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17 금요 즉문즉설 강연, 참깨 심기, 오이와 호박 수확
“인공지능 때문에 내 재능이 무용지물이 되었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종성 소리와 함께 새벽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태국 방송 PBS에서도 새벽부터 스님의 일상을 촬영했습니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노동을 하기 위해 간단하게 아침 참을 먹었습니다.

참으로 요기를 한 후 작업복을 갈아입고 농사일을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양배추 수확

먼저 양배추를 수확했습니다. 꽃처럼 활짝 핀 잎 가운데 알이 찬 양배추가 숨어있었습니다.

스님은 칼을 들고 양배추를 쏙쏙 베어냈습니다. 스님 뒤로 동글동글 양배추들이 줄을 섰습니다.




곧이어 아침 식사를 마친 태국 PBS방송팀이 도착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양배추를 수확하고 있어요. 아직 양배추가 작은데 진딧물이 너무 많아져서 일찍 수확을 하게 됐어요. 올해 한국이 많이 가물어서 진딧물 피해가 큽니다.”

금방 수확을 끝내고 양배추를 콘티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두 박스 가득 수확했습니다.




어제처럼 MC 워너씽 님이 함께 일을 하며 촬영을 했습니다. 밭에 남은 양배추 잎을 뿌리째 뽑아서 흙을 탈탈 턴 다음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게 비닐하우스 앞에 모아두었습니다.




스님은 태국 방송팀이 궁금해할 만한 점을 설명해가며 일을 했습니다.

“양배추 사이, 두둑과 두둑 사이에 풀이 자라지 말라고 짚을 깔았어요. 그래서 보기에는 좀 지저분하지만 친환경적이라 사용해 보고 있습니다.”

참깨 모종 심기

양배추 잎을 다 치우고 바로 그 밭에 참깨 모종을 심었습니다. 행자들이 짚을 다 치우고 땅을 호미로 평평하게 고르면 바로 뒤따라서 모종을 심었습니다.

스님은 워너씽 님에게 참깨 심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건 참깨라고 하는 거예요. 한 번에 모종을 3-4개씩 심으면 됩니다. 심을 때는 뿌리가 접히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모종이 아직 많이 어려서 살살 다루어야 합니다.”


키가 큰 워너씽 님이 좁은 이랑에 엉덩이 방석을 깔고 앉은 모습이 영 불편해 보였습니다.

“키가 큰 게 불리하네요. 작은 게 좋아요.”(웃음)

“네. 허리가 아파요. 그래서 동작에 깨어있기는 좋네요.”(웃음)

스님과 워너씽 님은 편안하게 대화하며 모종을 심었습니다. 스님은 어느 순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MC님이 힘들까 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천천히 해요. 유명한 사람인데 제가 일을 너무 시켜서 태국 국민들에게 욕먹는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힘들게 일하면 더 좋아할 겁니다.”

계속 모종을 심던 워너씽 님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휴일은 없나요?”(웃음)

“네.(웃음) 정토회에는 세 가지가 없습니다. 월급, 휴일, 휴가가 없어요.”

“그래도 행복이 있잖아요.”

“맞아요.”(웃음)

워너씽 님의 재치 있는 대답에 함께 웃었습니다. 뒤따라 새로운 땅에서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조심스럽게 주었습니다.

호박, 오이 수확

참깨를 비닐하우스 끝까지 다 심고 오이와 호박을 수확했습니다.

“자, 다 익은 호박을 꼭지 위로 따면 됩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먼저 호박을 수확했습니다.




호박을 다 수확하고 스님은 수정하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요즘 벌이 많이 없어졌어요. 비닐하우스 안에는 더 벌이 없어서 직접 수정을 해줘야 열매가 제대로 자라요. 이렇게 수꽃을 따서 수술에 묻어있는 분을 암꽃에 묻혀주면 돼요.”

“암꽃과 수꽃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꽃 아래에 열매가 달려있으면 암꽃이에요. 수꽃은 수술이 딱 하나만 있어요.”

