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25 천일결사 기도, 행복학교 특강, 발심행자 수계식, 봉화 울력
“자기에게 맞춰달라고 하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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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여러 행사를 생방송한 후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해 공동체 울력을 함께 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종성,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는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중 제1차 천일결사를 어떤 방향으로 준비해나갈지 천준위 위원들이 여러 가지 안건을 준비해 와서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곧이어 10시부터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은 한 달에 한 번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게 안내하기 위해 마련된 시간입니다.

30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먼저 행복학교를 만든 취지와 행복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 사회가 당면한 과제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아 상실, 사회적으로는 공동체 붕괴, 지구적으로는 환경 위기입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가능하다면 우리도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고, 또 우리 후손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운영되는 것이 행복학교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이 행복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도 좋습니다.

행복학교는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에 걸친 비교적 짧은 과정입니다. 세상에서는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곧 승리라고 말합니다. 행복학교에서는 그런 폭력적인 길이 아니라, 서로 살리고 함께 행복하게 사는 길을 공부합니다. 누구는 일방적으로 강의만 하고, 누구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나는 어떠한가’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드러내 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마음을 나눌 때 그걸 받아주는 연습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가진 모순을 극복하고, 의문을 풀어나갑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대화를 깊이 나누기가 어렵겠죠. 둘러앉아서 대화하기에 좋은 인원은 6~7명입니다. 2~3명이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고, 인원이 너무 많으면 각자가 충분히 나누기 어렵습니다. 6~7명 정도 대화를 하면 어느 정도 다양한 이야기도 나누고, 또 각자 충분한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행복학교에서는 6~7명 정도를 기준으로 하나의 반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 교육도 행복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서 선생님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아이들은 그걸 듣기만 하잖아요. 그 대신 아이들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먼저 지식을 배우고 학교에 모여 6~7명의 학생과 한 분의 선생님이 그 주제에 대해 대화도 나누고 서로 질문도 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중 내용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인원을 조금 줄여서 그룹당 4~5명을 편성하고, 비교적 이해력이 좋은 학생들은 그룹당 10~15명을 편성하여 균형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뭐든지 똑같이 편성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배분을 달리하는 것이 평등입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기준을 두고 수업을 하게 됩니다.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은 학급당 인원수를 줄여서 선생님을 배정해야 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이 가능한 아이들은 조금 더 많은 인원수를 학급에 배정해도 괜찮습니다. 모르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는 교육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서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그만큼 우리 교육이 아이들 중심이 아니라 선생님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거예요. 배우는 사람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즉문즉설도 모르는 사람, 배우는 사람, 의문이 있는 사람, 어려운 사람을 중심으로 법문이 설해져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나가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반 학교 교육도 우리가 진행하는 행복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여기까지 스님이 이야기한 후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내는 남편을 섬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자신에게 맞춰달라고 하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요

“스님의 말씀처럼 신랑한테 ‘네, 알겠습니다’하면, 신랑도 저를 존중해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랑은 ‘진작 이럴 것이지’하면서 오히려 더 존중받으려고 합니다. 남편은 평소에도 여자가 남자를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제가 오히려 그 생각을 강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는 신랑이 인정받고 싶어서 저러나 싶어 안쓰럽기도 한데, 가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왜 나만 이런 노력을 해야 하나’ 싶고 내가 왜 배려도 못 받고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힘든 건 신랑에게 자꾸 바라는 제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신랑 하고는 중매로 결혼했어요, 연애하다가 결혼했어요?”

“연애하다가 결혼했어요.”

“신랑의 어떤 부분이 좋아서 결혼했어요?”

“감정 기복이 크게 없는 점이 좋았어요.”

“결혼해서 보니까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없는 사람이었어요?”

“실제로도 많이 없었어요.”

“감정의 기복이 없으면 크게 문제도 없지만 또 같이 사는 재미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조금 답답해요.”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요. 누가 그런 사람을 선택했어요?”

