사람 수준으로 잘 받았기 때문이에요. 거꾸로 동남아에서 개척하는 일은 제가 볼 때 젊은 사람들은 조금 약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젊은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동남아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런 문제를 제가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주요한 일에서는 제가 할 일은 이제 다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질문한 분들의 한 줄 소감을 들어본 후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1박 2일 동안의 만일결사 회향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진행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은 1차 만일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2차 만일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을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30년을 계획하면서 의견도 나누고 질문도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만일결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돈도 없고, 장소도 없고, 사람도 없고, 방향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효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먼저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사회를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이 어느 정도 함께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수행한다고 세상을 외면한다거나, 사회변화를 위해서 개인의 수행을 도외시하거나, 이런 양극단을 벗어나서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기를 오롯이 세우는 것과 동시에 사회의 여러 가지 부조리한 것을 개선하는 것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기복적이고 내생에 몰두하지만, 정토회는 복을 빌지도 않고 내생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말은 내생이 없다거나 복을 빌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그걸 중심에 내세우지 않고도 우리는 수행을 통해 자기 변화를 이루고, 세상의 변화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행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나 하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하려면 독립운동가나 민주화 투사처럼 모든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다’, 이런 통념을 정토회는 극복했습니다. 보통 사람도 수행을 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모든 짐을 지지 않고 모자이크 붓다의 일부가 되어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웅보다 백 사람의 선량한 사람이 모여서 한 사람의 영웅이 하는 일을 해나간 것입니다.

중생으로 살기에는 자존감과 희망이 없고, 불보살처럼 살기에는 너무 벅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불보살의 꿈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자존감도 회복하고, 현실의 주어진 조건도 어느 정도 고려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 단체와 시민단체가 중생에게 맞는 달콤한 이야기만 하거나, 소수의 엘리트만 활동하거나, 이런 양극단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아닌 시민들이 모여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대중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일결사에 참여한 여러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만나고, 동네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보통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원도 가지고 있고, 이 좋은 법을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전법의 의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지난 만일 동안 하나의 작은 모델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의 모델이고, 정토회 역시 하나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1차 만일결사에서 세운 원이 양적으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질적으로는 거의 완성된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양적으로 확산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학교 교육을 한번 보세요. 가르침인 교과서가 있고, 그것을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이 있고, 가르칠 학교가 있으면, 학생이 아무리 많아도 교육이 가능합니다. 그것처럼 정토회에는 교과서 내용에 해당하는 부처님의 법이 잘 정리되어 있고, 많은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칠 선생님인 진행자 여러분이 있습니다. 진행자만 어느 정도 확보된다면 이 법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풍요 속의 빈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약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대중이 병들어 있어서 약이 필요합니다. 양쪽이 서로 잘 계합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고 있습니다. 선생이 있으면 학생이 없고, 학생이 있으면 선생이 부족한, 이런 문제는 늘 생깁니다. 즉문즉설로 인연이 맺어진 대중이 수백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의 전법 과제입니다.

각자 지난 30년을 한 번 돌아보세요. 과연 내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었을까요? 순간순간은 내가 가는 이 길이 힘들었을지 몰라도 지나놓고 보면 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돈을 조금 더 벌고, 지위가 한 단계 더 높아졌을까요? 세상 구경을 좀 더 다녔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가정불화도 더 많았을 것이고, 인생의 고뇌도 더 많았을 것이고, 몸은 좀 덜 피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때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고 자존감이 생깁니다. 욕망을 따르는 인생만 산다면, 죽을 때가 되어 후회하기가 쉽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가 한 일은 욕망을 따른 것보다는 훨씬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한 활동이 의미가 있으려면 자기 삶에 대한 긍정성을 바탕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모두 양식이 되고 경험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되고 자칫하면 후회로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감문 발표를 들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오히려 자신의 자산으로 삼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잘못한 게 꼭 나쁜 게 아닙니다. 잘못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잘못했기 때문에 큰 원도 생기고, 활력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은 지나간 잘못도 정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 만일을 살펴서 잘했던 잘못했던 다 거름으로 만들고, 이것을 바탕으로 2차 만일의 새로운 설계를 해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있어 오늘의 정토회가 있습니다