호박 반 상자 수확하고 오이도 반 상자 수확했습니다. 토마토는 딱 하나가 빨갛게 익어있었습니다.

농막으로 수확한 작물들을 옮기고 무게를 쟀습니다. 스님은 잘 익은 토마토를 잘라서 태국 방송팀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맛있어요.”


이렇게 2시간 동안 울력을 마쳤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농사짓고 있는 논을 구경시켜주었습니다.


“올해 벼농사 모내기를 처음으로 저희가 직접 해보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모가 빈 곳이 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모를 직접 심어 보였습니다. 논 구경까지 마치고 다시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이 끝나고 오전 10시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오전에도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3500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잠시 영상으로 보고 나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액비를 밭에 뿌리는데 액비가 옷에 묻기도 하고 냄새가 심해서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이 나오자 시청자들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영상으로 보니까 재미있어 보이지요? 실제로 해보면 냄새도 많이 나고, 힘도 듭니다. 액비는 음식물 쓰레기에 미생물을 넣어 발효시킨 천연 비료입니다. 화장실 냄새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나요.” (웃음)

이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미술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었는데, 최근에 인공지능이 나오는 바람에 자신이 쌓아온 기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며 막막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인공지능 때문에 저의 재능이 무용지물이 되었어요, 어떡하죠?

“미술 쪽에서 일하는데, 최근에 미술을 할 수 있는 창의성을 가진 인공지능이 나왔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쌓아온 기술을 인공지능이 몇 초 만에 해버리는 걸 보니 허탈합니다. 제 일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의욕이 사라집니다. 제가 세운 목표도, 제 재능도,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 역사를 좀 알아요? 영국에서 산업사회 때 증기기관을 비롯해 여러 가지 기계를 개발하게 되니까 그동안 인력으로 하던 노동력이 많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했다는 얘기 아시죠? 그런데 인간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기계를 사용하는 게 낫겠어요? 그때는 기계가 일을 다 하니까 '우리가 할 일 없네, 뭐 먹고사나?' 하면서 기계를 때려 부수는 운동을 했는데, 기계가 개발이 되어도 그 후에 인간이 할 일이 계속 생겼습니까, 안 생겼습니까?”

“다른 일들이 더 생겼죠.”

“어떤 일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으면 기계한테 맡기면 되지, 무엇 때문에 질문자가 그 일을 하려고 해요? 질문자는 걸어 다니다가 차가 생겨도 차를 안 타고 걸어 다녀야겠네요? (웃음)

기계가 일을 해주면 좋잖아요. 내가 한 달 동안 해야 하는 일을 기계가 몇 초 만에 해버리면 기계한테 그 일을 맡겨버리고 내가 다른 일을 하면 되잖아요. 그 일에 집착해서 기계랑 경쟁을 하니까 좌절감을 느끼는 겁니다. 질문자는 아예 비행기하고 경쟁하지 그래요? 그게 왜 경쟁의 대상입니까?

저도 기계가 개발되어서 재능을 못 쓰게 된 게 있어요. 저는 지리에 대해 많이 압니다. 외국에 가도 지도를 하나 들고 옆에 앉은 운전기사에게 '이쪽으로 가라' 하면서 길을 찾아갈 정도예요. 다른 사람이 저만큼 지리를 잘 알려고 하면 30년을 노력해도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니 저의 재능이 아무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대신 내비게이션 덕분에 차 앞자리에 앉아서 '이 쪽으로 가자' 하는 것을 안 해도 되고 그냥 자면 돼요. 해외에 갈 때마다 지도를 한 보따리씩 갖고 다녔는데 이제는 안 갖고 다녀도 됩니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구글맵으로 세계 지도를 다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구글에 초청 강연을 갔을 때 직원들에게 두 가지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어요. 첫째, 구글 지도 덕분에 제가 전 세계를 다닐 때 지도를 안 가지도 다녀도 된다는 겁니다. 둘째, 유튜브 덕분에 제가 하는 강의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에서 저한테 사용료를 달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저는 유튜브에 광고를 붙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유튜브에 광고를 붙여서 많은 돈을 버는데, 저는 조회수가 많아도 광고를 안 붙여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제 법문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되지 왜 자기가 하려고 해요?”