“제가 선택한 거예요.” (웃음)

“그처럼 지금 이런 남편과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남편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문제입니다.”

“...”

“비가 올 때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는 있어요. 그런데도 계속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온다고 화를 내는 게 나아요, 비를 대비하는 게 나아요?”

“대비하는 게 나아요.”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잘 빠질 수 있게끔 준비를 하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비가 오면 집도 버리고 일단 피신을 가야죠. 그처럼 다른 사람도 내 마음대로 바뀌어 주면 좋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화를 내든, 짜증을 내든, 인정을 받고 싶어 하든, 어쨌든 이런 남편과 같이 살려면 길은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 내 뜻대로 안 해주면 이혼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질문자가 남편한테 ‘이런 부분은 바꿔라. 안 바꾸면 이혼이다’ 이렇게 말했을 때 남편이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라면 효과가 있겠죠.”

“네,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웃음)

“질문자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는 건 지금 남편이 질문자 보다 조금 더 조건이 좋다는 뜻이잖아요?”

“네, 맞아요.”

“질문자가 자신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을 선택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을의 입장이 된 거예요. 나보다 돈도 많고, 나보다 인물도 좋고, 나보다 지식도 많은 사람이 좋아서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을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헤어지면 내가 손해니까 을이 되는 선택을 합니다. 그런 선택을 하면 갑으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갑으로 살고 싶으면 나보다 못한 사람을 택하면 돼요. 내가 같이 안 살면 어디 가서 제대로 살기 어려운 사람을 선택하면 내가 갑으로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결혼을 할 때 대부분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에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도 을이 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선택지는 선택할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둘째, 같이 안 사는 길입니다. 어차피 상대방을 바꾸지는 못하니까 ‘그럼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헤어지는 거예요. 이 길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이 길을 선택하면 그만큼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도망가는 길은 충분히 검토한 다음에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에 나오는 계책 중에 가장 마지막인 서른여섯 번째 계책이 도망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36계 줄행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길도 선택지이긴 한데, 아직은 선택할 필요가 없는 선택지입니다.

셋째, 내가 적응하는 길입니다. 조건을 따져보면 내가 적응해야 하는 게 맞는데, 적응하기가 싫기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거예요. 비가 오면 내가 피해야 해요. 피하지 않고 ‘내가 비를 피해? 까짓 거 그냥 물에 떠내려가서 죽지’ 이렇게 생각하고 고집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건 나입니다.

저는 질문자가 처한 조건을 보고 남편에게 ‘맞춰줘라’라고 말하는 거예요. 비굴해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살기에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거예요. 비굴하게 사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겁니다. 상대가 칭찬을 원하면 칭찬을 해주는 겁니다. 남도 아니고 남편을 칭찬하는 건데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 그래 봤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남편이잖아요. 뭘 좀 줘도 내 남편이니까 괜찮고, 미안하다고 해도 내 남편이니까 괜찮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렇게 마치 적군과 싸우듯이 남편과 대립합니다. (웃음)

그렇게 해서 남편을 이기면 남자가 기가 죽겠죠. 그렇게 내 남편을 기죽여서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요? 남편도 자기 아내를 기죽여서 자기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요? 오히려 너무 기죽으면 우울증 환자가 되거나, 사회에 나가서 맥도 못 추는 사람이 되면 결국 나에게도 손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남편과 더 이상 다투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남편이 ‘이렇게 하자’하면 ‘그래’ 하고 해보는 거예요. 설령 그 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라도 ‘그래’ 하는 거예요. 그럴 때 ‘그래’ 하면 남편이 좋아하잖아요. 남편이 좋아하는 데 왜 그걸 보고 내가 기분 나빠해요? 적이 기분 좋아하면 내가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남편과 질문자는 적이 아니잖아요. 내가 좋다고 선택해서 한 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같이 자는 사람인데, 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보고 내가 기분이 나빠져요?

