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16 농사, 태국 PBS방송 인터뷰, 정토불교대학 인간붓다 제6강
“스님은 왜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는지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가 끝나자 곧바로 농사일을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양배추를 일부 수확하고 그 자리에 참깨 모종을 심기로 했습니다.

양배추를 손바닥으로 만져보니 포기가 차서 아주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겉잎을 한 번에 두세 장씩 떼어낸 후 결구만 수확해서 따로 모았습니다.

떼어낸 겉잎을 모두 수레에 담아 밖으로 낸 후 참깨 모종을 심을 수 있게 두둑을 반듯하게 만들었습니다. 양배추 주변에 잡초까지 말끔하게 제거한 후 스님이 말했습니다.


“나머지 양배추는 내일 태국 방송국에서 촬영할 때 수확합시다.”

이어서 참깨 모종을 심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종을 한 뼘 간격으로 두둑 위에 놓고 지나가면, 뒤따라서 스님이 호미로 모종을 하나씩 심었습니다.

“자, 심어 봅시다.”



모종 심기에 열중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7시 30분이요.”

“그럼 산아랫밭에 가서 비닐 멀칭을 해놓고 울력을 끝냅시다.”

마침 INEB 사무총장 무(Moo) 씨도 비닐하우스 옆 동에서 고추줄 묶기를 하다가 일을 끝내고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하룻밤 머물려면 하루 2시간은 노동을 해야 해요.”

“저는 아침에 열심히 노동을 했습니다.” (웃음)

스님은 무(Moo) 씨와 함께 산아랫밭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전 액비를 뿌렸고, 어제는 관리기로 땅을 잘 갈아놓아서 새로운 밭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자, 여기에 비닐을 덮는 일을 좀 도와주세요. 어제 비가 와서 지금 비닐을 덮어 놓으면 수분 유지가 되어서 아주 좋아요.”

“YES!”

무(Moo) 씨를 비롯해 통역을 하러 온 봉사자들도 모두 삽을 하나씩 들고 일손을 도왔습니다.

“이 비닐은 재활용 비닐이에요. 제가 비닐을 걷을 때 반듯하게 잘 걷어서 재활용이 가능해졌어요.” (웃음)

“Very Good!”

비닐을 한 줄 더 치려고 했는데 발우공양을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러다가 발우공양에 늦겠어요. 여기까지만 합시다.”

서둘러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발우공양을 준비했습니다. 발우공양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태국 국영방송국인 PBS에서 스님을 촬영하기 위해 막 도착했습니다.

“싸왓디카! 인디티 다이 루짝 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PD님, 촬영감독님, MC 모두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태국말로 인사를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이 끝나고 오전 10시 30분부터 태국 방송국 PBS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PBS에서는 영적인 리더십을 주제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불자들이나 스님들을 모시고 인터뷰하여 불교 철학 사상과 불교적 가르침을 삶에 적용하는 모습을 Life Explorer TV(인생 탐험 TV)라는 TV 프로그램으로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법륜 스님과 정토회를 촬영하고 싶다며 두북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인터뷰는 두북 수련원 법당에서 약 두 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질문은 태국의 유명 작가이자 배우인 워너씽(Wanna Xingh) 님이 했습니다.

스님이 정토회를 설립한 이유, 현대인이 가진 괴로움, 즉문즉설의 치유효과, 정토회의 수행법과 실천 활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스님에게 물어봤습니다.

“한국에는 다른 사찰들도 많이 있는데, 정토회를 설립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째, 현대인들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데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로워지도록 사회적인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불교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처님께 도와달라고 복을 구하는 것이 주된 행위였고, 죽었을 때 극락세계에 가게 해달라고 빌어주는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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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왜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는지요?

“이혼할 때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쉽게 이야기해 주는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왜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는지요?”

“설명이 쉬워야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이 이해하고 직접 경험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첫째, 그 사람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남의 얘기를 하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를 질문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다음에 둘째, 그런 질문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게 필요하죠.