“제가 그 기술에 대해 교육도 더 받을 예정이었는데,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가 배울 필요가 없으면 교육을 안 받으면 되죠. 어떤 벤처 기업이 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 1만 개를 주면 그것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앞으로 스님이 없어도 인공지능에게 물으면 즉문즉설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법륜 스님과 백 퍼센트 똑같이는 못해도 비슷하게 즉문즉설을 할 수 있다면 좋잖아요. 제가 직접 즉문즉설을 하는 건 오전에 다섯 명, 오후에 다섯 명, 하루에 열 명 밖에 못해요.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하면 하루에 수 천 수 만 명을 할 수 있잖아요. 그게 좋은 일이지 왜 나쁜 일이에요?

기계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질문자의 걱정은 '내 돈벌이를 뺏어갔다. 이제 나는 뭐 먹고살아야 하나?' 이게 아닐까요? 무슨 미술 걱정이에요? 인공지능이 그 일을 대신해주면 나는 다른 일로 돈을 벌면 되죠.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만든 변호사가 나오게 되면 현실의 변호사보다 훨씬 나아요. 지금 이미 프로그램이 나와 있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써서 인공지능한테 넘기면 법조문 어디를 잘못 적용했다고 검색해주는 기능도 있고, 아예 인공지능이 판결문을 써주는 기능도 있어요. 그럼 판사가 읽어보고 자기 마음에 들면 그대로 하고, 아니면 일부만 고치면 돼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기계가 대부분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합니다. 그러면 의사와 변호사는 다 굶어 죽을까요? 아니에요. 또 다른 일이 생깁니다. 옛날에는 인구의 90%가 농사짓고 살았는데 산업화가 되면서 지금은 농촌 인구가 10% 미만이잖아요. 그래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다 굶어 죽었나요? 또 다른 일을 하잖아요. 왜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해요? 미국에서는 인구의 3% 밖에 농사를 안 지어도 농산물을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일반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다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지식과 기술이 아닌 창의적인 문제라든지, 단순한 서비스라든지, 이런 건 오히려 인공지능이 못해요.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병실 간호, 심부름도 앞으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나오면 다 합니다. 환자를 돌보고, 시장도 보고, 운전도 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면 운전도 이제 사람이 할 필요가 없어져요. 이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 기술을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사용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심정은 우버 택시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을 택시 기사들이 결사반대하는 것과 똑같아요. 집에 남는 방을 이용해서 숙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회사가 생기니까 호텔에서 결사반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론 이해는 돼요. 이해 당사자들에게는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변해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 피해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의 문제예요. 작은 도시에 백화점이 들어오는 문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도시에 백화점이 들어오면 재래시장이 죽어버리고 시내에 있는 소매상이 다 죽어버리잖아요. 이것은 옛날식으로 가야 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자율 경쟁에 맡겨야 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가령 피해를 줄일 수 있게 속도를 늦춰주는 방법도 있겠죠. 예를 들면, ‘100만 명 이상의 도시만 대형마트를 지금 둘 수 있다’, ‘50만 명 이상의 도시는 몇 년 후에 대형마트를 둔다’, ‘2만 명 이하의 읍 단위는 대형마트 설치를 못한다’ 이런 식의 정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재래시장이나 소매상이 하는 사업들은 대부분 사양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줘서 개개인이 점차적으로 사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사회 정책입니다.