만약 내가 남편한테 잘 안 해줄 때 오히려 남편이 나에게 잘해준다면 그것도 하나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내가 잘해주든, 안 해주든 남편이 나에게 늘 잘 안 해준다면 그것도 잘 살펴서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내가 맞춰주면 남편도 나에게 맞춰주겠지’ 이렇게 남편과 거래를 하고 있어요. '내가 양보하면 상대도 양보하겠지’ 이렇게 접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나에게 끌어올 것인가 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방법이 문제가 아니에요. 남편이 나한테 잘하든 안 하든 그건 남편의 문제입니다. 상대가 나한테 어떻게 하든, 내가 그에게 잘하는 게 나한테 좋으니까 잘하라는 거예요. 남편과 언쟁하는 것보다는 ‘알겠습니다’ 하는 게 내가 편하니까 나는 ‘알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이건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내가 맞춘 대가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남편이 뭐라고 할 때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건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뭐가 힘들어요? 남편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아, 남편이 평소에 이런 걸 원했구나’ 하고 알 수 있잖아요. 그렇게 원하는 걸 좀 해주면 됩니다. 누가 어떤 반찬을 맛있어 하면 다음에 그 반찬을 더 해주잖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더 해주는 것처럼 말도 좋아하는 말을 더 해주면 됩니다. 음식은 만드는 데 돈도 들고 힘도 들지만, 말하는 건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드니까 수월하잖아요. 그래서 ‘립 서비스’라는 말이 있잖아요? 립 서비스를 하려니 꼴 보기가 싫어요? (웃음)”

“제가 계속 무시받는 기분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는 게 무시받는 거예요? 내가 ‘알겠습니다’ 하면 상대방도 ‘알겠습니다’ 해야 내가 존중받는 거고, 내가 ‘알겠습니다’ 할 때 상대방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무시받는 거예요? (웃음)

음식을 해줄 때 ‘잘 먹었습니다’ 하면 존중받는 것이고, 아무 말 없이 먹으면 무시받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면 질문자는 상대방의 말과 반응에 놀아나는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의 얼굴 표정에 따라 나의 희로애락이 달라진다면 그게 바로 내가 노예라는 말입니다. 그게 곧 을의 인생입니다.

옛날에 후궁들은 임금이 눈길을 어떻게 주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기분이 달라졌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주인의 태도에 따라 전전긍긍했어요. 그게 곧 노예근성이에요. 상대방이 어떻게 하는지는 그 사람의 문제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됩니다.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칭찬받기를 원하고 있어요. 이런 걸 ‘사랑고파병’이라고 합니다. 나를 좀 위로해 주고, 나를 위해 주면 기분이 좋아지죠. 사실 누구나 나를 위해 주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게 노예의 길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내 삶이 왔다 갔다 하게 돼요. 결국 상대방이 내 목줄을 쥐게 되고, 나는 목줄을 찬 것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왜 이런 인생을 살려고 해요? 도대체 뭐가 못나서 노예 인생을 살려고 합니까? 여러분은 이런 인생을 ‘사랑받는인생’ 이라고 말하죠. 그건 노예의 삶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자가 남편의 목줄을 쥐고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남편을 웃게 만들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너 왜 그래?’ 해서 상대방을 짜증 나게도 할 수 있고, 결국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때도 맛있는 걸 계속 줘야 주인을 따릅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남편이 좋아하는 말을 계속해 줘서 목줄을 쥐고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네, 맞습니다.” (웃음)

“그리고 이런 걸 다 떠나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남편이 기분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데 왜 그걸 아니꼽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요? 그건 좋은 일이잖아요.

여러분을 보면 부부가 영원한 경쟁자 사이 같아요. 조금이라도 손해보고는 못 살고, 영원히 승부를 보려고 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옛말에 ‘전생의 철천지 원수가 이생에 부부로 만난다’는 말이 있는 거예요.”

