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21 도문 큰스님 친견,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7강
“너무 사랑하는 손녀가 죽었는데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도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은사 스님인 불심도문 큰스님께 얼마 전 수확한 햇감자를 비롯해 농산물을 가져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먼저 텃밭에서 상추 잎을 정성껏 뜯었습니다.

한 잎 한 잎 뜯는 가운데 어느새 상추 잎이 바구니에 가득 담겼습니다.


“내일 새벽에 서울 가니까 서울 공동체 대중들이 먹을 것도 뜯읍시다.”

작은 텃밭이지만 많은 양의 상추 잎이 나왔습니다.

“상추는 이만큼만 뜯어도 될 것 같아요. 자, 이제 열무를 수확합시다.”

얼마 전 텃밭에 열무와 치커리 씨를 뿌렸는데 한 달 만에 쑥쑥 자랐습니다. 물을 자주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며칠 전 비가 흠뻑 내린 덕분입니다. 손으로 잡아당기니 땅에서 하얀 뿌리가 쑤욱 뽑혀 나왔습니다.

뿌리와 이파리 사이에 있는 이물질을 칼로 제거해 준 후 잔뿌리를 칼로 다듬어 주고, 누런 잎이나 시든 잎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오이, 호박, 양배추도 일부 수확을 하고, 산앞밭에서 가지도 수확을 했습니다. 종류별로 다양한 채소들을 박스에 담아 포장을 했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아침 6시입니다.”

“그럼 아직 시간이 좀 있네요. 상추 밭에 난 맨드라미를 뽑아서 꽃모종을 더 만듭시다.”

상추 사이사이에 맨드라미가 듬성듬성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호미로 맨드라미를 뿌리째 뽑아낸 후 꽃모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화분에 고운 흙을 붓고 맨드라미를 심은 후 손으로 흙을 꾹꾹 눌러주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30개 정도의 화분을 만든 후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물을 흠뻑 준 후 그늘에 보관해 주세요. 저는 큰스님을 뵈러 지금 출발해야 해요. 뒷마무리만 좀 부탁드릴게요.”

스님은 행자님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감자, 상추, 가지, 호박, 양배추 등 수확한 농산물을 챙겨서 도문 큰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부산 중생사로 출발했습니다.

부산 중생사에 도착해 공양간으로 농산물을 나른 후 스님은 큰스님께 질문할 것을 수첩에 정리했습니다.


“왔어요? 들어오세요.”

먼저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절을 받으며 삼귀의를 염송 했습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이제 입맛이 영 없어요. 내 나이가 88세니 이제 육체를 버릴 때도 됐지요.”

이어서 큰스님은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렸을 적 불심이 깊은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게송, 6살 때 처음 용성조사님을 만난 이야기, 12세에 동헌조사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만암스님과 한암스님을 찾아뵙던 이야기,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 보냈던 일생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용성조사님, 동헌조사님에 이어 부처님 법을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모든 일이 자동으로 이루어졌어요. 만석거부이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집안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용성조사님을 만나 출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법륜스님을 만난 것도 다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동헌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백 년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다면 저 최석호 학생(법륜스님)은 천년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네.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할 수 있도록 저 학생을 붙잡아야 되네’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가 사정해서 중이 됐는데 오직 법륜스님만은 제가 붙잡았잖아요.”

그리고 큰스님은 법륜스님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널리 알리고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해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뜻을 잘 따르겠습니다. 다만, 건강하셔야 합니다. 큰 스님.”

“제가 너무 부담을 준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아닙니다. 전혀 부담 안 됩니다. 남은 일은 다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스님은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도 질문하며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오니 1시가 넘었습니다.

오후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오후 5시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하반기 경전대학 강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가 되자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제7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업까지 부처님이 우루웰라 깟사빠 등 대제사장을 교화하고,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를 교화한 후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가 생겨나게 된 연유까지 강의를 했습니다.

또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들어가는 걸출한 수행자들이 부처님에게 귀의한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무셨던 기원정사, 코살라국의 왕 빠세나디의 귀의, 동원정사를 기증한 비사카 부인의 귀의, 석가족의 귀의 등 성도 후 6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부처님을 만나 인생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술술 연결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300여 개의 나라가 있었고, 그중에 16개의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16 대국 중에 2개의 초강대국이 있었는데 바로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의 수도는 왕사성이었고 그에 버금가는 신흥강국인 코살라국의 수도는 사위성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전 세계 200여 개의 나라가 있고, 그중에 부국인 20개의 국가를 G20으로 지정해놓았는데, 우리나라도 그중에 하나죠. 그다음이 G7이라 해서 7대 강국이 있고, 그 가운데 G2라고 해서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2대 강국입니다. 2600여 년 전 인도에서는 전통적 강국인 마가다국과 신흥강국인 코살라국이 패권을 다투는 상태였어요.

훌륭한 왕이 되는 길

어느날 코살라국의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에 찾아와서 부처님께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거만한 태도로 물었어요.