앞으로 교수직도 크게 필요가 없어집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튜브에 좋은 강의가 얼마든지 있는데 뭐 때문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그런 강의들을 듣겠어요? 지금은 학벌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지 실제로는 별 필요가 이미 없어졌어요. 학교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교육 시스템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강의를 잘하는 몇 사람의 강사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그것을 유튜브로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모르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한 선생님이 학생 열 명씩 데리고 질문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한 사람이 강의하면 되는데 십만 명의 교사가 똑같은 강의를 하는 것은 낭비입니다. 강의를 잘하는 한 명의 교사만 강의를 하고, 전국에서 그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은 후에 스무 명씩 소수로 모여서 학생들이 모르는 걸 교사에게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교사의 역할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사의 권위가 없어진다고 반대하면 교육개혁을 못하는 거예요.

미술도 이런 식으로 바뀌면 좋은 일이에요. 사람하고도 경쟁할 필요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인공지능하고 경쟁해요? 기계가 할 수 있는 건 기계에게 넘겨버리고, 기계가 못하는 것을 사람이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미술을 안 하면 되지 왜 미술을 꼭 해야 해요? 제가 농사짓고 사는 모습을 못 봤어요? 질문자도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짓고 살면 되잖아요. 앞으로 국가에서 기본 소득을 다 주게 될 텐데, 그 돈으로 시골에서 채소나 키워 먹고살면 되죠. 그림은 혼자서 재미로 하면 돼요. 정형화된 그림은 기계가 대체할 수 있지만, 재미로 그린 그림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어요. 그러니 이 문제는 괴로울 일도 아니고, 아무 일도 아니에요. 질문자가 기계랑 경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생각을 바꿔 보세요. 기계가 할 수 있는 건 기계에게 넘겨줘 버려요. 그일 말고도 할 일이 무궁무진해요. 아무 할 일 없으면 더 좋아요. 앞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더 잘 갖춰지기 때문에 무엇을 먹고살지는 고민을 안 해도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생각을 바꾸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사회가 좋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런 사회로 가는 건 막을 수가 없다는 얘기예요. 결과가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아직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회가 좋다고 하지만 저는 좋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런 사회가 좋으면 제가 왜 시골로 와서 농사짓고 살겠어요? 목탁치고 천도재만 잠깐 지내주면 몇 백만 원을 벌 수 있는데, 농사는 하루 종일 지어봐야 십만 원도 못 벌어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제가 농사일을 하겠어요? 왜 우리가 돈을 중심으로 놓고 살아야 합니까? 효율이라는 게 다 돈으로 계산해서 평가하는 거잖아요. 저는 저의 재능을 돈으로 팔지 않으려고 강의를 하고 나서도 강의료를 받지 않습니다. 제 일정이 가능하면 강의를 하러 가고, 여의치 않으면 강의를 안 가요. 그런데 돈을 받게 되면 돈 때문에 강의를 가게 됩니다. 돈을 더 준다고 하면 돈을 적게 주는 곳을 취소하고 돈을 많이 주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밥도 못 먹고사는 형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밥은 먹고살 수 있는 형편인데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살아요?

어떻게 살 것인지는 자기 선택입니다. 바둑 두는 사람은 처음에 재미로 바둑을 둡니다. 그런데 바둑을 좀 잘 둔다고 해서 상금을 걸다 보니 프로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나오니까 본인이 일등이라는 게 무의미해지잖아요. 이게 다 돈 계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잘 두는 것과 우리가 취미로 바둑을 두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질문자도 돈 계산을 하기 때문에 지금 고민이 생긴 거예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미술 걱정이 아니잖아요. 돈 벌려고 미술 하는 거 아닌가요?”