“오늘 스님 말씀 너무 감사히 잘 들었고, 남편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편과 ‘네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경쟁하고 갈등하는 건 아이에게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비록 남편이 잘난 체 하더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래, 너 잘났다, 인정해 줄게’ 하고 마음을 탁 놓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다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아이가 없어도 좋다는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더 늦기 전에 낳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사회 초년생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켜서 집들을 구매했는데, 앞으로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 경계성 지능 장애를 갖고 있는 18살 아들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죽고 싶다 하고, 학교 안 가고, 술과 담배를 찾곤 합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요?
  •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싶은데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다음 달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발심행자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수계식은 코로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여 각 지부별로 소규모로 모여서 전국을 온라인으로 동시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심행자가 된 분들은 2021년 5월 24일에 시작해서 2022년 4월 30일까지 전법활동가 교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신규 발심행자들은 예불을 한 후 스님에게 수계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발심행자가 되면 삼귀의 오계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계를 받는 여러분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전법행자가 되기 위한 1년여 교육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참석하셨습니다. 전법행자가 된다는 것은 수행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수행자에는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가 있습니다. 재가수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오계를 받는 겁니다. 이 오계는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는지 이미 불교대학을 통해 배웠지만 오늘 계를 받으면서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종교마다 문화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하는 가치관은 조금씩 다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고, 유교에서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수행자는 무엇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삼아야 할까요?

수행자는 생명 존중의 가치를 제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아야 합니다. 둘째, 내가 해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을 시켜서도 해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남을 시켜서 해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수단으로도 해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수단으로도 해치지 않는다는 건 요즘 사회 용어로 ‘구조적 모순’ 조차 고려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내가 총, 대포 등의 무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면, 나는 그저 일을 할 뿐이지만 결국 살상 행위를 돕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는 내가 수단을 사용하여 살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수단을 통해 해치는 행위가 점점 늘어나고 복잡해졌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도 모르게 계를 어기는 행위에 관여할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넷째, 생명을 해치는 일을 방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해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시켜서 해치는 것도 아니지만 해치는 일을 그냥 내버려 두거나 살상 행위를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사회적 부조리를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내가 생명을 해치거나 때리지 않더라도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즐기거나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계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괴로움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앞으로 적어도 다음 다섯 가지 행동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행위.
둘째, 타인의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행위.
셋째, 성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추행과 폭행의 행위.
넷째, 말로도 상대방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뜻으로 거짓말과 욕설.
다섯째, 술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내가 살 자유는 있지만 남을 해칠 자유는 없고, 내가 이익을 볼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고, 내가 즐거움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괴로움을 끼칠 자유는 없고, 내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으며, 내가 어떤 음식을 먹든 그건 내 자유지만, 그것의 결과로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라면 이 다섯 가지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나도 모르게 어겼을 때는 뉘우치고, 다시는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행위를 했다면 이제는 합리화를 할 게 아니라 반성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후로는 계율을 중요시 여기며 생활해나가겠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수행자로서의 품격을 지키고자 하는 입장을 분명히 지녀야 합니다.”

이어서 참회, 연비, 수계 약속, 헌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전법활동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발심행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희들은 부처님 법을 만나기 전, ‘내가 옳다, 내가 맞다, 이건 내 것이다’하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법을 만나 돌이켜 보니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서로 다를 뿐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닌데도,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너는 왜 고치지 않느냐’ 이런 관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가뭄에 단비를 맛보듯, 괴로움 속을 헤매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서 마치 어둠에서 벗어나듯이 그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 괴로움의 굴레에 빠지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귀의해서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날 나처럼 괴로움 속을 헤매는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부처님 법을 전해서 그들도 저와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니면서 부처님 법의 가피를 입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괴로움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하는 전법의 길에 나서겠습니다. 우크라이나 등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는 평화가 정착되고,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충분히 공급되어 생존이 보장되고,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보장되고, 행복권이 보장되는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저희들이 원력을 세워 정진할 것이오니, 제불 보살님들께서는 저희를 옹호하여 주옵소서.”