지난 만일 동안 하루를 와서 일했든, 한 달을 일했든, 5년을 일했든, 10년을 일했든, 많은 사람들이 정토회에 와서 전화도 받아주고 자리를 지켜주고 많은 일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시작해주고 떠났고, 어떤 분은 그 뒤를 이어 확산해주신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오늘의 정토회가 있습니다. 순간순간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고 의견이 달라서 서로 미워하기도 했지만, 지나 놓고 보면 그들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정토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지금은 정토회를 나오지 않거나, 정토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그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있어 오늘의 정토회가 있습니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문명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가 도래하고, 전염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는, 이런 큰 고통을 겪어야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스님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왔을 때 ‘저렇게 살면 해결이 되겠구나!’ 하는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정토회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인류문명의 위기가 도래했을 때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 있는 작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토회가 하는 일은 인류의 위기가 닥쳤을 때 ‘아! 저렇게 하면 희망이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모델이라도 있어야 빠른 속도로 새로운 문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모델이 없으면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게 됩니다. 이런 것을 창조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서 미래의 후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미래 인류가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미 만들어놓은 본보기가 여러 개 있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정토회는 지금 작지만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욕구를 끝없이 충족하지 않고도 재미가 있고 존재가치를 느끼게 된다면, 현대 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동물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죠. 그래서 지구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끝없는 권력욕, 쾌락욕, 소비욕 때문에 갈등하고, 결국 인류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계속 연구해서 여러 모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미 개발된 것을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모델을 연구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빈곤 국가에서는 당장 물이 필요한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우물을 못 파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지하수를 파면 물이 고갈되어 그나마 있던 나무가 다 죽어버립니다. 이런 걸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 것인가를 연구하고 모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토회도 더 나은 제도가 있으면 바꿔야 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라는 게 아니라 더 나은 것이 있으면 어제 만든 제도라 해도 바꿔야 하고, 더 좋은 길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내가 개발했다고 해서 붙들고 있으면 상을 짓게 되고 집착하게 됩니다.

지난 만일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회향식을 마치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논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의논이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토회의 원칙은 일단 회향하고 나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12월 4일 회향식을 하고 12월 5일부터는 빠른 속도로 정비를 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 나갔으면 합니다.”

이어서 법사단 단장인 무변심 법사님이 닫는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법사님은 본인이 작성한 회향수련 소감문을 읽는 것으로 닫는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멋진 정토행자들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함께 해왔던 도반과 대중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여기까지 꾸준히 해온 나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을 안내해준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도 자신에게 크게 실망하고 자책하면서 우울하게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스승이, 좋은 벗이 저를 살렸습니다.

지금도 저는 가끔 이유 없이 마음이 처지고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문제 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문제없다’ 하고 그냥 받아들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나는 잘살고 있고, 그래서 더욱더 법과 수행의 소중함을 압니다. 내가 갈등하고 힘들어할 때 늘 스승이, 선배와 도반이 옆에 있었습니다. 위로와 격려, 응원과 지지로 힘이 되어 주었고, 분명한 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던 내 모습을 청명하게 비추어주었습니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잘한 것은 스승이 나를 잡아줄 때 그 손을 잡은 것입니다. 덕분에 잘 살았습니다. 그 뒤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스승을, 도반을, 이웃을, 세상을, 생명을, 보이지 않은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느낄 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승과 선배와 도반들이 나에게 부모가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듯이,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옆에 있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 지금부터 함께 할 모든 분,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소감문을 읽는 동안 법사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20대에 정토회에 들어와서 어느덧 30년이 지나 백발의 50대가 되었습니다. 청춘을 온전히 헌신한 스님과 법사님들의 모습에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1차 만일결사 회향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정토회 30년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 30년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화상회의 방에서 모두가 웃는 얼굴을 한 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 옆에는 무변심 법사님과 박종숙 지원국장님이 자리하고 카메라를 향해 방긋 웃었습니다.

회향수련이 끝나고 오후 4시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12월 4일에 열리는 만일결사 회향식 행사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의를 한 후 오후 6시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 30분에는 일요 명상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길벗 모임과 연탄 배달을 한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곧바로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30분씩 두 타임 연속으로 명상을 하는 날입니다.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중간에 포행 시간을 가진 후 다시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했습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일요 명상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라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4시간을 달려 새벽 2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에서 김장 울력을 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밭에서 배추를 뽑고, 전법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배추를 쪼개어 소금물에 절이고, 밤에는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뒤집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