“저에게는 직업이라서 생존의 문제예요. 생존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생존은 정부가 책임져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정치인들이 서로 국민들에게 돈을 많이 주겠다고 난리예요. 그러니 가만히 있으면 정부에서 생존을 위한 돈을 다 줘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은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좀 더 잘 먹고, 좀 더 잘 입고, 좀 더 큰 집에 살려고 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거예요. 생존이 해결되었다면 돈 계산하지 말고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살면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작품을 그릴 수 있죠. 돈벌이로 하는 게 수명이 오래가겠어요? 옛날에 커피 한 잔 먹고 그려준 그림, 밥 한 끼 얻어먹고 그려준 그림이 지금 세계적으로 중요한 미술이 돼서 몇 백만 불씩 가잖아요. 그 당시에 귀족들한테 비싸게 팔던 그림들은 요즘은 시세가 없어요. 생각을 조금 바꾸면 아무 걱정거리가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신기술을 접한 후로 굉장히 두려운 마음이 계속 있었는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 두려움 밑에는 경쟁심리가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부터 기계랑 경쟁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생존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기계가 내 직업을 뺏어가니까 기분이 안 좋았나 봐요.” (웃음)

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저는 큰아들을 데리고 재혼을 했습니다. 신랑이 큰아들을 차별합니다. 큰아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런 결혼 생활을 해야 할까요?
  • 희귀병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꽃도 못 피워 볼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아이와 이런 부모가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 최근 미국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했을 때 제 존재가 너무나도 미약해서 무기력함이 느껴집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되었습니다. 다음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뙤약볕을 피해 낮에는 실내에서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았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전국법사회의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법사단은 지난 한 달 동안 법사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에 대해 자유롭게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오후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내일 나비장터에 낼 꽃모종을 운동장으로 미리 옮겨 놓아야 해요. 빨리 갑시다.”

내일은 드디어 나비장터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꽃모종을 옮겨 심은 후 매일 물을 주고 아침저녁으로 알뜰살뜰 보살폈습니다. 어제, 오늘은 하루 종일 햇볕을 쬐어주었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가기 전에 햇볕에서 살아남는지 보고 비실비실한 모종은 걸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장에 낼 모종만 엄선했습니다.

“저의 명예가 걸린 일인데 아무거나 낼 수는 없죠.”(웃음)


스님은 모종을 요리보고 조리보고 잎이 시들하거나 모양이 좋지 않은 것은 골라내고 튼튼한 모종만 행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아쉽게도 딸기 모종은 대부분 시들했습니다.

“이건 대부분 못 내겠네요.”

행자들은 꽃모종을 다듬은 후 콘티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모종은 좋은데 화분이 별로 좋지 못한 것과 화분은 좋은데 모종이 시들한 것은 모종과 화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좋은 화분에 튼튼한 모종만 담아 보냈습니다.


튼튼한 모종은 다듬어서 트럭에 싣고 시들한 모종들은 스님의 텃밭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실하지만 조금 더 키우면 잘 클 거예요.”

트럭으로 두북 수련원 운동장 한편에 내려놓고 스님은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저녁에는 4500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오전처럼 스님이 농사짓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녁에도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암투병으로 죽은 남편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을 어떡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암 투병으로 죽은 남편, 후회와 그리움을 어떡하죠?

“암 투병 중이던 남편이 한 달 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11개월 만입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게 했지만, 막상 남편이 떠나고 나니 지난 치료과정 중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과연 그때의 선택들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평생을 무능한 남편이라고 미워하고 무시했던 일들이 후회됩니다. 남편이 하는 일마다 실패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기본 생활도 영위하기 힘들어서 가족 간에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보듬어 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암 진단을 받기 전 십여 년간은 한 집에서 살면서도 정서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저도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기본 생활은 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암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왜 대부분의 시간을 미워하며 괴롭히며 살았는지 후회도 되고 남편이 그립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떨쳐낼 수 있을까요?”

