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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 서초법당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점점 깊어 이제 늦가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에 서초법당을 찾아온 손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손님을 배웅한 후 곧바로 방송실로 이동하여 오전 10시부터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이번에 새로 서원행자가 된 34명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서원행자가 된 사람은 어떤 관점과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지난 주말에 두북 수련원에서 열린 나비장터와 김장축제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나비장터와 김장축제를 준비해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자는 보직순환의 원칙에 의해 내년부터 소임을 바꿀 때가 된 분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활동가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하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심의 가장 큰 특징을 의지심이라고 했어요. 물론 경전에서는 탐진치가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첫째,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 둘째, 자기 성질에 끌려다니는 것, 셋째, 인과법을 잘 모르는 어리석음, 이 세 가지가 괴로움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홀로 서지 못하고 의지하는 것이 중생심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순수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원래의 어원은 ‘어리석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또는 어리석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지요. 그러나 성인이 되면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연 생태계를 봐도 어린 새끼는 다 부모에 의지해서 삽니다. 닭을 봐도 계란에서 깨어나서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는 어미 닭의 품 가까이에서 놀고 다니잖아요. 병아리도 노란 털이 빠지고 닭의 본래 털이 나서 점점 성장하게 되면 그 병아리를 사람이 잡아도 어미 닭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생명은 자기 생명을 자기가 책임지게 되는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렵 채취 시대에는 한 13세 정도가 자립하는 나이였습니다. 농경사회가 되면서부터는 약간의 농사짓는 기술을 배워야 되기 때문에 한 15세 정도가 성인의 기준이었습니다. 만약에 자연 속에서 동물들처럼 사람이 산다면 15세가 되면 아기를 갖고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산업 사회가 되면서 교육 기간이 점점 길어져서 이제 성인의 기준이 외국에서는 만 18세, 우리나라에서는 만 19세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인이 되는 나이를 높게 잡다 보니까 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는데 사회적으로는 성인의 대우를 안 해 주는 데서 청소년 문제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옛날처럼 15살에 성인의 대우를 해주면 청소년 문제 자체가 생길 수 없습니다. 몸은 어른이 됐는데 사회적으로는 어른 대우를 안 해 주고 규제를 하니까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미성년자 범죄는 형량을 감해주니까 애들이 덩치가 크고 범죄도 성인 범죄 수준인데 처벌을 안 하니까 이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촉법 연령을 다시 낮추는 이런 일도 생겨나잖아요.
성인이란 의지하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사람은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고, 특히 여성은 가부장적 제도 아래에서 의지심이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속박을 받듯이 여성도 남자의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속박을 받는, 그런 문화를 2천 년 이상 이어오다 보니까 그게 여성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정말 여자 아이가 아무런 교육 없이 자연 속에서 그냥 태어나서 자란다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얌전하다’ 하는 여성성이 있을까요.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기를 낳는다든지 이런 여성성만 있어요. 우리가 말이나 개를 봤을 때 달리기를 하든, 뭘 하든, 특별히 암말이 수말보다 못하다는 게 없지 않습니까. 물론 소는 밭갈이를 하다 보면 황소가 더 크고 힘이 센 것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불평등이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암소가 숫소에게 의지하는 것도 전혀 없어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여성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까르마, 즉 습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교육을 받았고, 자식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사회도 그런 분위기가 유지되다 보니까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 하게 된 거예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늘 자유인으로 살았는데 미국에 잡혀가서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 보니 노예근성을 갖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미국에서는 흑인들에게 법적인 자유를 줘도 완전히 자립을 못 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여성들도 아무리 법적인 권리를 남자와 똑같이 줘도 오랜 까르마와 습관 때문에 의지심이 강한 거예요.