이것은 새로운 방식이 아니고 부처님이 2600년 전에 하신 방법입니다. 부처님은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이것이 진리이다’ 이렇게 말한 적이 없고, 본인이 ‘아이가 죽어서 힘들다’ 하면서 부처님에게 질문을 한 것에 대해서 대답을 했을 뿐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준 겁니다. 그래서 경전의 대부분이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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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태국 사람들도 괴로움이 많아요. 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불교의 본래 가르침에 테라밧다와 마하야나가 어디 있으며, 선불교가 따로 있겠습니까. 모두 같은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괴로움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도 이겁니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괴로움이든 괴로움의 종류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소멸하면 괴로움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늘 괴로웠기 때문에 좀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잘 수 있기 위해 복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불교 역시 그런 복을 구하는 종교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충분해졌는데도 인간의 마음이 여전히 괴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 사람들도 ‘한국처럼 잘 살게 되면 괴로움이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태국 사람들도 복을 비는 종교로서의 불교보다는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절을 크게 짓고, 불상을 크게 만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현대인들의 괴로움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첫째, 붓다 담마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본인이 직접 붓다 담마를 경험해야 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본 자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승려냐 아니냐, 여자이냐 남자이냐, 이런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본인이 경험하고 나면 자연적으로 이 좋은 법을 주위에 널리 전하게 됩니다. 세력을 얻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하는 관점에서 붓다 담마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합니다. 기후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환경 실천을 해야 하고, 절대 빈곤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야 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철폐해나가야 하고, 지나친 빈부격차를 완화해 나가야 하고, 독재 정치는 인권을 탄압하기 때문에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불자라면 이런 정의감을 가져야 합니다. 불자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살아야 하고 지위가 높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준비한 질문이 끝나자 워너씽(Wanna Xingh) 님이 단체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점심때 오후 울력을 무엇으로 할지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은 며칠간 야외 화장실에 똥이 가득 찬 것을 두고 언제 똥을 풀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울력은 화장실 똥 푸기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실무팀은 태국TV에 똥 푸는 모습이 나가는 것이 보기 안 좋다며 다른 울력을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스님이 똥이 얼마나 찼는지 확인해 보자며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직 똥이 엉덩이에 닿으려면 한참 멀었네요. 제가 지금 평탄화 작업을 다 해놓을게요."

스님은 작대기를 하나 가져와서 높이 솟은 똥산을 이리저리 휘저었습니다. 똥산이 무너지자 여유 공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건 그저께 밭에 액비 뿌릴 때 냄새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두북 공동체 전체가 울력으로 하기로 한 일이었는데, 스님이 점심시간에 일을 다 끝마쳤습니다.

“똥 푸기는 제가 다 했으니까 오후 울력은 다른 일을 합시다.” (웃음)

농사팀과 의논해서 오후에는 산아랫밭에 올라가서 마늘을 수확하는 것으로 일감을 변경했습니다.

저녁공양을 하고 오후 4시에 산아랫밭으로 갔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액비를 뿌린 두둑에 지난번에 사용한 비닐을 다시 덮어주었습니다. 오전에 한 줄을 덮었기 때문에 나머지 두 줄에도 마저 비닐을 덮었습니다.



뒤이어 태국 PBS 촬영팀이 도착했습니다.

비닐을 다 덮고 밭 앞쪽에 모여서 일감을 안내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마늘을 다 수확하고, 수확한 마늘을 크기별로 분류해서 묶는 작업까지 하겠습니다. 명심문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엉덩이방석을 하나씩 차고 마늘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방석을 처음 본 태국인들은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Wow. very genius! very convenient!” (와, 기발하네요. 너무 편해요)”

뽑은 마늘은 말리기 위해 밭 위에 늘어놓았습니다.




밭 위로 드론이 윙윙 거리며 울력하는 전체 모습도 촬영했습니다. MC 워너씽(Wanna Xingh) 님이 드론 촬영을 마치고 스님 옆으로 왔습니다. 스님은 마늘 뽑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쑥 뽑으면 돼요. 잘 안 뽑히는 것은 두세요. 제가 호미로 뽑아줄게요.”

“네.”

마늘을 뽑으며 워너씽 님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노동을 하면서 하는 특별한 수행방법이 있나요?”