‘훌륭한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세계를 통치하는 훌륭한 제왕이 되고 싶었던 빠세나디왕의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강력한 군대가 있어야 한다든지, 코끼리 부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든지, 어떤 산업을 양성해야 한다든지, 신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일러준다든지, 여러 가지 정답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시여! 백성 사랑하기를 외아들 사랑하듯이 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십시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왕이 백성에 대해 이런 마음을 내고 이런 실천을 한다면, 굳이 수행한다고 밥을 굶고 단식을 하고 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신 겁니다. 모든 백성의 생명을 왕의 개인 소유처럼 생각해서 왕이 백성의 목숨을 쥐락펴락하던 시대에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왕의 조건을 이렇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민주화된 시대인 오늘날에도 만약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부처님이 빠세나디왕에게 답했던 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몸담은 단체나 종교계에 지원 요청을 한다든지 아부나 찬양을 하기가 십상일 겁니다. 부처님께서 빠세나디왕에게 하신 말씀 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모두 타인의 불행위에 쌓는 거예요. 내가 시험에 붙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고, 내가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떨어져야 합니다. 누군가가 주식이 올랐다고 기뻐할 때, 주식을 팔았던 누군가는 고통스러워하고, 반대로 주식이 떨어졌다고 누군가가 괴로워할 때, 그 주식을 판 사람은 이익을 봤다고 좋아합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불행위에 쌓는 행복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고락(苦樂)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에도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께 설법을 자주 요청하는데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 질문이 고상하지 못했어요. 대신에 어리석은 질문을 많이 해준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지혜로운 부처님의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부처님의 교화로 빠세나디왕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너무 사랑하는 손녀가 죽었는데, 어떡하죠?

사위성에는 부처님께 귀의한 아주 위대한 여성 재가 수행자가 있었어요. 그분의 이름은 비사카 부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비사카 부인이 비가 오는데 우산도 쓰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를 찾아왔어요. ‘부인, 웬일이요? 왜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있소?’ 하고 부처님이 묻자 비사카 부인이 답하기를

‘부처님, 제가 너무 사랑하는 손녀가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라면 대부분 위로를 하기 일쑤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화제를 바꿉니다. 비사카 부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부인, 너무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좋소? 두 명이면 좋소?’
‘그야 두 명이면 좋죠.’

‘부인,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세 명이면 어떻소?’
‘그야 더 좋죠.’

‘네 명이면 어떻소?’
‘그는 더 좋은 사람이죠.’

다시 부처님이 묻습니다.

‘만약에 너무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 사위성 전체 인구만 하다면 어떻겠소?’
‘그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인, 이 사위성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이나 죽을 것 같소?’

‘부처님, 하루에 아마 열 명은 죽지 않을까요? 아니 적어도 다섯 명은 죽을 겁니다. 아니 아무리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에 한 명 이상은 죽을 겁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인,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매일매일 슬피 울겠구려.’

이 말을 듣고 비사카 부인이 탁 깨달아버렸어요. 비사카 부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너무너무 슬프다고 부처님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비사카 부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사위성 전체 인구만큼 많다면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비사카 부인은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사카 부인에게 사위성에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이나 죽는지 물었어요. 비사카 부인은 적어도 하루에 한 명은 죽는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매일매일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니 슬피 울겠구려’ 하고 답변합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 비사카 부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슬프다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부처님의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면 적어도 매일 한 명은 죽잖아요. 그럼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죽으니까 매일매일 슬피 울게 된다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비사카 부인이 딱 깨달았어요. 눈에는 눈물이 아직 흐르고 있는데 얼굴이 환히 밝아졌습니다.

‘알겠습니다, 부처님. 알겠습니다, 부처님. 잘 알겠습니다, 부처님.’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에요. 손녀가 죽었다는 슬픔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 모순을 깨닫고 곧바로 얼굴이 밝아져 버렸어요. 손녀가 죽었는데도 그 슬픔을 바로 여윌 수 있다면, 나중에 아들이 죽어도 그 슬픔을 여읠 수 있겠죠. 부모가 돌아가셨다 해도 바로 그 슬픔을 여윌 수 있을 거예요. 죽음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사업이 망했거나 코인 값이 폭락해서 생긴 괴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일을 당해도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아들을 잃고 슬피 울던 여인이 이 도리를 깨닫고 밝은 얼굴로 아기를 땅에 묻고 수행자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부처님이 가장 오래 머문 곳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출가하셔서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시기 전 45년간 북인도 전역을 돌며 교화를 하셨고 안거와 유행을 반복했습니다. 매년 인도는 우기(雨期) 때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움직이기가 불편해서 한 곳에 모여 살았어요. 그것을 안거(安居)라고 합니다. 우기가 아닌 나머지 계절에는 계속 이동하며 교화하셨는데 그것을 유행(遊行)이라고 해요. 부처님께서는 일 년에 한 번 안거를 했기 때문에 45년 동안 45 안거를 하셨는데, 그중에 25 안거를 사위성에서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가장 오랫동안 머문 곳이 바로 사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명성이 사위성에 자자했습니다. 사위성에 머무른 25 안거 중에 19 안거를 이 기원정사에서 보내셨어요.

