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09.17. 필리핀정토회 즉문즉설, 민다나오▶️ 마닐라 ▶️ 한국
"봉사도 좋지만 고생하는 활동가를 보면 안쓰러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민다나오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필리핀JTS에서 활동하고 있는 향훈법사님과 활동가 3명은 스님에게 삼배를 드렸습니다.

“20주년 기념행사 준비한다고 잠도 못 자고 수고 많았어요. 감사드립니다. 1차 만일 회향까지 현재에 충실해서 잘 마무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바깥은 동이 트고 환해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매일 새벽에 나가고 행사 준비를 하느라 절경 속에서도 절경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고 모든 짐을 싼 후 6시 30분에 라긴딩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차가 막히지 않아 2시간 3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라가딩안 공항에서 10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12시 3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밤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시간이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나와 필리핀정토회 마닐라 법당으로 갔습니다. 법당에 도착하자 필리핀JTS 20주년 행사가 끝나고 하루 일찍 마닐라에 도착한 보살님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준비해주신 묵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 3시부터 필리핀정토회원을 위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법당에서 열린 오프라인 법회도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주 오랜만에 만나 뵙습니다. 코로나 확산 이후 법당에서 처음 하는 법회입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저는 지난 3년 동안 두북수련원에 계속 머물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비행기도 이번에 인도에 가면서 3년 만에 처음 탔습니다. 외출은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다녀오는 정도였고, 외부 강연도 일체 없이 지냈습니다. 방송에는 두 번 정도 출연했었죠. 그리고 이번에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마닐라 법당은 언제 개원했습니까?"

"2019년 12월입니다."

"개원했을 때 왔으니 거의 3년 만에 온 거네요. 필리핀 정토회에서 법당을 잘 마련해서 개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바람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관리만 하게 됐네요. 그러는 동안에도 여러분은 꾸준히 법당에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기도했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법당을 개원하자마자 문을 제대로 못 여는 바람에 아직 사람이 많이 오가지는 못한 상황이죠. 그렇지만 차츰 정상화되면 앞으로 이곳 필리핀정토회가 필리핀을 비롯하여 동남아 전법의 기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몇몇 분들의 헌신 속에 일구어진 필리핀정토회였지만, 오늘 이후부터는 모든 회원이 작은 역할이라도 하나씩 맡아서 함께 일구어 가면서 전법, 수행 그리고 민다나오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같이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민다나오 활동을 이끌고 있는 필리핀JTS 회원들과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JTS활동가들을 보며 느낀 점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저는 마닐라 법당에서 활동하면서, JTS 활동가들이 민다나오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돌아가는 모습을 봐왔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본인 스스로는 너무 많이 희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분들 스스로는 수행 차원에서 활동하는 것일 수 있지만, 제가 옆에서 보기에 너무 고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활동가분들 중에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거나 회향을 고민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더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활동가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토회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이 있지만, 활동가들이 수행자의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또 질문자가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느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신 다음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주무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불쌍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수행자가 그러한 삶을 불쌍하게 본다면 스스로 수행자의 위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수행자는 비록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더라도 삶이 당당해야 합니다. 수행자로서의 생활 자체에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명절 때 집을 방문해서 맛있다고 음식을 걸신들린 듯이 먹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면 부모가 보기에 안쓰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그럴 수 있는데, 본인 스스로 이 길을 가면서 그깟 음식으로 세상 사람의 동정을 받으면 거지나 다름없기 때문에 아직 수행자로서의 관점이 잡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럴 수 있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수행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출가 한 스님들을 봐도, 행자생활을 시작해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스님 생활을 계속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9명이 탈락한 사람은 아니에요. 행자생활을 1년 하다가 관두었다고 해도 인생에서 1년은 출가해서 살아본 겁니다. 3년도 마찬가지, 6년도 마찬가지예요. 중간에 그만둔다고 해도 내 인생에서 3년이나 6년은 출가해서 살아본 경험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3년 단위로 활동기간을 나눕니다. 3년 동안 활동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는 건 중도 탈락이 아니라 활동을 마무리 짓는 거예요. 이건 학교를 졸업하거나 군대를 제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는 건 자퇴라고 하지만 기간을 다 마치고 나서 학교를 떠나는 건 졸업이라고 하잖아요. 또, 군대에서도 중간에 나가는 건 탈영이라고 하지만 기간을 다 마치고 떠나는 건 제대라고 합니다. 그런 것처럼 정토회 활동도 3년의 활동을 마친 다음 떠나는 건 포기하거나 실패한 게 아닙니다.