“일 할 때는 일하는 동작에 깨어있습니다. 명상할 때 앉아서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움직일 때는 동작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노동을 할 때도 움직이는 동작에 집중해보는 거예요.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에 2시간씩 울력을 하고 있어요. 오후에는 시간이 되는 사람만 또 울력을 해요.”

“그럼 백 퍼센트 자급자족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아직은 한 50프로 정도예요. 왜냐하면 이렇게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3년밖에 안 되었거든요.”

“그렇군요.”

“한국은 문화적으로 걸식하는 것을 나쁘게 보기 때문에 직접 생산해서 먹는 것이 수행의 한 부분이에요. ‘선농일치’라고 하는데, 농사와 선이 일치한다는 전통이 있어요. 옛날부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청규가 있습니다.”

“멋지네요. 가만히 앉아있기보다 일하는 게 좋습니다.”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스님은 부지런히 마늘을 뽑았습니다.


다 함께 울력을 하니 금세 마늘을 다 뽑았습니다. 이제 마늘을 크기별로 분류하고 50개씩 묶는 작업을 했습니다.

“마늘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분류해서 열 개씩 놓아주세요. 이 크기 이상이면 모두 큰 것이고, 이하면 모두 작은 것으로 분류하면 돼요. 두 가지로만 분류하면 됩니다. 그럼 뒤따라서 다른 분들이 50개씩 묶어줄 거예요.”

스님은 빠르게 분류를 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일을 나눠서 하니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50개씩 모아진 묶음들만 밭에 가지런하게 남았습니다. 다 함께 양손에 마늘을 한 묶음씩 들고서 트럭으로 날랐습니다.


“수고했어요. 금방 끝나네요.”

행자님들은 밭에서 마무리 작업을 더 하기로 하고, 스님은 태국 PBS 촬영팀을 데리고 스님이 농사짓는 논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저희가 농사짓는 밭이 여기저기에 있어요. 논은 저 밑에 있습니다. 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냐면, 우리 땅이 아니고 동네 어르신들이 연세가 많으셔서 농사를 못 지게 되어 우리에게 빌려준 땅이어서 그렇습니다.”

스님은 차에 올라타고 논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한편 행자님들은 수확한 마늘을 야외 창고에 모두 걸어둔 후 오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다 함께 저녁 예불을 했습니다. 우렁찬 예불 소리가 법당에 크게 울렸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생방송 수업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곧바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업에서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설법을 한 이야기와 야사 비구의 출가, 전법 선언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대제사장을 비롯해 왕을 교화하는 전법의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초기 과정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야사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야사는 수행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어요. 어느 날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부처님을 찾아와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를 통해 꼭 수행자만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거예요. 야사를 찾아온 그의 아버지, 어머니, 부인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꼭 출가하지 않아도 재가에 있으면서도 수행이 가능한 길을 열어놓으신 겁니다.

야사가 출가한 것을 보고 야사의 국내 친구 4명, 해외 친구 50명도 출가를 했습니다. 이 야사의 무리 55명에 부처님의 첫 제자인 5비구를 합해서 총 60명의 제자들에게 부처님은 전도 선언, 혹은 전법 선언을 하셨어요.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해서 괴로워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줘라.’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 ‘나도 우루웰라(Uruvela) 병장촌으로 가서 교화하고 설법을 하겠노라.’ 하셨습니다. 우루웰라는 부처님께서 6년 간 수행을 하시고 깨달음을 얻었던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6년이나 계셨으니까 그 주위 사정에 대해 잘 아셨겠죠. 그곳에는 천 명의 제자를 거느린 깟사빠(Kassapa, 가섭) 3형제가 있었습니다. 큰 형인 우루웰라 깟사빠는 그 당시 최대의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으로부터 일 년에 한 번씩 공양을 받을 정도로 큰 스승이었습니다.

깟사빠 3형제는 지역 이름을 따서 우루웰라 깟사빠, 나디 깟사빠, 가야 깟사빠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불을 섬기고 불을 피워놓고 제사를 지내고 신통을 부리는 결발 외도였습니다. 결발 외도는 출가사문이 아니고 바라문(브라만) 출신인데 머리를 땋아서 상투처럼 틀어 올립니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먼저 우루웰라 깟사빠를 찾아가서 ‘하루밤 머물고 가겠습니다’ 하고 청했습니다. 이 교단은 좀 폐쇄적이었나 봐요. ‘이곳에는 외부인이 머무를 자리가 없습니다’ 하고 거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또 청했습니다.