여성이기 때문에 의지심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가부장적 제도로 인해서 의지심이 강하게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흑인이라서 의지심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노예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노예근성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인도에 가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주로 불가촉천민인데 이 사람들은 원래 천민의 근성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까르마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성들은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교육적으로는 독립된 존재가 되었는데, 관습적으로는 아직 독립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지금 모순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권리는 똑같이 달라고 주장하는데 한편 의지하려는 모습이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자녀도 20살이 넘으면 권리에 대한 주장을 하면서 부모한테 의지하려고 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자녀가 사춘기일 때부터 부모가 성인이 되도록 성인 취급을 해 줘야 하거든요. 권리도 주고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하는데 그냥 보살펴주기만 하다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책임져라’ 하니까 책임을 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형성된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여자는 원래 그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즉, 까르마를 종자 또는 아트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까르마는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르친 것이 불교입니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 ‘열반’이고, 모든 속박과 의지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 ‘해탈’입니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를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중생은 항상 얻으려 하고, 받으려 하고, 이해받으려 하고, 사랑받으려 하고, 도움받으려 합니다. 이런 것은 다 의지심에 속합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들을 돌보고, 보살피고, 이해하고, 도와주잖아요. 그것처럼 붓다는 어른 같은 존재이고, 중생은 아이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습관대로 일어나죠. 모든 물체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멈춘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는 관성이 있듯이 우리가 어떤 음식을 계속 먹으면 그 음식에 습관이 듭니다. 심하면 중독이 되죠. 우리는 지금 많은 습관을 가지고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습관이라는 것은 거의 자동 반응에 해당합니다. 자동 반응을 한다는 것은 거의 노예나 다름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자랄 때 집에서 부모의 보살핌을 많이 받고 자라면 의지심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보호를 잘 받으면 사랑고파병은 적어지죠. 반대로 보호를 못 받으면 사랑고파병이 생기게 됩니다. 저처럼 시골에서 별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라더라도 주변이 다 가난해서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사랑고파병이 안 생깁니다. 오히려 장난감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고, 학교도 자기가 알아서 가야 했습니다. 누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오히려 자립심이나 자기 결정권이 커지죠, 그래서 가난한 집에 태어났기 때문에 유리한 게 있고, 불리한 게 있어요. 또 부유한 집에 태어났기 때문에 유리한 게 있고, 불리한 게 있습니다.
수행이란 이렇게 점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배려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남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쪽으로 가는 게 수행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항상 의지하고 도움받으려고 하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인정해야 해요. 현실을 인정 안 하면 자학을 하게 됩니다. 내가 문제라고 자꾸 생각이 들죠. 이 현실에서 출발해서 점점 자유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수행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오랫동안 활동을 같이 한 사람과 헤어진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은 여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커피를 먹는 건 괜찮지만 커피를 안 먹으면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은 인정하되 조금씩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자꾸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헤어진 게 꼭 잘못된 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옛날에 저를 운전해 준 보살님 중에 남편이 너무 자상해서 기름도 다 남편이 넣어 주고, 바퀴도 남편이 다 갈아주고, 고속도로 운전도 다 남편이 해준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운전이라고는 집에서 동네 시장에 가는 것 밖에 할 줄 몰랐어요. 그러다가 스님을 태우고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스님은 남편하고 다르잖아요. 본인이 차를 주차해야 하고, 본인이 문을 열어 주고 스님을 태워야 하고, 본인이 고속도로 위를 달려야 하고, 본인이 바퀴도 갈아야 하니까, 엄청나게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겁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분은 남편 없이도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자립을 하려면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누군가가 다 해 주면 일시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남편이 갑자기 죽거나 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져요.
옛날 왕들이 좋아 보이지만 만약에 전쟁이 나서 고립되면 왕들은 자립을 못해서 죽습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자는 것을 모두 옆에서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이 과연 좋은 인생이냐, 이런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도 현실은 인정하되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해요. 의지심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치고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2층 카페에는 각기 다른 신문사에서 온 언론사 기자들 10여 명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토회 1차 만일결사 회향을 앞두고 정토회가 지난 30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해 기자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가볍게 차를 한 잔 하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구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도 가볍게 답변을 했습니다.
“가사가 굉장히 많이 낡았는데 패션이신지 아니면 오래 입으신 건지요?”
“오래 입다가 보니 그렇게 됐어요. 새것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제가 죽을 때가 다 되어 가잖아요. 이 가사를 제가 죽고 다른 사람이 입을 수 있으면 새 걸 입겠어요. 그런데 정토회에는 스님이 한 사람밖에 없기도 하고, 환경운동한다면서 굳이 새로 지어 입을 필요가 없잖아요. 저는 10년 전부터 새것을 준다고 해도 안 받아요.” (웃음)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시는 이유가 있는지요?”