민다나오에도 3년, 또는 6년간 활동이 끝나가는 활동가들이 있는데 이번에 활동을 마치면서 졸업을 할 것인지, 새로 발심해서 앞으로 3년을 더 해나갈 것인지 결정하게 됩니다. 군대에 가도 제대 날짜가 다가오면 제대를 할 것인지 군대 생활을 계속 이어갈지 고민을 하잖아요.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활동가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일은 아닙니다.

그런 활동가들을 보면서 불쌍한 시선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질문자가 지나치게 세속적인 관점을 가지고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질문자의 관점에서는 아직도 잘 먹고, 옷을 잘 입고,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걸 잘 사는 것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거든요. 이런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어쩌면 질문자 눈에는 법륜스님이 가장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그러니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세속적인 관점이 아니라 수행의 관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저를 비롯해서 활동을 해나가는 사람들도 수행자의 관점을 잘 견지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오늘 이혼을 할까, 내일 이혼을 할까 이렇게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또, 직장을 다니면서도 오늘 사표를 낼까, 내일 사표를 낼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오늘 그만둘까, 내일 그만둘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제가 여러분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늘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고민하고 번민할 수 있어요. 그런데 활동가들이 불쌍하게 보이는 건 질문자가 좋은 걸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서 자는 기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활동가들을 불쌍하게 보기보다는 지금 세속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구나 하고 자기를 돌아보면 좋겠어요.

이런 부분 때문에 제가 출가수행자들에게 신도들 집에 가서 자거나 밥을 먹는 걸 그리 권하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명절에 집에 갔는데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해서 과식하고, 피곤하다고 해서 하루 종일 자다가 오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출가해서 사는 자식이 불쌍해 보입니다. 삶이 당당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불쌍해 보이면 전법을 하는 데 큰 장애가 돼요. 집에 가려면 오히려 건강할 때 ,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서 누워있을 때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때 가야 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부부끼리 싸워서 부모님이 늘 걱정시키는데 출가한 나는 웃으면서 지내고 오히려 부모님과 형제들을 상담해 줄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부모님도 '출가수행한다고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서 걱정이었는데, 인생을 길게 살아보니 결혼 안 하고 수행하면서 사는 게 더 낫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럴 때 전법의 힘이 생깁니다.

지금 질문자가 활동가들을 불쌍하게 보는 건 한편으로는 질문자가 세속적인 기준으로 수행자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활동가들이 출가수행자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출가수행을 한다고 해도 겉으로만 법복을 입고 있지, 마음속으로는 아직 방황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정토회에서는 전 인류의 평균보다 낮은 생활 수준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전 인류의 평균보다 낮으려면 한국 내에서는 최하 생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희는 이런 수치적 기준을 가지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출가공동체가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는 삶'이라는 말만 하고 정작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대중에게 모범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살 사람은 공동체에 와서 같이 지내고, 그렇게 못 살겠다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 지내면 됩니다. 출가공동체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활동하다가 마주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오늘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봉사하면 사는데 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안 되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활동가가 수행자로서의 품위를 잘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 눈에 법륜스님이 불쌍해 보인다면, 사람들이 스님한테 보시는 조금 할지 몰라도 스님을 스승으로 따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것처럼 수행자가 누군가에게 불쌍하게 보였다면, 그건 수행자를 불쌍하게 본 사람에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불쌍하게 보인 수행자도 반성할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 당당하지 않고 불쌍하게 보인다면 수행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정토회에 출가해서 수행해보겠다고 자원했다면 우선 3년은 수행자로 한 번 살아보는 겁니다. 3년 중간에 그만두면 탈락이지만, 3년을 마치고 떠나는 건 아무도 탈락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년을 마치고 떠나는 건 자기가 세운 원(願)을 마치고 나가는 것입니다. 대신 공동체에 계속 머무르는 게 좋을지 떠나는 게 좋을지 결정할 때 자기 혼자서 결정하기보다는 도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수행자는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지, 또 수행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 후 밤 9시가 되어 다시 마닐라공항으로 갔습니다. 출국 수속을 밟고 짐을 부친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는 밤 11시 55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에 도착합니다. 비행기에 오른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다 곧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한국에 도착해서 오전 8시에 외국인을 위한 즉문즉설, 10시에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을 하고 오후 2시에는 정토경전대학입학식을 한 후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내일부터는 한국에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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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블리

수행자로서의 품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네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수행자로서의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수행적 관점도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7 15:48:00

하심

아고 우리스님 너무 강행군.. 연세를 생각하셔야지..

2022-09-27 06:55:29

오늘맑음

수행자로서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9-24 19: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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