‘어디라도 좋습니다.’

당시 인도 문화에서 ‘어디라도 좋다’, ‘얼마라도 좋다’ 이렇게 백지수표를 내면 거절을 못했어요. 부처님께서 ‘어디라도 좋다’고 하니까 ‘딱 한 군데 뱀을 모셔놓은 곳이 비었다’라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뱀은 한문으로 ‘화룡’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교단에서는 킹코브라를 모시고 있는데, 뱀이 있는 굴 밖에 내줄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 말은 그냥 가라는 얘기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그곳도 좋습니다’ 하고 큰 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우루웰라 깟사빠는 생각했습니다.

‘여법한 젊은이가 뱀한테 물려 죽게 됐으니 참 안 됐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굴에서 부처님이 아주 밝은 얼굴로 나오는 거예요. 이 대목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처님께서 뱀 굴에 들어가서 앉아 있으니까 뱀이 부처님의 몸을 감고 있다가 그냥 지나갔다고 해요. 다른 하나는 신화적인 이야기인데, 부처님이 신통을 써서 큰 뱀이 부처님 발우 속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부처님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있었기 때문에 뱀이 부처님의 몸을 감았다가 그냥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겠죠. 뱀이 나무를 감았다가 그냥 지나가지 일부러 꽉 물고 지나가지는 않잖아요. 어쨌든 아무런 문제 없이 뱀굴에서 나온 부처님을 보고 우루웰라 깟사빠는 놀랐습니다. 경전을 보면 우루웰라 깟사빠가 부처님이 참 훌륭하다고 인정은 했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못하다는 약간의 시기심이 있었던 거 같아요.

부처님이 큰 뱀굴에서 하룻밤 무사히 지내고 나자 우루웰라 깟사빠는 이제 부처님을 내보내지 못하고 제자들의 수행을 보여줬습니다. 제자들은 강에서 빨대를 물고 물속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있다가 나오는 수행을 했습니다. 고행을 하는 거죠. 이걸 보신 부처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빨대도 안 가지고 그냥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루웰라 깟사빠가 배를 타고 부처님을 찾으러 다니는 그림들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부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왔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 건 우루웰라 깟사빠가 그만큼 교화하기 어려웠다는 거죠.

우루웰라 깟사빠는 무척 놀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처님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전에는 이런 식의 경쟁을 360번 했다고 나옵니다. 대제사장을 교화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뜻하죠.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교만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부처님과 우루웰라 깟사빠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제자가 뛰어와서는 불이 붙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늘 큰제사를 지낼 때 딱 어떤 시간에 맞춰서 불을 붙여야 하는데 불이 안 붙는다는 거예요.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부처님께서 ‘불이 붙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안 됐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냐’ 하고 가보니까 정말 불이 붙었어요. 그때 우루웰라 깟사빠의 마음속에 ‘오늘 큰제사를 지내는데, 혹시 이 자가 무슨 일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약간의 염려가 스쳐 지나갔어요.

우루웰라 깟사빠가 제사를 지내는 동안 부처님은 다른 곳에 있다가 왔어요. 우루웰라는 제사의식을 잘 마치고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어디 갔었소? 오늘 제사가 엄청나게 성대했었소. 당신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당신은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소?’

‘내가 말이요?’

‘마음속에 질투심이 있는 한은 해탈할 수가 없소.’

우루웰라 깟사빠는 자기가 잘났다는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자기 마음의 밑바닥을 딱 본거예요. ‘아, 내가 질투심을 갖고 있었구나’ 하고 자기 마음을 알자 바로 내려놓고 제자의 예를 갖췄어요. 나이가 팔십이 넘은 우루웰라가 36세 정도 되는 젊은 부처님에게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나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이렇게 선언을 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말렸습니다.