이어서 계를 받고 불명을 받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한 후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계를 받고 불명을 받는다는 것은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 클럽, 붓다 클럽의 회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여러분들은 꾸준히 수행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제 각 법당에서 수계증을 수여하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대표로 한 분에게 수계증을 전하고 이어서 각 으뜸절 별로 지부 법사님이 신규 발심행자들에게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여기까지 참석하고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역할은 끝났죠? 혹시 저를 찾더라도 이미 울력하러 갔다고 전해주세요.”

수계를 받은 발심행자들은 이어지는 2부 프로그램에서 소감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곧바로 방송실을 나와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봉화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공동체 지부 전체 성원들이 봉화 수련원에 모여 들깨를 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오후 4시에 출발하여 차로 2시간 30분 동안 달린 후 6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차 안에서 스님은 공동체 울력을 총괄하는 묘당 법사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울력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어요?”

“아직 밭에 있습니다. 한 시간은 더 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밭으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작업복을 입고 공동체 울력에 결합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행자들에게 두북 수련원에서 수확해 온 자두를 나눠 주었습니다.

“참 먹고 합시다.”


다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자두를 직접 배달해서 나눠준 후 스님도 고랑 하나를 맡아서 들깨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1m 간격으로 심을까요, 60cm 간격으로 심을까요?”

“60cm 간격으로요.”

서울, 문경, 두북에서 온 행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니 60여 명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일을 하니까 빠른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곧 비가 올 것처럼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스님이 들깨를 심으며 말했습니다.

“비가 올 때 들깨를 심으면 100% 살아요.”

모두가 비가 곧 내리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들깨를 심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뚜득, 뚜득, 뚜드득...

빗방울이 멀칭 된 비닐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비 온다! 비가 온다!”

“스님이 오시니까 비가 내리네요. 스님이 비를 몰고 오셨나 봐요.”

“인도에서도 제가 비를 몰고 와서 가뭄 때마다 저를 찾는데, 그런 신비주의를 믿으면 수행자가 아니에요.” (웃음)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본 행자들은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두 각자 준비해 온 우비를 입고 다시 들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곧 해가 지기 때문에 스님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습니다. 스님은 행자님들보다 두 배 이상의 속도로 들깨를 심어 나갔습니다.

“자, 마칩시다. 벌써 7시 30분이에요.”

오늘 마무리하지 못한 구역은 내일 오전에 마무리하기로 하고 울력을 모두 마쳤습니다.

젖은 땅을 밟으며 고랑을 오가느라 신발에 진흙이 가득 묻었습니다. 스님의 신발은 밑창이 떨어져서 덜렁덜렁거렸습니다.

“제 신발은 이렇게 되었어요.” (웃음)

스님의 신발을 보며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비를 잔뜩 맞으며 봉화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30분 동안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 8시에 다 함께 예불을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내일 오전에 마무리를 합시다. 한 시간만 더 작업하면 끝날 것 같죠?”

“글쎄요.”

“제가 여러분 아침 먹을 때 모종을 퍼오는 일을 미리 해놓을게요.”

모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들깨 모종 심기 울력을 마무리한 후 공동체 지부 성원 전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해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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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검

스님, 자신보다 잘난 사람 만나면 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2022-07-02 16:57:03

핑크

"사람의 얼굴 표정에 따라 나의 희로애락이 달라진다면 그게 바로 내가 노예라는 말입니다."
요즘 후배들의 얼굴 표정과 말투에 내 기분도 오락가락 하여 화가 났었는데, 제가 바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랑고파병이었네요.

2022-07-01 06:49:28

임호경

젊은부부에게는 단비 같은 법문인데...나이들면 그법문이 꿀같은 말씀임을 알게됩니다.

2022-06-30 10: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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