“우리는 생각이 좀 단순합니다. 부처님이 왕일 때는 시종들을 많이 거느리고 살았잖아요. 그런데 출가하고 나서는 시종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기록이 없거든요. 그냥 자기 옷도 자기가 빨아 입고 살았어요. 연세가 많아졌을 때 아난존자가 도와준 것은 같은 도반 중에 역할 분담해서 도와준 것이지, 종을 부린 것은 아니잖아요. 그것처럼 오늘날 수행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사람을 고용을 해서 해결한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자원봉사 방식으로 오랜 세월을 굴러간다는 게 신기한 거죠. 자원봉사라는 게 저희들이 보기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정토회가 그리는 큰 그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뭔가 욕구가 있고 욕구를 충족해야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 재미로 인생을 사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게 잘 사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지금의 환경 문제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환경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안 된다면, 우리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지위가 더 높아지고, 더 유명해지고, 이런 것들이 없어도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가 작은 모델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나중에 기후 위기가 닥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모델을 만든 게 있지 않느냐? 그 모델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정토회는 그런 모델이 정말 가능한지 한번 만들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이 제일 큰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출가해서 산 상가 구성원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았잖아요. 옷은 남이 버린 것을 주워 입고, 음식은 남이 먹다 남긴 걸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평소 스님과 정토회의 모습을 보고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아주 편안하게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자리를 옮겨 지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제가 농사지은 무공해 곡식과 채소로 지은 밥상입니다.”
“생일상 받은 것 같습니다.”(모두 웃음)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셨나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스님의 농사짓는 이야기에 기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10층 평화재단 회의실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받기에 앞서 정토회 만일의 역사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정토회는 1993년 3월 7일에 만일 결사를 시작했고, 2022년 12월 4일에 만일결사가 끝납니다. 만일을 천일씩 나누어서 천일이 끝날 때마다 백일 가까이 준비 기간을 가집니다. 천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천백일 정도 됩니다. 그러나 햇수로는 딱 30년이 지났습니다.
시작할 때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어요. 부처님도 혼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으니까요. 우리가 자꾸 기존 불교나 사회에 대해서 비판만 하지 말고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했습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잘못된 것을 파하면 올바른 것이 선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하지 말고 바른 것을 세우면 잘못된 것이 물러나는 현정파사를 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냥 어떤 모델을 하나 만들면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하나 만들어 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1993년에 만일결사를 출발하기 이전에 무엇이 미래 사회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지 3년 동안 준비하고 연구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이 큰 과제였잖아요. 초기에는 정토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운동을 했던 출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87년에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고, 1988년에 올림픽을 치르고, 이러면서 우리 사회도 살 만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직접 하는 시기가 되었고, 농민운동은 농민이 직접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다음 세대를 내다보고 앞으로 30년을 생각해보면 무엇이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인지 연구해 봤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이 지구적으로는 환경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고, 인류적으로는 절대 빈곤 퇴치가 가장 큰 문제이고, 한반도에서는 평화가 가장 큰 문제이고, 개인에게는 행복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환경보전, 빈곤퇴치, 한반도 평화, 개인 행복, 이 네 가지 모토를 내걸고 ‘미래에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새로운 대안들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 이런 정도로 생각하고 정토회가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구난방이었습니다. 모든 게 실험이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간에 수많은 사람이 오고, 수많은 사람이 갔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중간에 나간 사람들이 열 배는 더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성과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성과가 아니라 어쩌면 중간에 나간 사람들의 성과입니다. 6개월 일하든, 1년 일하든, 3년 일하든,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면서 모자이크의 한 조각을 만들어 준 덕분에 그 성과가 조금씩 쌓여서 정토회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이어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을 했습니다. 한 기자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기자들도 돌아가면서 즉문즉설 한번 해야겠네요. 요즘 힘들거든요.”(모두 웃음)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안내해준 후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곧바로 서초 법당으로 이동하여 공동체 법사단과 함께 정토회의 지난 30년 역사 중 전사에 해당하는 시기와 1차부터 4차 천일결사까지의 역사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늘 촬영한 인터뷰를 여러 가지 역사 자료와 함께 편집하여 오는 26일과 27일에 있을 만일결사 회향 수련에 영상으로 상영할 예정입니다.
초창기에 정토회를 비롯하여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의 설립 과정, 그리고 해외 포교의 시작, 등 많은 활동들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 명씩 인터뷰를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법사님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으면 옆에 앉아 있는 스님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활동의 양이 방대하다 보니 인터뷰 시간도 길어졌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인터뷰는 4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6시가 되어도 마무리를 하지 못해서 저녁 법회 후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하고 각자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활동가들을 위한 전법활동가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새로 서원행자가 된 분, 새로 법사가 된 분들을 환영하는 시간을 갖고, 지난 주말에 나비장터와 김장축제에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즉문즉설을 진행했습니다.
정토회 운영과 관련하여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연이어 계속되는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답변을 한 후 전법활동가 법회를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라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4시간 달려 새벽 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학교와 농장을 둘러보고 경주 지역을 안내해준 후 저녁에는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하고 다시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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