‘당신 밑에 500명의 제자가 있는데 이러면 안 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어르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참으소서’ 이렇게 말린 거죠. 그랬더니 우루웰라 깟사빠는 ‘아닙니다. 내가 오늘에야 바른 법을 만나서 이제 해탈을 증득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루웰라 깟사빠는 부처님 제자 되기를 3번을 청하고 나서 자기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같이 여러분들은 수행정진을 잘했다. 그런데 나는 위대한 사문을 만났다. 그래서 나는 그 사문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 너희들은 다 갈 길을 가라.’

‘아닙니다. 저희는 스승님을 존경하고 따랐는데, 스승님께서 더 큰 스승을 만났다면 우리 또한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 법을 청했고, 부처님이 설법을 하자 그들 또한 다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리고는 그들이 소중히 여기던 제사를 지내는 도구, 요즘 말로 제기(祭器)를 다 강물에 던지고 머리를 삭발하고 출가수행자가 됐습니다.

강 아래쪽에 살던 나디 깟사빠는 자기들이 소중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제사 도구들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00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우루웰라 깟사빠 수행터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형님과 제자들이 다 삭발을 하고 출가사문이 되어 있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루웰라 깟사빠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너도 고타마 붓다께 법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디 깟사빠와 그 제자들도 부처님께 법을 청했더니,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그들도 다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출가하고 귀하게 여기던 제구를 다 물에 던져버렸습니다.

강의 맨 아래쪽에 있던 가야 깟사빠는 큰 형님과 둘째 형님이 부처님께 귀의한 것을 보고는 어떤 괴력을 가진 도사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밖에 안 나오고 정사를 폐쇄했습니다. 그래서 우루웰라 깟사빠와 나디 깟사빠가 동생을 찾아가서, ‘우리가 무슨 변을 당한 것이 아니고 위대한 스승을 만나서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으니 너도 법을 청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가야 깟사빠도 부처님께 법을 청하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이 열려서 제사 도구를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 사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은 순식간에 일천 명의 제자를 얻게 된 거예요.

내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

일천 명이라는 숫자도 놀랍지만, 인도 당시 최고 계급인 브라만들이었고 마가다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행 집단 중에 한 집단이었고 직접 왕의 공양을 받은 분들이 젊은 붓다에게 귀의했다는 것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가야산 아래 천 명의 비구를 두고 유명한 불의 설법을 했습니다.

‘너희들은 지금까지 밖에 있는 불을 섬겼다. 그런데 이제 깨달음을 얻고, 그 불을 섬기고 복을 구하는 것이 윤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인 줄 알고 버렸다. 밖에 있는 불은 껐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러니 부지런히 수행정진해서 마치 밖의 불을 끄듯이 내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

이렇게 부처님이 최고 계급인 브라만 가운데에서도 아주 큰 권위를 지녔던 대제사장을 교화한 일은 당시 인도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 기세로 인도 대륙에 있는 삼백여 개의 나라 중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국 국왕도 교화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 사회에 마치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 후 부처님께서는 죽림정사에 삼 년 가까이 머물면서 교화를 했습니다. 이곳에 머물 때 소위 위대한 제자들이 부처님께 출가를 하게 됩니다. 이런 대제자들이 귀의한 곳이 바로 왕사성의 죽림정사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다음 시간에는 인도 당시 두 번째 큰 나라인 코살라국의 수도 쉬라바스티(사위성)로 가서 교화한 이야기들을 나누도록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비닐하우스에서 양배추와 오이, 호박을 수확하고, 참깨 심기를 한 후, 오전과 저녁에 두 번에 걸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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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와 버들치

부처님이 물속에 들어가서
3일 동안 뭘 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강의 밤섬처럼 강의 외딴 섬에 가서
물속에서 잡은 가재, 참게, 버들치, 미꾸라지, 다슬기를
구워 드시거나 삶아 드시면서
기력을 회복하셨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식은 나쁜 게 아닉니다.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마음수행과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024-02-23 15:53:49

고원향

위대하신 부처님
밖의 불 안의 불을 끄라.

스님 생생한 전법의 장면 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2-06-26 08:59:36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부처님은 깨달으시고 교화하시고 제일 큰 왕국인 마가다국 국왕도 교화하다니 이 시대에 정말 혜성처럼 등장했군요 감사합니다 스님 스님의 하루를 읽으니 좀 더 꼼꼼히 볼수있음에 감사합니다.

2022-06-23 11: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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