부처님께서는 출가(出家)한 뒤 6년 후에 성도 하셨고, 성도(成道) 후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시다가 3년 후에 수닷타 장자를 만납니다. 수닷타 장자의 초대를 받고 사위성에 오셔서 기원정사에서 3년을 머무르셨어요. 성도 후 6년째가 되자 부처님에 대한 소문은 인도 전역에 퍼져나갑니다. 당연히 부처님의 고국인 카필라바스투까지도 이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죠. 아들이 출가하고 늘 아들이 그리워 잠을 못 이루던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는 소문에 매우 기뻐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한국 출신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위대한 스승이 된 것과 마찬가지니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서 부처님을 카필라바스투로 초대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도 깨닫지 못한 한 사람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카필라바스투에 당도하게 되고 정반왕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궁에서 수십 리를 나와 천막을 치고 부처님을 기다립니다. 아들인 부처님이 자신을 찾아 바로 궁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정반왕의 예상과는 달리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카필라바스투에 당도했다는 소문만 들릴 뿐 궁에 입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동네에서 걸식하는 부처님을 보게 된 정반왕이 부처님께 묻습니다.

‘너와 네 제자에게 주려고 왕궁에 진수성찬을 준비해뒀는데 걸식을 하다니 뭐하는 짓이냐?’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걸식은 우리 가문의 전통입니다.’

정반왕이 ‘우리 석가족에게 언제 걸식의 전통이 있었더냐?’ 하고 묻자 부처님께서 ‘걸식은 출가사문의 전통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이미 세속의 모든 계급이나 지위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반왕이 부처님에 대해 묻는 기록에는 부처님이 어떤 음식을 드시는지, 옷은 무엇을 입고 있는지,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다고 합니다. 정반왕은 부처님을 만나고 나서도 오직 아들이라는 생각만 한 거죠. 카필라성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출가를 하는데, 정작 부처님의 아버지이자 카필라성의 왕인 정반왕만 깨달음의 첫 번째 단계인 초견성도 이루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자 어느 날 제자들이 부처님께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합니다.

‘궁 안의 하인들도 다 깨닫는데,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정반왕은 왜 이 법을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부처님께서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반왕에게는 부처님이 없고 아들밖에 안 보인다.’

네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해라

이렇게 카필라성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 선뜻 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전 부인인 야소다라 공주였어요. 왕이 되어야 할 남편이 출가 사문이 되어 버리니까 세상 밖으로 나갈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남편이 죽었으면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태후가 되어 얼마든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텐데, 남편이 출가해서 고행을 하고 있으니까 야소다라 공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조신하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생각해도 스트레스받을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이 미안했다든지 고생했다든지 하는 말이 일절 없으니까 살짝 언짢았습니다. 토라지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죠. 그때 야소다라 공주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라훌라, 저분이 네 아버지시다. 가서 인사를 올려라. 그리고 너에게 유산을 달라고 해라.’

출가사문에게 유산을 달라고 말하라는 대목에서 야소다라 공주의 불편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훌라가 부처님께 가서 인사를 하면서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주세요’ 하고 두 번이나 얘기를 했어요. 부처님이 물끄러미 보더니 옆에 있는 사리푸트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출가시키는 걸로 아들에게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정반왕은 거의 몸져눕게 되었어요. 아들이 출가하고 손자라도 왕위를 이어야 하는데 손자마저 출가해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정반왕이 부처님께 항의를 합니다.

‘미성년자는 부모의 승낙 없이 출가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처님도 그걸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성년은 부모 동의 없이 출가할 수 있지만, 20세 이하 미성년자는 출가할 때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출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러면 라훌라 존자는 왜 출가가 가능했습니까?’ 하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라훌라 존자는 보호자인 아버지가 허락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합법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웃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석가족을 교화한 내용까지 강의를 하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지금까지는 부처님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수행하고 성도하고 6년 동안 교화를 해나간 과정까지 연대순으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다음 수업부터는 부처님이 일생동안 설법한 내용을 종류별로 분류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설법을 했는지, 천민이나 어려운 사람에게 한 설법은 어떤 내용인지, 비난하는 사람은 어떻게 교화했는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떤 실천을 했는지에 대한 강의가 펼쳐집니다.

학생들은 이번 주 수행연습 과제를 받고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새벽 2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아침 일찍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백중을 49일 앞두고 입재식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하고,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저녁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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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승

법륜스님~~~ 감사드립니다. 항상 법륜스님의 법문 강의를 경청 할 때 마다 제 자신을 뒤 돌아 볼 수 있게 해주시고 마음을 새롭게 잡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항상 건강 하셔서 좋은말씀 많이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법륜스님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

2022-06-29 06:04:45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06-28 06:31:18

호롱불

넘 재밌어요. 후속편이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2022-06-27 09: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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