“지난 30년은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고, 앞으로 30년은 후회하고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살 것 같네요. 그게 질문자의 까르마(karma)입니다. 30년이나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산 것을 반성했으면 앞으로 남은 기간은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야죠.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이 있을 때는 있다고 괴로워하면서 30년을 살다가, 남편이 없으니 이제는 없다고 문제 삼으면서 괴로워하며 30년을 사는 겁니다. 이것은 반성하고 뉘우친 게 아니라 자기 습관대로 사는 겁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원래 살아온 습관대로 사는 것에 불과해요. 물론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질문자가 지난 30년간 남편을 미워하면서 살아온 것을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앞으로 30년은 혼자 살더라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살다가 이제는 없는 사람을 있는 사람 취급하며 바보 같이 살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좀 차렸으면 좋겠네요.”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리게 됐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을 미워하면서 30년을 살고, 남편이 없을 때는 그리워하면서 30년을 살고, 왜 그래요? 남편이 있을 때 미워하면서 사는 것보다 남편이 없을 때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이 더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미워했다면서요. 이제 그런 남편이 없어졌으니 ‘잘 됐다’ 하고 자유롭게 살면 되잖아요. 지금이라도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불행이 지속됩니다.

정반대의 상황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상황입니다. 욕망이 올라올 때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욕망을 억압하는 것은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똑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모두 양 극단에 치우쳐 있으니 이 둘을 버리고 중도를 행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질문자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남편이 있다고 귀찮아하지 말고, 남편이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질문자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평소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의해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진심으로 지난 30년을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앞으로 30년을 현명하게 살아야 합니다.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어디 있습니까?

이건 남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이 암투병으로 고생했다고 하는데, 죽은 남편은 말이 없습니다. 질문자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남편을 핑계로 대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요. 예전에는 남편을 미워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이번에는 또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겁니다. 두 가지 모두 남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지난 30년간 남편을 무시하고 미워하며 산 것과 지금 남편을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사는 것은 동일한 증상입니다. 반성하는 게 아니에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정신질환과 같습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으면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고 괴로움을 받아들여도 됩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남편의 죽음을 계기로 질문자가 깨달음을 얻어 행복해진다면 남편의 공덕이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의 현재 상태는 남편이 죽기 전과 동일합니다. 있는 사람 미워하는 것이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나 변화가 없습니다. 이 병을 치료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남편의 죽음은 저에게 계기가 되었을 뿐이지 저의 모든 괴로움은 제가 갖고 있던 까르마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까르마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밤새도록 울다가 아침에 누구 죽었냐고 묻는 것과 같네요. (웃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됩니다. 남편하고 결혼했으면 결혼한 사실을 인정하고 맞춰서 살면 되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 당사자가 더 괴로울 테니 위로를 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했다는 건 다 내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남편도 없는데, 없는 사람을 핑계로 또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나의 까르마를 깨우쳐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앞으로는 즐겁게 살면 됩니다. 남편이 암에 걸린 것은 질문자의 책임이 아니에요. 죄책감을 갖는 것은 본인 스스로를 너무 좋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관점을 바꿔서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임을 알고 웃으면서 살면 됩니다. 그리워한다고 남편이 살아서 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남편한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질문자는 지금 아무 쓸모없는 일로 본인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부터 이틀 동안 두북 수련원에서는 재활용 물품과 농산물을 나누고 가난한 나라 어린이를 돕기 위한 나비장터가 열립니다. 스님은 나비장터를 시작할 때 인사말을 하고, 점심에는 운동장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오전에는 경전대학 즉문즉설이 있고, 오후에는 화엄반 4기 행자교육이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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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희

나는 어떤 까르마대로 살고 있는지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6-27 07:09:17

고광남

인공지능 때문에 저의 재능이 무용지물?
- 돈을 중심에 둔 생각
- 요즘 효율이라는 것이 돈이 기준
- 인생을 왜 돈에 기준을 두고만 살아요
- 스님 "생존은 정부가 책임져요" 이 말씀은 추상적으로 들릴까요?

2022-06-26 00:07:31

고광남

살아 있을 땐 무능한 남편이라 미워하고 남편이 죽었을 땐 후회가 되 괴롭다
- 까르마
-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둘을 버리고 중도를 행하라 대입하면
남편이 있다고 귀잖아 하지 말고, 남편이 외롭다고 외로워 하지 마라
(어떤 관련으로 이 말씀을 하신 건지 어려워요)

2022-06-26 00: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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